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뭐 때문에 부른지는 알고 왔겠지?”
생도 지도실. 학년 주임 정해준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치 내가 당연히 알고 왔으리란 말투인데, 솔직히 하도 어긴 게 많아서 뭐 때문에 부른지 모르겠다.
“왜 부르셨죠?”
툭.
정해준이 탁자에 여러 장의 사진을 던졌다.
그곳에는 내 지난 한 달의 행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터니티의 생도복을 입고 블랙마켓 1층을 당당히 활보하는 모습.
웬 조폭들(버자드길드)의 경례를 받으며 차에 오르는 모습.
평일에 블랙마켓에 들어간 기록지 등등.
“알고 있겠지만, 블랙마켓 1층은 생도 출입 금지다.”
생도복 벗고 갈 걸 그랬네.
“평일에 멋대로 교외를 나도는 것도 금지인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죠.”
나는 뒷목을 긁적였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나름 선방했다. 이건 내가 한 짓의 반의 반도 안 되니까.
기척 테스트한다고 밤마다 3학년 기숙사를 안방처럼 들락거리고, 필드에 허락 없이 들어가고, 교내에 포션을 들여와서 팔고 무단으로 시계탑에 오르고······
나열해보니 이건 뭐 끝도 없다.
다 필요해서 한 것들이라곤 하지만 죄다 교칙 위반이었다.
‘학점 까이겠네.’
천우진이랑 점수 차이 얼마 없던데, 얼마나 까이려나.
어디 야자짼 것도 아니고, 하나같이 문제가 될 만한 굵직한 사건들이기에 제법 많이 까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찌이익─
“······?”
정해준이 자료들을 한 데 모아 찢었다.
잘게 잘게 찢긴 종이 조각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뭐, 이것 때문에 부른 게 아닌 건 너도 알고 있겠지.”
······모르는데요?
눈을 끔뻑이고 있자니, 정해준이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린다.
“우리 자랑스러운 학교의 얼굴이 그깟 블랙마켓 1층쯤 다닐 수도 있는 거지.”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찍고 그래. 파파라치 새끼들은 하여간 이래서 문제야. 안 그러니?
내게 공감을 구한 정해준이 조언 아닌 조언을 해줬다.
“다만 마켓에 갈 때는 생도복은 좀 벗고 다녀라. 평일에 나갈 때는 후문으로만 다니고.”
“예. 조심하겠습니다.”
이게 비공식 허용인가?
학년 주임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나는 당장의 의문부터 물었다.
“그런데, 학교의 얼굴이라니요?”
“아, 아직 못 봤나 보구나.”
정해준이 인터넷에 게재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세계의 화제를 다루는 초인 일간지 더 월드(The World)에 조금 전 속보로 올라온 사진들.
그중 가장 상단에 게재된 두 장의 사진. 오른쪽은 시계탑의 상공에 떠오른 노아였으며, 왼쪽은······
“저네요?”
그곳에는 나와 아멜리아를 비롯한 생도들이 학을 날리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런 건 또 언제 찍었대.’
내 바로 옆 쪽에서 찍었는지 일행 중 내 모습이 화보지의 표지처럼 가장 크게 실려 있었다.
이래서 학교의 얼굴이라 한 거구나.
“아멜리아에게 들었다. 네가 이 상황을 주도했다더구나.”
“예, 테러범이 다른 쪽하고 마력을 주고받는 게 시야를 가리면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요.”
“감각의 차단으로 마법을 중지시킬 수도 있지만, 그걸 단숨에 떠올리고 대처한다라.”
짝짝.
정해준이 짤막한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중간고사의 1위와, 이번의 테러 사건을 막는데도 일조했으니, 포상을 줘야겠지.”
정해준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1장의 종이와 다채로운 빛을 내는 돌을 꺼냈다.
“장학금과 혼돈의 돌이다. 둘 다 주고 싶다만, 원칙상, 포상은 중복으로 주는 게 불가능해서 말이야.”
혼돈의 돌은 마력 용적을 늘려주는 마석으로, 전세계에서 오직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영맥에서만 발견되는 녀석이다.
이것도 등급이 나뉘는데, 하품은 단순한 실습보상으로 나오지만, 등급이 올라가면 받기가 까다로워진다. 그리고 정해준이 건넨 것은, 상등품이었다.
[불사조가 혼돈의 돌을 원합니다.]
[불사조가 혼돈의 돌을 원합니다.]
[불사조가 혼돈의 돌을 원합니다.]
파랑이가 정해준의 손에 들린 혼돈의 돌을 보기 무섭게 발작을 해대고 있었으니까.
물론, 내게는 저게 상품이건, 하품이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마력이 없으니 마력을 늘려주는 걸 얻어봤자 써먹지도 못한다.
기껏 얻은 보상을 미쳤다고 불사조 배나 불리는데 쓰기도 싫었고
하물며 이건 잘못 팔았다간 역추적을 당한다.
당연하게도, 내가 선택한 것은 ‘한 학기 장학금’이었다.
솔직히 이게 말이 좋아 한 학기지, 이터니티의 학비는 실로 살인적인 수준이다.
포션을 팔아 버는 돈을 전부 학비에 쏟아 붇는 내게 ‘한 학기 장학금’이란,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다.
“호오, 혼돈의 돌을 포기하다니, 참을성이 대단하군. 마력을 늘리기보단 내실을 다지겠다는 거구나.”
턱을 쓸며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정해준은 그냥 무시했다.
***
정해준과의 이야기를 한 시간은 극히 짧았다. 길어봐야 10분?
정해준은 더 월드의 속보 때문에 불렀는지 이를 두고 시시콜콜하게 떠들고 싶어 했으나 나는 용건을 마치자마자 바로 일어났다.
우리 반의 무대가 궁금하기도 한 데다, 한세연을 두고 왔다는 게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바삐 무대로 돌아온 나는 인상을 구겼다.
“···어디 간 거야?”
한세연이 자리에 없었다.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도 멋대로 사라질 애가 아니었으니, 내가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야, 킨델. 얘 어디 갔어?”
나는 가기 전, 한세연을 봐줄 것을 부탁한 뒷좌석의 같은 반 생도들에게 물었다.
“응? 누구? 아, 반장? 그게 미안. 무대 보다가 못 봤네.”
“어느 순간부터 안 보였어.”
“화장실 간 거 아닐까?”
하나같이 보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
‘당했다!’
나는 급히 스마트폰 어플을 켰다.
만약을 위해 한세연의 학급 명패에 달아 놓은 탐지 마도구를 어플에 연동한 내 표정이 굳어졌다.
어플에 나오는 위치는 광장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이터니티의 필드였다.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한세연의 폭주를 가속 시켜 2학년 1학기의 이벤트 보스로 만들어버리는, 게임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던 미지의 사건이.
“씨발.”
이럴까 봐서 같은 반 생도들 사이에 놓아두고도 빨리 돌아온 것이건만.
“야, 이해솔, 어디가?”
“다 모이라는 말 못 들었어?”
“이제 합동 공연 연습 들어가야······”
나는 생도들의 말을 무시한 채 필드로 내달렸다.
***
김도준이 한세연을 처음 마주한 것은 이터니티 아카데미에 진로상담의 강사로 초청받았을 때였다.
그때 김도준은 한세연을 보면서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전날 사냥한 마수의 잔재가 느껴질 뿐, 평범한 생도였다.
하지만, 김도준은 묘하게도 한세연이 자꾸만 거슬리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최근에 너무 예민해진 감각이 드디어 고장을 일으킨 거라 여겨 가볍게 지나갔었다.
그날 이후 김도준이 한세연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이터니티아카데미 창설제의 개막식에서였다.
쉴 땐 쉬라는 길드의 강권에 의해 참석하게 된 창설제의 개막식. 그 개막식에서 김도준은 우연찮게도 한세연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도준은 여전한 ‘거슬림’을 느꼈다.
그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오직 마수사냥에 평생을 바쳐온 김도준이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떠한 감각이었다.
쉬라는 취지에서 오게 된 창설제였으나, 김도준은 하루종일 오직 한세연만을 철저히 감시했다.
아카데미를 누비며 마력폭탄을 찾아 해제하는 한세연.
축제에 마력폭탄이 나돌고 있다는 사실에 김도준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어서 알게 된 사실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세연이 폭탄을 제거하며 마력을 끌어올렸을 때.
초인, 아니. 마인이라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에 스쳐 간 희미한 마기의 잔향을 김도준은 잡아냈다. 하지만 한세연은 마인이 아닌 순수한 인간이었다.
마기를 뿜어낸 주체는 한세연이 아닌, 그녀가 소환한 마수였다.
‘···마수 계약자라니.’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김도준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는 없었다. 어느 단체든 한세연을 무조건 보호하려 들 테니까.
마수계약자를 더 만들어낼 방도를 찾기까지 한세연을 안전한 우리에 가두고 계속해서 연구할 것이다. 김도준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게 집단의 생리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김도준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김도준은 조용히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처리할 자신이야 차고 넘쳤다.
그는 여지껏 수많은 마수를 홀로 처리해온 마수사냥의 프로였으니까.
물론, 그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으나, 적어도 마수를 사냥한 횟수로는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베테랑이 바로 김도준이었다.
사냥의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놈이 떨어지고, 홀로 남은 한세연에게 김도준이 접근했다. 그는 사실이 발설되기 싫으면 조용히 따라올 것을 요구했고, 한세연은 생각보다 순순히 그를 따라나섰다.
정령마법을 이용해 주위의 시선을 착란시켰기에 그들이 이동했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이터니티의 필드.
아무도 없는 휑한 평야를 사이에 두고, 김도준과 한세연이 마주 섰다.
“어떻게 마수와 계약했지?”
“알려드릴 이유가 있을까요?”
“없지.”
김도준은 먼저 대화를 시도했다.
“마수를 내놔라, 그러면 너는 건들지 않겠다. 마력에 대고 맹세하지.”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수이지 한세연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싫은데요?”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는 한세연. 김도준의 인상이 굳어졌다.
“그러면 강제로 내놓게 하는 수밖에.”
그의 손이 앞으로 쭉 뻗어졌다.
화르륵─
불길이 피어올라 한세연을 향해 번개처럼 쇄도했다.
한세연은 이를 피할 생각조차 안 한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앞으로 어둠이 장막처럼 일어나 불길을 막아냈다. 하지만, 잠시 주춤거렸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소용없다.”
【정화의 불길(A)】
오로지 마기를 지닌 이와 싸울 것만을 제약으로 내건 김도준이 얻은 기프트는 ‘항마(A)’.
그가 사용하는 모든 마력에는 항마의 기운이 깃든다.
불길이 어둠을 뚫고 다가들자 한세연이 웃음기를 거뒀다.
날아간 불길이 한세연에게 직격했다. 하지만 김도준의 표정은 오히려 차게 굳어졌다.
한세연에게서 피어오른 어둠에 불길이 잡아먹히듯 사라져버린 것이다. 불길은 한세연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김도준의 표정이 굳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날린 불은 상급 불의 정령, 이그니스의 불길이었으니까.
항마의 속성마저 띈 그 정화의 불길이 한세연의 어둠에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것이다.
‘설마 군주급···’
그럴 리가.
제 망상에 피식 웃은 김도준의 손으로 전보다 훨씬 강렬한 불길이 맺혀 들었다.
붉은 불길이 노랗게 타오르며 가공할 열기에 시계가 일그러진다.
이윽고, 김도준이 손을 떨쳤다.
노을이 져오는 평야를 찬연히 물들이는 황색의 불길이 한세연을 향해 쏘아졌다.
***
김도준.
그는 마수와의 싸움에서 밀리거나, 죽음의 위기를 겪었을 지언정 단 한 번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혀본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두려움이란 미지에서 오는 것. 그는 마수를 태우는 찬연한 불길이자, 정화의 집행자였다. 세상의 그 어떤 마수조차 그의 불길에 무사할 수는 없었다. 미지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러니 두려움 또한 없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김도준은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눈앞에서,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고 있었다.
스아아아.
꿀렁이는 어둠에 잡아먹힌 하급 불의 정령들이 무더기로 녹아내리고.
부르르···
붉은 거체를 떨어대던 상급 불의 정령 이그니스가.
퍼어엉!
폭죽처럼 터져 나간다.
콰과과과광!
사방으로 비산한 이그니스의 파편들이 땅에 처박히며 연기를 피워냈다.
한세연의 몸에서 어둠이 스멀거리며 흘러나온다. 그 어둠이 필드의 땅을 검게 물들인다.
“키에에에에!”
도망가던 짐승형 마수가 늪에 빠진 벌레처럼 허우적거리다 그림자에 잡아먹히고.
뿌드득─! 꽈득─!
착즙기에 짓이겨진 열매처럼 구겨진다.
촤아아악─!
피가 분수처럼 피어오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김도준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때 한세연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시선이 마주친 김도준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의 눈이 공포에 물들었다.
전의를 상실한 김도준은 망설임 없이 몸을 빼려 했다.
싸우다 보면, 질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싸움이 아니다.
괴물에게 죽는 걸 싸움이라 부르지는 않으니까. 그건 개죽음이다.
그때, 그의 옆을 스쳐 어둠으로 나아가는 남자가 있었다.
“위험······!”
놀란 김도준이 만류하려 할 때였다.
“닥치고 꺼져.”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뱉은 목소리의 주인이 서슴없이 어둠으로 들어갔다.
휘아아악!
사방에서 어둠이 남자를 덮쳐왔지만.
“······!”
이어진 광경에 김도준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 떠졌다.
백색의 항마력에 덮쳐들던 어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어둠을 걸어 들어가는 남자를 김도준은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