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나는 다운타운 북부대로, 일명 ‘검문소’라 불리는 샤오밍의 점거지로 향했다.
노후된 거리를 지나 대로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벌써 몇 명 죽었다느니, 이제 오가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생겼다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걸을 때였다.
“자요.”
하얀 손바닥 위에 올려진 물건을 본 내가 무슨 의미냐는 눈으로 아멜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내가 준 신체 회복 단약 반쪽이 올려져 있었다.
“주면 그냥 좀 받아요.”
“아니, 받을 거긴 한데 이거 말고 네가 가진 거 달라고.”
“왜요?”
“너 방금 그 손으로 코 후볐잖아.”
“···후, 후비긴 누가 후볐다고 그래요? 살짝 만진 거거든요?”
당황한 아멜리아가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대꾸해주지 않았다.
입술을 삐죽인 아멜리아가 주머니에서 아기자기한 케이스를 꺼냈다.
“왼손으로.”
“아, 알았어요.”
신경질적으로 케이스를 연 아멜리아가 왼손으로 신체 회복 단약을 건넸다.
그제야 나는 마음 놓고 단약을 받아들였다.
뾰로통한 표정이 된 아멜리아가 강조하듯 말했다.
“그리고, 저 안 후볐어요.”
“그래, 안 후볐어. 살짝 팠지.”
“아우, 진짜···”
얼굴을 꾸기는 아멜리아를 뒤로하고, 나는 검문소로 향했다.
***
처음의 내 계획은 상대를 보고서 할 만하다 싶으면 적당히 힘을 보여주는 선에서 제압하는 것이었다.
아카데미라는 특수한 환경을 제외하고, 초인사회 전체로 치자면 나는 꽤나 강자 축에 드는 모양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소위 검문소라는 점거지의 실태를 보곤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노후한 도심가의 거리.
30명 가량의 중국인들이 총 칼 따위를 들고 거리를 봉쇄하고 있었다.
뒤에서는 덩치 큰 남성이 확성기를 들고 알 수 없는 중국어를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
‘샤오밍 길드’라는 용병놈들이었다.
초인 몇몇이 놈들에게 덤비다 당했는지 노면에 쓰러져 있었고, 용병들이 그런 초인들을 발로 툭툭 차대며 거리를 치우고 있었다.
뭐, 여기까지는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하지만 점거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문제는 내 눈에 비친 놈들의 영혼 상태였다.
대부분이 새까만 악의로 물들어 있었으나, 그중 몇몇은 차마 눈에 담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
마냥 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추잡하고, 더러웠으며, ‘불안정’했다.
내 생각이 바뀐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건 마인이었다.
그것도,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아멜리아.”
─네, 말씀하세요.
이어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현재 대로가 내려다 보이는 3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있었다.
“잠깐 눈 좀 감고 있을래?”
─눈은 왜요?
“멈춰라. 여긴 샤오밍의 검문소다.”
나는 지금 아멜리아와 통화를 하면서 놈들과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용병 한 명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지나가고 싶으면 신원조회에 동의해라.”
“잠깐이면 돼. 내가 뜨라면 떠.”
나는 가능하면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다.
이 세계가 비교적 죽음에 관대한 세계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는 건 내 윤리관에 어긋나니까.
그 사람의 범주에는 언데몬같이 인간이길 저버리지 않은 마인들 또한 포함된다.
다만, 폭주 전의 마인은 아니었다.
“이 새끼, 내 말 안 들리는······ 커억!”
“한국어 좀 똑바로 써, 새끼야. 좆같아서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겠잖아.”
어설픈 한국어를 남발하던 중국인 용병이 비도 자루에 턱을 얻어맞곤 쓰러졌다.
휘리릭.
일곱 자루 비도가 내 주위로 떠올랐다.
그제서야 용병놈들이 내 쪽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확성기를 든 용병 놈이 중국어로 고래고래 경고를 해 댔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이내 비도의 날카로운 이빨이 용병들을 향했다.
우웅···.
항마력을 담은 비도 한 자루가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휘이이익─!
놈들 사이에 섞인 ‘마인’을 향해 벼락처럼 치달았다.
***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허공을 물들인다.
“······.”
비도의 등장에 왁자지껄 비웃던 중국 용병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군가 찬물을 뿌린 것처럼 사위에 정적이 일었다. 그 정적은 오래지 않아 깨져 나갔다.
“어, 어떻게 비도 따위가······”
“마법인가?”
충격을 받은 용병들이 떠듬거리며 불신어린 말들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쓰러진 용병의 정체를 아는 샤오밍의 우두머리, 장위였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그는 머리를 잃고 나자빠진 ‘마인’을 내려다보며 사색이 되었다.
장위, 그가 블랙마켓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이토록 당당하게 날뛸 수 있던 이유는 마인협회의 원조를 약속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위 자신 또한 마인이 되었다.
옳고 그름 따윈 따지지 않고, 오로지 ‘돈’으로만 굴러가는 블랙마켓에서는 그 신분이 사람이건 마인이건 관계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마인협회에서 원조를 받은 마인이 단 한 방에, 그것도 총이나 마법이 아닌, 시대착오적인 무기인 ‘비도’ 따위에 당해버렸다.
‘······이게 가능한 건가?’
그렇게 장위가 불신 어린 표정으로 쓰러진 마인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퍼억─! 퍼억─!
두 번의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장위는 차마 올라가지 않는 머리를 들어 소음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
가슴이 움푹 함몰되고, 복부가 꿰뚫린 두 구의 시체가 노면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마인’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린 순간, 이쪽을 바라보던 놈과 눈이 마주쳤다.
“!”
아연실색한 장위가 뒷걸음질 쳤다.
“···길드장?”
“공격해라!”
“예?”
“저 놈, 괴, 괴물. 다 나가! 빨리 죽여!”
두서없이 나오는 명령에 샤오밍의 용병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게 달려 나가려던 찰나, 상대에게서 빛으로 이루어진 소녀가 떠올랐다.
“뭐지?”
“···정령인가?”
처음 보는 형상의 정령에 모두의 눈이 일순 소녀에게 쏠렸다.
그리고.
──────!
어마어마한 빛이 터져 나왔다.
“끄으아악!”
“헛!”
소녀를 바라보고 있던 용병들이 눈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마인의 사체 세 구가 잿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첫 번째 마인이 죽는 순간부터, 세 구의 사체가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5초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빛이 잦아들었을 때 용병들이 본 것은, 자신들의 위에 떠 오른 7자루의 비도였다.
그것은 그들이 어떻게 대응하기도 전에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
인간의 영역에서 7자루의 비도를 일말의 오차 없이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십에 달하는 인간을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하기란 더더욱.
하지만 대보구 그람이라면 가능하다.
그람의 검혼(劍魂)은 분열된 비도 하나하나에 깃드는 것이었기에.
휘이이이익!
강철의 비가 떨어져 내린다.
“끄아악!”
“커헙!”
어깨며, 다리 등을 베이고, 자루에 얻어맞은 용병들이 혼란에 빠졌다.
7자루의 비도가 그런 용병들 사이를 누비며 그들을 빠르게 제압해나갔다.
물론 그 정도로 30명의 용병을 모두 감당하기란 무리다.
비도의 늪을 빠져나온 용병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놈들을 힐끗 쳐다보곤 신경을 껐다.
“이 미친 새끼가!”
“죽어!”
무시를 당한 용병들이 분개하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유성우에 접근조차 못해보고 쓰러졌다.
콰과광─!
“땡큐.”
─이 정도야 기본이죠.
아멜리아의 자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눈은 왜 감으라 했던 거예요?
“눈뿅 당하지 말라고.”
아나스타샤의 빛이 잦아들고서야 눈을 뜬 아멜리아다.
그랬기에 그녀는 내가 마인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지 못했다.
마기에 찌든 사체조차 아나스타샤의 빛에 씻은 듯이 사라졌기에 짐작조차 못 할 터였다.
딱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기에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다.
‘1명이 도망가긴 했는데······’
나는 마지막 남은 마인 한 놈이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았다.
아나스타샤의 빛이 터졌을 때 분명 비도를 날렸건만, 녀석은 이를 쳐내곤 도망쳐버렸다.
“뭐, 천천히 가도 되려나.”
녀석에게는 이미 ‘꼬리’를 붙여 놨으니까.
아멜리아의 마법과 비도에 정리가 되어 가는 대로를 지켜보던 나는 녀석이 도망친 골목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허억, 허억······!”
어두운 골목. 장위는 불안한 눈으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뛰었다.
어딘가로 가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일단 그 괴물 같은 놈에게서 멀어져야만 한다는 강박이었다.
몸부터 안전해지면 그다음에 협회의 도움을 받아 그 괴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못해도 어퍼다. 저런 놈이 왜 1층에···’
블랙마켓에는 절대적인 힘의 차이란 게 존재한다.
재능이 없는 일반인이 올라갈 수 있는 층 수는 아무리 높아봐야 최대가 3층 ‘노멀’까지.
4층 ‘어퍼’부터는 재능의 영역. 선천적으로 타고난 괴물들만이 올라설 수 있다.
그놈들이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를 4층의 단맛을 잠깐이나마 맛보았던 장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마인이 된 지금의 장위는 그때보다 강해졌다.
설령 5층의 노블레스가 온다 하더라도 몸을 빼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저 놈 만큼은 예외였다.
항마력, 빛의 정령.
마인이라면 죽어도 피해야 하는 두 가지 능력을 전부 갖춘 괴물이었던 것이다.
문득 장위는 하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웬 새 새끼가······”
그는 아까부터 하늘을 맴도는 파랑새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지만, 이를 무시하고 무작정 뛰었다.
1층을 벗어나는 게 최선이었지만, 그러자면 중앙의 워프존을 들려야 했기에 그와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녀석은 분명 워프존을 중심으로 찾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씨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던 장위가 욕설을 내뱉었다.
막다른 길에 진로가 막힌 것이다. 인상을 찌푸린 그가 방향을 틀기 위해 등을 돌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저벅저벅.
“······!”
장위는 몸을 돌리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벅저벅.
골목을 울리는 발소리가 등허리를 서늘하게 적셔왔다.
“어떻게 벌써······”
등을 돌린 장위의 눈이 흔들렸다.
홀로 길드 하나를 박살 낸 괴물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장위가 의문을 품을 때다.
“끼르르륵!”
푸른 새가 내려와 녀석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보석처럼 빛나는 붉은 눈이 비웃듯 휘어져 있었다.
“······좆 같은.”
장위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이윽고, 푸른 화마(火魔)가 그를 덮쳐왔다.
그게 장위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
“잘했다. 파랑아.”
불길에 녹아드는 마인을 보던 내가 파랑이에게 커다란 적마석 덩어리를 던져주었다.
“까악!”
적마석을 부리로 쪼아 먹는 파랑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인 잡는 게 최고네.”
고작 마인 네 놈을 잡았을 뿐인데 파랑이의 레벨이 3에서 4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런 놈들 더 와주면 땡큐인데.”
마인들의 배후야 굳이 캐낼 필요도 없었다. 마인협회에서는 끈 떨어진 놈들을 회유해서 부려 먹는 게 특기였으니까.
그때 이어폰으로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예요?
“도망간 놈 잡으러.”
아멜리아의 연락에 대답을 하는데, 돌연 파랑이가 자리를 잡더니 뽀득- 정령석을 토해냈다.
“오.”
이번엔 제법 큰 거였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정령석을 주워 들곤 씨익 웃었다.
아무튼 이걸로 한세울의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남은 건 성장하는 것 뿐이었다.
슬슬 주연들의 '전용 보구'를 구할 시기도 되었고.
“누구 꺼부터 찾아봐야 되려나.”
'전용 보구'에 대해 떠올리면서 나는 골목길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