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기말고사의 남은 3일은 아주 순조롭게 흘러갔다.
와중에 교관회의, 교관교체, 교관 호출 등 사소한 일이 여럿 있긴 했지만, 교칙을 어기지 않은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없는 일이었다.
‘10포인트 건물 이용제’를 즉흥적으로 제시했던 교관이 책임을 지고 교체되는 바람에 아쉽게도 건물에서의 숙면을 취한 건 첫날의 하루뿐이었고 다음날 숙박 포인트를 지불하기 위해 교관실을 찾았을 때 나를 반긴 건 교체교관 김주혁이었다.
‘후후, 아쉽지만 이제 건물 이용은 불가합니다. 이해솔군. 곧 9시군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재수없는 소리를 지껄이던 게 지금 다시 떠올려도 아니꼽긴 했지만,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건물 밖으로만 내보내면 내가 생도들의 표적이 되어 포인트를 탈탈 털리리라 생각한 모양인데, 독과점을 할 때부터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리란 건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매점을 연 것이기도 하다.
매점은 어디까지나 포인트를 확보하기 위한 1차적인 목표.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포인트란 자원이고 화폐다. 승리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생도들의 습격을 대비한 나는 포인트를 무기로 확실한 용병을 고용해놓았다.
“아멜리아, 주변 상황은?”
“9시 방향에 2명, 6시방향에 1명 있어요. 아, 지금 1시방향에서 1명이 더 추가됐네요. 절 따라오세요.”
캐시 아이템처럼 생도들의 위치를 스캔한 아멜리아가 길을 잡는다.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는 게 너무도 믿음직스럽다.
‘역시 가성비 끝판왕.’
현실주의자인 아멜리아는 본인이 지닌 ‘3점’이란 포인트로는 남은 이틀 동안 순위권에도 들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닫곤, 내가 제시한 포인트 ‘8점짜리’ 용병 제안을 수락했다.
─좋아요. 가장 가까이서 당신을 노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없죠.
1등인 내 곁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겠다는 악역같은 대사도 잊지 않았다.
참고로 아멜리아의 숨겨진 취미는 웹툰, 웹소설, 만화책 읽기다.
본인은 잘 숨기고 있다 여기는데, 말투에서 종종 묻어 나온다는 걸 자각하지 못해서 듣는 내가 가끔 민망해질 때가 있다.
아무튼, 마력을 탐지하는 아멜리아에 저격이 가능한 한세연을 데리고 다니니 최고의 조합이 완성되었다.
“3시 방향 나무 뒤에요.”
타앙─!
아멜리아가 위치를 알려주면, 한세연이 바로 쏴버린다.
생도들이 주의 깊게 마력을 숨겼다면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았겠지만, 아멜리아의 마력탐지 능력이나, 범위가 그들의 예상을 벗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 두 사람에게 접촉한 내가 기척 차단을 펼치고 있었기에 우리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해서 벌어진 상황이기도 했다.
이는 사전에 이렇게 되리란 걸 예상한 내가 짠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한세연의 사격 솜씨는 정말 뜻밖이었다.
‘얘가 눈이 이렇게 좋았던가?’
아멜리아가 적의 위치를 알려준다 쳐도 그걸 찾아내는 건 별개의 영역이다.
좀 전에 말한 3시 방향 나무 뒤를 나도 보았지만, 거리가 멀었기에 상대 생도는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한세연은 아멜리아가 말하는 족족 마치 절대시야라도 가진 양, 잘만 찾아내고 있던 것이다. 난 암만 봐도 모르겠는데······
아나스타샤를 얻고나서 나름 시야에 자신 있어진 나보다도 시력이 훨씬 좋은듯했다.
조금 위화감이 들긴 했지만, 한세연의 시력이 좋다는 건 같은 편인 나로서도 분명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 꺼림칙함은 왜일까.
마치 신변을 위협받는 듯한······
그렇게 내가 이유 모를 꺼림칙함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12시!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어, 엄청···”
파바바방!
“···빨라요!”
놀란 아멜리아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한세연의 총이 불을 뿜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침착하게 시험 팔찌를 이용해 남은 생존 생도 수를 확인했다.
[22]
“아멜리아, 아까 9시 방면에 두 명 있다고 했지?”
“네? 네. 가까워요.”
정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아멜리아가 고개만 끄덕였다.
휘이이익!
나는 그람의 비도 일곱 자루를 9시 방면으로 날렸다.
물론, 내가 정면이 아닌 9시 방향의 생도 둘을 노린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정면에서 오는 생도가 누군지 대강 짐작이 갔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 녀석이라면 여기서는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앞보단, 왼쪽의 두 놈.’
현재 내 수준은 이터니티 1학년 생도 ‘중위권’수준이다.
파랑이를 이용하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이는 숨겨진 패니, 예외로 치고 말이다.
그리고 평범한 ‘중위권’ 수준인 내가 생도 두 명을 상대로 이기는 건 어렵다.
하지만 이는 ‘정면대결’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아나스타샤를 이용해 변수를 창출하거나, 기습을 한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기력’이 담긴 비도가 불시에 시야의 사각에서 날아든다면 1학년생도 수준에서 이를 눈치채기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게, ‘마력’을 의식하는데 정신을 할애하는 게 초인이란 족속이기에, 그 외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암만 그람이 마력을 담은 보구라곤 하나, 마력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에야 알아차리기는 어려웠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비도를 날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도 아멜리아가 경고한 생도의 모습이 보여왔다.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쇄도하는 마력탄을 피하거나 검으로 튕겨내는 미친 움직임을 선보이는 생도.
천우진이었다.
“그만해.”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한세연이 총격을 멈추었다.
사박사박.
달리는 것을 그만둔 천우진이 풀을 밟으며 우리 앞에 다가섰다.
이내 팔찌로 천우진의 포인트를 확인한 내가 혀를 내둘렀다.
‘많이도 모았네.’
천우진의 포인트는 무려 28점이었다.
정석적으로 포인트를 저렇게 모으려면 눈에 보이는 모든 생도들을 전부 사냥해야 가능할까 싶은 괴물 같은 숫자였다.
우리들을 둘러본 천우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드디어 만났네.”
“그러게.”
“보이지 않아서 찾느라 애를 먹었어.”
천우진은 정말 고생을 한 듯,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반응에 나는 내심 기가 막혔다.
‘이게 애만 먹을 일인가?’
한세연이 사격을 할 때를 제외한 우리의 기척은 내 기척차단으로 인해 숨겨져 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아멜리아의 탐지로 주위를 확인하면서 다녔기에, 발각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했었다.
그런데, 천우진은 한세연이 사격을 가할 때 발생하는 그 찰나의 기척을 감지한 것도 모자라, 아멜리아의 탐지마저 빗겨내고 우리에게 접근한 것이다.
‘중간고사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는데······’
이게 주인공인가.
나날이 성장하는 게 보면 볼수록 괴물 같은 놈이었다.
뭐, 천우진의 성장이야 나로서는 좋기야 했지만, 이렇게 적으로 만나자니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제 탐지를 빗겨낸 거죠? 그게 가능한 건 이 사람 뿐이라고 여겼는데요.”
나요? 나야 당연히······
“해솔이랑 비교할 만한 것은 못 돼. 나야 그저 흉내 내는 것 뿐이지. 마력을 죽이고 다니는 습관을 길렀거든. 효과가 있었나 보네.”
천우진이 과찬이라며 고개를 저으면서도 효과가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는지 눈을 빛냈다. 뭔가 굉장한 착각들이 오가는 듯한 대화에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될 것 같았기에 내가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그 점수는 어떻게 올린 거냐. 마수 잡아서?”
“맞아. 마수 6마리, 생도 24명.”
대답을 들으며 나는 슬쩍 팔찌의 생존자수를 체크했다.
[21]
아까보다 한 명 줄었다.
사각에서 날아든 그람의 비도에 반응하지 못한 생도 한 명의 실드가 깨진 것이다.
그때, 천우진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말했다.
“기척과 마력을 숨기는 거. 그게 해솔이 네 기프트인가 보지?”
“···뭐, 비슷해.”
둘 다 틀렸으나,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대화를 통해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생각이었다.
현재 시각은 오전 10시. 수업 종료까지는 아직 2시간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타파하려면 천우진을 쓰러트리거나, 남은 1명의 생도를 잡는 수밖에는 없었다.
생존자수가 20명이 되면 시간에 관계없이 시험은 종료되니까.
그리고, 천우진을 잡는 것은 여러모로 난관이었다.
전사계열 생도가 있다면 모를까, 원거리 계열만 셋인 우리를 상대로 거리를 좁힌 천우진은 상성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거리가 좁혀지면 유리한 건 당연히 검사인 천우진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진다는 건 아니지만···’
도중에 내가 먼저 탈락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베스트는 내 비도가 남은 1명의 생도를 잡을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
다행히 천우진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럼 시작할까.”
“물이나 마셔라. 뛰어서 숨 차 보이는데.”
내가 아공간 가방에서 꺼낸 생수병을 휙 던졌다.
“마침 목말랐는데 고맙다.”
호의를 거절할 줄 모르는 천우진이 밝게 웃으며 생수를 따서 들이켰다. 그러곤 내렸던 검을 다시 들어 올린다.
거참, 빠르게도 마시네.
혀를 찬 내가 물었다.
“우린 셋인데 괜찮겠냐?”
“나야 문제없는데.”
너야 문제없겠지.
내가 문제 있다.
그때 때마침 그람이 목표를 찾았다.
내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시작하자.”
“비도는?”
내게서 그람이 보이지를 않자 천우진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다.
“신경 안 써도 돼.”
내가 기력을 일으켰다.
아멜리아의 손에 붉고 푸르고 노란, 세 가지 마법진이 겹치더니, 뇌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한세연의 총에서는···
‘음.’
보기에도 섬뜩한 주먹만한 마력이 총구에 뭉쳐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저것도 마력탄이라 불러야 하나? 이젠 마력탄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머리를 비우고 시선을 돌리자, 천우진이 검을 상단세로 들어 올렸다.
“그럼, 간다.”
콰아아앙!
녀석이 미처 땅을 박차기도 전에 한세연의 샷건이 반 박자 먼저 녀석을 박살냈다. 흠칫 놀란 아멜리아가 반사적으로 뇌전을 날린다.
······이게 그, 선빵이라는 건가?
나는 결과를 보지도 않고 우리의 앞에 기력을 장막처럼 펼쳤다.
그리고.
휘이이익──
교복이 넝마가 되고, 전신이 검게 그을린 천우진이 마력의 해일을 뚫고 날아들었다.
푸르게 발하는 녀석의 검이 중앙의 나를 노리고 찔러 들어간다.
하지만, 기력의 장막에 막혀 움직임이 느려지고, 마력탄과 뇌전이 연이어 놈을 때렸다.
퍼엉! 파지직!
전신에 마력을 두른 천우진은 검을 사용하지 않고, 몸으로 공격을 버텨냈다. 그리고.
부우욱──
천이 찢기는 환청 같은 소리와 함께 기력의 장막이 찢겨져 나갔다.
기력을 찢은 천우진의 검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를 노리고 번개처럼 쇄도해 들었다.
예리한 푸른 검첨이 눈에 아릿하게 박혀 들었다.
신체 가속으로도 피할 수 없는 속도.
‘아나스타샤.’
가슴의 인장에서 튀어나온 아나스타샤가 검첨을 가로막는다.
하얗게 빛나는 아나스타샤의 마력이 검첨과 부딪히려던 그 순간.
삐이이이이익──
천우진의 검이, 아나스타샤의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손목의 팔찌가 소리를 토해냈다.
[20].
팔찌의 생존자수가, ‘20명’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