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6월 중순, 토요일 오후 8시.
“하아, 내가 어쩌다가······”
사람들이 붐비는 야간의 광장을 거닐며 아멜리아가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한세울 포션의 지분을 준다는 조건에 혹해 가지고 미끼가 되어 달라는 이해솔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사실 지금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끌어들여야 하는 대상이 누군지 안다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무려 칠악(七惡)의 일익인 나태의 마인 게오르그였으니까.
칠악을 잡기 위해서는 초인협회에서도 작정하고 최상격 초인을 파견해야 할 만큼 그들은 위험한 존재였다.
그런 위험한 존재를 끌어들이는 미끼가 되어 달란 부탁에 아멜리아가 응한 것은, 위험이 동반되어야 커다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그녀의 신념 탓이었다.
이번 일만 제대로 해내면 그녀는 제약계를 장악할 포션의 지분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위기를 감수할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물론, 게오르그를 잡겠다는 이해솔의 계획을 면밀히 검토해보고 결정한 것이기도 했다.
‘가능성은 80% 이상이야.’
놀랍게도 이해솔의 계획은 완벽에 가까웠다. 변수만 없다면 충분히 게오르그를 잡을 수 있을 만큼.
설마, 그 계획에 마인을 끌어들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지만.
하여간 상상치도 못한 사고를 저지르는 데에 도가 튼 남자였다.
그 덕에 그녀가 이렇게 광장을 거니는 고생을 해야 했지만.
현재 광장의 모든 눈길은 전부 그녀에게 쏠려있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아멜리아는 꽤나 힘(?)을 주어 입고 나온 차였으니까.
리본이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푸른 플리츠 스커트를 입은 아멜리아는 화사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을 동시에 주어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어때, 반응은 괜찮아?
“몰라요.”
이어폰에 들려오는 이해솔의 목소리에 아멜리아가 토라진 듯 입술을 삐죽였다.
안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에 완전 볼거리가 되어 있던 차였으니까.
─조금만 고생해줘. 알잖아. 너밖에 할 수 있는 사람 없는 거. 게오르그를 끌어내려면 이뻐야 하니까.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이쁘다는 말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좋았기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대신 포션의 지분 준다는 거 잊지 말아요.”
─걱정 마. 끝나면 바로 세울씨하고 이야기할 거니까.
“메론 빵이 빠졌어요.”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줄게.
아멜리아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긴장이 조금이지만, 달아났다.
***
─메론 빵이 빠졌어요.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줄게.”
나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메론빵을 달라는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건 긴장을 풀기 위한 아멜리아만의 농담이다.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무려 칠악의 마인인 게오르그의 미끼가 되어야 했으니까.
─나 지켜보고 있죠?
“걱정 마. 계속 보고 있어.”
길거리를 거닐며 내 존재를 확인하듯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아멜리아의 말을 받아주는 것도 그래서였다.
홀로 게오르그와 조우해야 하는 것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임무였으니까.
그렇기에 흔쾌히 나서준 아멜리아가 고맙고 미안했다.
‘끝나면 보답이라도 해야겠네.’
뭐를 주면 좋아하려나.
마법사니 완드를 줄까? 그렇지 않아도 파랑이의 정령석은 마법사의 완드로는 아주 적격이었다. 아니면 보구를 구해주던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바닥이 쿵 울렸다.
옆을 돌아보니 아렌이 마인 하나를 제압하고 있었다.
‘역시 엄청나네.’
제압당한 마인은 4명밖에 없는 게오르그의 측근 중 하나였다.
무려 ‘상격’에 달하는 마인. 그런 마인을 아렌은 별다른 부상도 없이 제압한 것이다.
과연 언데몬의 최정예. ‘키메라’의 이명을 가진 마인다웠다.
아렌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체내에 10여종의 마수를 품은 괴물이었으니까.
“일레인. 할 수 있지?”
“응. 맡겨 둬.”
내 곁에 있던 일레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절한 마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자색의 불길한 마법진이 그려지고, 뒤이어 마인이 부르르 떨더니 눈을 번쩍 떴다.
녀석이 일레인의 손짓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레인의 장기.
저주마법,「꼭두각시」다.
영핵을 파괴하는 것과 달리 일레인의 꼭두각시술로 조종당하는 녀석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매끄러웠다. 마치 제 의지로 움직이는 것처럼.
녀석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나는 상태창을 켰다. 그러자 시야에 푸른 지도가 나타났다. 현재 내가 있는 강원도 원주 기업도시의 지도다.
지도에는 ‘붉은 점’이 사방에 찍혀 있었다. 게오르그가 퍼트려 놓은 수족. 녀석의 ‘눈’이다.
[게오르그 토벌전] 퀘스트가 시작되고 녀석의 수족들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상당수가 줄어있었다.
좌우로 각각 10개씩 퍼져있던 것들이 좌측에 퍼진 눈이 3개가 남은 반면 우측 방면은 1개밖에 남지 않았다.
“빠르네.”
좌측으로 간 이는 언데몬의 조직원이었고, 우측을 맡은 이는 한세연이었다. 그런데 한세연 쪽이 더 빨랐다.
그녀의 ‘푸른 점’은 벌써 마지막 하나 남은 붉은 점으로 이동해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막 그 붉은 점이 사라졌다. 나는 한세연의 이어폰에 연결했다.
“잘했어. 그놈이 마지막이었어. 다친 데는 없고?”
─응, 괜찮아.
“GPS에 내 위치 찍힌 거 보이지? 나 있는 곳으로 와.”
─알았어. 그쪽으로······
그때 한세연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야. 해솔아,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줄게.
“?”
이어폰 연결이 끊기자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건물의 옥상.
통화를 끊은 한세연이 앞을 바라보았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어느새 그녀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내 눈들을 제거하다니, 어디서 보낸 년이냐.”
소년의 정체는 바로 게오르그였다.
그는 해신의 진주를 얻지 못해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해신연에서 자신을 방해한 ‘누군가’가 이곳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지니고 있었다.
그랬기에 눈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한세연이 걸려든 것이다.
사실 게오르그는 한세연을 보자마자 죽이려 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쓰는 어둠을 보고선 당황했다.
‘마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곤 다른 칠악(七惡)이나, 오마(五魔)가 보낸 실력자라 판단한 것이다.
마인들은 필요에 의해 서로 손을 잡고 있을 뿐, 빈틈만 보이면 언제든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 드는 족속이었으니까.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갔다. 해신연에서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건 다름 아닌 칠악이나 오마였다는 것을.
“하긴, 한동안 뜸하기는 했어.”
게오르그의 몸에서 붉은 피 안개가 아우라처럼 일어났다. 그가 자랑하는 저주의 마기. ‘혈술’이다.
사실 게오르그가 처음부터 혈술을 사용하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었다. 이는 그가 전력을 다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오직 같은 ‘칠악’이나 그 위인 ‘오마’. 혹은 초인협회에서 보낸 최상격 초인을 상대할 때나 보이는 반응이었다.
게오르그는 한세연을 그만큼이나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했다.
저토록 어두우면서 순수한 마기를 그는 생전 처음 보았으니까.
“그냥 보내줄 수는 없을까?”
한세연이 난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서 게오르그를 만난다는 것은 그녀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싸우기라도 한다면 이해솔의 계획을 망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건 한세연에게 있어 무엇보다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런데 게오르그에게선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코웃음을 치고 되려 마기를 더욱 끌어 올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한세연은 ‘이탈’을 택했다.
어둠에 휩싸인 그녀의 모습이 밤에 녹아들었다.
“놓칠 것 같으냐!”
게오르그에게서 어마어마한 피보라가 파도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건 거대한 말뚝의 형상이 되어 밤에 녹아드는 한세연을 찔러 들었다.
스스스스.
어둠이 파고드는 피의 말뚝을 그대로 흡수해버린다.
이윽고 말뚝이 사라진 자리.
한세연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게오르그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걸 맞고 도망간다고?”
조금 전 그의 공격은 정확히 한세연에게 박혀 들었다. 치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부상을 입혔으리라 게오르그는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조금 전 전력을 다한 공격을 펼쳤으니까.
그랬기에 굉장히 놀랐다.
그는 이 기술을 써서 상대를 죽여보지 못한 경험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받아내고도 모자라 도주까지 하다니.
“···힘을 너무 낭비했군.”
게오르그는 조금 전의 일격으로 2할에 달하는 마기를 사용해버렸다.
몸을 극도로 사리는 그에게 이만한 힘의 낭비는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힘의 1할만 사용하더라도 힘이 온전해지기 전에는 절대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게 바로 그였으니까.
“당분간 나오지 말아야겠어.”
한세연을 놓친 것은 아쉬웠으나, 그의 우선순위는 사냥보다는 안전이었다.
그렇게 분신만을 움직일 것으로 방침을 정한 게오르그가 옥상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위이잉─
스마트폰이 울렸다.
“쯧. 귀찮게.”
집에서 전화가 온 것이라 생각한 게오르그가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의 수하였다.
─게오르그님.
“뭐냐, 아곤.”
─순수마력의 소유자를 찾았습니다.
난간을 뛰려던 게오르그의 몸이 순간 멈칫거렸다.
“······순수마력?”
─예. 외관도 조건에 모두 부합합니다.
“······.”
게오르그는 잠시 침묵했다.
순수마력이란 말에 흔들리긴 했지만, 힘이 온전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정말 순수마력이 확실한 거냐?”
─예, 확실합니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어딘지 말해라.”
결국 망설이던 게오르그는 직접 가기로 결정했다. 잠시 머릿속에 좀 전에 놓친 한세연의 모습이 떠올랐으나 무시했다.
‘부상을 입혔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순수마력에 대한 그의 광적인 집착은 약간의 위기감을 마비시켜버렸다.
수하를 통해 데려온다는 방식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바쳐지는 여자에게 타인이 접촉하는 것을 병적일 정도로 싫어했으니까. 그것은 분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려던 게오르그가 방향을 틀어 난간을 박찼다.
***
“어떻게 됐어?”
통화를 끊는 ‘꼭두각시’를 본 내가 일레인에게 물었다.
“성공했어. 곧 이쪽으로 움직일 거야.”
“좋아.”
씨익 웃은 나는 아멜리아의 이어폰에 연결했다.
“워프진에 그냥 서 있어. 놈이 곧 올 거야.”
─예, 알았어요.
“긴장하지 말고. 여차하면 말해준 대로 도망가면 안전하니까.”
그렇게 아멜리아를 격려하고 통화를 마치는데 내가 있는 옥상으로 누군가 내려섰다.
상대가 한세연임을 파악한 나는 반갑게 다가가려다 순간 멈칫했다.
“야, 너 괜찮아?”
“응. 기운을 많이 써서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을 하는 한세연의 안색은 평소보다 다소 하얘 보였다.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쉬어라.”
“알았어. 도중에 힘들면 쉴게.”
내 걱정에 픽 웃은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내가 앞장서자 아렌과 일레인, 한세연이 뒤따랐다. 그렇게 우리는 약속된 장소로 움직였다.
***
아멜리아는 광장의 한편에 가만히 서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접촉했지만, 아멜리아는 게오르그가 온 순간,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비인간적으로 예쁘거나 잘생긴 인간이 올 거야. 그럼 그놈이 게오르그일 가능성이 높아.
이해솔의 말과는 조금 다르게 비인간적으로 귀엽게 생긴 ‘미소년’이었다.
“누나. 저랑 이야기해요.”
“······.”
다짜고짜 대화를 요구하는 소년. 아멜리아는 말하고 싶어지는 걸 필사적으로 참으며 시선을 피했다.
머릿속으로 이해솔이 알려준 게오르그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그놈은 이쁘거나 잘생긴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안 주고 무시하면 미친놈처럼 돌변해. 그러니까 좀 괜찮게 생겼다 싶으면 일단 다 무시해.
그 말대로 아멜리아는 소년을 무시한 채 다른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저기요? 왜 내 말은 안 들으세요?”
순진무구하게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년. 아멜리아가 그제야 소년에게 눈길을 주었다. 소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린다.
그 환한 웃음을 보며 아멜리아는 떨리는 가슴을 내리누르곤 입을 열었다.
“못생겨서.”
“······.”
찰나, 환하게 웃던 소년의 얼굴이 악귀처럼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못, 생겨?”
“그래, 너 못생겼어.”
“내가? 내가 못생겼다고?”
“그래.”
“이 미친년이··· 죽여, 죽여버리겠어! 크아아!”
거칠게 숨을 내뿜던 소년이 아멜리아를 덮쳐 들었다. 녀석의 몸에서 진득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앗!
마기에 반응하듯 노면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큿!”
소년 게오르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윽고 눈을 떴을 때, 그는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어디, 어디 갔어어─!”
흥분한 게오르그가 아멜리아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멀리 떨어져 있는 아멜리아를 발견한 게오르그가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웃!”
돌연, 새하얀 빛이 공터를 환하게 물들였다.
치이이이···
게오르그의 몸에서 시꺼먼 연기가 일었다. 그의 몸이 변이가 풀리려는 듯 꿈틀거렸다. 인상을 일그러트린 게오르그가 빛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안녕. 돼지 새끼야.”
어깨에 아스를 앉힌 내가 게오르그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