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75화 (76/226)

§ 75화

은가에서의 마지막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대충 세면을 하고 나오자 은가예가 로비 쇼파에 나른하게 기대있었다. 창가에서 아예 등을 돌린 채였다.

‘저거 또 저러고 있네.’

은가예는 본가에 돌아온 뒤로 어째서 인지 부쩍 말수가 적어졌다.

왜 저러나 싶어서 창가를 내다 본 나는 이내 이유를 알았다.

드넓은 정원. 은가의 아이들이 공을 주고받듯, 마력을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서로가 지닌 마력의 성질이 같아야만 가능한 놀이였다. 성질이 다르다면 반발이 일어나니까.

해남은가의 사람들은 모두가 해신의 진주가 자아낸 영맥의 안에서 자라왔기에 다들 마력의 속성이 같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마력을 통해 이방인과 혈족을 구분한다.

오직 은가예만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은가의 검술도 제대로 못하고, 마력의 속성조차 달랐으니까. 그러니 볼 때마다 꽁해버리는 건 알겠지만···

빡!

나는 은가예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악! 뭔 짓이야?”

불시에 당한 은가예가 인상을 쓰며 나를 돌아보았다.

“멀쩡하네.”

“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꽁해 있지 말라고.”

“네가 뭘 안다고?”

“알아.”

아주 잘 알아서 탈이지.

나는 마력이 아예 없는 인간인데 그 기분을 모르려고.

이런 내 말에 은가예의 눈이 살짝 커졌다. ‘너도 돌연변이였냐’는 눈초리에 내가 인상을 구겼다.

“마력 조금 다른 것 가지고 유난 그만 떨고 일어나. 연회장 가야 하니까.”

“연회장? 거긴 왜?”

“해신의 진주 내려놓는 거 보러.”

***

······집기가 모두 빠져 텅 빈 연회장.

전날의 소동을 알려주듯, 연회장은 천장이며 바닥 할 것 없이 모두 부서지고, 금이 가 있었다.

그 연회장의 뒤편. 봉마진의 중심.

타악.

해신의 진주가 원래의 자리에 놓여졌다.

“고맙네, 자네 덕에 영맥의 복구가 한 주는 빨라졌군.”

은호성이 나를 돌아보며 감사의 인사를 해 보였다.

그건 내가 해신의 진주에 어린 마기를 항마력으로 제거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마기에 취했던 아나스타샤의 몸에 들어가 있던 해신의 진주는 마기에 오염된 상태였고, 자체적으로 정화되자면 일주일은 걸릴 일이 내가 나섬으로써 단숨에 해결된 것이다.

물론 이건 은가에만 좋은 일을 해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은가 시나리오의 마지막.

해신의 진주가 제자리로 돌아갈 때 발생하는 이벤트를 하기 위함이다.

우웅.

바로 플레이어 레벨 업 이벤트.

“오, 이건···”

해신의 진주가 푸르게 빛나자 은호성이 눈을 크게 뜬다.

“해신의 진주가 소모된 마력을 자연에서 끌어오고 있군!”

아나스타샤가 폭주하며, 어마어마한 마력을 소모한 해신의 진주다. 그 소모된 마력을 채우기 위해 해신의 진주가 자연에서 마력을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봉마진 주변은 얼마 안 가 눈에 보일 정도의 농밀한 순수마력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보기 드문 장관이자, 초인으로선 벽을 깨고 나아갈 기회였다.

은호성과 호위 김중혁. 일레인, 한세연, 아멜리아, 은가예, 데오릭. 연회장에 모인 모두가 눈을 감고 마력을 들이마셨다.

물론, 마력이 없는 나야 당연히 눈을 감지도 않았고, 마력이 체내에 쌓이지도 않았다.

대신 내 가슴과 어깨에 새겨진 문장들이 마력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까악! 까악!]

[아아···]

녀석들의 경험치가 미친 듯이 올라간다. 불사조는 Lv.3에서 Lv.4로 상승했고, 아나스타샤는 순식간에 Lv.2로 오름은 물론, 경험치가 절반 가까이나 차올랐다.

‘엄청나네.’

불사조와 아나스타샤는 실체를 가지지 않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인지, 인간하고는 흡수력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육체라는 거름망을 가진 일행들에 비해 둘은 족히 3배나 되는 마력량을 흡수한 것이다.

마력이 눈에 보일 만큼 넘실거렸던 연회장의 일부 마력이 싹 사라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는 ‘융합수’와 체질을 공유하는 내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몸이 가벼워지고, 활력이 차올랐으며 시야가 또렷해졌다.

[······그람과의 동화율이 올랐습니다.]

[······그람과의 동화율이 올랐습니다.]

[······그람과의 동화율이 올랐습니다.]

[······그람과의 동화율이 올랐습니다.]

[······그람과의 동화율이 올랐습니다.]

[그람의 기프트가 일부 해금됩니다.]

뚝!

철이 부러지는 소리. 그람의 비도가 6자루에서 7자루로 늘어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포화된 마력이 서서히 사라지자 모두가 눈을 떴다.

“다들 기연을 얻은 걸 축하하네.”

은호성의 말에 들뜬 일행이 저마다 감사의 말들을 내뱉었다.

“특히 해솔군은 마력을 흡수하는 속도가 대단하더군.”

은호성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안에 담긴 ‘경악’이란 감정이 무언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해버린 듯했다.

멋쩍게 뒷목을 긁적인 난 일행과 함께 인사를 하곤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와, 죽인다. 정말 엄청났어.”

데오릭이 꿈만 같다는 듯 중얼거렸다. 일레인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해신의 진주란 게 그렇게 굉장한 걸 줄은 미처 몰랐어.”

“난 마력량만 삼 년 치는 는 거 같은데?”

마력을 담은 손을 휘저어보며 은가예가 웃음 지었다.

“무려 영맥석이니까요. 그래도 그런 마력포화 현상은 저도 처음 봤어요.”

놀랍다는 듯 말하는 아멜리아의 표정 또한 무척이나 밝았다. 그녀도 이번 기연을 통해 마력을 상당히 많이 얻은 듯했다.

그때, 내 옆에서 걷던 한세연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해솔이는 어때?”

“나? 나도 적당히 얻었어.”

시치미를 떼자 작게 웃는 한세연. 나는 괜히 찔려서 시선을 피했다.

사실 내 융합수들이 양심 없이 마력을 죄다 빨아들이는 바람에 나머지 인원들이 얻은 마력의 양은 쥐뿔도 없었으니까.

마력이 포화상태였기에 그걸 눈치챈 건 은호성뿐인 줄 알았는데, 얘도 아는 듯했다.

“그나저나 뭔 일이 있나? 사람이 많네”

화제도 돌릴 겸, 나는 아침부터 어수선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다행히 한세연은 별 말을 안 했다.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요, 무슨 일일까요?”

성공적인 화제 전환에 내가 내심 안도하는 사이, 은가예가 지나다니는 식솔을 붙잡곤 물었다.

“우 아저씨, 여기 뭔 일 났어요?”

“아, 가예 아가씨.”

은가예를 알아본 남자가 반가운 표정을 짓더니 곤란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그게, 전날 밤 지하동에 수감되어 있던 마인 한 명이 탈주했습니다.”

“탈주요?”

마인이 탈주했다는 말에 놀란 우리들의 눈이 커졌다.

“예. CCTV도 먹통이고, 어떻게 빠져나간 건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사방을 수색하는 중입니다만, 아직 찾지는 못했습니다.”

“······.”

은가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도 그럴 게, 빠져나간 마인이 행여나 봉마진에 관한 정보라도 아는 자라면 곤란할 테니.

그렇게 일행이 마인이 탈주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이 나는 한세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전혀 놀라는 기색이 안 느껴졌다.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혼의 색이 살짝 진해지기 마련인데 한세연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아니, 되려 일순 색이 옅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내 시선을 느낀 한세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해솔아?”

“나 때문에 학교 빠져도 괜찮나 싶어서. 너 끝나고 정리할 거 많잖아?”

한세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응, 괜찮아. 내일 하면 되지.”

역시 여느 때와 같은 한세연이다.

놀라지 않는 게 좀 신기하긴 했지만, 원래 감정이 옅은 아이였으니 새삼 신기해 할 것도 없었다.

***

······6월의 중순. 화요일. 오후 4시.

나는 블랙마켓 3층, ‘노멀’의 한 작은 카페에서 은가예와 마주 앉아 있었다.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나를 따라온 은가예가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사람 한 명 만나러.”

일전에 내가 은가를 도왔기 때문인지, 은가예는 자신도 무언가 하나를 해줘야 한다며 도움을 약속했다.

‘수호의 패’만으로도 고마운데 도와주기까지 한다면야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은가예는 게임에서도 게오르그 사냥에 데려가는 주연이었으니까.

‘그래도 이야기는 해야지.’

이야기를 해보고, 가기 싫다면 어쩔 수 없이 은가예는 제외할 생각이었다.

은가예가 주연이긴 하나, 마인 사냥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이는 나머지 주연들 역시 마찬가지다.

“소리 차단해.”

“알았어.”

의아해 하면서도 은가예는 마력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렇게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입을 열었다.

“게오르그를 잡을 거야. 오늘은 거기에 필요한 사람을 만나러 온 거고.”

“······.”

은가예가 큰 눈을 깜빡였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데려가긴 글렀네.’

그렇게 내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 은가예가 손을 들어 내 얼굴 앞에서 휘저어 보였다.

“?”

그러곤 내 이마와 제 이마에 손을 얹는다.

“멀쩡한데?”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얼굴을 가까이하며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은가예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게오르그?”

“어.”

“그 칠악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태의 마인?”

빠악!

“악!”

은가예가 이마를 감싸 쥐며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기력을 두른 이마로 은가예의 이마를 박치기한 내가 인상을 썼다.

“농담하는 거 아니다.”

“아으, 이마 존나 단단하네.”

앓는 소리를 하며 일어난 은가예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게오르그를 잡을 거면, 우리 아빠한테 부탁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은가예로서는 그게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게오르그의 분신을 공식적으로 2번이나 격퇴하고, 본체를 도망가게까지 한 이력이 있는 은호성이다.

그런 은호성을 제쳐두고,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왔다니 그녀의 머리로서는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던 것이다.

물론 나도 은호성을 데리고 갈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 그렇게 했겠지.”

불가능하기에 데리고 가지 않는 거였다.

“왜 안되는데?”

“너, 은가주님이 15년 전 이후로 게오르그와 마주쳤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

“······음, 그러고 보니 없네? 왜지?”

그제야 이상함을 알아차렸는지 은가예가 부은 이마를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게 은호성은 한 번 노린 마인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유순해 보이지만, 실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인을 죽이기로 유명한 자가 바로 은호성이었으니까.

하지만 은호성은 15년 전 게오르그의 ‘본체’와 조우한 이후 단 한 번도 게오르그를 찾을 수 없었다.

이유야 뻔했다.

“눈을 붙여 놓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숨어버리는 거지.”

“아.”

“은가주뿐만이 아니야. 그놈은 최상격 랭커가 움직이면 일단 숨고 보는 놈이거든. 알려진 사람은 쓰기 어렵다는 소리지.”

“잘 아네?”

“다 정보를 얻는 데가 있으니까.”

“그 정보처가 어딘지 궁금하네. 게오르그까지 캔다고? 정말 초인협회라도 돼?”

은가예가 혀를 내둘렀다.

나는 이번 뿐만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공유해왔으니까.

그렇게 은가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왔네.”

“응? 왔다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은가예는 문득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는 느낌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언제······!”

은가예의 바로 등 뒤. 거구의 덩치를 가진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너냐, 게오르그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한 녀석이.”

“예, 접니다.”

두 눈이 없는 맹인을 본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해솔, 이, 이 사람······”

은가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남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그것은 마력이 아닌 ‘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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