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내 마력을 읽었다는 거구나.”
곽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이란 단순한 에너지의 집합체 따위가 아니다. 마력에는 의지가 담긴다. 그 마력에 담긴 의지를 읽으면 상대가 앞으로 취할 행동을 어느 정도 유추하는 것쯤은 가능했다.
물론, 마력에 담긴 의지를 감출 수도, 속일 수도 있겠으나, 곽진호와 같은 순수한 무인은 그런 잔재주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그는 충분히 강했기에.
다만, 마력에 담기는 의지란 굉장히 미묘한 차이였기에 이를 읽어내기란 굉장히 난해한 일이었다.
어지간히 뛰어난 감각을 지니지 않고서는 분별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해솔은 이를 읽어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건만, 그다음에 이해솔이 취한 행동은 곽진호를 더욱 흡족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재능만 믿고 날뛰는 녀석은 아니라는 거군.”
곽진호가 씨익 웃었다.
그는 이해솔의 대응보다도, 그 마음가짐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재능만 믿고 날뛰는 어중이떠중이들은 그의 공격이 닥쳐오면 눈이 흔들리거나, 태반이 공포를 느끼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해솔은 달랐다.
공격을 마주하고도 공포를 느끼지 않았고,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겁에 질리지 않는 저 마음가짐이야말로 재능보다도 훨씬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곽진호는 믿고 있었다.
그게 곽진호가 믿는 ‘전사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이해솔은 그 전사의 심장을 타고났다.
‘몸만 키우면 완벽한데 말이야.’
우람한 덩치야말로 초인의 제일 덕목이라는 게 곽진호의 지론이었다.
***
뒷목을 긁적이던 곽진호가 입을 열었다.
“이해솔, 헬스 동아리에 입부할 생각은 없나?”
“없습니다.”
“특별히 매달 회비는 안 받겠다. 내가 직접 지도도 해주마.”
“괜찮습니다.”
“그래? 아쉽군. 언제고 말해라. 네 자리는 항상 비워둘 테니.”
쩝, 입맛을 다신 곽진호가 탁자의 자리를 권했다.
“앉아서 기다려라.”
합격이다. 라는 말을 덧붙이며 곽진호가 내게서 코인을 받아 갔다.
“그런데 네가 너무 빨리 와서 다음 합격자가 오려면 적어도 3시간은 기다려야 하겠군. 뭣하면 나가 있다가 1시까지 돌아와도 좋다.”
하지만 이런 곽진호의 말은 바로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달칵.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며 다음 합격자가 들어왔으니까.
“···허, 진짜 시계가 고장 났나?”
오전 10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바라보며 곽진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여기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주인공은 바로 천우진이었다. 곽진호에게 코인을 제출한 천우진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 미친 속도에 내가 혀를 내둘렀다.
“빨리도 왔네.”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나야, 순번이 앞이었으니까.”
천우진의 어이없다는 말에 내가 능청스레 대꾸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야말로 더 어이가 없었다.
나야, 기력이라는 치트키를 썼으니까 빨리 도착했다지만, 천우진은 그런 것 따위 없이 순수 실력으로 나랑 시간이 비빈 것이었으니까.
정말 괴물 같은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괴물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달칵.
천우진에 이어 문을 열며 여유 있게 들어서는 생도.
“두 사람 다 먼저 와 있었네?”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는 한세연을 보며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이길래 기력을 쓴 나랑 비슷하게 들어오는 거지?
하긴, 태생부터가 재능의 끝이라는 마수지체가 고위마수인 모르도하고까지 계약을 해버렸으니 답 없는 먼치킨의 탄생은 어찌 보면 예견된 바나 다름없었다. 천우진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그나저나.
“좀 옆으로 가 앉아라.”
“여기 앉으면 안 돼?”
쇼파도 넓건만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눈을 멀뚱멀뚱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한세연.
“앉으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된다는 거네?”
“맘대로 해라.”
한세연의 능청스러움에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둘이 오면서 못 만났냐?”
“입구가 네 개니까. 난 북문으로 왔어.”
“난 남문.”
두 사람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인의 전당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입구가 나 있었으니, 마주치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던 것이다.
“두 명 남았네.”
내 중얼거림에 한세연이 은근하게 물었다.
“누가 올 거 같아?”
“글쎄.”
나도 궁금했다.
2교시, 【교관의 인정】은 단순히 코인을 제출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선착순 (3/5).
5명의 멤버가 채워지는 순간부터가 진정한 시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멤버가 누가 될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게임에서도 상황에 따라 랜덤하게 꾸려지는 게 이 멤버구성이었으니까.
특히나 이번에는 나라는 변수가 끼어들어 버렸으니, 더욱 달라질 수밖에. 뭐, 대충 예상이야 간다만.
“그런데, 교관님.”
“뭐냐.”
“아까, 그거 저만 합니까?”
왜, 있잖아요. 그 풍차주먹.
내가 팔을 붕붕- 휘두르는 시늉을 해보이자 곽진호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거.”
“예, 그거.”
얘네한테도 좀 하셔야죠.
그래야 보는 맛도 있지.
내 기대감을 읽은 곽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거 시험 아니다.”
“······?”
“담력을 확인해 본 거였다.”
“담력 두 번 확인했다간 사람 죽이겠네요.”
내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에 곽진호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데 그래?”
천우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한세연도 듣고 싶다는 눈치여서, 나는 곽진호가 들으라는 듯이 그의 만행을 까발렸다.
“···음, 그건 교관님이 좀 심했네.”
“심했지.”
천우진의 공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니 한세연이 키득거렸다.
“뭐가 웃겨?”
“미안, 그냥.”
그냥이라면서 여전히 키득거리는 모습에 내가 입술을 삐죽일 때였다.
달칵.
“나보다 빠른 놈은 이해솔밖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문을 반쯤 열던 생도가 내부 정경을 보더니 멈칫거리며 굳어졌다.
“야, 많이 늦었다.”
내가 손을 흔들어주자 문을 열던 생도, 니콜라이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
니콜라이가 오고 나서 30분쯤 흘렀을 때, 드디어 마지막 생도가 도착했다.
“제가 마지막이네요.”
다행이라는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이는 생도는 아멜리아였다.
“딱이네.”
“시험이 뭘 지는 모르겠지만, 전위가 적은 거 아닌가요?”
“아니, 이편이 나아.”
아멜리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천우진, 니콜라이. 아멜리아, 나, 한세연.
전위 둘에, 후위 셋.
던전을 공략할 거라면 전위가 더 많은 편이 방패막이가 많아 유리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어질 시험에서는 후위가 많은 편이 훨씬 나았다. 니콜라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전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차라리 후위가 네 명으로 꾸며졌으면 나았을 뻔했어. 버프술사가 없다는 게 아쉽군.”
“니콜라이의 말에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괜찮다고 봐.”
천우진이 문제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과 같은 뜻으로 지금의 조합이 괜찮다고 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전위가 많아봤자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질 게 뻔하지. 차라리 후위가 많은 게 나아.’
그건 천우진이나 니콜라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새끼 사자가 강하다고 해봤자, 결국은 새끼에 불과했으니까.
곽진호를 힐끗 보자니 우리의 대화 내용이 재미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위이이잉─
그때, 곽진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표시된 시각은 [오후 1시].
알람을 끈 곽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5명 다 모였으니 시작하도록 하지.”
뒤이어 들어온 조교에게 나머지 생도들의 시험을 맡긴 곽진호가 우리들을 둘러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다들 궁금한 얼굴들이군.”
나를 제외한 네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5명이 모이면 시작한다고만 들었지, 무엇을 하게 될지에 관해서는 게시판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시험의 내용은 ‘마인 사냥’이다.”
“···마인 사냥?”
“아, 수업 때처럼 시뮬레이션으로 치르는 건가요?”
뜻밖의 주제에 네 사람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곽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험은 실전으로 치러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다섯이 힘을 합쳐 최선의 작전을 짜내라.”
“······.”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마인을 죽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라. 그리고 마인은······”
곽진호가 엄지로 자신의 가슴을 척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나다.”
“!”
***
······2교시 중간고사 시험의 하이라이트. ‘마인 사냥’이 이루어지는 이터니티의 ‘시가지 훈련장.’
시가지전을 대비해 지어진 이 ‘시가지 훈련장’은 이터니티의 훈련장 중에서도 가장 방대한 너비를 자랑한다.
[지금부터 ‘대 마인전 시가지 시험’에 대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나를 비롯한 네 사람이 훈련장의 입구에 들어서자, 확성기를 통해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마인 역을 맡은 분은 ‘곽진호 교관님’이고, 자세한 이력은 배부받은 안내 사항을 통해서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성적은 기여도에 따라 매겨지며, 지급 받은 라이프 팔찌는 일정 이상의 데미지가 쌓이면, 붉은 빛을 발합니다. 붉은 빛이 나오면 탈락. 시가지에서 퇴장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거, 이길 수 있을까요?”
언제나 당당하던 아멜리아가 이번만큼은 자신 없는 목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게 곽진호는 초인사회에서도 알아주는 유명인이었으니까.
배부받은 종이에 적힌 그의 이력은 ‘화려한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
▶이터니티 교관 곽진호.
▶초인랭킹 328위.
─20년 전 마인과의 대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전쟁영웅.
─초인협회가 공식 지정한 500인의 최상격 초인의 일인.
─이터니티 초인의 전당에 64번째로 이름을······
─역사서 대전쟁 페이지에 수록······
===
“제대로 된 타격 한 방만 입혀도 합격이라니까. 그리고, 곽진호교관은 마력을 10%로 제한당한다고 했어.”
천우진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곽진호가 제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라지만 마력을 10%로 제한당한다면, 그들에게도 가능성이란 차고 넘쳤으니까.
“마력을 제한한 교관도 못 이기는 건 말이 안 되지.”
니콜라이가 콧김을 내뿜었다. 무시를 받는다는 느낌에 열이 오른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게, 마력이 제한당한 초인은 일개 하급 마수조차 이기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만큼 초인에게 있어 마력이 차지하는 비중이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니 니콜라이나 천우진이 자신감에 차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회의적이었다.
‘여타 초인이라면 니콜라이의 말이 맞겠지만, 그걸 곽진호에 대입하면 안 되지.’
그는 전쟁의 시대를 살아온 인물이었으니까.
마수토벌이 거대단체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언제 어느 때라도 치유술사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느슨해진 현대와 달리, 치유술사가 귀해 상처가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초인의 과도기를 겪고 살아남은 ‘진짜 초인’이었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중간고사 대 마인전, 시가지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우리는 시가지에 진입했다.
“완전 얕보고 있군.”
“으음.”
나를 제외한 네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도 그럴게, 곽진호는 숨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시가지의 중앙에 당당히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곽진호를 쳐다보던 니콜라이가 입을 열었다.
“천우진, 너는 반대편으로 돌아라.”
“앞뒤로 덮치자는 거구나. 알았다.”
천우진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연아. 사격하기 좋은 위치로 이동해. 가능하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응, 알았어.”
“아멜리아, 너는 천우진이랑 내가 시선을 끌 동안 공격 마법을 준비해. 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 날려. 교관의 발을 묶는 건 내가 한다. 할 수 있지?”
“해볼게.”
“이해솔 너도 알아서 자리 잡아. 가능하면 너무 멀지 않게. 교관만 노릴 수 있는 거리로.”
니콜라이의 말에 모두가 별다른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에서 마수사냥을 주로 해온 니콜라이는 이런 작전을 짜는데 있어서 누구보다 능했으니까.
“내가 교관의 발을 묶으면 그때 총공세를 퍼붓는다.”
특별할 게 없는 정석적인 작전이었지만, 그렇기에 가장 잘 통하는 수였다.
그렇게 작전을 모두 세우고, 각자가 위치로 이동했다.
천우진이 시가지를 빙 돌아 반대편에서, 니콜라이가 그 맞은편에서 중앙으로 걸어갔다.
“작당모의는 다 끝난 모양이군.”
가만히 서 있던 곽진호가 앞뒤로 나타난 두 사람을 보며 팔짱을 풀어 보였다.
“포위하겠다는 건가? 나쁘지 않아.”
우웅···.
니콜라이의 버디슈와 천우진의 검이 푸른 마력에 휩싸인다.
그렇게 곽진호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던 두 사람은 눈짓을 주고 받더니, 순식간에 돌진했다.
쐐애애애액─
니콜라이가 곽진호의 앞을. 천우진이 등 뒤를 노리는 합공.
그렇게, 세 사람의 충돌이 시가지 중앙에서 일어났다.
“···꿀꺽.”
아멜리아는 시가지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 뒤편에서 조용히 마법을 일으켰다.
<타오르는 불>, <풍왕의 바람>, <별의 무리>.
불, 물, 바람. 세 가지 속성의 마법이 조합되고 중첩되며.
화르르르륵─
수십 개의 화구가 떠오른다.
아멜리아의 시그니쳐 마법인 <불의 폭주>였다.
그때, 천우진이 물러나고, 니콜라이의 버디슈가 돌연 질풍처럼 곽진호를 몰아쳐 갔다.
“지금이야! 해!”
마력이 담긴 니콜라이의 목소리가 시가지에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불의 폭주>가 곽진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시가지 어디선가에서 빗발치는 마력의 탄환도 함께.
“이런!”
곽진호가 아차했지만, 니콜라이는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마법과 총탄의 세례가 작렬하기 바로 직전, 니콜라이가 버디슈를 거두며 몸을 휙 뒤로 빼냈다.
콰앙─! 콰아앙─!
곧이어 날아든 화마, 총탄의 세례가 곽진호를 덮쳤다.
“······후욱, 후욱.”
가까스로 몸을 빼내는데 성공한 니콜라이가 숨을 골랐다.
너무 거센 공격이 아니었나 싶었지만, 보호마도구를 착용하고 하는 시험이기에 곽진호는 무사할 터였다.
“이겼군.”
니콜라이는 확신했다.
어마어마한 화력에 불길이 일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이만한 공세라면, 설사 곽진호가 본신의 힘을 지니고 있더라도 타격을 받았을 터였다. 하물며 마력을 10%로 제한당한 지금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흙먼지를 바라보며 니콜라이가 잠깐의 빈틈을 내보였 때.
“작전은 좋았다만.”
“······!”
돌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니콜라이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마무리가 어설프구나.”
퍼억!
─니콜라이 오볼렌, 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