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85화 (86/226)

§ 85화

“끼르륵! 끼륵!”

“헤에, 그랬구나.”

“까악.”

“응응.”

한세연은 파랑이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마수지체인 그녀는 선천적으로 환수의 의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기에 파랑이의 말을 모두 이해한 것이다.

그 반응에 파랑이도 신이 나 더욱 열심히 떠들어댔다.

주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고,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에 관해서였다.

그 말에는 두서가 없고, 어린아이 같은 자랑투성이기에 들어주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했으나 한세연은 차분하게 파랑이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었다.

물론, 문자 그대로 ‘들어만’ 주었을 뿐, 진심으로 공감하거나 웃으며 듣는 것은 대부분 이해솔과 관련된 부분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한세연은 이해솔이 그간 벌인 일들을 모두 알 수 있었다.

“파랑이는 정말 대단하구나.”

“까악!”

고개를 추켜들며 우쭐대는 파랑이의 머리를 한세연이 귀엽다며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세연이 파랑이에게 이야기를 듣는 사이, 나는 4층 중앙 데스크에 놓인 4개의 모니터를 통해 각층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편하게 들여다보았다.

“쟤는 중증이네.”

2층에서는 니콜라이가 함정의 ‘각’이나 팀원들의 좌우 인원 분배, 위치 등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준비 때도 청소부터 하던 환자였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긴 나는 옆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수련의 탑 1층. 온갖 함정으로 도배를 해 놓은 그곳으로 초인팀의 생도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아멜리아와 일레인이 선두에 섰고, 나머지는 뒤에서 엄호를 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나섰어도 함정의 해체에는 제법 애를 먹고 있었다.

“시간이 제법 걸리네.”

“당연하지, 저런 건 보통 쉽게 안 뚫린다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4층으로 올라서는 생도는 안경을 쓴 전형적인 범생이 마법사, ‘킨델’이었다.

창설제 때 함께 학종이를 날렸던 생도.

마법이론쪽으로는 아멜리아나 일레인만큼이나 빠삭한 생도였다.

“마력탐지로 숨겨진 마법진을 찾아내고 그 마법진의 패턴을 파악해야 해제할 수 있는 거야. 그냥 가는 건 자살행위지.”

“그렇구나.”

솔직히 들어도 잘 모르겠다.

저런 쪽은 아멜리아나 일레인에게 맡기면 그만이라 경험이 없으니까.

있어봤자 항마력으로 지우거나 몸으로 때운 게 다였다.

‘역시 아카데미는 수준이 다르다는 건가.’

솔직히 아멜리아나 일레인이 마법진을 앞에 두고 저렇게 막히는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외지에서는 마법에 관련된 일이라면 만능 뿅망치처럼 뚝딱 처리했으니까.

“얼마나 걸릴 거 같아?”

“글쎄, 빨라도 20분은 걸리지 않을까? 이것도 진짜 빨리 잡은 거야. 저거 설치하는 데만 30분 걸렸거든.”

안경을 추켜올리며 킨델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럼 우린 할 일 없다는 소리네.”

“그런 셈이지.”

고개를 끄덕이던 킨델은 내 행동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는 거야?”

“할 일 없다며.”

“아니, 그건 그런데······”

나는 가방에 담아온 매점 음식들을 모니터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관성처럼 사놓는 메론빵, 컵라면, 오뎅국, 핫바, 총각김치, 콜라, 보온병······

“한세연-! 라면 먹을 거지?”

“응!”

창가에 있던 한세연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킨델은 어안이 벙벙했다.

“너도 먹을래?”

“···이래도 되나?”

“뭐 어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당혹해하는 킨델을 내버려 두고, 컵라면을 뜯은 나는 파랑이의 능력으로 데운 보온병을 쪼르륵 따랐다.

라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킨델의 안경에 김이 서린다.

이어서 MSG로 기력을 라면을 비롯한 음식에 넣자 냄새부터가 달라졌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기가 막히네.’

역시 뭐든 기력만 넣으면 재료 자체가 살아나 버린다. 입맛을 다신 내가 옆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다 됐어! 와서 먹어.”

“응!”

한세연을 부른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한 젓가락을 후후 불어서 후루룩 들이키곤, 김치를 집어 먹었다.

“크, 이거지.”

면발이 탱글탱글하고, 김치도 아삭한 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음. 맛있다.”

어느새 내 옆에 붙어 앉은 한세연도 라면을 한 젓가락 먹고는 기분 좋은 미소 지었다.

가끔 같이 밥 먹을 일이 있으면 이렇게 기력을 넣어줬더니, 되게 좋아하는 모습이다.

“꿀꺽.”

우리 둘이 라면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킨델이 침을 삼켰다.

“···나도 조금만.”

안 먹는다더니 순식간에 말이 바뀌었다.

***

한여름에 라면까지 먹으니 4층의 공기는 금새 후덥지근해졌다.

더워서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데, 옆에서 산산한 바람이 불었다.

시선을 돌리니 손풍기를 든 한세연이 내게 바람을 보내고 있었다.

“아, 고맙다.”

내 감사 인사에 한세연이 말없이 빙긋 웃어 보였다.

“팔자도 좋네.”

우리 모습에 혀를 찬 킨델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안경을 추켜올린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2층, 금방 뚫리겠는데.”

일레인과 아멜리아를 위시한 마법조가 함정을 해체하면 천우진과 은가예가 나서서 생도들을 말 그대로 ‘쓸어버리고’ 있었다.

버디슈를 든 니콜라이가 천우진을 막고 있었으나, 조금씩 밀리는 모습이 화면에서도 잡힐 정도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30분이 조금 지난 시점. 예상보다 뚫리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1층을 공략하려면 못해도 20분이 걸리리란 킨델의 예상과 달리 무려 15분만에 함정이 해제되면서 벌어진 사단이었다.

지금도 숨겨진 마법진을 아멜리아가 척척 찾아내고, 일레인이 마법진의 패턴을 풀이하면서 2층의 함정들도 빠르게 해체되가는 중이었다.

“이거, 이러다간 지겠어. 우리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2층이 밀리는 모습에 킨델이 연신 불안에 찬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불안해 하는 것은 오직 킨델 뿐이었다. 한세연은 아예 관심이 없는 듯 모니터 자체를 보지도 않았고, 나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태연한 모습들에 킨델이 인상을 찡그렸다.

“야, 이거 위험하다니까? 보면 몰라?”

“걱정 마, 그렇게 조급한 상황은 아니니까.”

킨델의 말에 대답한 내가 창가를 돌아보았다. 라면을 먹는 사이 사냥을 나갔던 파랑이가 돌아와 있었다.

힐끗 2층의 CCTV를 확인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그래도 잠깐 내려갔다 오긴 해야겠네.”

여기서 가만히 있는 것도 뭐하니 하나쯤은 하고 오긴 해야겠다.

“까악!”

파랑이에게 다가가자 녀석은 사마귀나 메뚜기 같은 곤충들을 입에 물고 있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가방에서 꺼낸 실을 가지고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다 그람의 단검에 묶었다.

“해솔아, 뭐 하는 거야?”

어느새 내 옆에 쪼그려 앉은 한세연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내 작업을 지켜보았다. 뒤에 선 킨델도 궁금하단 눈초리였다.

“아멜리아가 곤충을 무서워하거든.”

하진우는 초인팀과 마인팀의 밸런스를 ‘공평’하게 짰다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마인팀에 비해 초인팀에는 ‘마법사’의 숫자가 현저히 적었다.

그 증거로, 초인팀이 1층의 함정을 제거하는데 나선 마법사는 아멜리아와 일레인을 제외하곤 고작 2명에 불과했다.

하물며 그중에서 능수능란하게 함정을 찾을 수 있는 마법사는 오직 아멜리아 혼자였다.

그런데 아멜리아는 곤충을 기겁할 정도로 무서워한다. 더러운 것에도 면역이 없다.

그 점을 파고들어 아멜리아를 무력화하면, 초인팀은 마법 함정을 제거하는데 애를 먹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천우진이 강하다지만, 마인팀의 방해를 받아가며 함정을 돌파하기란 무리였고.

“그렇구나. 좋은 생각이네.”

파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킨델은 여전히 의문 어린 표정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어떻게 무력화시킬 건데? 곤충을 접근시킬 방법이 없잖아?”

“보면 알아.”

그래서 그람에다 곤충을 묶은 거니까.

“잠깐 내려갔다 올게.”

작업을 끝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4층의 계단을 내려갔다.

***

한편, 3층에는 어느새 니콜라이를 위시한 2층의 인원들이 올라와 있었다.

2층에 모여있던 15명 중 7명이 보호장비가 깨져 리타이어 됐고, 8명만이 가까스로 대피한 것이다. 기존 3층의 2명까지 합해 총 10명이었다.

“이해솔, 왜 내려오는 거냐.”

니콜라이는 천우진과의 격전에서 낭패를 보았는지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깔끔하게 뒤로 넘겼던 금발은 헝클어져 있었고, 언제나 각이 잡혀 있던 교복도 구겨지고 찢겨 있었다.

이제 곧이어 2층의 함정을 해체한 초인팀이 몰려올 터였다.

그럼에도 아직 포기하지 않고, 막으려는 자세를 보니 근성 하나는 참 대단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우려 왔지.”

“너가 없으면 결계는 누가 운용하라고.”

“킨델이 올라가 있어. 그리고 금방 다시 올라갈 거니까 걱정 마라.”

대답을 한 내가 3층을 둘러보았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3층에도 2층보다는 적으나 꽤 많은 함정을 설치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지면에는 초인팀의 발을 묶으려고 준비한 진흙 주머니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점심시간의 짬을 내어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저거, 천장에 매달 수는 없냐?”

“가능한데 왜 매달려는 거냐.”

“왜긴, 떨구려는 거지.”

천장의 진흙을 떨구는 단순한 수야, 마력을 이용한다면 들통이 나버리기에 효과를 보기 어렵다.

다만, 그람을 이용하면 들키지 않고 진흙을 떨어트릴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시선을 분산시키긴 해야겠지만.

아무튼, 진흙을 맞추면 그 이후는 간단하다. 마법을 이용해 진흙을 굳혀버리면, 함정에 당한 생도는 발이 묶이게 된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대상은 바로 아멜리아였다.

곤충이나 더러운 것을 기겁하는 아멜리아였기에, 유효하냐 아니냐를 떠나 정신적인 타격은 확실할 터였으니까

이런 내 이야기를 들은 니콜라이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건 너무 비겁한 거 아니냐?”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냐?”

내가 혀를 찼다. 얘는 하는 짓이 너무 ‘정정당당’하다.

“아무튼 빨리 해라. 난 간다.”

어느새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단검들을 3층 곳곳에 뿌려 놓은 나는 그대로 다시 4층으로 올라갔다.

***

······한편, 같은 시각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초인팀.

“앞으로 두 층 남았네요.”

“남은 시간도 25분이면 충분해.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어.”

천우진의 냉정한 말에 아멜리아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마법진은 제가 다 찾아드릴 거니까요.”

수련의 관에는 층마다 교묘하게 마법 함정이 감추어져 있었으나, 마력에 예민한 아멜리아에게 이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천우진도 이를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맡겨두세요.”

화사하게 웃은 아멜리아가 일부러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3층의 문을 열었다.

이내 안의 광경을 둘러본 그녀가 나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여기 모여 계셨네요.”

마인 팀의 인원들은 문가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보나마나 이 사이에 함정 마법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리라.

“하아. 정말 질리지도 않네요.”

아멜리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제법 훌륭한 마법들이에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찾기가 어려웠겠지요. 하지만······”

쿵.

아멜리아가 완드를 찍었다.

화아악!

그녀를 중심으로 푸른 마력이 4층을 훑고 지나갔다.

이윽고 감지되는 수십 개의 마법진에 아멜리아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쉽게도 그쪽 팀의 마법은 제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에요. 이제 그만 항복하시는 편이 어떨까요?”

“흥! 항복은 무슨 항복이냐.”

니콜라이가 코웃음을 치자, 아멜리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밝은 미소를 지었다.

“곧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아멜리아, 폼 그만 잡고 빨리 가자.”

은가예가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자 칫. 짧게 혀를 찬 아멜리아가 걸음을 떼었다.

“일레인, 저기······”

그렇게 당당하게 걸어간 아멜리아가 손가락을 들어 가장 가까운 마법진을 가리킬 때였다.

스르륵.

“?”

문득, 무언가 다가드는 느낌에 아멜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 어마얏!”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뒷걸음질쳤다.

부유하는 비도에 거대한 메뚜기가 매달려 다리를 바동거리고 있던 것이다.

다가드는 메뚜기를 피해 옆으로 이동하니, 그쪽에선 매미가 바동거렸다.

“흐, 흐아앙!”

엉덩방아를 찧은 아멜리아가 울상이 되었다.

그러던 찰나, 가죽 북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천장에서 진흙 무더기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아멜리아가 어푸어푸거리는 틈을 마인 팀은 놓치지 않았다.

“클롯(clot)!”

데오릭의 마법이 시전되고, 진흙이 아멜리아의 몸을 구속했다.

“흐끅, 저 잡혔어요······”

진흙 덩어리에서 머리만이 나온 아멜리아가 팀원들을 돌아보며 울상을 지었다.

***

“됐다!”

3층의 상황을 숨죽여 지켜보던 킨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호했다.

“20분밖에 안 남았어. 우리가 이겼어.”

아멜리아가 없더라도 마법함정을 찾아 제거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제한시간은 앞으로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시간 내에 초인팀이 마법 함정을 모두 제거하고 4층의 결계까지 부수기란 무리였다.

하지만 나는 턱을 쓸며 모니터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이런다고 해서 천우진이 순순히 포기하리란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런 내 생각은 들어맞았다.

마법의 해체를 포기한 천우진은 팀원과 함께 돌파를 감행했다.

얼핏 보기에는 무모해 보이는 돌파.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수가 숨겨져 있었다.

은가예의 기프트 중력을 이용해 마력을 내리 눌러 마법의 발동을 늦춘다.

그리고 다가오는 마법들은 천우진이 모조리 베어내며 내달린다.

일레인과 나머지 2명의 마법사도 함정을 찾는 것을 포기하곤, 천우진을 보조했다.

순식간에 3층의 절반을 나아간 생도들. 하지만 감행돌파였기에 그 리스크는 컸다.

10명이 넘어가는 팀원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팀원들을 제물로 바쳐 니콜라이와 격돌하는 천우진.

“미친!”

지켜보던 킨델이 나직한 욕설을 토해냈다.

그 사이 나는 마력석에 올려놓은 적마석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준비하는 게 있었으니까.

‘다 됐네.’

적마석에서 미약한 검은 빛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를 본 내가 미소 짓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고 제한 시간이 5분 남은 시점, 4층의 문이 열어 젖혀지며 생도들이 우르르 들어섰다.

천우진, 일레인, 은가예, 오진혁, 김하윤, 이순철.

6명이 남은 생도들은 격전을 치르고 왔는지,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그리고, 4층의 정경을 본 그들은 이내 황당한 표정이 되어야만 했다.

“······뭐야?”

은가예가 모니터 테이블에 놓인 다 먹은 음식들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서 나는 느긋하게 보온병을 홀짝였다.

이를 본 은가예가 눈살을 찌푸리며 뭐라고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삐이─ 삐이─ 삐이─ 삐이─

“?”

무언가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들과 결계룸 사이로 푸른막이 형성되었다.

그건 일반적인 수업에 쓰이는 결계가 아니었다.

천우진이 미간을 좁혔다.

“음, 이거 설마······”

“이, 이거 보안시스템 아니야?”

“어, 맞는데.”

내 태연한 대답에 생도들이 얼이 나간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보안시스템.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모든 건물에는 마인의 침입을 대비한 보안기제가 존재한다.

나는 적마석의 마기를 이용해 보안시스템을 건드렸고, 그게 지금의 푸른 막이었다.

“적마석 올려놓으니까 발동하더라고.”

내 뻔뻔한 태도에 은가예가 황당함, 어이없음, 기가 참 등, 오만 가지 감정이 함축된 표정을 짓더니 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한세연. 저거 뭐라고 좀 해봐, 쟤 지금 보안기제 건들였잖아.”

“응?”

여전히 손풍기를 가지고 놀던 한세연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괜찮지 않을까?”

그러곤 다시 빙긋 웃으면서 이해솔에게 손풍기를 쏴준다.

“······.”

“······.”

할 말을 잃은 생도들이 입을 다물었다. 오직 킨델만이 가시방석이 되어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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