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69화 (70/226)

§ 69화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기다려.”

이해솔의 대답에 은가예가 문을 바라보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안에서 뭘 하고 계시길래 문을 안 여는 겁니까!”

밖에서 소리치는 남성은 은소백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주치의로 변한 은가예의 말에 알아서 물러갔는데, 은소백만은 고집스럽게 기다리더니, 10분이 지나도 열어 주질 않자 들어가겠다며 소리를 치고 있던 것이다.

“크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3분입니다. 3분 후에도 문을 안 여시면 강제로 열고 들어가겠습니다.”

은소백이 으름장을 놓듯 소리쳤다.

“아오, 저 망할 새끼······”

인상을 찌푸린 은가예가 은호성이 누워있는 병상을 흘낏 돌아보았다.

이해솔은 여전히 자리에 꿋꿋이 앉아 있었고, 은호성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언제 끝나는데?”

“조금만 더.”

“후우.”

은가예가 나직이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문에 대고 소리쳤다.

“들어와도 됩니다.”

달칵.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인상을 쓴 은소백이 들어왔다.

“대체 뭐 때문에······!”

찰나, 은가예의 주먹이 은소백의 턱을 시원하게 올려 쳤다.

퍼억!

커억! 짧은 단말마를 내지른 은소백은 별다른 저항도 못 해보고 기절했다.

쓰러지는 은소백을 주치의 옆에 던져 놓은 은가예가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진작 이럴걸.”

주먹을 쓰면 편한데 바보같이 10분이나 마음을 졸였다.

방법을 찾은 은가예가 나름 여유 있게 방문을 지키고 섰다.

그렇게 다시 10분이 지나갔다. 다행히도 은가예가 주먹을 쓸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때까지도 은호성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밖에는 뜻밖의 인물이 등장했다.

“안 의사님. 저 김중혁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김중혁.

가주인 은호성의 호위이자, 은가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가 바로 그였다.

은가예로서는 김중혁이 들어온다는 걸 막을 명분도 없을 뿐더러, 은소백처럼 단숨에 기절시킬 자신도 없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잠깐······!”

달칵.

답을 듣지 않은 김중혁이 문을 열었다.

이내 방 안의 풍경을 확인한 김중혁의 표정이 차게 굳어졌다.

“···자세한 건 나중에 묻겠습니다.”

“기다려, 지금 치료 중이야.”

은호성에게 다가가려는 김중혁의 앞을 은가예가 막아섰다.

김중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말했잖아, 치료 중이라고.”

“주치의를 기절시켜 놓고 말씀입니까?”

“막을 게 뻔하니까 기절시킨 거야.”

“비키시지 않으면 부득이하게 공격하겠습니다.”

김중혁이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여기서 싸우려고?”

김중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뽑혀진 은가예의 검에 중력의 마력이 푸르게 맺혀 있었다.

“가주를 말려들게 할 셈입니까?”

“말려들게 하려는 건 당신이고.”

“······.”

김중혁의 입이 다물리자, 은가예가 병상에 물었다.

“아직 멀었어?”

“······.”

이해솔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

답답함에 은가예가 눈살을 찌푸렸다.

겉으로는 당당한 척을 하고 있었으나, 사실 그녀는 속으로 잔뜩 긴장해 있었다.

김중혁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이곳이 병실이 아니고, 가주가 없었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밀어붙였을 터였다.

지금의 상황도 미봉책일 뿐이었다.

김중혁이 이해솔의 치료에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이 대치는 결국 깨지게 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지금이었다.

스릉.

결단을 내린 김중혁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져 나왔다.

그 검에 맺히는 예리한 검기에 은가예는 피부가 다 따끔거렸다.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비키십시오.”

“싫은데.”

메롱- 혀를 내밀자 김중혁의 검이 망설임 없이 들어 올려졌다.

표정을 굳힌 은가예가 자세를 낮췄다.

대치는 금방이라도 깨질 듯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김중혁의 검이 위로 올라간다.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아.

“······!”

“······!”

두 사람의 고개가 병상으로 돌아갔다.

별안간 병상에서 하얀 빛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

세계수의 가지는 은호성의 마력을 좀먹던 아마의 씨앗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그렇게 나뭇가지가 시꺼멓게 물들었을 때, 신성한 빛이 터져 나왔다.

파아아!

하얀 빛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쩌적! 균열이 일던 나뭇가지는 갈라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이윽고 빛이 사라졌을 때 거뭇한 안색이던 은호성의 얼굴에는 어느새 혈색이 감돌았다.

“으음···”

은호성의 눈이 떠졌다.

“가주!”

“아빠!”

김중혁과 은가예가 달려왔다.

“아빠, 괜찮아?”

“그래. 말끔히 나은 것 같다. 하하.”

은호성이 자신을 꼭 끌어안은 은가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몸을 좀먹는 원인 불명의 독 탓에 하루에 ‘두 시간’ 정도밖에 움직이지 못하던 그였는데, 지금은 그 독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자네였군.”

은호성의 시선이 침상 맡에 앉은 이해솔에게 향했다.

은호성은 세계수의 가지가 아마의 씨앗을 흡수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아마의 씨앗이 몸을 점령한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잠든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마력을 빼앗으려는 씨앗으로부터 대항하기 위해 내면에 침잠해 있었을 뿐.

그랬기에 세계수의 가지로 아마의 씨앗이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았다.

그리고 이를 한 것이 이해솔이란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아빠, 계속 누워있지 왜 일어나?”

“가주,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괜찮다.”

은가예와 김중혁의 걱정을 일축하며, 은호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을 디뎠다.

“고맙네.”

그리고 이해솔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은가예와 김중혁도 뒤늦게 떠올리곤 고마움을 표했다.

“기운을 되찾으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은호성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깨워도 도움이 되긴 할까 싶었는데, 지금의 모습을 보곤 확실해졌다.

‘영핵이 전혀 보이질 않아.’

아마의 씨앗에 중독당해 있을 때는 선명하게 보여오던 은호성의 영핵이 지금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겉보기에는 스스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이 사람의 그림자를 나는 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라면 무서운 사람이고, 아니라면 대단한 사람이네.’

어느 쪽이건, 든든한 전력을 얻은 건 마찬가지였다.

나를 바라보는 은호성의 영혼은 호의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으으······”

그때, 한편에 기절해 있던 은소백이 턱을 매만지며 정신을 차렸다.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뜨던 그가 은가예와 가주를 발견하더니 마침 잘 걸렸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아버님! 은가예, 저 아이가 저를 공격했습니다!”

고자질하듯 은가예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치던 은소백은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곤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모두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은호성이 멀쩡히 일어나 있던 것이다.

“다시 잘래?”

“······.”

은가예의 한 마디에 은소백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

은가예와 은소백 두 사람을 내보낸 나는 김중혁과 은호성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마인들이 해신의 진주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군.”

은호성은 자신이 아마의 씨앗에 당한 것 때문인지 이를 담담히 받아들인 반면, 김중혁은 봉마진을 변질시킬 수 있는 자가 존재한다는 소리에 불신어린 표정을 지었다.

“봉마진을 변질시킬 수 있는 자가 정말 있다는 말입니까?”

“봉마진에 대해 자문을 해준 곳이 어디입니까?”

나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이에 은호성이 대답했다.

“맥도웰가문이지.”

검의 마녀, 노아 맥도웰을 배출한 영국의 유서 깊은 마법 명가.

그들은 진법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가문이었다.

무엇보다 현대 마법진의 기틀을 다졌다고까지 평가 받는 곳이었으니까.

은가의 봉마진을 만들 때 관여한 가문 또한 바로 맥도웰가였다. 그리고.

“안식의 연주자 노턴은 맥도웰가문 출신입니다.”

내 대답에 두 사람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맥도웰가의 어딘가에는 봉마진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 설마 진의 핵심까지 꿰뚫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가주님이 쾌차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나도 알리지 않을 생각이네.”

은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지만 섬뜩한 웃음을 그렸다.

“하지만, 가만히 넘어갈 수는 없지.”

“예, 그래야죠.”

나도 은호성의 말에 동의했다.

해신연이 시작 되기 전, 무대를 어지럽힐 쓰레기는 청소해두는 편이 좋았다.

***

저녁 8시. 한여름의 늦은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시각.

해가 지는 와중에도 은가의 사람들은 다음날 있을 해신연의 준비로 한창 분주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쁜 이를 꼽자면 바로 집사장 은주민이었다.

해신연의 모든 잡무를 총괄하고 전체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가주의 최측근.

그런데 한창 연회장을 꾸미기 바쁜 와중에 은주민은 갑작스러운 가주의 호출을 받았다.

‘왜 부르시는 거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은주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루 두 시간. 그것도 아마의 씨앗을 몰아낸다고 가부좌만 틀고 있다가 다시 잠에 빠져드는 가주였다.

그런 가주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에 은주민은 짚이는 바가 없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김중혁의 뒤를 따라 은주민은 가주의 처소까지 다가왔다.

“모셔왔습니다.”

“들어오게.”

“?”

예상 밖의 정정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은주민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게 가주 은호성은 현재 몸 져 누운 상태였으니까.

‘착각이겠지.’

목소리 정도야 얼마든지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잠깐의 의구심을 지운 은주민은 열려진 문을 따라 가주의 처소에 들어섰다.

쿵.

뒤따라 들어선 김중혁이 처소의 문을 닫곤 그 앞을 지키고 섰다.

“왔는가.”

“······.”

은주민이 입을 다물었다.

처소의 중심 테이블. 은성호가 붉어진 얼굴로 소주잔을 내려놓고 있었다.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불렀네. 서 있지 말고 앉게.”

은호성이 인자하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은주민은 앉지 못했다. 그의 표정이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주.”

“음? 앉지 않고 뭐하나.”

“사, 살려주십시오.”

목소리가 미친 듯이 떨려 나왔다.

테이블에는 은주민 외에도 하얗게 질린 표정의 세 사람이 더 자리하고 있었다.

조리장 고하연.

접객당주 은진혁.

은검대주 은강우.

그리고 그들과 자신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존재했다. 바로 은호성에게 아마의 씨앗을 먹였다는 것.

이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결코 우연일 리가 없었다.

“앉게.”

은주민이 자리에 앉자, 은호성이 직접 네 사람의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주었다.

“자, 쭉 들이키게.”

“으으······”

손을 바들바들 떨던 조리장 고하연이 술잔을 놓쳤다.

쨍그랑!

테이블에 쏟아진 소주가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이런, 아깝게.”

쯧쯧, 혀를 찬 은호성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마치 시간이 되감기듯 쏟아진 소주가 고하연의 술잔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 경악할 만한 신위에 네 사람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들어야 할 것도 많은데 그리 떨면 어떻게 대화를 나누나.”

인자하게 어깨를 쓰다듬는 손길에, 처소에 누런 비린내가 올라왔다.

***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귀빈 분께 은가를 대표해 감사의 말씀드리겠습니다.”

해신연의 연회장.

거대한 홀에는 해신의 진주를 보기 위해 각계에서 초청받은 인사들이 자리해 있었다.

“저는 해남 은가의 대장로, 은하석이라 합니다.”

늙은 장로의 인사에 박수가 쏟아진다.

왜 가주가 아닌 대장로가 나왔냐는 의문을 보이는 이들도 종종 보였으나,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해신의 진주’였으니까.

영맥과 해신의 진주에 대해 조사하고자 온 학자나, 초인들. 그밖에 은가와 얽힌 사업이나 이권에 대해 논하고자 찾아온 이들이 대다수였다.

대장로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가주에 대한 언급이 없이 연설을 이어나갔다.

‘은가가 성장해온 길’ ‘은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

“아, 지루하네.”

“그러게, 해신의 진주는 언제 나오냐.”

은가예가 하품을 하자 데오릭이 맞장구를 치며 은근슬쩍 테이블의 고기를 집어 먹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대장로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막간의 이벤트도 벌어졌다. 떠오르는 다섯 개 마력석 중, 진짜 마력석을 분간해내고 맞추면 받아가는 이벤트. 기회는 일인 당 단 한 번뿐이었고, 참가비용만 무려 100만원이었다.

“야, 저거 못 맞춰. 그냥 있어.”

내가 나서려 하자, 은가예가 순진하다는 듯 웃으며 제지했다.

“이미 사용한 폐마력석에 마력 담아 놔서, 뭐가 사용 전 마력석인지 분간 가지가 않아. 순전히 운빨이야.”

[까악! 까악!]

나는 은가예의 말을 무시하고, 파랑이의 말에 따라 손을 들어올렸다.

“4번째 마력석.”

“못 맞춘다니까 그러네.”

잘 걸렸다는 듯, 풉 웃는 은가예. 그리고.

“정답입니다!”

“······뭐?”

이벤트 진행자의 말에 은가예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내가 은가예를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못 맞춘다고?”

“우, 우연이겠지.”

“그래?”

내가 피식 웃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마력석 이벤트가 이어졌고, 내 옆에는 어느덧 마력석이 10개 가까이 쌓여갔다.

“뭐, 뭐야. 너?”

“어떻게 맞추는 거예요?”

은가예를 비롯한 일행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와중에도 다양한 '마력'관련 이벤트가 벌어졌고, 파랑이의 개코는 한치의 틀림도 없이 진짜를 가려냈다.

“이, 이번에도 428번 귀빈 분이 맞추셨습니다. 으음, 올해 이벤트는 유독 한 분이 다 맞추고 계시는군요.”

진행자가 당황했는지 떨떠름한 안색으로 말끝을 흐렸다.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에 은가예는 슬쩍 나와 거리를 벌렸지만, 나는 열심히 상품을 긁어 모았다.

쌓여가는 마도구, 마력석. 포션······ 진행요원이 아예 커다란 상자를 내 옆에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제법 길게 이어지던 막간의 소소한 돈벌이(?) 이벤트가 끝나고, 대장로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윽고 뭔가 분주히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진행요원들.

앞으로 나선 대장로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끌더니, 드디어 귀가 혹할 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여러분, 세계에는 다양한 마력석이 존재합니다.”

뜸을 들이듯 좌중을 돌아본 대장로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세계의 마력을 끌어들이는 힘을 지닌 특별한 돌이 있습니다.”

모두가 ‘해신의 진주!’를 외치자 대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해신의 진주입니다. 저희 은가를 영맥의 땅으로 만들어주는 보물입니다.”

순간, 조명이 모두 꺼지며 연회장이 어둠에 잠겼다. 이윽고, 대장로의 뒤편 바닥에서부터 오로라가 천천히 올라왔다.

화륵!

순간, 오로라가 비추는 허공에 불길이 룬의 형상을 그렸다.

「ψ」

장내가 웅성였다.

불길의 형상을 본 아멜리아가 숨죽여 중얼거렸다.

“저게 바로 봉마진인가보네요.”

“그런가 보네.”

나 또한 봉마진의 형상을 신기한 듯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소개하겠습니다. 바다의 보배, 【해신의 진주】입니다.”

오로라와 함께 은은한 투명색의 돌이 봉마진의 불길 아래로 나타났다.

“오오!”

“저게 바로!”

짝짝짝! 연회장 내에 요란한 박수가 쏟아졌다. 플래시가 잇달아 터지고 귀빈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윽고, 다시금 켜지는 조명.

“해신의 진주는 인위적인 영맥을 만들어주지요, 또한 체내의 마력에 쌓인 잡다한 불순물을 정화해주기도 합니다.”

마력에 쌓인 불순물을 제거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드물다.

해신의 진주는 불순물의 정화를 해주지만, 그 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받기 위해 연회장을 찾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자, 정화의 시간입니다. 다들 앞으로······”

웃음을 띤 대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 때였다.

피이잉─ 터엉! 터엉!

전기가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순간 연회장이 암전되었다.

좀 전과는 다른 양상에 귀빈들이 의문을 품을 때였다.

“뭐, 뭐야!”

“꺄아악!”

커텐이 쳐진 창가를 와장창 깨며 사방에서 마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연회장. 그에 어울리지 않는 잔잔한 멜로디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

그와 함께 귀를 틀어 막으며 바닥으로 쓰러지는 귀빈들.

‘시작됐네.’

안식의 연주자. 노턴의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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