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90화 (91/226)

§ 90화

기말시험의 서바이벌은 상위 20명이 남거나, 3일 후 오전 12시가 되면 끝이 난다.

동기생을 잡으면 기본 1점이 주어지고, 보다 많은 포인트를 가진 동기생을 잡으면 그 포인트는 모두 잡은 생도의 몫이 된다.

물론, 마수를 잡아도 포인트는 올라간다. 다만, 마수를 잡아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1개체당 0.5포인트에 불과했기에 효율이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이 있는 태백산맥은 초인협회에서 관리한 탓에 마수의 숫자가 무척이나 적었던 것이다.

반면 생도의 수는 50명씩이나 되었기에 마수를 보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가장 포인트를 쉽게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은 동기를 사냥하는 것.

다만 이 경우는 자신도 사냥당할 수 있기에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레귤러’가 있었다.

바로 한세연.

마수지체인 한세연은 임의적으로 마수를 끌어들일 수 있는 특수능력자였다.

적은 마수나마 긁어모아서 전멸 시키면 포인트를 마음대로 벌어 들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수를 끌어모으지 않았다. 되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생도들의 사냥에 나섰다.

이유는 정말이지, 너무도 단순했다.

“그 편이 더 재미있잖아.”

“······.”

잊고 있었는데, 얘는 자극적인 스릴을 즐긴다.

마냥 마수를 모아 놓고, 사냥을 해버리는 건 시시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생도를 사냥한다는 건데, 이게 또 보고 있으면 혀가 내둘러진다.

총을 개조라도 했는지 사정거리가 무지하게 길어서 멀리 있는 생도를 말 그대로 냅다 저격을 해버리는데, 이게 눈치 채지 못하면 그냥 그 자리에서 포인트를 상납해야 했다. 심지어 시력까지 좋아서 한 발을 안 빗나갔다.

그렇게 2시간도 되지 않아 15포인트를 벌어 들이는 한세연의 모습에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이거 반칙 아니야?’

저격이라니,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딱히 내가 뭐라 할 번지수가 아니긴 했다.

나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니까.

동기생, 심지어 시험의 제안자까지 이번 시험을 ‘서바이벌’로 인식한 모양이었지만, 이 시험의 핵심은 누가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하느냐다.

즉, 포인트란, ‘자원’이다.

그리고 현대전에서 자원을 빼앗는다는 것은 전제 자체부터가 야만적이고 잘못된 접근방식이었다.

빼앗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주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방식이 아닐까.

예를 들어 취침에 필요한 침구류를 독점한다거나, 기말고사 사흘 전부터 매점 매대를 싹 다 치워버려서 행여라도 있을지 모를 간식이나 손난로를 챙겨오는 생도들의 머릿수를 줄여 놓는다거나······

의식주를 독점하는 것만으로도 생도들은 어쩔 수 없이 내게 포인트를 주게 된다.

나는 절대 빼앗거나 달라한 적이 없다. 저쪽에서 알아서 주는 거였지.

리스폰 지점에 떡하니 앉은 상점주인이 비겁하게 독과점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물론, 점수에 집착하는 생도들은 그깟 의식주 따위 땅에서 자고, 안 먹고, 안 입는다는 자린고비 마인드를 지녔기 때문에, 내가 처음에 매점을 개점했을 때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앙큼하게 거래를 제안해오는 생도는 있었지만.

“저기요.”

“안 돼.”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안 된다는 거예요?”

들어보지도 않고, 바로 거절하는 내 모습에 아멜리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2포인트로 필요한 거 사고 나머지 포인트는 끝나고 돈으로 환산해주겠다는 이야기겠지.”

“어, 어떻게···”

생각을 정확하게 읽혔는지 아멜리아가 어깨를 움찔거린다.

뻔하지, 뭐.

이 정도 고찰쯤은 간단하다. 아멜리아가 보유한 포인트는 ‘3포인트.’

양심이 없지는 않기에 생존의 최소조건인 1포인트를 제외하고는 사용할 용의가 있을 것이지만, 그것 가지고는 메론빵 1개를 사기에도 벅차다. 야간 취침에 필요한 침낭과 손난로는 포기해야 하는 셈.

그러니 자신이 가장 자랑하는 무기인 돈을 이용해서 나를 매수하려는 속셈이다.

“솔직히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야.”

“그럼···”

“안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돈을 준다니, 너무나 들어주고 싶은 제안이긴 했으나, 안타깝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왜죠?”

“아카데미 규정상 포인트를 돈 주고 사는 건 교칙위반이기 때문이야.”

“······.”

할 말이 많은지 아멜리아가 병아리처럼 입을 꼬물거렸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곤 입을 다물었다.

그럴 수밖에.

돈거래는 교칙위반이더라도 의식주거래는 규정에 없거든.

이 교묘한 틈을 파고들 줄 알아야 이런 짓도 해 먹는 거다.

어딜 무임승차하려고.

“근데 다른 빵은 다 1포인트인데 왜 메론빵만 2포인트인 거죠?”

“메론빵은 메론이 들어갔으니까.”

“메론빵에 메론이 들어가요?”

“그럼. 들어가서 메론빵이지.”

“그랬었군요. 그래서 이름이······ 전혀 몰랐어요.”

처음 알았다는 듯 순진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멜리아.

···안 들어갔던가?

미안.

“으음, 3점······”

침낭을 사야하는데 포인트 부족에 망설이는 아멜리아를 보며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 마침 일꾼이 필요하긴 했지.’

그렇지 않아도 일손이 부족하던 차였다.

“내 일 하나만 도와주면 못 줄 것도 없는데.”

“정말요?”

“그럼.”

파격적인 제안에 무언가 미심쩍은 듯 망설이던 아멜리아는 궁핍한 의식주가 떠올랐는지 결국 내 제안을 수락했다.

“할게요!”

걸렸다.

“잘 생각했어. 우선 이거부터 매.”

테이블 아래서 앞치마와 위생모를 꺼내자 냉큼 받아 입는 아멜리아.

“다 입었으면 이것 좀 구워라.”

나는 아멜리아에게 내가 쥐고 있던 집게와 가위를 넘겼다.

“30초마다 뒤집고, 양면이 노릇한 브라운 색을 띠면 먹기 좋게 잘라서 옆에 종이 접시에 옮겨 담아. 요령은 중간을 먼저 자르고, 반씩 세 번 자르는 거야. 그다음 할 일은 다 하면 알려줄게.”

“네? 네, 네.”

내 상세한 설명에 아멜리아가 이를 정신없이 외웠다.

그 바람에 말끝에 ‘다음에 할 일’이 추가되었다는 것도 모른 채 버너의 후라이팬에 올라간 냉동 삼겹살을 열심히 구웠다.

물론 나는 부려 먹기만 하는 악덕업자가 아니다.

덥지 말라고 선풍기도 켜주고, 메론 빵과 홍차를 제공하는 등, 최적의 근무환경을 제공했다.

메론빵 1000원, 홍차티 300원, 침낭 대여 3000원.

일당 4300원으로 알바생을 고용했으니 남는 장사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 색깔 맞나요?”

“어, 잘 구웠네. 조금만 더 굽고 뒤집어.”

“네.”

자신이 일급 4300원에 부려 먹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아멜리아가 열심히 삼겹살을 구웠다.

옆에서는 한세연이 아공간 배낭에서 물자들을 쏙쏙 꺼내서 마당에 이쁘게 진열 중이다.

“김치도 좀 올리고.”

“네? 네.”

“여기 마늘.”

“알았어요.”

한식은 잘 모르는지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멜리아.

이를 간간이 도우면서 나는 새 버너를 꺼내와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스프를 풀었다.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김치와 마늘, 라면의 향기가 마당에 후욱 퍼져나간다.

“으음, 냄새가 좋네요.”

아멜리아가 냄새를 맡으며 쫑긋 선 귀를 파닥거렸다.

“8점짜리 리액션인가.”

“예?”

“아니야, 계속해.”

확실히 음식의 향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내가 불어넣은 ‘기력’의 영향이다.

냉동 삼겹살도 기력만 불어넣으면 냉장 못지않은 맛과 향을 자랑했다.

그 증거로 수돗물로 주린 배를 채우던 생도들의 시선이 하나, 둘 이쪽으로 돌아간다.

형광 메뉴판의 가격대가 부담스러웠는지, 생도들의 눈이 흔들렸다.

“으음, 먹고 싶긴 한데 포인트가······”

“수돗물 맛있다.”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맛있을 리 없는 수돗물에 억지로 맛까지 부여해가며 강제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생도들을 보며 내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징그러운 것들.

“어쩔 수 없나.”

정말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차례 공기를 훅 들이마신 내가 소리쳤다.

“다들 한 번 먹고 가세요! 무료 시식입니다!”

무료시식.

점심에 마트에 가서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배를 채우고 나올 수 있다는 시식코너.

그 단어의 여파는 굉장했다.

수돗물을 달다고 쩝쩝거리던 생도들이 며칠 굶긴 좀비마냥 눈이 시뻘게져서 몰려온다.

“야, 비켜! 내가 먼저 왔어!”

“수돗물 맛있다며, 가서 수돗물이나 먹어.”

나도 당황할 만큼의 극적인 태세 전환에 괜히 했나 잠시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1인 1회 시식이건만 무분별하게 이쑤시개를 들이미는 생도들을 보며 내가 관자놀 매만졌다.

먹어 놓고 입 싹 씻고 또 먹는 놈, 돈으로 팔아 달라는 놈, 물건 슬쩍하려는 놈, 포인트 흥정하는 놈······

탈락한 생도들까지 모여서 100명이 웅성거리니 정신이 없었다.

‘이거 사람이 더 필요하겠는데.’

그때 언제 왔는지, 팻말 앞에 나타난 은가예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니콜라이와 함께 물건을 정리하고 있던 한세연이 마침 잘되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응? 니콜라이? 쟤는 언제 또······

“가예야, 마침 잘 왔어.”

“뭐, 뭘?”

한세연이 웃으며 다가오자 뭔가 께름칙함을 느낀 은가예가 슬쩍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 도망가려는 낌새를 귀신같이 눈치챈 한세연에게 잡혀서 끌려왔다.

물론 은가예가 께름칙해 한 건 처음 뿐이었고, 내 조건을 듣고는 귀가 솔깃했는지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일감 주고 3포인트씩이나 되는 침낭에 음식까지 지원해주는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얘가 몸 쓰는 일은 잘해도, 정리에는 소질이 없던 것이다.

그것도 엄청.

“우, 우어엇!”

침낭을 쌓다가 교관이 부르자 쌓아 놓은 침낭을 와르르 무너트리곤 어쩔 줄 몰라서 벌써부터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게 또 뭐가 좋다는 건지, 엄마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세연.

“허둥대는 가예, 귀여워.”

“······.”

아무튼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지만 무료시식은 나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거 맛있는데?”

“후, 미쳤다.”

기력이 들어간 음식을 먹은 생도들이 조금씩 포인트를 토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 음식이라면 억지로 참아보는 생도도 있겠지만, '기력'이 들어가니까 효과가 확실히 기가 막혔다.

아멜리아 때도 그랬지만 기력은 맛만 좋은 게 아니라, 자연 회복도 도와주는 모양이었으니까.

물론, 성적관리를 위해 정말 딱 필요한 수준만 사가거나, 시식만 하고 입을 씻어버리는 생도가 대부분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건 상대평가고, 내 포인트는 벌써 상대적으로 높을 테니까···

어디 얼마나 모였는지 한 번 볼까?

삑.

[48점]

팔찌에 그람의 마력을 집어넣자 포인트가 떴다.

“딱 2포인트만 더 채우고 싶은데 아쉽네.”

역시, 아멜리아한테 메론빵을 공짜로 준 게 실수였나.

“그, 그렇게 많이 모아 놓으면 건물 나갈 때 위험한 거 아니에요?”

“왜 나가?”

건물 이용 시간이 끝나는 오후 9시가 머지 않은 현재, 생도들은 하나 둘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몇몇은 나를 다구리라도 놓으려는 지 입구에서 대기하는 이들도 보였다.

물론, 나는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왜? 10포인트 내고 그냥 박히면 되는데···

“아······”

그제야, 교관이 했던 말이 떠오른 아멜리아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정말 건물에서 자지 못하냐는 한 생도의 질문에 교관이 우스갯소리로 10포인트를 내면 잘 수 있게 해주겠다 한 소리가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정말 10포인트를 내는 생도가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해서 한 소리였겠지만, 설마 자기가 한 말을 무르지는 않겠지.

“다들 정리 나중에 하고 와. 라면이나 먹자.”

마침 라면 4봉지를 넣은 냄비가 좋은 향을 풍기며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것을 테이블에 내려놓자 아멜리아가 햇반과 종이접시, 1회용 나무젓가락을 들고와 셋팅을 시작했다. 확실히 습득이 빨라서 좋네.

이거 다 먹고 들어가야지.

***

한편, 태백산맥의 정상.

“····진짜였어.”

생도들이 오가는 건물을 내려다보며 노아는 놀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낮에 본 광경을 떠올렸다.

마흔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들어서던 이해솔의 모습.

심지어 4시간이 넘도록 마흔에 가만히 앉아있던 모습은 이해솔이 정말로 영멸의 밤 유진의 후손이라는 뜻이 되었다.

“이건 비밀로 해야겠지?”

유진은 고아였지만, 그의 친족들을 색출해 멸한 것에는 초인협회의 원로원이 연관되어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단순히 유진과 같은 피를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자신의 친족들을 없앤 것에 협회가 연루되어있다는 것을 이해솔이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곤란하게 됐네.”

뜻밖의 비밀을 알아버린 노아의 입가로 씁쓸한 웃음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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