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50화 (51/226)

§ 50화

마력 억제진 안에서는 마력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그렇기에 억제진 안에서는 평소라면 몇 개가 날아오던 신경도 쓰지 않을 쇠구슬조차 하나를 제대로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마력을 다룰 수 없게 되었을 때 초인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알려줌으로써 마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번 마력제어시험의 목적이었다.

1학년 생도라면 아무리 많이 막아도 3분에 20개 이상을 막기는 어려웠고, 교관인 신오준 본인조차 30개가 한계였다.

‘······그런데 저건 뭐야?’

휘리리리리릭!

쇠구슬이 끝도 없이 날아든다.

20개, 30개는 진즉에 넘긴지 오래였고, 신오준은 세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많은 쇠구슬들은 이해솔의 근처에 이르러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더니, 도로 튕겨 나갔다.

타다다다다당!

사방으로 튕겨 나갔어야 할 쇠구슬들은 양옆에 놓인 칠판에 막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

강당이 정적에 휩싸였다.

칠판을 끌고 이동하던 생도들도, 시험을 마치고 서로 막은 쇠구슬 개수를 가지고 신나게 떠들던 생도들도 말을 잇지 못했다.

이를 바로 옆에서 지켜 본 신오준은 입을 쩌억 벌린 채 굴러가는 쇠구슬들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교관님, 끝났는데요.”

“어? 아, 아. 그, 그렇군요.”

정적을 깨는 이해솔의 말에 신오준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교대! 끝난 생도들은 마법진 밖으로 나가고, 다음 조 입장하십시오!”

신호를 받은 조교가 소리치고, 뒤늦게 계기판에 표시된 점수를 바라본 신오준의 눈이 거칠게 떨렸다.

[58개]

“······으음.”

신오준은 조금 전 벌어진 상황을 차분히 떠올려 보았다. 막히고 도로 튕겨 나가던 쇠구슬들. 이를 마력적 지식에 최대한 대입해 보던 신오준은 문득 이해솔이 칠판을 설치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거 고정 안 하고 시작하면 난리 나거든요.

“······반발력을 이용한 것이었나.”

신오준은 그제야 머리가 개인 듯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마력이란 퍼지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마력을 극도로 뭉치게 되면 터져 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 터져 나가는 마력의 폭발에 쇠구슬이 튕겨 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쏘아지던 쇠구슬이 느려진 것도 설명이 가능했다.

마력을 뭉치면 그 주변의 마력 밀도 또한 비약적으로 올라가 ‘저항감’이 생길 테니까.

그만큼 농밀한 마력이 뭉쳐 들었음에도 마력을 느낄 수 없던 것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느껴지지 않는 마력이야말로 이해솔이 지닌 ‘기프트’였으니까.

‘하지만, 마력이 폭발하지 않게끔 뭉쳐놓은 것은 정말 대단하군.’

터져 나가려는 마력을 억지로 뭉쳐둘 만큼의 유지력이라니. 그건 어마어마한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이해솔에게 쇠구슬을 막는 것쯤이야, 별것 아닌 일이었을 터였다.

‘10초를 남겨두고 시작한 것도 그만큼 여유가 넘쳐서였다는 건가.’

모든 걸 깨달은 신오준이 혀를 내둘렀다.

한편, 마법진에서 나온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와, 조질 뻔했네.”

쇠구슬을 막는 거야 나한테는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기력을 펼쳐놓으면 알아서 튕겨 나갔으니까.

다만, 쇠구슬이 퍼지는 걸 막는다고 칠판을 설치하는데 애를 먹었다.

3분밖에 없는데 칠판 고정에만 시간을 다 잡아먹어 버렸으니까.

그렇게 10초가 남은 상황에 버튼을 광클하다가, 기력을 펼치지 않은 걸 뒤늦게 깨닫곤 정말 아슬아슬하게 펼친 것이다.

하마터면 쇠구슬 밥이 될 뻔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음 시험을 치러 이동했다.

***

날아드는 쇠구슬을 쳐내는 게 순발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었다면, 두 번째 시험은 유지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었다.

양손의 빈 공간에 마력을 모아, 두꺼운 책 5권을 받치고 30초 이상 버티는 시험.

몇 번의 시도를 하든 상관없이 통과하는 시간을 통해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다.

“···이해솔, 책을 내려놓아도 좋다. 통과다.”

조교의 말에 책을 내려놓은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강당은 책이 우당탕 떨어지는 소리로 난리도 아니었다.

“···어어? 아! 씁!”

잘하는가 싶더니 우르르 책을 떨구곤 인상을 찌푸리는 은가예.

떨어지는 책에 머리를 맞았는지 머리를 매만지며 울상을 짓고 있는 아멜리아.

시도를 미루고, 마력을 모았다 푸는 연습을 해보고 있는 한세연.

이 역시 마력 억제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에, 다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반면 집중할 필요가 없는 나야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냥 기력 위에 책을 올려두면 끝이었으니까.

‘천우진은 아직인가 보네.’

첫 번째 쇠구슬 시험의 차례를 기다리는 천우진을 흘낏 일별한 나는 시험을 모두 끝마쳤기에 강당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영웅관의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던 김주혁이 나를 보곤 꽁초를 끄고 다가왔다.

“이해솔 생도, 시험 도중에 강당을 나오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시험은 다 끝냈습니다.”

“···하, 아직 시험이 시작한 지 20분도 안 됐는데 다 끝내고 나왔다고요?”

“예,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던가요.”

김주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마력제어시험을 모두 치루고 나오려면 못해도 2시간은 넘게 걸려야 정상이었다.

쇠구슬을 막는 거야 3분짜리 시험이라지만, 두 번째 시험인 책받침 시험은 통과하려면 못해도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리는 시험이었으니까. 한 번 실패하면 자기 차례가 다시 올 때까지 대기까지 해야 하니 통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걸 20분만에 끝내고 나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주혁은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포기하고 나오는 것도 끝낸 거긴 끝낸 거였다 하기야, 이해솔이라면 포기할 가능성이 무엇보다 높은 생도였다.

마력제어시험에 쓰인 마력억제진은 마력에 민감하면 민감할수록 영향을 심하게 받는 진법이었으니까.

이해솔같이 마력을 제어하는데 극도로 타고난 체질이라면, 처음에는 아예 마력을 끌어내는 것조차 어려울 게 뻔했다.

그걸 노리고 이번 시험에 마력억제진을 집어넣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 장본인이 바로 김주혁이었다.

실전 수업만 담당하는 교관과 달리, 필기까지 겸하는 교수인 김주혁은 아카데미 내에서 나름 입김이 있었기에, 이러한 시험 내용에 관여하기가 쉬웠던 것이다.

그 결과가 성공적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김주혁은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김주혁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 마력 억제진은 해솔 생도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겠지요. 이해합니다.”

“예?”

“그렇다고 벌써부터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2교시를 잘 치면 충분히 만회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응원한다는 말입니다.”

“···아, 예.”

자꾸만 이상한 헛소리를 해대는 김주혁을 어이없이 쳐다보던 나는 내심 고개를 젓곤 걸음을 옮겼다.

한편, 김주혁은 내가 사라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강당에 들어갔다.

팔짱을 낀 채 생도들을 평가하고 있는 신오준에게 김주혁이 다가갔다.

“신오준 교관님.”

“아, 김주혁 교수님. 무슨 일입니까?”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는 신오준을 보며 김주혁이 은근한 기대를 담아 물었다.

“방금 이해솔 생도가 시험을 끝내고 나왔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김주혁이 원하는 것은 신오준의 입을 통해 이해솔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해솔이란 말을 듣자, 신오준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러고 보니, 이해솔 생도의 마력담당 교수가 김주혁 교수님이었지요.”

“예, 맞습니다.”

“정말 생도를 잘 가르치셨습니다.”

“예?”

의도하곤 반대되는 말에 김주혁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이를 어찌 받아들였는지 신오준이 방긋 웃어 보였다.

“너무 겸손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 김주혁 교수님이 잘 가르치시니까 이해솔생도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게 무슨······”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김주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신오준이 점수가 기록된 계기판을 가리켰다.

===

▶ 1등 이해솔 [58개], [30초].

▶ 집계 중······

▶ 집계 중······

▶ 집계 중······

===

“······.”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김주혁은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곤 입을 쩌억 벌렸다.

***

한편, 영웅관을 빠져나온 나는 2교시, [교관의 인정]이 진행되는 ‘초인의 전당’에 들어섰다.

역대 초인 랭킹 100위권에 이름을 올린 아카데미 졸업생들의 조각상이 좌우로 전시된 초인의 전당.

위이이잉!

그곳에 발을 내디디기 무섭게 푸른 조명이 전당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나는 전당 입구 게시판에 적힌 시험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

【교관의 인정】

[초인의 관 내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코인을 찾아 내게 가져와라.]

*코인에 내포된 마력을 탐지하면 된다.

[마감 시간 : 오후 14:00]

-체육교관 곽진호-

===

“지독하네.”

전당 구석구석을 밝히는 푸른 조명을 본 내가 혀를 내둘렀다.

저건 단순한 조명이 아닌, 마력이 방사된 빛이었다.

피부에 닿으면 타격을 주기에, 이를 견디기 위해서는 마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마력이 없는 나로서는 저 조명에 닿는 순간 지속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손을 살짝 집어넣은 것만으로도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화륵!

푸른 불길이 살갗에서 피어올랐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가라앉는 피부.

단숨에 주는 피해라면 모를까 이런 지속적인 피해라면 불사조의 재생력으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전당 안으로 들어가기는 싫었다. 코인을 찾기는 더더욱 무리였고.

전당이 오죽 넓어야지. 마력도 탐지 못하는데 여기서 동전 하나 찾으려면 한 세월이다.

물론 그 고생을 할 필요는 내게 없었다. 나는 곧장 불사조를 소환했다.

[끼악?]

고개를 갸웃거리는 불사조의 앞에 게시판에 걸린 예시 코인을 내밀어 보였다.

“찾아.”

얘가 이런 거 하나 찾는 데는 개코거든.

***

곽진호는 초인의 전당 가장 끄트머리 방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는 적어도 오후 1시는 되어야지만 첫 번째 합격자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10시쯤은 되어야 1교시가 끝나고 생도들이 초인의 전당으로 모여들 테니까.

그리고 그가 오후 1시쯤에 첫 번째 성공자가 나오리라 판단한 이유는 전당 내부를 장악한 마력 탓이었다.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마력의 조명 아래서 코인을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코인을 찾다가 마력이 바닥나면 다시 전당을 나가서 마력을 채우고 다시 도전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 차례고 전당을 왔다 갔다 해야지만 코인을 찾을 수가 있었다.

설령 그렇게 코인을 찾더라도 통과를 하려면 그가 있는 전당 끝의 방까지 도달해야만 했고. 그런데······

“호오.”

푸른 조명 너머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한 명의 생도.

곽진호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오전 09:36]

“···시계가 고장 났나?”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곽진호가 어깨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아무렴 상관 없지.”

***

과연, 불사조는 견본을 보여주기 무섭게 깡충깡충 전당을 뛰어다니더니 순식간에 코인을 물어왔다.

보답으로 적마석을 하나 던져준 나는 코인을 들고 전당으로 들어섰다. 조명에 닿자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르는 피부.

화륵!

푸른 불길이 살갗에 타오르며, 순식간에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불사조의 공능 【초재생】이었다.

그렇게 초재생에 의지해 곽진호가 있는 방까지 도달해 코인을 건네주니 하는 말이······

“막아봐라.”

“예?”

갑자기 팔을 붕붕- 돌리기 시작하는 곽진호.

그 회전의 바퀴 수가 올라갈 때마다 팔에 맺힌 마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3바퀴······ 8바퀴······ 12바퀴······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오르는 마력 덩어리.

나는 가만히 서서 그걸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그도 그럴 게 곽진호에게서는 별다른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공격의사가 있다면 내 영혼의 눈에 비친 곽진호의 영혼이 검은색으로 물들어야 했지만, 곽진호의 영혼은 하얗기만 했다.

그리고.

후우우웅!

회전하던 곽진호의 팔이 쏘아지더니 내 코앞에서 멈춰 섰다.

“호오, 대단하군.”

······뭐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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