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70화 (71/226)

§ 70화

“으아악······!”

“누가, 누가 저것 좀 멈춰!”

“고막이 터지겠어!”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선율에 귀빈들이 귀를 움켜쥐고 무릎을 꿇는다.

채채채채챙!

연회장 곳곳에서는 느닷없이 난입한 마인들과 해남은가의 무사들이 검을 교차했다.

하지만, 악몽같은 선율은 귀빈들만이 아닌 무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마인들에게 밀린 은가의 무사들이 속절없이 밀리고 쓰러진다.

바로 그 순간.

“갈───────!”

돌연, 거대한 마력을 담은 사자후가 연회장을 울렸다. 그 사자후에 선율의 마기가 씻은 듯이 날아갔다.

귀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던 귀빈들, 밀리던 무사들이 정신을 차린다.

“부대주, 해신의 진주를 지키게.”

“예, 대장로.”

사자후를 내뱉은 대장로, 은하석이 마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스아악!

검이 휘둘리며 마인들의 몸에 한 줄기 푸른 선이 생겨난다.

푸아학!

뒤이어 붉은 피를 흩뿌리며 짚단처럼 쓰러지는 마인들.

─♬♪♩

다시금 악몽같은 선율이 울려 퍼졌다. 잇달아 터져 나오는 비명들.

눈살을 찌푸린 은하석이 선율이 흘러나오는 곳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시선을 멈췄다.

“거기구나!”

은하석이 커튼이 쳐진 홀의 창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띵!

하프의 줄을 뜯는 소리. 창가에서 날아든 마기의 선이 은하석을 반으로 쪼갤 듯 밀려들었다.

“흥!”

은하석의 검이 마기의 선을 가볍게 베어낸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연달아 날아드는 수십(數十)의 투명한 선들.

은하석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선들을 향해 부딪힐 듯 달려들었다.

푸른 검기가 그어지며 선들이 잘려 나갔다.

콰앙!

바닥을 부수듯 박찬 은하석이 달려든다.

그 맹렬한 돌진에 커튼 뒤의 마인, 안식의 연주자 노턴이 작은 하프를 촤르륵! 뜯었다.

“악몽(Nightmare).”

달려드는 은하석의 사방으로 붉은 혈선이 생겨나 그를 토막 낼 듯 좁혀 들었다.

“이까짓!”

눈썹을 꿈틀거린 은하석의 검에 푸른 검기가 거칠게 용솟음친다.

폭풍처럼 몸을 회전하며 사방으로 떨쳐 지는 검기의 해일. 붉은 선들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찢겨나가는 선들을 거슬러오는 은하석을 본 노턴이 입을 벌렸다.

“이런.”

타아아앙──!

뒤이어 은하석의 검과 노턴의 하프가 충돌하며 거대한 소음이 연회장을 울렸다.

노턴이 창가를 와장창 깨부수며 밖으로 날아갔다. 뒤따라 창가를 타 넘은 은하석이 노턴을 향해 걸어갔다.

“마인놈, 본가의 행사를 망친 것에 대한 각오는 되어 있겠지?”

“···역시 만만치 않군요.”

팔에 박힌 유리 조각을 떼어내며 노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전쟁이란 과도기를 헤쳐 나온 초인이란 하나같이 성가신 부류다.

해남은가의 대장로 광파검(狂波劍) 은하석 또한 그러했다.

칼날처럼 예리한 마력을 몰아치듯 내뿜는 은하석은 노턴으로서도 가벼이 여길 상대가 아니었다.

“여유 있는 척을······!”

눈살을 찌푸린 은하석이 재차 노턴을 향해 돌진했다.

날카로운 예기를 담은 마력의 검이 노턴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터억.

하지만 그 마력의 검은 노턴에게 닿지 못했다. 한 치의 거리를 남겨둔 채 은하석의 검이 막힌 것이다. 이내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의 정체를 확인한 은하석의 눈이 부릅떠졌다.

“······무슨!”

흉측한 마수의 앞발이 그의 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리고 마력의 칼날은 그 마수의 앞발에 흡수되듯 녹아내렸다.

“···광파검의 마력을 흡수했다고?”

뒤로 밀려난 은하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르르르······

저주파의 낮은 울음을 흘리는 마수를 은하석이 침중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크루트의 개조가 여기까지 진행되다니.”

마수의 정체는 크루트였다.

마인들이 초인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조마수’.

그리고 지금 은하석의 검을 막아선 녀석은 마력을 흡수하는 능력을 지닌 특수 개체였다.

“그쪽을 상대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녀석입니다.”

“웃기는 소리!”

카아앙!

달려드는 은하석을 크루트가 막아섰다.

“그럼 거기서 보고 계시죠. 대장로.”

발이 묶인 은하석을 일별한 노턴이 연회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연회장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울려 퍼지는 악몽의 연주. 귀를 움켜쥐고 쓰러지는 귀빈들.

평범하던 연회장이 지옥도로 바뀌기까지는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꺄아악!”

“사, 살려줘!”

마인들이 노리는 것은 오로지 해신의 진주였다. 이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거슬리는 것이라면 그게 귀빈이건 해남은가의 초인이건 신경 쓰지 않았다.

“이상하군요, 생각보다 방비가 약합니다.”

무대의 위로 올라선 노턴이 하프를 뜯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깊게 생각할 것 없지 않나? 설마 습격을 받을 줄 몰랐겠지.”

“뭐, 그렇겠군요.”

함께 올라선 마인의 말에 노턴이 의구심을 접으며 해신의 진주 앞에 다가설 때였다.

쿵! 쿵!

돌연 무대가 작게 울렸다. 비대하게 퍼진 살집을 지닌 거구의 남성. 나태의 마인, 게오르그가 다가왔다.

“푸흐···”

해신의 진주를 바라보는 게오르그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해신의 진주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서 멈춰서야만 했다.

화르르······

「ψ」

거대한 문양이 허공에 타오르고 있었다.

봉마진(封魔陣).

그 절세의 진법에는 칠악의 일인인 게오르그조차도 섣불리 다가설 수가 없는 것이다.

봉마진에서도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멈춰 선 게오르그를 보며 노턴이 가라앉은 눈을 빛냈다.

게오르그는 봉마진을 올려다보느라, 그런 노턴의 눈을 보지 못했다.

“푸흐, 할 수 있겠지?”

이내 봉마진에서 시선을 돌린 게오르그가 물었다. 노턴은 눈빛을 감추며 대답했다.

“예, 10분만 시간을 벌어주시면 봉마진은 변질시킬 수 있습니다.”

“푸흐흐, 그럼 하게.”

“알겠습니다.”

노턴은 언젠가, 맥도웰가의 서고에서 보았던 봉마진의 해진법을 떠올리며 마력을 방사했다.

우우우우웅······

붉은 마법진이 허공에 떠오르며, 봉마진과의 공명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화륵.

「ψ」

허공에 새겨진 룬 문자가 아래서부터 조금씩 형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

······한편, 갑작스럽게 벌어진 혼란에 나와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연회장에서 벗어나죠.”

아멜리아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하는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빠, 빨리 나가자.”

데오릭이 귀를 움켜쥐며 몸을 떨어댔다.

일레인은 식신인 곰 인형이 그녀의 머리에 철썩 달라붙어 귀며 머리를 꼬옥 감싸 안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한 게 힘겹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은가예 또한 인상을 심하게 찌푸려져 있었고.

반면, 나와 아멜리아, 한세연은 노턴의 반지를 찼기에 연주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마인들이 날뛰는 연회장에 남아 있는 것은 위험했기에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너네 먼저 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털어내며 은가예가 말했다. 도망보단 나서는 것을 택한 것이다.

은가예가 해신의 진주가 있는 홀의 중앙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다급히 다리를 움직인다. 그런 그녀를 내가 불러 세웠다.

“은가예.”

“왜······”

퍼억!

멈춰선 그녀의 뒤통수를 내가 기력을 담은 손날로 후려쳤다.

“커헉! 무슨······”

주춤거리면서도 끈질기게 일어나려는 것을 다시금 후려치니 잠잠해졌다.

“······.”

“가자.”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일행을 뒤로하고, 나는 기절한 은가예를 들쳐 업었다.

마인들의 목적은 오로지 해신의 진주뿐인지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우리를 막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정원에는 연회장을 탈출한 사람들이 우르르 도망을 가고 있었다.

나는 은가예를 그늘에 눕혀 놓곤 나무둥치에 털썩 기대 앉았다.

데오릭이 당황하며 물었다.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럼 뭐 할 건데?”

“그야 도망을······”

픽 웃은 내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니까 앉아 있어, 어차피 곧 끝날 테니까.”

“?”

일행의 의문 어린 눈길이 나를 향할 때였다. 돌연 주변이 웅성였다. 어느덧 도망치던 사람들의 발길이 멈춰있었다.

내가 그들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연회장 너머 본관으로 이어지는 붉은 다리.

푸른 옷을 입은 은가의 초인들이 날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선두에 자리한 건 은가의 가주, 해검(海劍) 은호성이었다.

“으, 은가주다!”

“살았다!”

“왜 이제야······!”

은호성을 알아본 사람들의 반응은 환호하거나, 화를 내는 둥 제각각이었으나, 대체로 모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해검(海劍)’이라는 두 글자가 가지는 힘은 사람들을 안도시킬 만큼 큰 것이었으니까.

한편 은호성은 마치 습격을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조금도 당황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의 상황은 사전에 미리 짜인 작전대로였으니까.

그때, 돌연 쿠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연회장 전체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어엇!”

“뭐, 뭐야!”

연회장 안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다시 접근하려는 사람도 있었으나, 연회장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물러났다.

“저건······”

“결계에요.”

일레인과 아멜리아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저것이 무엇이 의미하는지를 안 내가 중얼거렸다.

“빠르기도 하네.”

저건 봉마진이 ‘변질’된 것이다. 이제 저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오직 ‘노턴의 반지’를 지닌 나 같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연회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내 옆에 앉아 있던 한세연이 내게만 들릴 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갔다 올게.”

그녀의 시선은 은가에서 제법 떨어진 야산을 향해 있었다.

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여기서 저 거리가 느껴진다고?’

사실 은가를 침공한 마인들은 지금 연회장에 들어선 이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밖에는 마인들이 또 다른 전력을 숨겨 놓았다.

무려 마력이 통하지 않는 ‘반마력체’인 크루트들을.

한세연의 반응을 보니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반마력체라도 마기는 통하지.’

오히려 마력에 대한 대비를 하느라 그 외의 기능들은 현저히 떨어지는 게 바로 반마력체 크루트였다.

그들에게 있어 마기를 사용하는 한세연은 상성, 그 이상의 재앙이 될 것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여기만 해결되면 금방 갈 거니까.”

“응. 걱정 마.”

빙긋 웃은 한세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연회장에 쳐진 결계에 놀라고 있던 아멜리아는 한세연이 움직이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곤 의아해 했다.

“어디 가는 거예요?”

“글쎄.”

시치미를 뗀 나는 연회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곧 하이라이트가 벌어질 차례였으니까.

***

봉마진에 새겨져 있던 룬 문자가 역방향으로 형상을 바꿈에 따라 변화는 일어났다.

“끄어어······”

“크아악!”

해신의 진주를 감싸던 봉마진의 기운이 연회장 전체로 퍼져나가고,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남아있던 사람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쓰러졌다.

그 안에서 태연히 서 있는 이들은 오로지 '노턴의 반지'를 지닌 마인들 뿐이었다.

“오오! 드디어······”

해신의 진주를 보며 게오르그가 눈을 빛냈다.

“끄흐흐흐흐흐.”

그의 입에서 웃음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해신의 진주.

저 천고의 마력석이 마인에게 가져다주는 의미란 어마어마했으니까.

마인에게 있어 마력이란, 힘을 증폭시켜주는 원동력이자, 식사다.

그것이 방대한 순수마력을 지닌 해신의 진주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취하기만 한다면 어마어마한 마기의 증진을 가져다주니까.

“이것만 있으면 이제 칠악(七惡)을 넘어, 오마(五魔)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

떨리는 손으로 해신의 진주를 가져가려던 게오르그가 일순 말을 멈추었다.

그의 살갗이 부들부들 떨리며,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이는 게오르그만이 아니었다.

“크하악!”

“끄아아아아!”

연회장 안의 마인들이 모두 머리를 움켜쥐며 바닥을 굴렀다.

‘봉마진’의 마력이 그들을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벅저벅.

그때, 게오르그를 지나쳐 해신의 진주를 쥐는 자가 있었다. 상대가 누군지 확인한 게오르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노턴, 네놈이······!”

“이런, 봉마진도 견디는 건가? 과연 칠악의 악명이 거짓은 아니었군.”

노턴 맥도웰.

해신의 진주를 손에 쥔 그가 혀를 내둘렀다.

“뭐, 그동안 고생 많았네.”

노턴이 팔을 휘저었다.

그리고.

“끄하아아아악!”

봉마진의 위력이 배가되며 게오르그의 전신에서 살점이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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