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49화 (50/226)

§ 49화

이른 새벽, 나는 침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 나를 중심으로 그람의 비도가 허공을 유영한다. 비도의 숫자는 어느덧 5자루를 넘어 6자루로 늘어나 있었다.

동자귀를 사냥하면서 얻은 정념은 기력에도 변화를 가져왔고, 그 변화에 그람의 비도가 해금된 것이다.

휘이익!

비도 한 자루가 순간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기도하듯 양손을 모았다가 좌우로 펼쳤다. 그 빈 공간으로 비도가 날아들었다.

빈 공간으로 날아든 비도는 나아가는 듯 싶더니,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 가슴께에 이르러 도로 튕겨 나갔다.

“좋네.”

만족스러움에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도가 튕긴 이유는, 양옆으로 펼쳐진 내 손 사이에 늘어진 기력에 막혀서였다.

정신력의 상승이 가져온 기력의 변화. 그것은 기력에 ‘성질’이 부여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성질이란, 바로 고무와 같은 ‘탄성’이다.

이 탄성은 제법 질겨서 어지간한 마법이나 검격조차도 튕겨 내는데 무리가 없을 듯싶었다. 이전의 기력이라면 막아내지 못했던 것들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슬슬 가볼까.”

시계를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안을 하곤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늘은 중간고사가 있는 날이었다.

***

아침 시간,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서로 수다를 떨거나. 책을 보는 등 활기가 넘쳐 보였다.

동자귀 사건으로 후유증에 시달려야 정상이었지만, 한세울의 특제 포션을 돌렸더니 되려 역으로 컨디션이 좋아진 것이다. 그 덕에 나 또한 제법 돈을 쏠쏠하게 벌어들였다.

[13,056,000원]

통장 어플에 찍힌 액수에 흐뭇하게 웃기도 잠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혼의 선각자】

칭호를 가동시키자 보이기 시작하는 생도들의 영혼. 그 영혼은 감정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만 내가 구분 지을 수 있는 감정의 색이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바로 ‘호감’과 ‘적의’.

내게 호감을 지녔다면 백색이, 적대 의사가 있다면 적색이 차오른다. 공격의사가 있다면 검은색이 흘러나오고.

적색은 김주혁과 몇몇 시기 질투를 지닌 생도들에게서 보였고, 아멜리아나 은가예, 한세연은 백색이었다. 다만 한세연은 백색이기는 한데, 이게 좀 특이했다.

웃으며 생도들을 대할 때의 색이 ‘투명한 백색’이었던 것이다.

별다른 호의조차 지니지 않고 웃어주는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영업용 미소를 달고 사는 아멜리아조차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어찌 보면 참 대단했다. 뭐, 그래도 나를 대할 때는 좀 달랐다.

“왜, 무슨 일 있어?”

뿌연 백색? 우윳빛? 그런 게 흘러나온다.

“아무것도 아니야.”

“흐음, 그래?”

내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았다가, 고개를 젓자 다시금 총기수입에 들어가는 한세연.

그나저나 저거 총 또 바뀌었다.

‘데저트이글인가? 개멋있게 생겼네.’

한세연이 총기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멍때리고 지켜보던 나는 이윽고 시선을 돌렸다. 지난 2주간 비어있던 자리가 주인을 맞이해 있었다.

내가 그 자리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이야, 오랜만이다. 잘··· 지낸 것 같지는 않네.”

어깨를 툭 치며 천우진을 본 내가 어색하게 말을 바꿨다.

눈가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낀 애를 보고 잘 지냈냐고 묻는 것도 웃겼으니까.

천우진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오, 해솔아. 교실에서 보기는 2주 만이네.”

“···어, 그런데 오늘도 새벽 훈련한 거냐?”

“아니, 중간고사잖아. 컨디션 조절은 해야지.”

천우진이 ‘노아랜드’에서 돌아온 것은 동자귀사건이 있던 날 밤이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쳐서 어디 가냐 물었더니 훈련장 간다는 소리에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이런 놈이라도 역시 중간고사 당일마저 새벽 훈련을 감행할 수는 없었나 보다.

“몸을 푸는 의미에서 공원 몇 바퀴만 뛰고 왔어.”

“······.”

나는 미친놈 바라보듯 천우진을 쳐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터니티의 ‘공원’은 그 면적부터가 장난 아니었으니까.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지는 그 공원을 몇 바퀴씩이나 돌았다는 말을 저렇게 가볍게 해도 되는 건가?

기가 차서 입을 벌리고 있자니, 교실 앞문이 드르륵 열리며 하진우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이다.”

교탁에 선 하진우가 교실을 둘러보곤 말했다.

“다 모였군. 그럼 출석부터 부르지.”

하진우가 출석을 부르고, 반장인 한세연의 주도로 인사를 하는 조례가 이어지고 난 후.

“그래. 다들, 중간고사 준비는 잘 해왔겠지? 뭐, 안 했어도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하진우가 시답잖은 농담을 하더니 말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첫 시험은 마력제어 테스트다. 다들 영웅관으로 이동하도록.”

***

이터니티의 대강당, 영웅관.

1학년 생도 600명이 중간고사를 치루기 위해 모여들어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선 생도들이 단상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중간고사의 첫 시험, 마력제어에 관해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교들을 뒤에 세운 교관 신오준이 강당의 바닥에 그려진 50개의 마법진을 가리켰다.

“마력의 응집을 억제하는 마법진입니다. 이 안에서 날아오는 쇠구슬을 3분 동안 마력으로 막아내면 됩니다. 막아낸 횟수로 점수를 매기겠습니다.”

시험의 내용을 확인한 생도들의 표정이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그도 그럴 게, 마력의 응집을 억제하는 마법진 안에서 마력을 사용하려면 상당한 정신력이 필요할 게 뻔했다.

하물며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쇠구슬의 타이밍에 맞춰서 마력을 일으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눠드리는 콘솔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쇠구슬이 1회 날아드니, 시간에 쫓길 필요는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친 신오준이 긴장한 표정의 생도들을 둘러보더니,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흘렸다.

“다들 어렵다는 표정이군요, 이해합니다. 말로만 들어서는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제가 먼저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법진 하나에 들어가 선 신오준이 손에 들린 콘솔의 버튼을 눌렀다.

피잉─!

강당의 벽에 난 구멍에서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쇠구슬.

쇠구슬이 날아오길 기다린 신오준이 타이밍에 맞춰 손을 들곤 마력을 일으켰다. 이내, 마력에 막힌 쇠구슬이 튕겨 나갔다.

“쇠구슬은 일정하게 날아들지 않습니다. 휘기도 하고, 속도도 다르니 그에 맞추어 마력을 일으켜야 합니다.”

신오준은 차분히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콘솔의 버튼을 눌렀다.

수십 가지의 패턴을 보이며 날아드는 쇠구슬. 신오준은 이를 마력을 수시로 일으키며 모두 막아냈다.

그렇게 해서 신오준이 3분 동안 튕겨낸 쇠구슬의 개수는 다 합해서 30개.

어찌 보면 적다고 볼 수 있겠으나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시험에서 3분에 30개를 막았다는 것은 대단한 수치였다.

생도라면, 20개를 막아도 많이 막아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오준 또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채 마법진의 밖으로 나왔다.

“다들 알았을 테니, 이제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마력제어 시험의 교관을 맡은 신오준은 사실 이번 테스트에 있어서 생도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저 마력 응집 억제진은 마력에 민감하면 민감한 사람일수록 되려 마력을 모으기가 어려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마력에 민감하면 응집을 방해하는 마법진의 영향을 크게 받는 반면, 감각이 둔한 생도는 그게 뭔지도 자각을 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재능있는 초인이라면 그조차도 극복해내야 한다고 신오준은 생각했다.

물론 그건 나이를 따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고, 1학년 수준에서는 어렵다는 것이 신오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번 1학년 생도들은 이런 신오준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실력들을 보여주었다.

“과연, 로마노의 직계인가. 놀랍군.”

쇠구슬을 쳐내는 속도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하나씩 숫자를 올리고 있는 아멜리아.

저건 단순히 마력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뛰어난 마력 제어력이 어우러져야지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기에, 신오준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로마노의 직계다운 실력이었다.

“······저것도 막는 거라면 막는 거라고 할 수 있겠고.”

아멜리아 옆의 생도를 보게 된 신오준이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검을 쥐곤, 야구방망이를 든 자세로 쇠구슬을 쳐내는 생도는 바로 은가예였다.

마력으로 막아내야 하는 시험이기에 엄연한 반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볼 수도 없는 게 검을 휘두르되, 정작 쇠구슬을 튕겨내는 것은 검과는 연관 없이 일어난 마력이었다.

그러니까 저 자세는 단순히 타이밍, 리듬감을 잡기 위한 모션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무서운 마력이군.’

은가예의 마력과 닿은 쇠구슬은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닌, 쿵! 쿵! 바닥을 뚫고 박혀 들고 있었다.

은가예의 기프트 ‘중력’이었다.

다만, 한 번 쇠구슬을 박아낼 때마다 소모되는 심력이 어마어마한지 은가예의 교복 상의는 땀 범벅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런 심력의 소모에도 아랑곳없이 쇠구슬을 소환하고 쳐내는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는 게, 정말 어마어마한 근성이었다.

그 독기에 기가 질린 신오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사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뒤의 둘에 비하면.

타앙! 타앙!

신오준이 총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곤, 해괴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분명, 마력을 일으켜 쇠구슬을 막으라고 했지, 마력으로 쇠구슬을 ‘격추’하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

날아드는 쇠구슬을 마력으로 격추하는 것은 막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몇 배는 어려운 일을 해내는 생도가 있었다.

데져트이글을 든 채, 마력탄을 쏘아 쇠구슬을 격추시키는 생도는 바로 한세연이었다.

정말 이색적인 방법이었지만, 시험의 규정에 어긋났다고 볼 수도 없었다.

마력을 일으켜, 쇠구슬을 막는 것 자체가 그가 요구한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마력탄은 마력의 응집도가 높기에, 단순히 마력을 일으키는 것보다 소모되는 심력 또한 훨씬 많을 터였다. 그러니 뭐라 할 수 없을 수밖에.

‘···괴물이 따로 없군.’

상식을 벗어난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수준이 높았기에 감탄한 신오준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구르르르르─

바퀴구르는 소리가 강당을 요란하게 울려왔다. 시선을 돌린 신오준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한 생도가 바퀴가 달린 칠판을 마법진의 앞으로 옮기고 있었다.

‘뭐 하자는 건지.’

전까지가 방식이 특이하지만, 수준이 높았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면 지금 칠판을 옮기고 있는 생도는 대체 뭘 하는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순번을 기다리며 이를 지켜보는 생도들의 반응이 더욱 기가 찼다.

“저 칠판에 뭐가 숨겨져 있나 보네.”

“단순히 쇠구슬 막는 시험이 아니었구나.”

“나도 미리 칠판 들고 와야겠다.”

녀석이 하는 해괴한 행동에 무언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강당 한 편에 모아놓은 바퀴가 달린 칠판들을 미리미리 가져오는 생도들. 때 아닌 칠판의 대이동이 강당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니, 쇠구슬을 막으라니까 이게 무슨······’

머리가 어지러움에 관자놀이를 매만진 신오준이, 마법진 앞 양옆으로 칠판을 배치하고 이를 테이프로 고정하는 생도, ‘이해솔’에게 다가갔다.

“···이해솔 생도,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 거기 칠판 안 흔들리게 좀 붙잡고 있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테이프 붙이게요. 이거 고정 안 하고 시작하면 난리 나거든요.”

“······?”

뭐가 난리가 난다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인상을 찌푸린 신오준은 어디 한번 봐보자는 생각에 이해솔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이내 마법진 앞 양옆을 칠판으로 막아 일자 통로처럼 만든 이해솔이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0초 남았습니다. 이해솔 생도.”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

10초가 충분하다고? 남들은 3분 동안 10개도 못 채우는데?

이해 못 할 말에 신오준이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이해솔이 손에 든 콘솔의 버튼을 클릭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이 아닌, ‘광클’을.

휘리리리리리리릭!

수십 개의 쇠구슬이 날아든다.

그리고 이어진 광경에.

“······이게 무슨?”

신오준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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