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언제부터······”
‘언제부터 계셨습니까.’라고 말하려 했으나 얼음장처럼 굳어진 입에서는 뒷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게오르그의 등장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가 바로 등 뒤까지 다가올 동안 나는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푸흐, 전부 다 보았다. 네가 이놈을 기절시키고, 두드려 패서 마석을 빼앗는 것을.”
“······.”
심장이 철렁 떨어져 내렸다.
내가 마인이 아니라는 것을 들켰던 안 들켰던 상관을 쓰러트리고 반지를 빼앗는 행위 자체가 이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미친 짓이었으니까.
살점에 파묻힌 게오르그의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이 소름이 끼쳤다.
내가 마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아닌지, 좋아하는 건지 분노하는 건지, 아무것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목숨이 이 나태한 마인의 기분 하나에 달려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참작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녀석이 최대한 좋아할 만한 말만을 골라서 입을 열었다.
“···자격이 되지 않는 놈이 회합장에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끄흐흐흐흐흐흐······”
어째서인지 게오르그의 입에서 흐느끼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흐흐, 고작 그것 때문에 기절한 놈을 30분 동안이나 팬다고?”
“······.”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영핵’을 맞춰 파괴하려는 행위가 게오르그의 눈에는 기절한 놈을 패고 또 패는 것으로 비추어진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행동은 상식을 벗어난 또라이같은 짓거리였다.
그리고 그건 게오르그에게 있어 무척이나 호감으로 다가왔다.
“푸흐흐, 정말 제대로 된 미친놈이구나.”
기절한 놈을 30분 동안이나 쉬지 않고 패는 악랄함부터가 놀라울 지경인데, 이 미친놈은 한술 더 떠서, 정확히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부위만을 골라서 딱 죽지 않을 수준으로 때리는 엽기적인 행각을 보여주었다.
귀찮아서 대충 죽여버리고 마는 게오르그에게 그 정도로 공을 들여서 성심성의껏 사람을 다져놓는 미친놈은 무척이나 참신했던 것이다.
한편 이를 모르는 나로서는 필요 이상으로 웃어대는 게오르그를 얼떨떨하게 쳐다보았다.
‘뭐지.’
설마 지금 좋아하는 건가?
“이름이 무엇이냐.”
“유종혁입니다.”
“크흐, 그래. 미친놈아, 너는 연회장에 갈 자격이 충분하다.”
“······.”
진심으로 게오르그가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미친놈은 미친놈을 좋아한다 이건가.’
어쨌든 다행이었다.
무려 칠악(七惡)의 일인이 일개 하급마인에게 연회장에 가도 된다고 인정해준 것이었으니까.
그러고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지 게오르그는 연신 살을 푸들거리며 지나갔다. 쓰러진 마인에게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후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마인에게 호감을 사려면 또라이 짓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저택을 빠져나왔다.
***
마인들의 회합장에 다녀온 다음 날 방과 후. 나는 한세울의 연금상을 찾았다.
소모품 마석, 일명 ‘노턴의 반지’의 안에 든 포션을 복제하기 위해서였다.
더불어 이 포션 안에 숨겨진 ‘함정’도 없애야 했다.
노턴은 겉으로는 마인들에게 협조하는 듯 보이지만, 그의 최종 목표 또한 ‘해신의 진주’였으니까.
결국 마지막에 가서 게오르그를 배신하고 해신의 진주를 취하려 드는 게 노턴이었다.
그 배신을 위한 함정이 숨어져 있는 게 바로 이 노턴의 반지였고.
한세울이라면 이 반지 안에 숨겨진 함정까지도 파헤칠 수 있을 터였다.
‘최대한 많이 복제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번 에피소드를 잘 마무리하자면 조력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나 혼자 노턴의 연주에서 자유로워 봤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세울이 복제할 수 있는 포션의 수량에는 한계가 있었다.
“재료도 재료지만, 조합법이 상당히 복잡해서 저로서도 파악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군요. 사흘 뒤까지라면 4개 정도가 한계일 듯 합니다.”
“예, 되는 데까지만 만들어주세요.”
“알겠습니다.”
한세울은 이게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도, 수준 높은 포션을 다루게 되었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리고 복제하다 보면 안에 무슨 안 좋은 게 심어져 있을 거에요. 그건 빼주세요.”
“안 좋은 거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음, 특정한 소리에 반응해 기운을 들끓게 하는 것인데, 찾을 수 있겠어요?”
내가 말해놓고도 과연 이걸 한세울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한세울은 그정도면 충분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정도 단서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맡겨주시죠.”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이는 한세울의 머리 위에 떠오른 ‘Lv.2’라는 표식에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위이이잉─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자, 액정에 떠올라 있는 이름.
[김도준]
‘가져왔나 보네.’
세계수의 가지가 도착했음을 알아차린 내가 눈을 빛냈다.
***
내가 김도준에게 세계수의 가지를 가져오게 시킨 이유는 쓰러진 해남은가의 가주, 은호성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은호성은 게오르그에게 포섭당한 배신자들에 의해서 체내에 ‘아마의 씨앗’이 심어졌고 그로 인해 쓰러진 상태였다.
그 쓰러진 은호성을 깨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세계수의 가지였다.
부정한 것을 몰아내는 힘을 지닌 세계수의 가지라면, 은호성의 몸에 심어진 아마의 씨앗조차 몰아낼 수 있을 테니까.
‘은호성만 깨우면 게임 끝이지.’
측근들의 배신을 몰라 허무하게 쓰러져서 그렇지 은호성은 무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대 검호 중 한 사람이었다.
치유술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초인의 과도기 시절, 이름조차 없던 몰락한 가문을 이끌고 마인과의 대전쟁에 나서 지금의 해남은가라는 전성기를 구가해낸 초인.
깨워만 놓는다면 누구보다 든든한 패가 될 것이 분명했다.
게오르그조차 은호성을 맞상대하기 꺼려져서 먼저 수작질을 부린 것이었으니까.
아무튼, 그 은호성을 깨울 카드가 바로 세계수의 가지였다.
노을이 지는 저녁. 기밀을 논할 때나 사용되는 보안이 철저한 강남의 한 고급 카페.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밀실로 들어서자 김도준이 커피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져왔어?”
맞은편에 앉은 내가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여기 있네.”
“호오.”
검은 케이스가 열리며 드러난 하얀 나뭇가지를 본 내가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띠링!
[세계수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보상으로 500SP가 수여됩니다.]
[세계수의 가지]
-세계수에서 떨어져나온 나뭇가지. 부정한 것을 몰아내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부정한 것을 몰아내는 효과라.’
이것을 보니 문득 한세연이 떠올랐다.
걔한테 이걸 쥐여주면, 모르도를 통제하는데 효과적이려나?
고작 가지 하나 가지고 모르도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타격은 줄 수 있을 테니까.
나뭇가지를 들고 모르도를 훈육하는 한세연의 모습을 잠시 떠올렸던 나는 픽 웃으며 세계수의 가지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을 김도준이 이채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뭇가지 드는 거 처음 봐?”
“세계수의 가지를 처음 드는 사람은 힘겨워해야 정상이다.”
“어째서?”
“사람의 마력에는 불순물이 있으니, 세계수의 가지를 처음 접하면 반발을 일으키게 되는 거다.”
아, 그런 거였어?
게임을 플레이할 때와 실제에서는 확실히 이런 디테일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때는 그냥 세계수의 가지를 구하면 아무렇지 않게 들었지, 거부감이 든다거나 반발한다는 문구는 일절 없었다.
지금의 나야 마력 자체가 없었으니 반발하지 않는 거야 당연했고. 마력이 있어야 불순물도 생기는 거니까.
“정말 놀랍군.”
한편, 김도준은 세계수의 가지를 아무렇지 않게 드는 나를 보며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다.
처음 세계수의 가지를 들면 힘겨워해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단순히 힘겨운 수준이 아니었다.
김도준의 경우에는 처음 세계수의 가지를 들기까지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 나뭇가지를 1분도 아니고, 단숨에 들다니······
‘과연 불사조의 선택을 받은 자란 말인가?’
세계수의 가지를 가져온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김도준의 마음에 ‘믿음’이 자라났다.
“아쉽게도 내가 지닌 세계수의 가지는 그게 전부다. 다른 걸 얻으려면 장로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됐어. 이걸로 충분해.”
“다음에도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어.”
왠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적극적인 김도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혼의 색이 백색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저건 순수한 호감이다. 나뭇가지 하나 잘 들었다고, 저런 호감이라니.
‘누가 위그드라실 아니랄까봐.’
정령과 자연에 대한 샤머니즘 숭배를 하는 위그드라실은 유독 미신이나 신앙을 잘 믿었다.
김도준도 그와 같은 부류라 판단한 내가 이내 나가는 그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뭐, 부려먹어달라는데, 부려먹어야지.”
세계수의 가지를 바라본 내가 만족스레 웃었다.
이걸로 사전준비는 끝이었다.
‘그런데 해신연에는 무슨 구실로 참가하지?’
문득 떠오른 고민에 내가 혀를 찼다.
***
해신연에 어떻게 참가할지에 대한 내 고민은 의외로 정말 간단히 풀려버렸다.
“우리 집 좀 같이 가주라.”
“너네 집에?”
“응, 애들 데려가야 하는데, 알잖아. 우리 집 깐깐한 거.”
오전의 쪽지 시험을 마치고, 찾아온 쉬는 시간. 은가예가 내게 먼저 해신연에 같이 가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은호성이 쓰러진 걸로 요 며칠 울적하더니 어느 정도 기운을 찾은 모습이다.
그나저나.
“너네 집에서 먼저 날 초청했다고?”
“어, 너 기사 나온 것 때문에 좀 관심이 있는 거 같아.”
내가 ‘더 월드’의 기사에 실린 것 때문인지, 은가에서 먼저 나를 비롯해 당시 기사에 실렸던 친구들을 모두 초청한 것이다.
아멜리아, 일레인, 데오릭, 킨델.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책상을 중심으로 모인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너네도 다 갈 거냐?”
“그럼요. 당연히 가야죠. 해신의 진주를 볼 기회인데요.”
“응, 나도. 해신의 진주는 한번 보고 싶어.”
“주말인데 좋지.”
“나는 일이 있어서 못 가겠네.”
일이 있다는 킨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생도가 모두 적극 참여 의사를 보였다.
“넌 가도 괜찮은 거냐?”
“대비야, 당연히 잘해놨어요.”
내 시선을 받은 아멜리아가 뭔 말인지 바로 알아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순수마력을 지닌 그녀는 외부에 나갔다간 마인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하긴, 익명으로 가니 괜찮으려나.’
아멜리아가 어디 물가에 내놓은 애도 아니었고. 알아서 자신의 몸 정도는 충분히 지킬 실력자였다.
마인들이 해신연의 수많은 손님 중에 아멜리아 한 사람을 콕 집어서 알아보기도 힘들 터였고. 놈들은 지금 해신의 진주 하나를 노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한가득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가장 컸다.
내가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턱을 괸 채 조용히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세연. 내 시선을 느꼈는지 눈이 마주치자 작게 웃어준다.
한세연이야 말로 내가 준비한 가장 큰 패 중 하나였다.
은가예의 소꿉친구인 그녀는 매번 해신연에 참여해왔으니까.
자고로 마는 마로 제압하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는 법이다.
'그나저나, 반지는 누구한테 주냐.'
나는 품에 넣어 놓은 한세울이 카피한 노턴의 반지 4개를 만지작거리며 머리를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