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교관님, 끝났습니다. 그만하시죠.”
천우진이 검을 들어 올리고.
“움직이면 마법을 날리겠어요.”
아멜리아의 손에 떠오른 불덩이가 하얗게 타오른다.
위이이잉─
한세연의 총구에 맺힌 마력탄이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삼방을 포위당한 절체절명의 상황.
“······으음.”
당황한 곽진호가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가 당황한 것은 세 사람에게 포위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마력이 이해솔에게 제압당했다는 것이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일반 생도라면 모를까, 그와 같이 완성된 초인이 타인에게 몸의 장악력을 빼앗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게, 그의 마력을 잠시지만 밀어낼 정도의 강력한 항마력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수련 따위의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건 정상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정상적이지 못한 일에는 반드시 리스크가 동반된다.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비례해 잃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게 제약이 되었건, 대가가 되었건, 이만한 항마력이라면 필시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짊어졌음에 분명했다.
곽진호가 이해솔을 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얼마나 큰 리스크를 내건 것이냐.”
“리스크요?”
“말하지 않겠다는 거구나.”
능청스러운 이해솔의 반응에 곽진호가 혀를 찼다.
하긴, 능력에 발동 조건이나 제약이 있다면 이를 숨기는 것은 당연했다.
초인에게 있어 타인에게 능력의 조건이 탄로난다는 건 치명적인 타격이었으니까.
아무튼, 곽진호가 당황한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별의 별 해괴한 능력이 다 존재하는 이터니티에서 이해솔과 같이 엄청난 리스크를 짊어지는 미친놈들이야, 드물다 뿐이지, 심심치 않게 있었기에 놀랄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게 어린 생도라는 게 뜻밖이라 당황했을 뿐이지.
문제는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느냐였다.
곽진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사실 몸을 장악한 항마력을 밀어내는 것쯤은 그에게 일도 아니었다.
다만, 그 시간이 문제였다.
‘2초.’
어쩌면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시간은 초인에게 있어서 공격을 몇 번이고 하고도 남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물론, 곽진호가 기프트를 완전개방하면 그 시간은 얼마든지 단축될 터였다.
하지만, 실전도 아니고, 시험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영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었고.
알아차리지 못하게끔 은밀히 항마력을 밀어내면 성공할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 녀석이지.’
곽진호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이해솔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녀석들의 공격이야 어찌 피한다 쳐도, 그의 발목을 잡았던 이해솔의 속도를 감안하자면, 이 거리에서 움직이는 건 모험이었다.
그가 아무리 날고 기는 초인일지라도 코앞에서 다가드는 칼날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그나저나······
곽진호는 자신을 둘러 싼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천우진은 그의 일격에 빗겨 맞았기에 어깨가 빠진 데다, 뛰어왔는지 숨조차 고르지 않았다.
한세연도 나타난 방향을 보면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 듯했다.
아멜리아야 처음부터 이해솔과 함께 있었던 듯하니, 그렇다 치고, 저 둘까지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동시에 나타난다라.
곽진호가 이해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스마트폰을 써도 된다고 한 적은 없다만.”
“쓰지 말라 할 거면 걷었어야죠.”
“그건 그렇지.”
곽진호가 피식 웃었다.
역시, 이해솔이 스마트폰을 통해 나머지 생도들에게 위치를 공유한 것이었다.
딱히 하지 말라 한 적도 없기에 곽진호는 그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 좀 전의 권유를 다시 했다.
“너, 정말 헬스동아리 들어올 생각 없냐?”
“네, 없는데요.”
“원하면 개인 단련실을 마련해 주겠다. 매달 각성제도 지원해주지.“
”그래도 관심 없습니다.“
딱 잘라 거절하는 모습에 입맛을 다신 곽진호가 천우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련이 바빠서 사양하겠습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꺼냈다만.”
“동아리에 입부하시라는 거 아닙니까?”
“···크흠.”
천우진의 말에 멋쩍어진 곽진호가 뒷목을 긁적였다.
기실 그가 이렇게 말을 꺼낸 이유에는 정말 동아리에 가입할 의사가 있나 물어보기 위함도 있었으나, 말을 하는 와중에 빈틈을 보기 위함이 컸다. 그러나 아무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결국, 곽진호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
삐익!
곽진호의 팔찌에서 붉은빛이 점등했다.
─곽진호 교관, 아웃! 시험을 종료합니다.
***
“···살다 보니 곽진호교관이 제압당하는 모습도 다 보게 되는군요.”
“단세포가 생도라고 우습게 보니까 저런 꼴이 나는 거야.”
시가지 훈련장이 비치는 상황실.
하진우의 놀랐다는 반응에 쇼파에 기대있던 노아가 당연한 결과라는 듯 혀를 찼다. 그때, 상황실 문이 열리며 곽진호가 들어왔다.
“흐하핫! 시원하게 당해버렸다.”
상황실 내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리자 곽진호가 짐짓 호탕하게 웃었다.
퍼억!
멍청하게 웃던 곽진호의 낯짝에 쿠션이 날아가 꽂혔다.
“으헉!”
마력이 담긴 쿠션에 곽진호가 얼굴을 움켜쥐자, 쿠션을 던진 노아가 으르렁거렸다.
“지금 웃음이 나오니? 너 때문에 내 계획이 망가졌잖아!”
그도 그럴 게, 노아는 이번 시험에서 천우진을 수석으로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수련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이해솔에게 깨닫게 해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곽진호가 누가 보더라도 함정이 뻔해 보이는 단검을 쫓아 이동하더니, 또 거기서 방심해서 붙잡혀버렸다.
교관이라면 아무도 안 할 단세포적인 행동에 마인전의 최종 기여도에서 이해솔이 1위를 차지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전까지 이해솔과 천우진의 점수는 동점이었으니 결국 이번 수석도 이해솔의 것이었다.
필기가 남아 있긴 했으나, 그건 전혀 상관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이런 상황에 노아가 수련을 제안을 해봤자 이해솔은 귓등으로도 안들을 터였다.
“곽진호, 수고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왜 가만히 있었지? 항마력 때문이라면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학년주임 정해준의 물음에 곽진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이들 앞에서 기프트를 완전히 개방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거기다 완전히 개방한다 해도······”
말을 하다 말고 곽진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기프트를 완전 개방하면 마력의 증폭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래봤자 당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해솔의 모습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리란 묘한 예감이 들었다. 그 이유는 곽진호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데 문득 가짜 인기척마다 있던 ‘푸른 불길’ 자꾸만 머리에 아른거렸다. 설마······
“···아니다, 아니겠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퍼억!
노아의 쿠션이 다시금 날아들었다.
***
중간고사 실기의 등수는 2교시가 끝나자 바로 복도 게시판에 게재되었다.
===
【중간고사 실기 등수】
[1등 이해솔]
[2등 천우진]
[3등 한세연]
[4등 아멜리아]
[5등 니콜라이]
[6등 일레인]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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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등수를 올려다보며 가장 충격을 받은 생도는 단연 니콜라이였다.
기여도 좀 높여보겠다고 나서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2등이나 3등을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었는데, 괜히 나서다 탈락해버리는 바람에 성적이 5등까지 수직하락해버렸으니······
“힘내라.”
“시, 시끄럽다, 필기에서 만회할 거다.”
“그래.”
그 필기도 위의 애들이랑 실력이 고만고만해서 만회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본인도 아는 사실을 굳이 나까지 나서서 확인사살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바로 가방과 도시락통을 싸 들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니콜라이가 참 인상적이었다.
‘저래봤자 등수 안 바뀌는데······’
이게, 필기가 공동 1등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이터니티는 논술이 상대평가이기에 절대 필기 공동 1등이 나오지를 않는다.
객관식 주관식을 전부 다 맞춰도 논술에서 차이가 나버린다.
정석적인 답안을 넘어서 교수조차 생각지 못한 답안을 적어 내버리는 한세연을 논술로 이기기란 불가능했으니까.
중간고사 때 적어낸 논술 답안 때문에 마법학부 교수하고 1대1 대면하는 게 한세연이거든.
그러니까 애초에 필기 2등인 니콜라이가 더 이상 올라갈 등수란 존재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뭐, 쟤는 앞이 빤히 보여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달려드는 게 장점인 녀석이니까······’
멘탈 하나만큼은 강철이니 상관없겠지.
아무튼 이렇게 니콜라이가 시험을 망치고 도서관으로 직행한 반면, 반대로 등수가 급부상한 생도 또한 존재했다.
“내, 내가 6등······!”
게시판에 걸린 등수를 보며 일레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곰 인형을 움켜쥐었다.
대부분의 시험에 ‘체력’이 가미되는 아카데미의 시험이었지만, 이번 중간고사에는 그런 게 없었으니 일레인의 성적이 좋게 나오는 거야, 당연했다.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풀을 꼭꼭 씹어 먹는 일레인. ···응? 풀?
‘부유초네.’
저거 먹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데······ 불쌍한데 포션이라도 팔아줘야겠네.
“아우우!”
문득, 옆에서 웬 늑대 우는 소리가 귀를 아프게 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은가예가 애꿎은 복도를 발로 쿵쿵 찍고 있었다.
‘쟨 또 뭐가 문제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은가예가 울상 어린 표정으로 보모인 한세연에게 고자질을 한다.
“책받침 시험, 마력 뭉칠 수 있나 확인해 보는 시험이잖아.”
“응응, 맞아.”
“그런데, 마력을 뭉쳐봤자 나는 책이 날아가는데 어떻게 합격해?”
······아, 그거였냐.
은가예의 마력은 난폭해서 본인도 조절이 안 된다. 실력이 돼서 뭉친다 쳐도, 마력이 요동치는 것이다.
중력으로 내리 눌러도 받침대부터가 요동치니, 책이 떨어지는 건 무조건이었다.
‘억울하긴 하겠네.’
망할 조교새끼가 원칙을 고수하며 합격을 안 시켜 준다고 울상을 짓는 은가예.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일이 하나하나 억울함을 들어주었다.
물론, 타인과의 공감이라곤 1도 못하는 한세연의 영혼은 이번에도 투명한 백색이었다.
저건 은가예의 억울함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다는 표시다. 그러면서도 공감하는 척은 만렙이라서 은가예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어져 버린다. 그렇게 풀어진 은가예의 손을 한세연이 잡아 끌었다.
“그럼 이제 가자.”
“응? 어딜?”
“어디긴, 공부하러지.”
“······이제 쉬어야 되는데?”
“무슨 소리야, 내일이 필기시험이잖아.”
“조, 좀만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
“오늘 실기에서 떨어진 만큼 필기에서 만회해야지.”
“······어, 어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도서관으로 잡혀가는 은가예.
한세연은 어려서부터 자신이 주변에 피해를 끼친다는 부채감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남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집착을 지니고 있었다. ‘공부’또한 그 일환이다.
그때,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천우진이 검을 들고 나왔다. 내가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수련하러 가냐?”
“검도장.”
“실기 끝났잖아. 내일 필기시험인데?”
그런데 검도장을 간다고요? 공부는?
“하루 공부를 더 한다고 성적이 크게 늘지는 않더라고. 도장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어, 그래.”
진짜 정상인 애들이 아무도 없구나.
나사가 다 하나씩 빠져 보이는 주연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정상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하루였다.
‘피곤한데 좀 자야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기숙사로 향했다.
***
필기 시험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다행히도 점수가 꽤 잘 나왔다.
저번 달부터 시작한 한세연과의 도서관 1대1 과외가 큰 도움이 됐지만, 뭐니뭐니해도 룬어시험의 영향이 가장 컸다.
어렵기로 악명 높은 과목이라 ‘룬포자’가 넘쳐나는 이터니티에서 만점을 맞아버렸으니.
전날 도서관에서 날 밤을 지새우고 온 니콜라이는 아니나 다를까, 등수를 그대로 유지했고······
아무튼 그렇게 필기시험이 지나가고, 이터니티에도 축제가 찾아왔다.
보통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연말에 축제가 치러지는 게 보통이지만 이터니티에서는 특이하게도 이맘때 치러진다.
연말이나, 여름 이후로는 ‘마력주’가 잦아서 축제를 열었다간 큰일이 난다고 한다.
하긴, 축제 도중에 귀신이 튀어나오면 그거야말로 끔찍하긴 하겠다.
그렇게 중간고사가 지나간 다음 주 월요일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모두가 모인 교실에서 교탁에 선 반장 한세연이 자신을 도와 축제 준비를 해줄 학급 요원을 모집했다.
방과 후에 남아서 프린트물을 인쇄한다던지, 가계부나 포스트를 설치하는 등 여러 잡다한 업무가 학급 요원의 역할이었다. 하물며 축제 때 쓰일 종이학을 접어야 한단다.
수백 개의 종이학을 날려서 조종하는 퍼포먼스를 한다나 뭐라나. 그나저나 학이라.
‘어릴 때 많이 접어봤는데.’
유리병에 학을 가득 접어 넣는 게 유행이었어서 관성으로 접어봤던 기억이 있다. 반의 반도 못 채우고 그만 뒀지만.
추억 돋네.
아무튼 학급 요원이 되면 이런 잡다한 일을 해야하기에 다들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 나는 끝나고 알바가 있어서···”
“검도부에 가봐야 한다.”
“저는 길드 업무를 봐야돼요.”
이게 학급 요원이 말이 학급 요원이지, 사실상 학급 노예나 마찬가지라서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건 당연했다. 방과 후에 남아서 학을 접으라는데 그걸 자발적으로 할 리가.
초인에게는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수련을 하는 게 이득이었다.
“아무도 없는 거야?”
“······.”
침묵이 흐르는 교실. 입가에 검지를 올린 한세연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음, 그럼 어쩔 수 없이 직접 지목해야겠네.”
···꿀꺽.
행여나 자신이 지목당하지는 않을까 다들 한세연의 시선을 피한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책상에 멍하니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한세연이 가리킨 건······
“나?”
“응. 학급 요원 당첨.”
한세연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