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65화 (66/226)

§ 65화

세계수.

그것은 세상의 모든 부정한 것을 몰아내는 힘을 지녔다고 알려진 전설상의 나무다.

실존한 지조차 명확하지 않기에 북유럽신화에서 만들어낸 ‘허구’라는 게 오늘날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세계 7대 길드 위그드라실에서는 이 세계수가 실재했으며,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은 종교적 신앙도, ‘허구’에 대한 맹신도 아니었다.

세계수의 잔재인 ‘세계수의 가지’를 그들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인디언 유적지대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영원의 숲.

위그드라실의 정령사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 ‘영맥’의 대지 어딘가.

마수학살자 김도준은 자신의 앞에 놓인 새하얀 나뭇가지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의 행동이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행위인지에 대해.

8살에 마수에 의해 가족이 몰살을 당하고, 그 뒤로 위그드라실에 거두어져 스스로의 삶을 마수와의 싸움에 바칠 것을 다짐한 김도준이었다.

그러한 다짐으로 인해 ‘항마력’을 각성했고,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김도준은 자신의 힘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 이러한 ‘신념’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신념을 위해서라면 김도준은 자신의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던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세계수의 가지를 가져오라는 이해솔의 말에 이렇게 움직인 것은 이제와서 목숨이 아까워져서가 아니었다.

‘보았기’ 때문이다.

어둠을 불사르며 피어오르던 하얀 여명의 빛을.

푸르게 타오르는 생명의 불길을.

대체 어떠한 숙명을 짊어져야지만 그러한 ‘신성한 힘’을 얻을 수 있는지 김도준은 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러한 힘을 지닌 이가 절대 그릇된 일을 할 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신수, 불사조의 선택을 받은 자였으니까.

그러한 이가 세계수의 가지를 원한다면, 분명 어떠한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이 가지는 절대 악한 일에 악용될만한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생명을 위협하는 독이나 마기를 몰아내고 정화하는 것이 바로 세계수의 가지가 지닌 힘이었다.

상념을 마친 김도준이 세계수의 가지를 집어 들었다.

***

현장 체험 학습으로부터 한 주가 지난 화요일 점심시간, 마력 훈련장.

나는 예정대로 푸른 단약을 복제해 아멜리아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복제한 열화 단약이 이 세계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효능을 가져다주는지 면밀히 알아보기 위해서.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지속 시간은 기존의 붉은 단약과 동일하게 10분에, 1.3배 정도의 ‘마력 강화’ 효과를 보였다.

“이건 미쳤어요.”

훈련룸에서 나온 아멜리아는 푸른 단약의 효과에 경악했다.

“통상의 두 배, 아니. 세배는 좋은 거 같아요. 이거 제가 사도 될까요?”

“안 돼.”

“아무한테도 안 알릴게요. 부탁이에요.”

“그래도 안 돼.”

“아우···”

아멜리아가 푸른 단약을 팔기를 몇 번이고 요구했으나 나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애초에 생산 수량도 한정적인데다가, 이건 이터니티에 풀기에는 그 파급력이 예상치 못하게 클 테니까.

물론, 단약을 테스트해보기 전에 외부에 발설하지 않을 것을 마력의 맹약을 통해 약속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퍼져나갈 우려는 없었다. 아멜리아가 이런 쪽으로는 입이 무겁기도 했고.

“으음~ 당연히 이런 건 보안이 철저해야겠죠. 좋아요. 이건 포기할게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아멜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성능을 몇 단계 낮춘 마이너 버전이라도 상용화해보면 어떨까요? 기존 시장에 유통되는 것보다 살짝 좋은 수준으로요. 아, 일전의 붉은 포션에 대해서도 말인데요······”

반짝이는 눈으로 사업 구상을 늘어놓는 아멜리아. 확실히 아멜리아를 끌어들인 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경영파탄자인 한세울과 나 둘이서 포션을 팔아보려 했다면 시작부터 삐걱거렸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건 세울씨하고 이야기해봐. 그 사람이 만든 거니까.”

한세울의 레벨을 올리려면 명성과 업적이 필수였기에 나는 파란 단약의 ‘포션’버전 판매하자는 아멜리아의 계획을 막지는 않았다.

별의 성좌의 도움을 받는다면 한세울의 레벨을 올리기는 쉬울 테니까. 더불어 내 주머니도 두둑해지니 일석이조다.

“그나저나 이것 좀 팔아줘.”

내가 주머니에서 불그스름한 돌을 꺼내자 아멜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이거 정령석 아니에요?”

“맞아.”

“이건 또 어디서 구했어요?”

“우리 저번 주에 강원도 갔을 때 필드 돌았잖아. 그때 주웠어.”

“아우, 진즉 말해주지. 저도 한 번 다시 가봐야겠네요.”

입을 삐죽이며 주말에 강원도를 가봐야겠다는 아멜리아.

‘···괜히 말했나?’

돈다고 나올 리가 없을 텐데.

그렇다고 파랑이가 똥 쌌더니 정령석이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정말 ‘우연히’ 주웠다는 걸 강조했다.

뭐, 이러고도 강원도를 돌아다니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파랑이 먹는 양이 갈수록 늘어나는 게 이참에 돈 벌리면 아예 마수사체공장이라도 하나 장만해야겠다. 겸사겸사 정령석도 채취하고.

***

아멜리아에게 정령석을 맡긴 내가 다음에 찾은 사람은 한세연이었다.

내 소지품에 마기를 담아달라 할 생각이었는데, 은가 사건이 벌어지기 전 마인들이 회합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 회합장에 숨어들어 구체적인 계획도 듣고, 챙겨야 하는 물건도 있었다.

마인들이 은가를 침공하는 목적은 은가를 영맥의 대지로 만들어주는 마력석, ‘해신의 진주’를 훔치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은가의 식솔들은 ‘안식의 연주자’ 노턴의 연주에 당해 기절을 해버린다.

노턴의 연주는 대상을 기절시키고, 심하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물론 노턴의 연주에 대항할 만한 실력을 지녔다면 기절까지 가지는 않으나,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러한 노턴의 연주에서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인들의 회합에서 노턴이 직접 지급해주는 소모성 마석이었다.

내가 회합에 잠입하는 이유도 바로 저 소모성 마석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모르도의 마기가 필요한 것이다. 모르도의 마기를 소지품에 담아간다면 적어도 마기가 없어서 ‘마인’이 아닌 것이 발각될 일은 없을 테니까.

문제는 한세연이 왜 마기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답하기가 곤란하다는 거였는데, 이 부분은 내 고민이 무색하리만치 너무도 쉽게 해결되었다.

“알았어.”

“여기 넣어주면 되는 거야?”

“그래주면 고맙지.”

방과 후 텅 빈 교실. 내 지갑에 마기를 불어넣는 한세연.

흐르는 침묵에 괜히 멋쩍어진 내가 물었다.

“뭐 원하는 거 없냐?”

원하는 거? 음. 검지를 입에 올린 채 고개를 갸웃거린 한세연이 말했다.

“필드 수업 때 같은 조 하는 거?”

“그거면 되냐?”

“응.”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한세연.

애가 소박한 건지, 아니면 원하는 게 없는 건지, 고작 수업 같은 조라니.

혀를 차던 나는 뒤늦게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 필드 수업, 2인 1조였지.

“다른 건?”

“등교 같이하기?”

“···필드 수업이나 같이 듣자.”

“응.”

내 곤란한 표정에 한세연이 픽 웃었다.

······얘, 이거 은근히 즐기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

······6월의 초, 새벽 3시. 경기도 오산의 폐공장 부지.

게임의 내용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곳은 회합장에 가기 위한 마인들의 접선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폐공장으로 들어서자, 작은 탁자가 있었다.

의자에 자리해 있는 검은 가면을 쓴 남자를 본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면인의 무력은 내 예상대로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내 시야에 ‘영핵’이 훤히 보여왔으니까.

내 시야에 영핵이 보이는 조건은 나보다 무력이 현저히 낮아야만 가능했다. 아멜리아나 은가예 수준만 되더라도 영핵을 보기는 무척이나 어려웠고. 심지어 몸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영핵을 맞추고 부수기란 더더욱 무리였다. 하지만 이 가면인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듯싶었다. 접선책이라서 그런지 무력이 보잘 것 없었으니까.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가면인. 나는 맞은편 의자를 빼 앉으며, 탁자 위의 유리컵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커피 좀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

“티는 가져왔나?”

말 대신, 손을 흔들자 가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구준명.”

나는 얼마 전, 아카데미를 테러했던 마인의 이름을 대었다.

아멜리아의 마력을 빼앗으려다 역으로 내게 당해버린 마인의 이름을 말이다.

가면인이 내가 구준명인지 아닌지 알아볼 우려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애초에 구준명으로 회합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호오, 살아있었군.”

남자는 구준명의 이름만 아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의심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그야, 소지품마다 모르도의 마기를 잔뜩 담아온 나는 마인이라고 대놓고 광고를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마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되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마기는 거둬라. 그 상태로는 회합에 참여하지 못한다.”

“어째서지?”

“마기를 완전히 감출 수 있는 녀석들만 오라 공지를 올렸을 텐데.”

“아, 그건 몰랐네.”

“?”

쩌어엉!

의문을 품던 가면인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내 기력이 가면인의 가슴 부위를 돌던 영핵을 단숨에 부서트린 것이었다. 아주 극히 일부분만을 남기고.

“이름.”

“유종혁.”

“인적 사항 다 말해. 회합장에서 주의할 사항하고.”

의자에 기대 앉아, 녀석이 미리 끓여 놓은 커피포트의 물을 따라 마시고 있자니, 유종혁이라는 마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모두 털어놓았다.

“넌 회합에 참여하고 온 거야. 이틀 간 어디 숨어있어.”

“···알았다.”

나는 녀석이 벗어준 옷으로 갈아입고, 가면을 빼앗아 썼다.

─가면회.

마인연합의 회합은 가면을 쓰고 이루어지기에, 이렇듯 가면을 빼앗은 다면 신분을 속이기가 쉬웠다.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마기’를 지녔는지를 회합장에서 검사한다곤 하나, 모르도의 마기를 지닌 이상 들킬 염려는 없었다.

마기를 거두는 거야 <기척 차단>Lv.2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했고.

중요한 거라곤 목소리인데······

“아아. 음, 이거 진짜 괜찮네.”

내 목소리는 유종혁이라 불린 마인의 목소리를 완전히 빼다 박게 변해있었다.

며칠 전, 아멜리아에게 정령석을 팔아줄 것을 요구하며 그 대금의 일부를 마도구로 받은 것이다.

[목소리의 형태]라는 마도구로 상대의 목소리를 채취하고, 그와 흡사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을 가졌는데, 보이스피싱 조직이 만든 게 기원이란다.

아무튼, 효과 하나는 끝내줬다.

“그럼 가봐.”

손을 훠이훠이 젓자 사라지는 유종혁.

저놈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걸 걸렸다간 곤란했기에 내가 역할을 대신 좀 수행해줘야 할 듯싶었다.

“쯧, 귀찮게.”

나가는 유종혁과 맞물려 들어오던 후드티를 입은 청년이 흘낏 유종혁을 돌아보더니, 내 맞은편에 와 앉았다.

“커피 좀 한 잔 마시러 왔습니다.”

“티는 가져왔나?”

***

······블랙마켓 2층, 로어타운.

세계의 모든 국가를 짬뽕시켜 놓은 듯한 뒤죽박죽인 도시의 어딘가.

어두운 달이 비치는 저택의 입구.

“데려왔습니다.”

“흠, 수고했다.”

흰 정장의 가면인이 내가 이끌고 온 20명의 마인을 보더니 손을 휘저었다.

내가 뒤로 가자 정장인이 마인들의 마기를 한 명씩 검사하며 회합장 안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장인의 검사방식을 본 나는 내심 당황했다.

‘뭐야, 옷 안까지 검사한다고?’

정장인은 마기뿐 아니라 마인들의 소지품까지 검사를 했던 것이다.

소지품에 마기를 담아온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장인이 소지품을 검사하는 순간, 내가 소지품에 마기를 담아왔다는 걸 들킬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떻게 하지?’

그냥 기절시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장인 외에 아무도 없는 게 들키지만 않으면 영핵을 이용해 어찌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조차 쉽지만은 않았다. 정장인의 영핵이 무척이나 흐릿한 게 상당한 강자인 듯했으니까.

단번에 영핵을 노리지 못하면 끝이었다. 역으로 당하는 걸 넘어 이곳의 상황이 안쪽에 알려질 수 있었으니까.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머리를 굴리는 사이에도 마인들의 숫자는 점차 줄어만 갔다.

“다음.”

한 명씩 차례가 지나가고, 마인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었지만,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한 명마저 안으로 들어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그때까지도 나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 시발.’

이건 영핵을 노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실패하면 죽도록 튀어야지 뭐.

소모품 마석이고 뭐고 내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소지품을 건네는 척하며 공격한다.’

계획을 정한 내가 무척 흐릿하게, 그것도 이리저리 빠르게 회전하는 중년인의 작은 영핵을 보며 품에서 소지품을 꺼내 들려 할 때였다.

“하하, 유종혁. 오랜만이구나. 보는 눈이 많아 인사하기도 힘들군.”

느닷없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중년인. 소지품은 검사도 할 생각이 없는지, 되려 내 손을 밀어넣는다. 나는 손에 맺혔던 기력을 거뒀다.

‘···뭐야, 아는 사이였어?’

맥이 빠지며 긴장이 탁 풀리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웬 한숨이냐. 일이 힘든 모양이구나.”

“예, 조금.”

“그래, 네 형은 잘 지내나?”

“···아, 예. 잘 지냅니다.”

“흠, 그렇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정장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어째 잠깐 못 본 사이 키가 자란 것 같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기분은 좋군요.”

“하하, 농담이다. 들어가 봐라.”

“예.”

어깨를 툭툭 쳐주며 문을 열어주는 정장인.

마기조차 검사를 안 하는 게 내가 분장한 유종혁이란 마인이 인맥을 잘 쌓아둬서 검사를 패스한 모양이다. 이 녀석은 라인을 잘 탔는지 무력에 비해 입지는 제법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운이 좋은 건가.’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섰다.

3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홀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수십 명의 마인들이 층의 난간마다 기대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면을 썼다곤 하지만, 어지간하면 다들 서로 알아보는 듯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유종혁의 복장을 한 나를 알아보는 놈도 있었다.

그것도 사이가 아주 지독히도 나빠 보이는 놈이.

“유종혁. 오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이걸 뭐라 답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일단 가볍게 되물었다.

“왜지?”

“···뭐?”

“?”

“하! 등위도 낮은 새끼가 반말이라. 유혁님의 동생이라고 봐줬더니 완전 뇌를 갖다 버렸구나.”

······아, 상관이었냐.

그래도 뭐, 사이가 나빠보이는 게 애당초 상관 취급도 안 해준 모양이었다.

“잠깐 밖으로 나와라.”

“싫다면?”

“직접 끌고 나가주지.”

어깨를 풀며, 양손에 시꺼먼 마기를 진득하니 피워올린 채 다가오는 녀석.

'똥 밟았네.'

하필이면 오자마자 이런 놈이라니.

인상을 구긴 내가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다들 모였나 보군.”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구세주처럼 홀에 울려 퍼졌다.

“이따가 보지.”

목소리를 들은 녀석이 멈칫하더니 마기를 풀고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목소리가 울린 홀의 중앙을 바라보았다.

거동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비만의 남성이 홀의 중앙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쿵. 쿵.

걸을 때마다, 지방층으로 뒤덮인 다리가 홀을 울린다.

너무도 눈에 튀는 존재감.

남자의 정체를 알아본 내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으하암-”

하품을 하며 홀의 거대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남자는 마인협회 간부, 칠악(七惡)의 일좌. ‘나태’의 마인 게오르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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