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57화 (58/226)

§ 57화

“어디서 말하는 거야?”

“지붕 위야!”

“근데 저거 안 위험한가?”

뒤늦게, 시계탑 지붕 위의 남성을 발견한 시민들이 웅성거렸다.

─지구 반대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시체로 쌓아 올린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시작이 바로 오늘의 창설제입니다.

남자는 흑인이었다. 삐쩍 마르고, 검은 로브를 입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데.

“뭐라는 거야? 미친놈인가.”

“와, 이터니티 축제 클라스 지리네. 개재밌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꺼내든 채, 영상을 찍어댔다.

불안에 떠는 사람과, 재미있다는 각가지 반응으로 들어찬 광장.

“시작됐네.”

“등장 장소를 정확히 맞췄네?”

“이 정도야 껌이지.”

광장의 어귀에서 나와 한세연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멀리서 내게 뛰어오는 아멜리아와 일레인 외의 몇몇 생도들.

갖추어지는 퍼즐을 보며 내가 가볍게 웃고 있는 가운데, 스캇인지 스칼인지 뭔지 하는 놈의 개소리는 계속되었다.

“저 새끼 당장 끌어내려!”

결국 보다못한 요원들이 스칼을 끌어내리기 위해 시계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스칼에게서 떠오르는 거대한 붉은 대마법진.

위이이이잉······.

그것은, 원래라면 거대한 환란을 알릴 전조의 시작이었을 터였다.

남자, 스칼의 시야에 보이는 모든 마력의 유동을 둔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연이어 터질 폭탄에 사람들이 대비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게 이 마법, ‘대단위 디버프 필드’의 목적이자, 스칼 그와 광장 곳곳에 퍼져있는 8명의 동료들의 마력이 연동하며 이루어지는 대마법이었다.

대단위 디버프필드가 발동하는 것을 본 내가 입을 열었다.

“아멜리아.”

“네, 다들 시작하죠.”

나와 일레인, 마법계열 생도 데오릭과 킨델의 앞으로 아멜리아가 하얀 스태프를 든 채 나섰다.

그렇게, 아멜리아가 스태프를 하늘로 들어올리자.

우우웅─

광장의 한편, 1반의 세계수의 가지마다 앉아있던 종이학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5월의 오후. 밝은 햇빛 아래 하늘로 비상하는 천 마리의 학. 그 일대의 장관에 사람들의 환성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비극이었다.

“이런!”

광장의 시야를 가리는 종이학의 행진에, 마법을 발동하려던 스칼이 당황했다.

대단위 디버프필드의 발동 조건은 시야에 공간을 담는 것.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종이학들로 인해 시야가 막혀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광장에 퍼진 동료들과의 마력 연동이 끊기고, 애써 준비했던 마법진이 환상처럼 스러지자, 스칼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이 잡놈의 새끼들이······!”

이내 학들이 물러간 광장. 여전히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든 채 그를 찍어대는 기자와 시민들을 본 스칼이 이를 으스러져라 악물었다.

***

“···정말 막았어요.”

종이학의 행진을 지휘한 아멜리아가 사라진 마법진을 보며 놀란 목소리를 냈다.

아멜리아, 일레인을 비롯한, 종이학의 행진을 움직인 생도들의 얼굴에 뿌듯함이 떠올랐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학생광장에서 이루어지려는 심상치 않은 마법의 발동을 자신들의 활약으로 막아낸 것이다. 충분히 들뜰만한 놀라운 이적이었다.

그리고, 그 들뜬 만큼이나, 이 모든 것들을 예견한 내게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막아질 줄 안 거에요?”

아멜리아의 질문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모인다. 그때, 시계탑의 지붕에서 괴성이 터져나왔다.

─그냥 다 죽어버려라!

지붕 위에 선 스칼이 마력폭탄의 기폭 스위치가 되는 붉은 큐브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뒤이어 시계탑 옥상으로 우르르 올라오는 이터니티의 요원들. 당황한 스칼이 무언가 마법을 준비하려 했지만.

“으아아악!”

느닷없이 머리를 움켜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휴우, 다행이다. 이제야 먹히네.”

이를 숨죽인 채 지켜보던 일레인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저주 술식이 안 먹히는 건가 싶었는데, 내성이 강해서 뒤늦게 발동했나 봐.”

“무슨 저주를 깔았길래?”

여전히 지붕 위를 뒹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스칼을 보며 내가 물었다.

“정신 붕괴, 이상 통각, 구토, 오한, 가려움.”

“···많이도 걸었네.”

“여유가 많았으니까.”

뿌듯하게 웃는 일레인.

저주면역이 없었으면, 마력탐지대결 때 어찌되었을 지를 떠올리자 끔찍해진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사건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스칼의 동료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리고 놈들은 대단위 마법에 호응하려 마력을 내뿜음으로써 본인들 스스로 위치를 드러내 버렸다.

이미 이를 사전에 알고 있던 천우진과 은가예는 놈들의 위치가 드러나기 무섭게 달려들어 두 놈을 가볍게 제압했다.

나머지 놈들 또한, 요원들에게 제압당하나 싶었는데······

“···그냥 죽으러 모여버리네.”

도주 준비를 철저히 했는지, 시계탑 지붕 위로 워프해 한자리에 모이는 용병들. 스칼을 데리고 빠져나가려는 듯했다.

이터니티를 얼마나 물로 보면 저런 미친 짓을 할 수 있는지 내가 혀를 내두를 때, 문득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저기 봐!”

“와, 여자애가 떠오르고 있어.”

“옷차림 좀 봐, 코스프레인가? 귀엽다.”

어디 중세시대 영화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온 것 같은, 드레스 차림의 소녀가 시계탑 상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소녀의 정체를 알아차린 내가 중얼거렸다.

“···노아네.”

하필이면, 걸려도 노아한테 걸리냐. 운도 지지리도 없네.

문화제를 즐기고 있었는지, 한 손에 든 피자 조각을 우물거리며, 볼을 부풀린 심술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노아 맥도웰.

그녀의 손이 워프로 도망가려는 듯 한 자리에 뭉친 용병들을 향해 들어 올려졌다.

이윽고, 무슨 일에서인지 도망가지 않고 당황하는 용병들.

“···시계탑의 마력이 멈춰버렸어?”

“저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일레인과 아멜리아가 경악한다.

그도 그럴게, 노아는 시계탑에 존재하는 모든 마력을 얼려버린 것이다. 그것은 마력 지배를 아득히 넘어선 무언가였다.

이내 가볍게 휘둘러지는 노아의 손. 용병들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당한 듯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뒤이어 지붕을 타고 올라온 이터니티의 요원들이 기절한 용병들을 포획한다.

와아아!

무수한 박수와 열호와 같은 환호성,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상공에서 유유히 내려오는 노아를 향해 쏟아졌다.

“이게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네요. ···아얏!”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 허탈해하는 아멜리아의 귀를 내가 쭉 잡아당겼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당황한 아멜리아가 뒷걸음질 치며 눈을 크게 뜨자 내가 대꾸했다.

“간단하긴, 우리가 낮에 빨빨 돌아다닌 거 잊었어? 그거 내버려 뒀으면, 노아 저 사람이 막았을 거 같아?”

“그, 그건··· 확실히 모르겠네요.”

“모르긴 뭘 몰라? 당연히 못 막지. 그걸 막으면 사람이게.”

제아무리 노아라도 이 광활한 아카데미 사방에 퍼져나간 폭탄을 일시에 모두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임에서도 플레이어 캐릭터가 움직이지 않으면 노아가 있는 학생광장을 제외한 아카데미 전역에서 폭발이 일어나니까.

그러니, 이건 나와 아멜리아를 비롯한 1반의 모두가 함께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다.

당장, 사람들조차 조금 전 광장의 하늘을 가득 메웠던 ‘학의 행진’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당연히 노아가 했을 거라 여긴 기자의 질문에 노아가 고개를 저음으로써, 학을 움직인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오리무중이 되어버린 것이다.

뭐, 우리 반의 소품이니 우리가 한 일이라는 것은 금방 밝혀지겠지만.

“···알았으니까 귀 꼬집지 말아요.”

아멜리아가 꼬집힌 귀를 매만지며 당황으로 붉어진 얼굴을 감췄다.

아멜리아의 귀는 현재 엘프 분장으로 기다랗게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저건 단순한 분장이 아닌, ‘형체 변형마법’으로 만든 ‘진짜 귀’였다.

그게 축 늘어지는 게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잡아당긴 것이다.

진짜인 건 알지만 저기도 과연 감각을 느낄까 싶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결과는 보다시피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강렬했다.

“이제 다 끝난 거네.”

“어, 일단.”

한세연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병들의 일은 끝난 게 맞았으니까.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게 하나 남아 있긴 했지만.

근데 얘는 왜 이래?

한세연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럼 이따 공연할 때 봐요.”

“······어,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아멜리아가 공연을 준비해야 한다며 바삐 자리를 뜬다. 마치, 무서운 것이라도 본 사람 마냥.

“나도 오컬트부활동 도와야 해서. 나중에 봐.”

아멜리아가 떠나니, 일레인을 시작으로 데오릭, 킨델도 차례로 해산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와 한세연만 남아버렸다. 내가 뒷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뭐, 우리끼리라도 놀까.”

그런데 뭐 하고 놀지?

***

뭘 하고 놀지에 대한 걱정은 괜한 기우에 불과했다.

아카데미의 축제는 일반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양한 놀거리로 가득했으니까.

공중 시소, 줄 없이 떨어지는 번지점프, 옥상의 회전 그네······

마법이 가미된 놀거리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떨어질 만큼 아찔했다.

한세연은 그러한 자극적인 것들에 웃으며 즐거워했다.

“아, 재미있었다.”

“······.”

서서 타는 바이킹을 함께 타고 나온 나는 한세연의 발언에 혀를 내둘렀다.

나야 부동의 각인이 새겨져 있으니까 멘탈을 유지할 수 있다지만 얘는 뭐지? 서서 타는 바이킹이 재미있다고?

고개를 내저은 내가 광장의 무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첫 공연이 검무였던가?”

“응, 검무, 총검술, 환상, 합동공연 순이야.”

우리는 이내 무대가 잘 보이는 객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반은 총 4가지 공연을 치룬다.

검무, 총검술, 환상, 합동공연.

첫 번째 공연은 은가예가 메인이 되어 치러지는 검무였다.

─아아, 반갑습니다! 1반의 검무를 구경하러 오신 것을······

마이크를 잡은 건 오진혁이었다.

“쟤는 몸치 주제에 결국엔 검무를 하네.”

“뭐, 어때.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지.”

오진혁의 뻣뻣한 검무를 떠올렸는지 한세연이 키득거렸다. 본인의 연기실력도 비슷한 수준이라는 건 모르는 모양이다.

그걸 말했다간,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차마 농담으로라도 언급하지는 못했다.

“이야, 완전 딴 사람이네.”

오진혁이 내려가고, 무대에 올라서는 은가예를 본 나는 혀를 내둘렀다.

사극에 나올 법한 붉고 검은 강렬한 색상의 무복. 그에 어울리는 차가운 인상.

걱정이 심하길래 무대공포증이 있나 싶더니 은가예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었다.

이윽고 빠른 템포의 음악이 울려 퍼지며, 한 마리의 주작이 날뛰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무대 위를 누비는 은가예.

드넓은 무대에 홀로 올라서 있음에도 꽉 찬 느낌이 들 만큼 인상 깊은 존재감이었다.

저 화려한 춤사위는 은가예가 나중에 무희(武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그렇게 은가예의 검무를 시작으로 우리 반 생도들이 무대 위로 등장하며 합동 검무가 이어졌다.

짝짝짝짝!

검무가 끝나자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걱정하더니 준비 잘했네.”

“가예가 원래 엄살이 좀 심하잖아.”

마치 잘한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처럼 은은한 미소를 그려 보이는 한세연. 나는 그런 한세연을 지켜보다 무심코 중얼거렸다.

“진해졌네.”

“뭐가 말이야?”

“너 살 탔다고.”

“으응? 탄 건가?”

“어. 탔어.”

제 하얀 팔뚝을 들여다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세연.

그 영혼에 차오른 백색은 이전보다 확실히 뚜렷해져 있었다.

이내 제 피부 보기를 멈춘 한세연이 능청스레 물어왔다.

“더 타게 걸을까?”

“혼자 걷던지.”

입을 삐죽이는 한세연을 무시하곤 무대쪽으로 시선을 돌릴 때였다.

─1학년 1반 생도, 이해솔은 지금 즉시 학생 지도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광장에 울려퍼지는 안내방송.

─반복합니다. 1학년 1반 생도, 이해솔은 지금 즉시 학생 지도실로······

“왜 부르는 걸까?”

“글쎄, 걸리는 게 하도 많아서 꼽을 수가 없네.”

나는 뒷목을 긁적였다.

허락 없이 시계탑을 오른 것도 모자라, 지붕 위에서 팝콘을 까먹으며 공연을 구경했으며, 폭탄을 제거한다고 노점 경품을 강제로 부수기도 했다.

그밖에 일레인이 지붕 위에 그려 놓은 저주술식이 걸려서 부르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좋은 일로 부르는 건 절대 아니었다.

“공연이나 보고 있어, 갔다 올 테니까.”

“응, 잘 다녀와.”

키득거리는 한세연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학생 지도실로 향했다.

***

······한편, 무대에서는 1반의 총검술이 펼쳐졌다.

니콜라이를 중심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자로 잰 것만 같은(연습 당시 진짜 자로 쟀다.) 동작에 한세연이 피식거리고 있을 때였다.

홀로 공연을 감상하는 그녀의 옆자리로 누군가가 앉았다. 검은 코트에 중절모를 눌러쓴 남성이었다.

“역시, 맞았구나.”

“······?”

“마수계약자.”

“!”

중절모를 벗으며 드러난 냉막한 얼굴은 위그드라실의 3팀장. 마수학살자 김도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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