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블랙마켓의 일을 마무리한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니 한세연이 돌아와 있었다.
수많은 생도에 둘러싸여 상냥한 얼굴로 웃으면서 일일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다.
다른 반 생도들까지 와서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안부 인사를 하고 가는데, 어지간히도 인기가 많았다.
하긴, 학급이나 교내의 궂은 일은 죄다 도맡아 하는 아이였으니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을 만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들어서는데,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돌아본 한세연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모여있던 생도들의 고개가 모두 내게 돌아간다.
그 시선에 이유 모를 적개심이 섞여 있음에 혀를 찬 나는 대충 손을 흔들어주곤, 자리로 가 앉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 조례 시간이 다가오자 생도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인의 장막에 가리어 있던 한세연이 홀로 남자 그제야 나는 말을 붙일 수 있었다.
“몸은 좀 괜찮냐.”
“응, 해솔이가 준 포션을 마셨더니 금방 나았어.”
내 대충 던진 질문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한세연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늘 없는 웃음이 평소와 다를 바 없어서 안심했다.
“효과가 좋았다니 다행이네.”
나는 병문안을 갔던 때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날, 한세연이 내 무릎에서 잠이 들었을 당시 나는 무려 20분간이나 인간 베개가 되어줘야 했다.
깨우기는 좀 그래서 조심히 들어서 옮기려 했는데 오히려 더 엉겨붙어 오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잠버릇’이라고 해야 할지 한세연은 자면서도 어릴 때 인형을 품에서 절대 떼어놓지 않았다.
저것도 아마 ‘소유욕’이라는 키워드에 기인한 행동인 듯했다.
그게 참 씁쓸한 게, 저 소유욕은 ‘마수지체’의 영향으로 주변 사람을 잃은 영향으로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어릴 때부터 돌봐주었던 호위가 마수에게 죽었다고 하니 그 충격이 어지간히도 컸겠지.
내 사소한 부탁에 무리를 해버리는 것도 저 영향 탓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니콜라이가 당당하게 다가와서 한세연에게 슬쩍 노트를 건넨다.
고맙다며 웃으며 받아드는 한세연. 니콜라이의 표정이 칭찬을 받은 아이마냥 의기양양해진다.
그 우쭐함이 어이없어 내심 헛웃음을 흘리자니 니콜라이가 눈썹을 구부렸다.
“뭐냐. 이해솔.”
“노트도 빌려주고 착하다 싶어서.”
“···흥, 동기 간엔 당연한 거다.”
착하다는 말이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움찔한 니콜라이가 표정이 풀어져선 자리로 돌아갔다.
‘쟤도 참 꾸준하네.’
니콜라이가 건네준 것은 한세연이 지난 이틀간 병석으로 듣지 못한 수업 내용을 정리해놓은 요점정리 노트였다.
매번 필기에서 차석만 도맡아 하는 애가 1등한테 노트까지 건네주는 걸 보면 수석이 되기는 글렀다.
그때, 돌연 교실 문이 발칵 열리더니 은가예가 늦었다며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 늦잠을 잔 듯한 모습에 나는 시계를 슬쩍 보았다.
[오전 8시 01분]
‘지각이네.’
이터니티는 8시부터 조례가 시작된다.
아니나 다를까, 교탁에 선 하진우가 냉정하게 말했다.
“은가예, 지각. 벌점 1점이다.”
“아윽!”
은가예가 망했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싸맸다.
하진우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모두 주목!”
조례시간. 칠판에 스크린을 띄운 하진우가 말을 이었다.
“오늘 오후에는 ‘마력석 수호와 탈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스크린에 <마인>, <초인>이란 두 단어가 떠오른다.
“수업 내용은 마인에게 빼앗긴 마력석을 탈환하는 것이 골자다.”
초인사회에서 암약하는 마인들은 해신연 때와 같이 귀한 보구나 마력석을 자주 약탈해간다.
그 약탈해간 물건을 다시 탈환해 오기 위해서는 뛰어난 초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뛰어난 초인의 대부분이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재원들이었다.
“각각 마인팀과 초인팀으로 나누어서 수업을 진행한다. 팀 구성원은 내가 미리 나누어 놓았으니, 각자 자기 팀을 확인하도록.”
하진우의 말이 끝나자 스크린에 팀 구성원이 띄워졌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던 내 입이 작게 벌어졌다.
“조졌네.”
***
“음.”
······점심시간. 나는 돈까스를 포크로 찍어 먹으며 오후에 있을 수업을 떠올렸다.
<마력석 수호-탈환>
제법 점수가 높은 수업이었는데, 나는 이번에 마력석 탈환을 저지해야 하는 ‘마인’팀에 배정되었다.
우리 팀 구성원으로는 나와 한세연, 니콜라이 정도만이 눈에 띄었다.
반면 상대인 초인팀의 구성원은 화려했다.
천우진, 은가예 아멜리아, 일레인, 오진혁, 김하윤 등등······
벌써부터 밸런스 깨지는 소리가 와장창 들려왔지만, 이게 또 뭐라 하기도 애매한 게 성적 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나겠지.’
나는 비대칭 전력에 몰빵한 ‘이레귤러’다.
소위 말하는 양학에 특화된 캐릭터.
마인을 상대로는 개깡패지만, 강한 초인에게는 큰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허를 찌를 수야 있지만, 실질적인 강함은 그리 높지 않았으니까.
쓸데없이 성적만 높고 가성비는 구리다는 소리다.
이런 내 고민과는 다르게, 나를 바라보는 학우들의 눈길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믿는다, 해솔아.”
“박살 내버리자고.”
“···어, 그래.”
굉장히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다.
니콜라이는 뭔 자신감인지 식사를 하다 말고 천우진한테 가서 시비를 걸고 있다.
반면 한세연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나를 보며 작게 웃어 보였다.
“해솔아, 한 팀이네.”
“그러게.”
“잘해보자.”
“어, 그래.”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한세연은 수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럼 뭘 잘해보자는 거지?
아무튼, 우리 팀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좋았다.
‘분위기 좋은 거야, 나도 좋은데.’
문제는 하필이면 초인팀에는 나랑 대조되는 ‘핵가성비 카드’가 있다는 것이다.
“왜요?”
내가 빤히 바라보자 맞은편에서 후식 에플파이를 베어 물던 ‘핵가성비 카드’가 눈을 깜빡거렸다.
“너가 상대팀이라니까 부담스러워서.”
내 고평가가 의외였는지, 아멜리아는 흠칫 놀랐다가도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렸다.
“후후, 이제야 안 거예요?”
“어, 너무 잘 알았어.”
“그런다고 안 봐드려요. 이번 수업은 성적에 반영되니까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아멜리아를 보며 나는 진심으로 부담스럽다 생각했다.
얘는 뭔진 모르겠지만, 제 실력에 비해 성적이 한결같이 ‘낮았으니까’.
힘을 숨기거나 성적 관리를 안 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5위권 미만’인 것이다.
그렇다고 또 5위권 미만의 실력도 아니라서, 단체전만 하면 꼭 미친 활약을 보인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본인이랑 비슷한 성적의 생도 2명쯤은 우습게 찜쪄먹는 수준이다.
마법을 광범위용이나 버프계열 위주로만 익혀서 단체전에서 말도 안 되게 강했으니까.
‘진짜 가성비 지리네.’
이런 내 생각을 모르는 아멜리아는 기분 좋게 홍차를 홀짝였다.
***
······<마력석 수호-탈환> 수업이 진행되는 본관 후미, ‘수련의 관’.
“수업 내용은 간단하다.”
‘마인측’ 생도들이 도열한 앞에서 하진우가 수업 내용을 설명했다.
“현재 수련의 관 최고층인 4층에는 마력석이 배치되어 있다. 이 마력석이 배치된 장소에는 ‘결계’를 가동할 수 있는 ‘결계 룸’이 존재한다. 너희들은 각층별로 알아서 자리해서 돌파하는 초인측 생도들을 막아라.”
말을 멈춘 하진우가 마도구로 보이는 시계를 들어 보였다.
“준비시간은 30분이다. 그 이후 1시간 동안 탈환전을 벌이면 된다. 시간마다 이 타이머의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질문 있나?”
타이머의 소리를 시험 삼아 들려준 하진우가 생도들을 둘러보았다.
“없는 것 같군, 그럼 시작이다.”
삐이이익─!
마도구의 소음이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
“1층과 2층에는 함정 마법. 인원은 2층부터 배치하는 걸로 하지.”
우리 측 ‘지휘관’은 니콜라이였다.
이런 인원을 이끄는 일에는 항상 열의가 넘치는 니콜라이였기에 내버려 둬도 알아서 착착 준비가 진행되었다.
1층과 2층은 함정마법으로 도배.
그리고 인원은 2층부터 층별로 각각 15명, 4명. 마지막 4층, 결계룸에 1명이 배치되었다.
‘아예 2층부터 못 올라가게 틀어막겠다는 거네.’
그리고 2층이 뚫리려 하면 함정마법을 발동하고 3층으로 대피. 3층이 뚫리면 4층으로 대피하는 식이었다.
“4층 ‘결계 룸’은 이해솔, 네가 맡아라.”
“···내가?”
“그래, 우리 중에는 네가 가장 마력을 잘 다루니까.”
결계는 시전자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결계라도 그 유지력이 천차만별이다.
그랬기에 니콜라이는 마력을 가장 잘 다룬다는 내게 결계룸을 맡겼다.
문제는 내가 마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마력이 있어야 결계를 치던 말던 하지.’
까딱 잘못했다간 결계도 못 펼치고 4층에 틀어박혀 있다가 공격조 애들을 혼자 맞이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건 안되지.’
내가 다구리를 놓으면 모를까, 그 반대는 죽어도 사양이었다.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싶은데.”
“왜냐?”
“네 말대로라면 2층 뚫리면 끝이야. 아예 2층에서 승부 보겠다는 거잖아.”
“맞다.”
“그러면 차라리 나도 2층에 있는 게 나을 거 같은데?”
“흥, 타임리미트는 1시간이야. 그 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아니면 설마 나를 못 믿는 거냐?”
‘어, 못 믿지’라며 그럴싸한 궤변을 늘어놓으려던 나는 일순 말을 멈췄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곳은 ‘이터니티 아카데미’였다.
그리고, 이곳이 이터니티 아카데미이기에 사용 가능한 방법이 존재했다.
문득 그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상관없으려나.’
하진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 무슨 짓을 저지르건 괜찮다는 거겠지. ···아마도?
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자.
“알았다, 내가 결계룸에 갈게.”
“잘 생각했다. 뭐, 나설 차례가 있기나 기도해라.”
비릿하게 웃은 니콜라이가 각층마다 돌아다니며 직접 준비에 가담했다.
말은 거만한데, 실상은 발로 뛰는 일꾼이다.
저러니까, 생도들도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는 거겠지.
하여간, 입과 몸이 따로 노는 놈이다.
“이해솔, 너도 놀지 말고 준비를 도와라.”
“결계 유지하려면 마력을 아껴 놔야지.”
“흠, 그것도 그렇군.”
니콜라이를 가볍게 설득 시킨 나는 4층으로 올라갔다.
한편, 생도들이 함정을 준비하는 사이 한세연은 홀로 떨어진 4층 구석에서 쉬는 중이었다.
일을 하려는 것을 애들이 억지로 뜯어 말려서 4층에 감금(?)시켜 놓은 것이다.
전날까지 열병에 시달리던 애가 일을 한다고 하니 죽어라 뜯어말리는 분위기다.
그리고 지금은 간식시간이라 풀어 놓은 파랑이와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응?”
대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랑이가 끼륵끼륵 거리면, 한세연이 아하하 웃거나 고개를 끄덕인다.
주로 파랑이가 말을 하고 한세연이 듣는 식이다.
마치 무슨 밀린 보고라도 받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마력석이 있는 중앙으로 걸어갔다.
니콜라이는 2층에서 막겠다며 자신했으나 딱히 믿지는 않았다.
애초에 구성원부터 차이가 나는 데다, 상대 측에는 함정 마법이 주특기인 일레인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뚫리기 전에 나는 결계룸에서 준비해둬야 하는 일이 있었다.
‘적마석이 남아서 다행이네.’
파랑이 간식을 주고 남은 적마석을 꺼내든 내가 결계석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삐이이이익─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