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66화 (67/226)

§ 66화

나태의 마인, 게오르그.

녀석은 별호 그대로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나태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거처에서 1년 365일 움직이지 않는다.

방구석 폐인이라고 보면 좋았다.

‘지금 온 저것도 가짜네.’

의자에 기대앉아, 마인들이 제대로 듣든 말든, 나른한 목소리로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게오르그에게서는 영혼이 보이지 않았다.

저것은 게오르그가 자신의 파편인 ‘사념’을 집어넣어 만든 분신이었다.

“설명해 주게.”

말하는 것조차 귀찮았는지 해신의 진주를 원한다는 탐욕적인 말을 끝으로 파이프를 입에 물어버리는 게오르그.

녀석의 뒤에 물러나 있던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앞으로 나서며 모자를 벗었다.

로브 아래서 드러난 얼굴은 은발을 짧게 기른 무척이나 선하게 생긴 남자였다.

남자가 얼굴을 드러내자 마인들이 웅성였다.

“노턴이라고?”

“저놈이 왜 여기에······!”

“···마인이 되었다고?”

대부분 불쾌하다거나 믿기지 않는다는 불신어린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도 그럴 게, 남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인들을 사냥하는 선봉에 앞장서던 인물이었으니까.

전 여명의 수호자 1팀장, 안식의 연주자 노턴.

노턴의 등장에 장내에 살의가 들끓었다.

파이프를 뻑뻑 피워대던 게오르그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들끓던 살기가 씻은 듯이 지워졌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네놈들 중에 은가의 봉마진(封魔陣)을 뚫고 해신의 진주를 가져올 수 있는 놈이 있나?”

“······.”

대답하는 마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은가의 봉마진은 마인으로서는 도저히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마기를 완전히 배제하는 봉마진. 해신의 진주는 그 봉마진의 중심에 잠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마인협회에서는 여태껏 해신의 진주를 노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게오르그가 해신의 진주를 노린다고 했을 때 이게 성공하리라 생각한 마인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게오르그의 말은 놀라운 것이었다.

“노턴에게는 그 봉마진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

“그럴 리가······!”

“저놈의 말을 정말 믿는 겁니까?”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신 어린 반응들이 튀어나왔지만 게오르그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직접 확인했다.”

“······.”

그 말에 장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봉마진은 은가의 중심에 있건만, 어떻게 확인했다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게오르그의 말에 반박할 용기를 가진 마인은 아무도 없었다.

심심하면 마인을 벌레처럼 죽여대는 게오르그였기에, 눈이라도 마주칠 새랴 다들 시선을 피하기 바빴던 것이다.

“쯧, 벌레 같은 것들.”

게오르그가 계속하라는 듯 노턴에게 턱짓을 했다. 고맙다는 듯 목례를 해보인 노턴이 입을 열었다.

“게오르그님의 말씀대로 저는 봉마진을 없앨 수는 없으나 그 성질을 변질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

불편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마인들이 보이지도 않는지, 노턴이 인자하게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흘 후, 은가에서 해신연이 열릴 겁니다.”

해신연.

그건, 은가를 영맥의 대지로 만들어주는 마력석, ‘해신의 진주’를 외부에 공개하는 자리였다.

해신의 진주가 도난당할 우려가 있음에도 이를 당당하게 세간에 내보임으로써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고, 후원자들을 모집하기 위함인 것이다.

노턴은 그 해신연에서 해신의 진주를 탈환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은가의 가주 해검 은호성에게는 [아마의 씨앗]을 심어놓았습니다.”

“!”

아마의 씨앗이라는 말에 마인들이 다시 한 번 술렁였다.

사람의 마력을 잡아먹고 자라나는 저주받은 마령, 아마(亞魔).

아마의 씨앗의 출처는 바로 나태의 마인, 게오르그였다.

노턴이 봉마진을 변질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게오르그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그 전폭적인 지원 아래 노턴은 은호성에게 아마의 씨앗을 심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때, 잠자코 노턴의 계획을 듣던 마인 중 하나가 질문했다.

“은호성이 쓰러졌는데 해신연이 열리겠나?”

노턴이 빙그레 웃었다.

“해신연은 예정대로 열릴 겁니다.”

“?”

“은가의 대장로는 가문을 우선시하는 사람입니다. 해신연을 열지 않아 은가의 지지기반이 흔들리는 걸 원치 않겠죠.”

은가는 외부에 무력을 빌려주는 것으로 명성을 떨쳐온 가문이다.

그런 가문이 10년마다 열던 해신연을 갑자기 취소한다면 은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장로는 가주가 위중하다는 걸 숨기고 해신연을 속행할 예정이었다.

물론, 가주 없이 해신연을 열겠다는 대장로의 발언에 은가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대장로가 이를 일축하리란 걸 노턴은 미리 들어 알고 있었다.

“은호성과 봉마진이 없는 은가에서 해신의 진주를 빼앗아 오기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이내 구체적인 계획을 늘어놓은 노턴이 붉은색의 마석이 박힌 반지를 들어보였다.

‘저건가.’

반지를 본 내가 눈을 빛내자, 아니나 다를까 노턴이 말했다.

“제 연주와 변질된 봉마진의 기운에서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마석입니다. 마석에 담긴 포션은 체내에 투여되면 하루 후에 효력을 잃게 됩니다.”

설명이 끝나자 반지가 마인들에게 지급되었다. 그리고 내 표정이 난감함으로 물들었다.

‘이런.’

반지가 모두에게 지급되지 않고, 미리 지정된 마인들에게만 지급이 된 것이다.

해신연이 열리는 연회장 내로 진입하는 마인들을 실력 위주로 미리 선발해놓은 듯했다.

게임에서는 이런 세세한 디테일까지는 없었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항이었다.

‘뺏을 수밖에 없나.’

백여 명이 몰려있는 홀에서 다짜고짜 반지를 뺏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제일 만만한 놈을 한 놈 골라서 그 놈이 혼자 남았을 때 뺏는 게 나아 보였는데······

‘망했네.’

반지를 지급 받은 마인들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내 인상은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 하나같이 영핵의 형상이 흐릿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영핵이 저리 흐릿하면 맞추기도 어려울뿐더러 이를 파괴하는 건 별개의 영역이었다.

결국엔 영핵을 노리는 건 포기하고 실력으로 뺏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그나마 제일 만만해 보이는 놈을 한 놈 콕 집었다.

‘저놈을 노려야겠네.’

홀의 기둥에 기대 팔짱을 끼고 있는 놈.

저놈의 영핵이 그나마 덜 흐릿한 게, 실력이 제일 낮은 듯싶었다.

“할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으니 해산하지.”

내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설명이 끝났는지, 게오르그가 회합의 종료를 선언했다.

그렇게, 하나 둘 마인들이 회합장을 떠나가자 나 또한 내가 노린 마인을 쫓아 움직였다.

그런데, 홀을 벗어난 녀석은 저택을 나가지 않고 느닷없이 정원의 회랑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에 녀석이 혼자임을 확인하곤 그쪽으로 다가갔다.

영핵을 노리기 어렵다 뿐이지, 저놈 하나 기습하는 것쯤이야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녀석의 근처까지 다가간 나는 조용히 기력을 일으켰다.

‘딱 한 대만 제대로 맞아라.’

단숨에 기절하지 않아 사람이 꼬이면 역으로 내가 곤란해졌기에 나는 기력을 있는 힘껏 끌어모아, 놈의 뒤통수를 조준했다.

그때까지도 녀석은 공격의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정원을 감상하며 회랑을 걸어 다녔다. 그렇게 내가 기력을 발출하려 할 때였다.

“너 이 새끼, 여기 있었구나.”

‘하, 시발.’

느닷없이 옆에서 말을 거는 놈 탓에 나는 기력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내가 쫓던 놈은 흘낏 나를 돌아보더니 회랑을 돌아 사라졌다. 인상을 구긴 내가 옆에 나타난 놈을 쳐다보았다.

가면을 벗어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나 복장이 처음 홀에 들어섰을 때 내게 시비를 건 놈이었다.

“음?”

그런데, 놈을 쳐다보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너도 반지 받았냐?”

“당연한 걸 묻는구나.”

비릿하게 웃으며 자랑하듯 검지에 낀 반지를 들어 올리는 놈.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너, 이 새끼, 수상한데? 미행을 하는 데다, 말투까지 평소와 다르다고? 가면을 벗어봐라.”

“닥쳐, 이 씨발 새끼야.”

“······뭐?”

퍼억!

얼빠진 표정을 짓는 녀석의 면상에 기력이 작열했다.

“크헉! 이 씹······”

퍼억!

기력이 놈의 안면에 다시 작열했다.

“크아아!”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트린 놈이 내게 달려들며 마기가 일렁이는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시꺼먼 주먹이 공간을 가른다. 그러나 그 주먹은 내 근처에 이르러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뭣······!”

뒤로 밀려나는 주먹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넓게 펴진 기력의 ‘탄성’이 놈의 주먹을 막고 튕겨낸 것이다.

“크헉!”

다시금 기력을 모아 녀석의 턱을 후려친 내가 바닥에 쓰러진 놈을 보며 혀를 찼다.

“별것도 아닌 새끼가.”

영핵이 또렷이 보이려면 나보다 현저히 약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뿐이지, 흐릿하게 보인다고 해서 내가 이놈보다 약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끽해봐야 이놈은 겨우 ‘턱걸이’로 반지를 받은 피라미였으니까. 연회장 습격에 동원되는 마인이 어디 한둘도 아니었고.

‘기억을 지워야겠지?’

나는 기절한 녀석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급자한테 맞아서 기절한 거면 모르겠는데, 녀석은 내가 수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가면까지 벗어보라고 종용했으니까.

마침 기절했기 때문인지 녀석의 영핵이 아까보다는 덜 흐릿했다.

여전히 작은 데다 사방으로 튀어 다녀서 맞추기야 어려웠지만······

“맞을 때까지 치면 되겠지.”

이미 저질러버렸으니 거리낄 건 없었다. 한 방에 안 깨지면 두 방, 세 방에 깨면 되는 거고. 그다음에 억지로 깨워서 처리하면 될 터였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내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헙!”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좀 전에 내가 노렸던 놈이 돌아 나오다 우리를 발견하곤 놀란 것이다.

“그냥 가세요.”

내가 손을 젓자 신음을 삼킨 놈이 다시 뒤돌아 가버린다.

회합장이라는 게 특별하다 뿐이지, 마인끼리 싸우는 거야 흔한 풍경이었으니까.

그렇게 다시 둘만이 남은 공간에서, 나는 놈의 영핵을 반쯤 부수는데 성공했다.

“후. 드디어 부쉈네.”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이제 좀 감이 잡히는 느낌이다.

이윽고 깔끔히 뒤처리를 한 나는 한결 개운해진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다 소리쳤다.

“아, 맞다. 반지.”

뒤늦게 본래 목적을 떠올린 내가 기절한 놈에게서 반지를 회수했다.

그렇게 회랑을 뜨려던 순간이었다.

“푸흐-”

“······!”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나는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내 바로 등 뒤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서늘한 한기가 등허리를 적셔왔다.

전신에 소름이 우수수 돋을 정도의 전율이었다.

“클클, 재미있군.”

웃음 섞인 나른한 목소리.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드디어 끝난 거냐.”

지방층에 파묻힌 얼굴, 달처럼 휘어진 눈으로 웃고 있는 남자는 나태의 마인, 게오르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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