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이터니티에는 [성장형 악인]이란 게 존재한다. 플레이어의 성장과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악인들.
이놈들은 내버려 두었다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기에 잡기가 까다로워진다.
칠악의 일인인 나태의 마인 게오르그 또한 이러한 성장형 악인이었다.
놈은 지금도 강하지만, 나중가서는 더욱 강해지니까.
‘기회가 될 때 잡아야지.’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게오르그를 이길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이기기는커녕 분신의 기척조차 못 느껴서 뒤를 잡힐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지금은 게오르그를 잡을 시기도 아니었다.
내가 하려는 짓은 ‘스테이지 3’에서 잡아야 할 괴물을 ‘스테이지 1’에서 사냥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미친 짓이지.’
하지만 미친 짓이라고 해서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나 혼자서야 무리지만, 놈을 잡는데 쓸 수 있는 패는 많았으니까.
게오르그와 악연을 빚은 초인이야 찾아보면 여기저기 널려있던 것이다.
녀석을 찾지 못하거나,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이만 갈고 있는 원수들이.
당장 은호성만 해도 마인을 제외하면 게오르그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가주님이 게오르그의 분신을 3번이나 격퇴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은호성이 해검(海劍)이란 칭호를 얻고, 대한민국의 10대 검호라 알려진 것은 바로 게오르그의 분신을 처단하면서부터였다.
해남은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저 일화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은호성의 표정이 어딘가 묘해졌다.
“2번째까지는 유명하지만, 3번째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해솔군의 정보력은 대단하군.”
“······.”
아, 3번째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어?
저런 디테일한 설정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난 잠시 침묵했다.
이런 내 침묵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은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밝히기 어려우면 말하지 않아도 좋네.”
사실 나는 이번만이 아니라, 은호성이 아마의 씨앗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게오르그의 작전이나 버서커의 출몰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던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겪은 일이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은호성은 이 부분들에 대해 궁금한 눈치이긴 했으나,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물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감사할 것은 없네. 말하지 않았을 뿐, 딱히 비밀도 아니었으니.”
손사래를 친 은호성이 물었다.
“그래서 무엇이 궁금한 건가? 사실 나도 게오르그에 관해 많이는 알고 있지 못하네.”
“녀석을 어떻게 계속 찾아내실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게오르그는 비대한 몸집을 가진 돼지였기에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녀석이 항상 그런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놈은 여자일 때도 있었고, 늙은 남성일 경우도 있었으며, 가끔은 어린아이로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는 본체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게오르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녀석을 찾을 방법은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내가 게임에서 게오르그를 잡을 때 써먹었던 방법도 녀석을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녀석이 있을 곳이라 추정되는 곳은 싹 다 부순 것뿐이었으니까.’
사실 그 편이 가장 쉽고 빨랐다. 하지만 그건 게임이니까 가능한 방식이지, 현실에서 그랬다간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그리고 이런 나하고는 다르게, 은호성은 게오르그의 분신을 몇 번이나 찾아내고, 녀석의 본체조차 달아나게 만든 인물이다.
1대1이라면 게오르그는 절대 은호성의 상대가 될 수 없으니까.
오죽하면 녀석이 아끼고 아끼던 아마의 씨앗까지 사용해가며 은호성을 해신연에서 배제시키고자 했겠는가.
게오르그를 찾을 방법을 알려달란 내 말에 은호성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자네, 설마 칠악이라도 잡으려는 건가?”
“게오르그라면 해볼 만할 것 같거든요.”
“···해볼 만하다? 게오르그가?”
“예.”
“크하하!”
내 긍정에 은호성이 재미있다는 듯 탁자까지 두드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내 웃음을 그친 은호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웃어서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네. 너무 유쾌해서 그랬네.”
“이해합니다.”
아카데미 생도가 마인협회의 간부를 잡겠다니 웃음이 나올 만도 했다.
내가 은호성의 입장이었다면 기가 차서 코웃음만 쳤을 테니까.
하지만 은호성은 이런 내 말을 의외로 신용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게, 나는 은호성조차 버티는 게 고작이었던 ‘정령의 폭주’를 잠재워서 내 가치를 증명해 냈으니까.
“그나저나 게오르그를 찾는 방법이라······”
옛 기억을 떠올리듯, 술잔을 빙글 돌리며 생각에 잠겼던 은호성이 피식 웃었다.
“나는 게오르그를 찾은 적이 없네. 아니, 찾을 필요가 없었지.”
“예?”
“녀석에게는 트라우마가 있거든.”
“트라우마요?”
“그렇네. 녀석이 본체를 숨기고 분신으로만 돌아다니는 이유와 관련이 있네. 그건······”
은호성의 입에서 게오르그의 숨겨진 [트라우마]에 대한 일화가 흘러나왔다.
이야기를 듣는 내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게오르그를 찾을 방법이.
“말씀 잘 들었습니다.”
“나도 오랜만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서 즐거웠네.”
은호성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예하고 잘 지내주게. 알진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르게 태어났거든.”
나는 은호성의 말을 대번 이해했다.
마력이 제멋대로 날뛰는 은가예는 다른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마력을 운용하는 게 무리였으니까.
마법이나 정령술은 아주 간단한 것조차 겨우겨우 해냈고, 검술은 마력이 제어가 안 돼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혀놓은 느낌이 컸다. 그 때문인지 집안사람들과도 거리감이 심한 듯해 보였고.
뭐, 지금은 폭검을 익히고 있으니 차차 나아지겠지만.
“자기 길을 찾았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호오, 그런가?”
눈을 빛내는 은호성에게 나는 은가예가 스스로의 검법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문의 검법을 버렸다는 말임에도 은호성은 불편해하기는커녕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어지간히도 걱정이셨나 보네.’
하긴, 제멋대로 집을 나가 아카데미에 들어간 거라 하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겠지.
“그럼 가보겠습니다.”
은호성의 배웅을 받으며 나오자 밖은 어느새 깜깜한 밤이었다. 그러나 아나스타샤의 눈을 얻은 나는 깜깜한 어둠임에도 사방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었다.
“이거 진짜 좋은데?”
이런 눈이라면 적어도 어두워서 당할 일은 없을 듯했다.
그렇게, 내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어둠에 잠긴 회랑을 걸을 때였다.
첨벙. 첨벙.
“?”
물을 때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회랑의 모퉁이에 앉은 은가예가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
“일어났냐?”
내가 뒤통수를 좀 세게(그것도 두 방) 때린 탓인지, 은가예는 꽤나 오래도록 기절해 있었다.
저녁에 은호성의 처소에 들어갈 때까지도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일어났냐는 말에 은가예가 돌멩이를 던지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응, 방금.”
고개를 들다 말고 은가예가 어딘가 아픈 표정으로 눈썹을 좁힌다.
음, 저거······
“어디 봐바.”
“읏, 만지지 마. 부었어.”
머리를 매만지자 은가예가 인상을 찡그렸다.
다음 순간 내 손에서 푸른 불길이 아주 작게 일어났다.
화륵.
머리의 통증이 가라앉는 느낌에 은가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뭐 한 거야?”
“치료.”
“아니, 그러니까······”
말을 이으려던 은가예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내가 되물었다.
“그러니까 뭐?”
“됐어, 어차피 말 안 할 거잖아.”
잘 아네.
이제는 패턴을 파악한 듯한 모습이 기특해 웃고 있자니 은가예가 말을 돌렸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길래 이렇게 늦게 나온 거야?”
“너 각성제 먹었다는 이야기.”
“뭐?”
은가예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젓는다.
“농담하지 마.”
“농담 아닌데.”
평일에 블랙마켓에 간다거나 가전검술을 버린 것도 말했다. 아, 룬어 쪽지 시험 다 틀린 것도.
창설제 때 검무 잘 췄다고 칭찬도 했으니 괜찮겠지.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첨벙.
옆자리에 털썩 걸터앉아 돌멩이를 하나 주워 연못에 던지며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뭐 하고 있는데?”
“너 나오는 거 기다렸지.”
“날?”
설마 기절시킨 것 때문에 그런가?
공격을 피할 만반의 준비를 하며 쳐다보자 은가예가 돌연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고맙다고. 도와줘서. 뒤통수 때린 것 빼고.”
“어, 그래.”
애가 자존심은 쌔도 감사할 줄은 아네.
피식 웃자니 은가예가 입술을 구기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받아.”
“이게 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가예가 준 것을 바라보던 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이거······”
“뭐야, 그게 뭔 줄 아나 보네?”
“······.”
은가예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나는 둥그런 황금패만 바라보았다.
재앙을 물리친다는 해태의 얼굴이 음각된 패. 은가예가 넘겨준 이 패는 은가에서도 상당히 귀중한 물건이었다.
‘수호의 패.’
무려 칠악의 공격조차 단 한 번은 막아줄 수 있다는 호신패였으니까.
비록 단 한 번 사용하면 쓸모가 다 하는 물건이었으나, 여벌의 목숨을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가치는 이루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내가 얼떨떨한 기분에 은가예를 돌아보았다.
“이거 나 줘도 되는 거냐?”
“자꾸 이상한 짓 하니까 그거라도 가지고 다니라고.”
“고맙다.”
“······.”
내 진심 어린 대답에 시선을 피한 은가예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리를 떴다.
“···아, 계속 앉아있으니까 춥네. 먼저 들어갈 테니까 알아서 와.”
“나도 갈 건데?”
대답을 하지 않은 은가예가 빠른 걸음으로 회랑을 돌아 사라졌다.
“?”
내가 뭐 잘못했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수호의 패를 내려다보며 만족스레 웃었다.
‘마침 딱 좋네.’
어쩌면 조만간 여벌의 목숨이 필요할지도 몰랐으니까.
달이 비치는 연못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 시각, 강원도 어딘가의 저택.
“아악!”
탁자에 앉아 책을 읽던 소년이 돌연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유종아! 무슨 일이냐!”
갑작스러운 소년의 비명에 아버지로 보이는 남성이 문을 발칵 열고 뛰어 들어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버지. 책에 손을 찌여서 그랬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자거라.”
“네, 이것만 읽고 그럴게요.”
작게 웃어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갔다.
남자가 나가자 웃음을 짓고 있던 소년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노턴 이 빌어먹을 잡놈이······”
콰직─!
소년, 게오르그가 쥔 테이블 모퉁이가 부서져 나갔다.
‘기억이 온전치 않다.’
조각난 파편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기억들을 떠올리며 게오르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분신을 부릴 수 있지만, 그 기억을 주고받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분신이 활동할 때는 본체와 실시간으로 기억을 주고받지 못하며, 오직 분신이 활동을 마치고 난 이후에야 본체가 기억을 전송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조차도 모종의 연유로 분신이 파괴당하면 그 파괴당한 정도에 따라, 깨진 유리 조각처럼 부분적인 기억만이 본체에 전송된다.
그리고 이번 경우는 게오르그가 분신을 운용한 이래 기억의 편린이 가장 적었다.
노턴에 의해 당한 것은 확실한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적은 전유성 이후로 처음이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게오르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매만지며 그가 누군가를 불렀다.
“아곤.”
"예, 악주(惡主)."
순간, 아무도 없던 자리에 검은 정장의 남성이 나타났다.
“해신연은 어떻게 됐지?”
"······그게, 알 수 없습니다."
“뭐라고?”
게오르그가 인상을 썼다.
만약을 대비해 수족인 ‘눈’을 다섯이나 보내놨는데 알 수가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누군가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콰앙!
“크헉!”
아곤이라 불린 남성이 피를 토하며 벽에 부딪혔다.
“알아봐라, 어떻게 된 건지.”
답을 듣지 않고 방을 나서는 게오르그의 얼굴에 다시금 평온한 웃음이 맺혔다.
─어머, 지금 안에서 소리가 났는데 무슨 일이니?
─책이 떨어져서 정리하고 나왔어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