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78화 (79/226)

§ 78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야산.

“왔네.”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자 빛이 일며 아멜리아와 소년 하나가 전이되었다.

“어디, 어디 갔어어─!”

광분한 소년이 충혈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다 걸음을 떼는 것을 본 내가 입을 열었다.

“아스.”

내 가슴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아나스타샤가 어깨 위로 올라가 앉았다.

이윽고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와 공간을 하얗게 물들였다.

치이이···

빛에 쬐인 소년, 게오르그의 몸이 타들어가며 시꺼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낮’을 잃는 것을 대가로 강대한 힘을 각성한 게오르그이기에, 낮의 몇 배에 달하는 빛을 내뿜는 아나스타샤는 녀석에게 있어 치명적인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게오르그.

“안녕, 돼지 새끼야.”

씨익 웃은 내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에 대한 반응은 격렬했다.

“죽여버리겠어어!”

‘돼지’라는 말에 광분한 게오르그가 몸이 타들어 가는 채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휘아악!

네 줄기 검은 마력의 사슬이 노면에서 뻗어 나와 게오르그를 구속했다.

언데몬에서 준비한 함정 마법, 「단죄의 사슬」이었다.

사슬에 묶여 발버둥 치는 녀석을 보던 내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진땀을 뺀 모습의 아멜리아가 보였다.

“고생했어.”

“후, 죽는 줄 알았어요.”

내 격려에 아멜리아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그녀는 언데몬측에서 설치해 놓은 ‘강제 워프진’을 이용해 게오르그를 이곳까지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그것만으로도 아멜리아는 제 몫을 훌륭히 해냈다고 할 수 있었다.

녀석이 광장에서 날뛰게 내버려 두었다간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나왔을 테니까.

이러면 오히려 역으로 함정에 빠트릴 수도 있고 말이다.

“크으으···”

일레인이 깔아 놓은 저주마법, 「소리 없는 죽음」에 게오르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평소의 녀석이었다면 조금도 먹히지 않았을 마법이었으나 아나스타샤의 빛에 힘이 약화 되고, 「단죄의 사슬」이 놈의 마기를 억누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타다다다다당!

수십 발의 총탄이 게오르그의 전신에 사정 없이 박혀 들었다.

“크아아!”

마기를 두른 양팔로 총탄을 미친 듯이 쳐내며 괴성을 지르는 게오르그.

이내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을 확인한 게오르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크으! 놓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말없이 베레타를 난사하는 여자는 바로 한세연이었다.

무자비하게 날아드는 총탄에 게오르그의 전신이 패이고 짓이겨진다.

화르륵!

뒤이어 아멜리아가 날린 세 덩이의 불길까지.

“크아아아!”

분노한 게오르그가 날뛰려 했다.

그러나, 날뛰려는 게오르그의 어깨를 거대한 마수의 발이 내리 눌렀다. 인상을 구기며 상대방을 확인한 게오르그의 눈이 돌연 커다래졌다.

“너는······”

“드레이크의 팔이야. 어때, 멋지지?”

드레이크의 팔을 매단 아렌이 웃어 보였다.

“너한테 잘린 팔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우드득─

게오르그의 뼈가 박살나며 어깨가 우그러졌다.

“···크아악! 이 잡것들이!”

발버둥치는 게오르그에게 화력이 집중포화된다.

빗발치는 총탄. 날아드는 불덩이. 짓뭉게지는 어깨.

게오르그의 전신은 순식간에 핏덩이가 되어버렸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죽어야 정상인 상황. 그러나 게오르그는 비명을 지를 지언정 기괴하게도 멀쩡하게 살아 움직였다. 돌연 녀석의 피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툭, 투둑. 게오르그의 마기를 억누르던 「단죄의 사슬」이 끊어져 나갔다.

「소리 없는 죽음」이 사라지고, 드레이크의 팔이 찢겨진다.

피 안개에 아나스타샤의 빛이 가리어지며 총탄이 튕겨 나갔다.

“싸그리 다 죽여버리겠다.”

흰자위 검은 자위 할 것 없이 눈알이 검붉은 핏빛으로 물든 게오르그의 사방으로 핏물이 우박처럼 뭉쳐 들었다.

저주의 마기. 「혈술」의 발현이었다.

***

일행이 게오르그와의 전투에 들어간 한편, 은가예는 아렌의 호위라던 맹인, 한스와 게오르그의 핵을 찾아다녔다.

핵을 찾는 방법은 쉬웠다. 게오르그가 마기를 일으키면 그 근원이 되는 핵은 자연스레 존재를 드러내니까.

은가예는 한스와 함께 다니며 시종일관 담담하기만 그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꼈다.

마인은 마력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에 초인과는 공생할 수 없다 알고 있는데, 한스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였다.

“그쪽은 마력 충동 안 느껴요?”

“느낀다. 인내하고 있을 뿐이지.”

“호오, 대단하네요. 언데몬은 다 그래요?”

“그렇다. 마력은 일절 손을 데지 않고 있지. 그건 인간이기를 저버리는 행위니까.”

말을 하던 한스가 자리에 멈춰 섰다.

“여기군.”

삼거리의 오래된 지하도. 그 아래에서 핵의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관리되지 않아 낡은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기다려라.”

한스가 손을 들어 은가예의 걸음을 저지했다.

“왜 그래요?”

“아래에 누군가 있다.”

한스의 말에 은가예는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정말로 지하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걸 느꼈다고?’

은가예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느끼기도 했지만, 한스는 눈을 잃은 대신 그 외의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내가 처리할 테니 그 뒤에 따라 내려와라.”

한스는 대답을 듣지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움직임에서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자신을 숨기고, 타인의 기척을 읽는 것이 이 남자의 능력인 듯했다.

“완전 암살자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계단 아래서 나타난 한스가 손짓했다.

“처리했다. 따라와라.”

“네~”

교관을 따르는 생도처럼 한스를 따라 지하도를 내려오자, 검은 후드티의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은가예는 쓰러진 남성을 보곤 표정을 살짝 굳혔다.

‘마인. 그것도 제법 강해.’

전투의 흔적이 없는 걸 보니, 남성은 한스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기습을 당해 쓰러진 듯했다.

내심 혀를 내두른 은가예는 이내 게오르그의 핵이 느껴지는 방면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이 벽 너머네요.”

“마법인가 보군.”

길게 쭉 뻗은 지하도의 벽 너머에서 핵의 마기가 느껴졌다.

한스가 마법이 걸린 곳을 찾아 벽을 두드려 볼 때였다.

“안 찾아도 돼요. 제가 할 수 있어요.”

“?”

의아해 하는 한스를 내버려 두고 은가예가 벽을 짚었다.

마력이 벽면을 타고 전체로 퍼지며, 기프트 [중력]이 발현되었다.

그녀의 기프트는 그게 무엇이 되었건 내리 누른다. 마력이나 실체가 없는 존재라도 상관없다. 그것은 벽면에 펼쳐진 마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형태를 잃은 마법진이 허물어지며 마법이 깨져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후.

“저기네요.”

은가예가 가리킨 통로의 중간. 벽 사이로 없던 공간이 생겨나 있었다.

“대단하군.”

한스가 나직이 감탄했다.

은가예도 자신의 발전에 내심 놀랐다.

그도 그럴 게 예전에는 기프트를 이렇게 조절하는 게 불가능했었으니까.

지금도 세심한 조절은 어려웠으나, 이해솔과의 훈련을 시작한 뒤로 기프트를 제어하는 게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그렇게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며 새로 생겨난 통로로 들어서자, 작은 방 크기의 좁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 어두운 밀실의 중앙.

불길한 마기를 내뿜는 핏빛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저게 핵인가 보네요.”

“맞는 것 같군.”

고개를 끄덕인 한스가 통로를 지키고 섰다.

“핵을 가라앉혀라. 여긴 내가 지키고 있겠다.”

한스를 흘낏 쳐다본 은가예가 혈구(血求)에 두 손을 가져갔다.

우웅.

기프트 [중력]이 최고조로 발현되며, 떠올라 있던 혈구가 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

퍼억─!

일레인이 「꼭두각시」로 조종하던 마인이 게오르그의 손길에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무너진 마인은 게오르그에게 피를 빼앗기고, 순식간에 미라가 되어버렸다.

피를 빼앗은 게오르그의 몸이 부글부글 끓더니, 언제 핏덩이가 되었냐는 듯, 순식간에 회복되어갔다.

이윽고, 게오르그가 공터를 슥 훑어보았다. 그러곤 아멜리아와 한세연, 일레인을 가리켰다.

“너희 셋은 내가 특별히 먹어주마. 나머지 더러운 벌레들은 필요 없다.”

게오르그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일레인을 향해 걸어갔다.

꼭두각시술이 깨진 반동으로 일레인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때, 언데몬의 마인 셋이 게오르그에게 달려들었다.

“더러운 잡것들이 감히 어딜!”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흉하게 구긴 게오르그가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핏물이 횡으로 퍼지며 세 마인을 순식간에 휘감아갔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와 기술을 이용해 차분히 핏물을 막았다.

순간, 막은 줄만 알았던 핏물이 화악 퍼지며 세 마인을 덮쳐버렸다.

피를 뒤집어쓴 세 마인이 바들바들 떨다 무릎을 꿇었다.

게오르그의 혈술, 「강탈」이었다.

그의 피를 뒤집어쓴 자는 게오르그에게 생명이 빨려 나간다.

그게 바로 혈술의 무서움이었다.

피가 묻는 것을 의식해야 하기에 움직임이 강제로 제한당해 버리는 것이다.

그때, 게오르그가 하늘에 띄운 피의 구체가 터져 나갔다.

쏴아아······

피의 비가 공터로 쏟아져 내렸다.

“피해!”

버럭 소리친 나는 기력을 우산처럼 방사해 상태가 좋지 않은 일레인을 보호했다.

다행히 바로 근처가 숲이었기에 피를 피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내 옆에선 아멜리아가 한세연을 보호하고 숲으로 들어섰다.

'지독하네.'

미처 피하지 못한 마인 두 명이 순식간에 미라가 되어버리는 모습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녀석의 혈술 앞에서는 아나스타샤의 빛조차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자욱하게 퍼진 피구름은 게오르그에게 닿는 빛을 최소한으로 차단시켜버렸고, 한세연의 마력탄이나 아멜리아의 불길조차 피의 장막에 대부분 가로 막혔다.

게오르그는 그 와중에 아렌과 공방까지 벌이는 놀라운 신위를 보여주었다.

콰앙─! 콰아앙─!

드레이크의 발, 거미전갈의 꼬리가 게오르그의 주먹과 부딪치며 굉음이 터져 나온다.

치이이이······

전신을 갑각류 마수의 껍질로 무장한 아렌의 겉표면에 핏물이 튀며 산화가 일어난다.

“이게 칠악(七惡)인가.”

예상은 했지만 게오르그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물론 이카루스의 반지의 항마력을 사용한다면 녀석의 혈술조차 뚫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항마력이란 카드는 아끼고 아끼다 기회가 왔을 때 사용해야 했으니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나는 간간히 그람의 단검을 날려 게오르그를 방해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녀석의 혈술이 멎었다.

“······어?”

당황한 게오르그가 마구잡이로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피는 떠오르다가도, 바닥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이게 무슨······”

날아오는 전갈 꼬리를 쳐내며, 뒤로 물러난 게오르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렌도 더 이상 달려들지 않고 멈춰 섰다. 그의 몸을 구성하던 갑각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피부가 암석류의 돌처럼 변하며 회색빛을 띄었다.

드레이크의 팔이 떨어지고 은빛의 털이 수북이 난 늑대의 팔이 돋아난다. 전갈의 꼬리도 갑각을 탈피했다.

‘마수를 몇 마리나 버리는 거야, 저건.’

과감하게 보유 마수를 죄다 버려버리는 모습에 혀를 내두른 나는 아직도 당황하고 있는 게오르그에게 다가갔다.

“왜, 왜! 혈술이······”

“그러게, 핵은 잘 지켰어야지.”

“뭐?”

게오르그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내가 혀를 차며 친절히 녀석의 실수를 알려주었다.

“네 핵이 무적인 줄 알았냐?”

“그러면······”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게오르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쪽에 네 핵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자가 있거든.”

은가예가 지금쯤 땀을 뻘뻘 흘리며 녀석의 핵을 열심히 억누르고 있을 터였다.

다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길어야 10분.’

그 시간 안에 결착을 지어야 했다.

아니면 이놈은 또다시 그 끔찍한 혈술을 꺼내 들 테니까.

“빨리 끝내자고.”

항마력을 담은 그람의 단검 7자루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제 2차전 시작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