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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64화 (65/226)

§ 64화

<황금의 번견>의 단장, 남주철은 돈이 된다하면 뒤가 구린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던전을 돌며 값나가 보이는 물건을 지닌 이들을 약탈하는 것.

이번에 남주철의 눈에 띈 먹잇감은 바로 검은 던전에서 발견한 어린 남녀 세 명이었다.

자신도 사냥하기 벅찬 ‘검은 해골’의 영역으로 겁도 없이 발을 들이는 놈들.

백골 병정을 단숨에 무너트리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남주철은 셋 중 남자가 지닌 무기가 ‘성물’이라 확신했다.

이건 성물을 빼앗을 절호의 기회였다.

제법 실력이 있어 보이기는 했으나, 그래봤자 어린놈들. 성물의 힘에 기대 검은 해골을 사냥하려는 것이리라.

CCTV조차 없는 던전이었기에 남주철은 마음 놓고 휘하 용병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녀석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다가, 복면을 쓰고 느긋하게 들어가니, 과연 휴식을 취하는 듯한 놈들이 보였다.

“설마 했는데 이거, 진짜잖아?”

“거봐, 내가 뭐랬냐, 횡재했댔지?”

세 사람이 지닌 무구가 값나가는 것들임을 알아차린 용병들의 얼굴에 탐욕이 어렸다.

***

“뭐야, 이것들은?”

“밴딧이라니, 들어는 봤지만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어요.”

“으음.”

저들끼리 이야기하며 기분 나쁜 시선을 보내오는 10명의 복면인들. 은가예와 아멜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3분 준다. 몸에 찬 것들 다 내려놔라.”

늦으면 오빠한테 혼난다? 난 혼내고 싶은데? 복면인들이 킬킬거리며 웃어댔다.

“이분들이 어디서 오신······!”

“말하지 말죠.”

길잡이 오동준은 우리가 이터니티 아카데미에서 왔다는 걸 알리려는 듯했으나 내가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예? 왜 그러시는지······”

“패고 싶어서요. 말하면 저것들 튈 텐데 그러면 잡기 귀찮잖아요.”

“······.”

내 직설적인 말에 오동준이 아연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내 목적은 영핵을 시험하는 것이었으나 지금 한 말도 딱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 물건 털겠다고 온 놈들을 보면 손이 근질거리는 거야 당연지사다. 가끔 이런 이벤트도 있어야 재미가 있지.

보아하니, 저것들은 우리가 성물빨로 검은 해골을 사냥했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그건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언데드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애초에 아멜리아와 은가예는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3성급 마수쯤은 아무렇지 않게 사냥할 수 있는 강자였으니까.

블러드 본 가고일의 괴랄한 생명력만 아니라면 4성급 마수라도 능히 사냥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당장 내 눈에 비치는 복면인들의 영핵은 은가예나 아멜리아에 비해 훨씬 또렷하게 보였다. 두 사람에 비해 수준이 훨씬 떨어진다는 이야기. 저놈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은가예와 아멜리아는 은근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용병들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마음에 걸리나 보다.

하기야, 느닷없이 10명이나 되는 적이 복면을 하고 우르르 나타나서 자신만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 뭔가 있을 거라 여기는 건 당연했다.

복면인들도 두 사람의 긴장한 태도를 당연하게 여기는 게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가 헛웃음을 흘렸다.

‘아, 재밌네.’

이런 내 웃음을 비웃음이라 여겼는지, 복면인들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하, 봐주려 했더니만.”

“요즘 애새끼들은 싸가지가 없다니까.”

앞으로 나선 복면인의 장검에 마력이 실린다. 또 다른 복면인이 위협하듯 마법진을 띄어올렸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실수였다.

아멜리아와 은가예의 표정이 해괴하게 변했다.

“···이건 뭘까요?”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닐까? 방심을 유도하려고······?”

두 사람이 보기에 복면인들이 내보인 검기와 마법진은 너무 엉성해 보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싸움을 하는데 일부러 못 해보일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제야 복면인들의 밑천을 알아차린 은가예의 표정이 황당하게 일그러졌다.

“아, 뭐야. 괜히 쫄았잖아.”

“뭐 한 건지 모르겠네요.”

아멜리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복면인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제보니 미친 것들이었네.”

“시간 없어, 빨리 끝내자고.”

놈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몸을 푼 은가예가 마주 달려 나갔다.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뻐억! 뻐어억!

휘둘리는 검과 발길질에 막기만 하다 나가떨어지는 복면인들.

“뭐, 뭐야?”

상황을 지켜보던 복면인, 남주철이 예상 밖의 양상에 당황해 소리쳤다.

“씨발, 뭐해! 고작 한 년이잖아! 다 같이 덮쳐버려!”

복면인들이 은가예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멜리아가 일으킨 돌무더기에 발이 걸리고 치여 넘어진다.

이를 구경하던 나는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남주철을 향해 그람의 비도를 날렸다.

“이까짓! ···헛!”

날아드는 비도 두 자루를 검으로 쳐낸 남주철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튕겨 나간 비도가 떨어지지 않고,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남주철의 영핵이 자리한 부근이었다.

쩌엉!

영핵이 단숨에 박살 난 남주철이 눈을 까뒤집고 넘어갔다.

이내 남주철의 영핵을 부순 비도가 연이어 그 옆에서 마법을 준비하던 마법사를 노린다.

이번에는 완전히 부수지 않고, 영핵의 파편을 어느정도 남겨두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마법사는 남주철처럼 기절하지 않고, 혼이 달아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마치 이지를 상실한 사람처럼.

“부서진 정도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건가? 재미있네.”

그렇다면 적당히 부수거나, 반만 남겨두면 어떻게 될까.

실험해 볼 대상이야 많았다. 내 시선이 영핵이 온전한 복면인들에게로 돌아갔다.

***

복면인들을 정리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머리로 보이는 복면인이 쓰러지고 우왕좌왕하는데 나까지 가세하니, 애초에 실력까지 밀리는 녀석들로서는 도망갈 틈도 벌지 못했다.

그렇게 정리된 복면인들을 깨운 나는 영핵을 부수는 실험을 이어갔다.

과연, 내 예상대로 영핵을 부쉈을 때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영핵을 완전히 부순 경우는 남주철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해버렸고, 완전히 부수지 않고, 영핵을 조금 남겨둔 경우는 이지를 상실했다. 그런데 이 이지를 상실했을 때 정말 뜻밖의 반응이 나타났다. 무심코 던진 은가예의 한마디로 인해.

“이 사람들, 어디서 보낸 걸까?”

“경기도 구리 용병단체 황금의 번견입니다.”

“······응?”

은가예의 떨떠름한 눈초리가 쓰러져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복면인을 향했다.

좀 전의 무심한 목소리를 내뱉은 건 바로 이 복면인이었던 것이다.

내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름은?”

“전준호입니다.”

“나이.”

“37살입니다.”

“오늘 먹은 아침 밥은?”

“간장계란밥을 먹었습니다.”

“······.”

사소한 질문부터 민감한 것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말하는 모습에 나는 물론, 은가예와 아멜리아까지 놀랐다.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래?”

“완전히 이지를 상실했어요.”

두 사람의 의문 어린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정신에 타격을 받아서 이러는 거야.”

나는 대충 대답을 해주었다.

이런 내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터니티에는 정신에 타격을 가하는 방법이 꽤나 많이 존재했으니까.

소리에 마력을 싣거나 상대의 마력을 뒤흔들어서, 혹은 특정한 마력의 파장을 이용하는 등.

두 사람은 내가 그중 한 가지 방식을 이용했다고 판단한 듯했다.

물론 내가 건든 건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영혼이었지만, 거기까지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나는 영핵에 타격을 가하면 상대에게서 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기에 더불어, 영핵을 삼분의 일 정도만 부수면, 5분 정도 이지를 상실한다는 것도.

그렇게 5분이란 시간 동안 궁금한 것을 알아내면, 상대는 이지를 되찾았을 때 그 5분간의 기억이 날아가 있었다.

이건 정말 굉장한 무기였다. 여차하면, 나는 상대의 영핵을 부숴 정보만 빼낼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물론, 영핵을 의도적으로 3분의 1만 부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아예 사로잡아놓고 부수지 않는 이상은 쓸 수 없는 방식이긴 했으나, 이것만으로도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마수한테도 통할지도 모르겠어.’

거기까지는 좀 더 실험해봐야 알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에 웃음이 나왔다.

이내 일행을 먼저 내보내고 홀로 던전에 남아 파랑이를 소환했다.

“까악! 까악!”

“그래, 먹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파랑이가 블러드 본 가고일의 뼈에 달려들었다.

와그작와그작─!

“어째 갈수록 먹는 양이 늘어나는 거 같네.”

그러고 보니 덩치도 좀 커진 것 같고.

순식간에 갈비뼈 한 대를 해치워버리는 파랑이를 보며 내가 파랑이의 식량 수급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였다.

“응?”

돌연 자세를 잡고 엉덩이를 내리는 파랑이. 그러더니, 불쑥 똥을 싼다.

“오!”

나는 녀석이 싼 똥을 보며 입을 벌렸다.

불그스름한 빛을 띄는 돌.

그건 ‘정령석’이었다.

지니고 있기만 해도 자연 친화력을 올려주기에 정령사들이 구하지 못해서 안달이라는.

역시, 불사조는 불사조라는 건가?

“키운 보람이 있네.”

나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파랑이가 싼 정령석을 주워들었다.

***

서하린이 돌아온 것은 그녀가 예고했던 대로 정확히 1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자리를 비운 1시간 동안 벌어진 일에 서하린은 놀라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던전을 클리어했다고요?”

“네.”

“블러드 본 가고일도 잡고?”

“내구도만 높지, 공격 자체는 그리 강한 녀석이 아니더군요.”

“······.”

블러드 본 가고일이 강한 녀석이 아니라고? 이게 1학년 생도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인가?

잠시 기가 막힌 심정이 되었던 서하린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분은 정말 저를 여러 번 놀래키네요.”

실습지로 가면서도, 세 사람의 높은 수준에 놀라고 있던 서하린이었다. 그런데, 블러드 본 가고일까지 잡다니, 이건 정말 상상 그 이상의 성과였다.

실습지로 더 난이도 높은 던전을 잡을 걸 잘못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하물며 세 사람이 겪은 일은 단순히 던전 클리어만이 아니었다.

“약탈꾼들까지 꼬이다니, 세 분에게는 제가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하린이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 놈들이 멋대로 들어오는 것까지 팀장님이 막을 수는 없잖아요. 팀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맞아요, 그놈들이 들어온 게 잘못인데, 팀장님이 왜 사과를 하세요.”

“기다리라 했는데, 내부까지 들어간 저희 잘못이 크죠.”

그러나 우리가 괜찮다고 했음에도 서하린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 체험의 멘토는 그녀였고, 그녀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이런 위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에.

때문에 그녀는 우리에게 금전적인 보상과 언제고 한 번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하고서야 사과를 끝마쳤다.

“그런데, 뭘 하고 오신 거에요?”

“필드에서 마수가 빠져나왔다는 말에 도움을 주고 왔답니다.”

“아.”

서하린의 모든 행동 방식은 도시의 안정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기사’라는 칭호까지 받게 된 것이다.

낮에 6성의 변종마수를 잡고, 현장 체험 멘토까지 하는 와중에 필드를 이탈한 마수를 잡고 오다니···

그 한시도 쉬지 않는 왕성한 활동에 내가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돌연 은가예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상대를 확인한 은가예가 살짝 놀라더니 말했다.

“저 잠깐 연락 좀 받고 올게요.”

이윽고 던전 밖으로 나가서 통화를 마치고 온 은가예의 표정은 바짝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집에 일이 좀 생겼어.”

그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무는 은가예. 나는 그 모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다. 이 시기에 은가에서 일어날 일이란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시작됐네.’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10대 검호(劍豪)의 한 사람. 은가의 가주, 해검(海劍) 은성호가 쓰러지는 사건.

은가침공 에피소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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