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94화 (95/226)

§ 94화

지하의 넓은 방.

네모난 테이블에는 나와 아렌, 맞은편으로 이본느와 그녀의 양옆으로 수뇌부로 보이는 두 남녀가 자리했다.

“해솔님이라고요. 아렌으로부터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본느가 이지적인 붉은 눈으로 나와 아렌을 차분히 쳐다보며 말했다.

“마화의 긴급워프는 위급상황에서만 발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오시게 된 건지 묻고 싶네요.”

“초인협회에 포위당한 탓에 정신없이 아렌에게 이끌려 전이되고 보니 이곳이더군요.”

내 대답에 아렌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본느님, 제가 데리고 온 게 아닙니다, 이 녀석이 멋대로······”

“아렌, 저희를 도와주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말을 가려주세요.”

“죄, 죄송합니다.”

이본느의 차분한 말 한마디에 아렌이 꼬리를 만 강아지처럼 깨갱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내가 픽 웃자, 아렌의 인상이 구겨졌음은 물론이다.

이런 내 태평함이 거슬렸는지, 맞은편의 두 남녀가 경계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이본느의 앞이라 그런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수장이라는 건가.’

나는 새삼 이본느를 바라보았다.

겉으로 봐서는 차분한 인상을 가진 이지적인 미녀로밖에 보이질 않았으나, 이본느는 수하들로부터의 인망이 상당히 두터워 보였다.

게오르그에게 일격을 먹일 정도의 강자인 아렌이 군말 없이 따를 정도였으니까.

‘화염의 마녀 이본느.’

오거스트의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고강한 정신력의 소유주이자 녀석의 손에서 빠져나온 데몬스폰들을 규합해 언데몬이란 단체를 만든 인물.

“그렇군요, 그래서 이곳에······”

그녀는 나와 아렌에게서 자초지종을 자세히 전해 듣고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불가피하게 오시게 된 것은 알겠으나, 죄송하게도 해솔님이 당분간 이곳에서 나가시는 건 어렵겠습니다.”

“보안때문인가요.”

“예, 거점의 정보가 외부에 새어 나가면 위험하니까요.”

초인과 마인, 양측에 추적을 당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언데몬이었다.

마인측에서는 눈엣가시같은 배신자들이었고, 초인측에서는 마인이면 무조건 배척하고 보는 주의였으니, 조금이라도 외부에 새어 나간 거점은 버리는 수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러니 이곳의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끔, 나를 다시 워프를 통해 되돌려보내겠다는 이야기인데, 워프진도 은밀히 운용되고 있는 만큼, 긴급 워프진을 다시 가동하려면 최소 3일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말에 지나지 않았다.

이본느는 이런 자질구레한 사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보였다.

“그래도 정 나가고 싶으시다면,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내보내 드릴 수 있으니, 언제든 편하신 대로 머물다 가셔도 됩니다.”

······이런 말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뭐든 내게 좋을 대로 맞춰주고 있는 분위기가 눈에 빤히 보였다.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이라면 워프에 딸려온 순간, 무조건 죽였겠지.’

보안은 언데몬 전체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였으니까.

그리고, 이본느가 그런 안위까지 포기해가면서 나에게 맞춰주는 이유야 뻔하다.

오거스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겠지.

그 전에.

“배고픈데, 밥부터 먹죠.”

“······.”

내 태평한 언동에 데몬스폰들의 표정이 일순 무너졌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던 이본느가 입가를 가리며 웃어 보였다.

“아하하, 예. 밥부터 먹고 하죠.”

***

이본느가 미식을 즐겨서 그런지 언데몬의 식사는 꽤나 질이 좋았다.

연어가 올라간 빵에, 파스타를 흡입하고, 후식으로 크림 트러플을 주문(?)했다.

“음, 맛있네요. 이거 하나만 더 주세요.”

“···예, 예.”

디저트를 가져온 여성이 얼이 나간 표정으로 트러플을 하나 더 구워왔다.

“납치당한 놈이 상전이네······”

아렌의 중얼거림을 무시하며, 나이프로 생크림을 푹 찍어 묻힌 트러플을 한입 크게 베어 물자니, 폭신함이 죽여준다.

‘이 맛이지.’

문득 주변이 조용해 돌아봤더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뭐, 구경났나.

피식 웃으면서 느긋하게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그사이에 물어볼 타이밍이 꽤나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본느는 오거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어지간히도 인내심이 강한 여자였다.

나 같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물어봐도 진즉에 물어봤을 텐데.

아렌이나 두 남녀조차 입이 간지러워서 참지 못하는 표정들이 눈에 선했다.

이본느는 그때까지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다가, 내가 식사를 모두 마치고 커피마저 마치고 나서야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해솔님, 나가시기 전에 한 가지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예, 말하시죠.”

“해솔님은 저희가 오거스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계시다 하더군요.”

“예, 있긴 한데···”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어렵습니다. 이게 제 생명력을 써야 하는 작업이라.”

“······.”

이본느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뭐, 한두 명쯤은 제가 몇 달 요양하는 것쯤으로 괜찮겠지만 여러 명을 치료하면, 알다시피 제 수명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군요.”

“예.”

내가 ‘예’만하고 가만히 있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미간을 문지르던 아렌이나, 두 남녀마저도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뻐끔 하고 있을 뿐.

“···방법을 전수해주실 수는 없나요?”

“예, 아쉽게도 선천적인 능력이라 타인에게 전수는 불가능합니다.”

“···아.”

누가 내뱉었는지 모를 탄식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쉽게 부탁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내가 볼을 긁적였다.

“뭐, 일정 시간 동안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쯤은 힘들지만, 어떻게 가능할 것도 같네요.”

“···그것만으로도 저희로서는 감사드립니다.”

그나마 희망을 찾았기 때문인지, 네 사람의 표정은 나름 밝아졌다.

“그럼, 실례지만 확인이 가능하겠습니까?”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실험대가 되겠다는 양, 일어났다.

“물론이지요.”

나는 가벼이 웃으며 기력을 움직였다.

***

이터니티의 제1 도서관.

사각··· 사각··· 뚜뚝!

정갈한 샤프 소리가 일순, 뚝 부러졌다.

“세, 세연아?”

한세연이 쥔 샤프가, ‘심’이 아닌, ‘샤프’가 반으로 분질러지자, 문제를 물어보던 김하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3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터운 교본서를 뚫고 분질러진 샤프가 책상에 박혀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을 저지른 한세연에게서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평소에 나긋이 웃는 얼굴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소름 끼치는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다만, 그 표정은 아주 잠시뿐이었고, 한세연이 다시금 평소처럼 맑게 웃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어, 으, 응···”

그 무서운 표정의 변환에 김하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파들파들 떨었다.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 하윤아.”

“으, 으응.”

김하윤을 내버려 두고 한세연이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떠났다.

“내, 내 교본인데······”

울상이 된 김하윤만이 샤프와 책상과 일체형이 된 교본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

한편, 도서관을 나온 한세연의 얼굴에는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오후 5시.

이해솔의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돌연 이해솔의 종적이 끊어진 것이다.

3시에는 자신에게 반지를 주었고, 4시에는 블랙마켓에 있었는데, 5시가 되니 천리안이 발동하지를 않았다.

마치, 무언가 ‘벽’에 막힌 것처럼, 천리안의 탐색은 이해솔을 찾지 못하고, 그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건물만을 비추었다.

터질 듯한 불안과 걱정, 원인 모를 분노에 사고가 제대로 이어지지를 않았다.

한세연은 그대로 앞뒤 가리지 않고 천리안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멈춰 섰다. 그녀의 앞을 천우진이 가로막고 있었다.

“비켜.”

“역시 들었나 보구나.”

한세연은 말없이 총을 들어 올렸다.

심상치 않은 마력의 유동에 천우진의 표정이 설핏 굳어졌다.

“4시 20분경에 해솔이가 블랙마켓에서 마인에게 납치당했어.”

“!”

‘납치’라는 말에 한세연의 눈이 커졌다.

“해솔이가 생도복을 입고 있어서 협회에서 아카데미에 신원확인을 요청했다나 봐. 지금 교관님들이 긴급 교직원회의에 들어갔어. 생도들에겐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 하고.”

한세연의 전신에 거대한 마력이 맺혀갔다.

“물론, 나도 따르지 않을 생각이야.”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마기가 심연의 반지에 박힌 적마석을 시꺼멓게 물들여가기 시작했다.

“진정하라곤 안 해. 다 같이 찾아보자.”

“······.”

순간, 한세연의 기운이 찬찬히 가라앉았다. 검게 물들었던 반지가 제 색을 되찾았다.

‘다 같이’란 말에 그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천우진의 말에 따르면 천리안이 비춘 ‘대성당’은 마인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오후 4시경에 이해솔과 함께 블랙마켓에 있던 인물은 게오르그의 토벌전 때 보았던 ‘아렌’이었다.

‘언데몬.’

그렇다면 대성당은 언데몬의 거점이었다.

거기서 그녀 혼자서 이해솔을 데리고 나오는 건 어려웠다.

소동을 일으켜서 주위를 끌어 줄 ‘말’이 필요함을 한세연은 깨달았다.

그리고 눈앞의 천우진과 다른 생도들이 그 ‘말’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후우,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들었나 보네.”

한세연의 마력이 완전히 가라앉자 천우진은 몸을 떨었다. 그리고 내심 놀랐다.

‘이건 대체······’

그조차 긴장하게 만드는 마력이라니.

곽진호교관과의 대전에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스산함이었다. 그보다 오히려 노아에게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에, 천우진은 내심 고개를 털어 제 생각을 지워냈다.

일개 1학년 생도에게서 노아를 떠올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만큼 자신이 긴장했다는 뜻이리라.

‘후우, 만만치 않네.’

아멜리아가 한세연이 혼자 움직일지도 모른다며 데리고 와달라는 부탁에 도서관으로 오긴 했으나, 설마 이 정도 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태백산의 서바이벌에서 대치했을 때조차 천우진은 한세연에게 이러한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깨달았다. 한세연은 자신의 아래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쯤은 자신의 강함에 살짝 자신이 들었었는데, 자만이었던 듯했다.

역시, 좀 더 노력해야했다.

“우선, 교실로 가자. 반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

한세연을 데리고 교실로 가면서도 천우진은 자신이 조금 전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필기시험 준비로 텅 빈 1반의 교실에는 네 명의 생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녀석에게는 도움받은 게 꽤 있다.”

팔짱을 낀 니콜라이가 말했다.

수련의 탑에서도, 이번 태백산의 기말고사때도 그는 이해솔에게 포인트를 받는 등, 여러 번의 도움을 받았다.

니콜라이는 도움을 받으면 받은 만큼 돌려 줘야 마음이 편해지는 생도였다.

이해솔이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알린 것도 니콜라이였다.

“협회에서 이해솔의 스마트폰을 위치추적 하고 있지만, 위치가 잡히지 않고 있어.”

니콜라이의 말에 아멜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은 결계라는 건가요.”

“그런 것 같다. 다만, 워프로 사라졌기에 아예 신호가 끊어진 곳조차 파악할 수가 없어.”

“저주의 술로 느리지만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지도 몰라.”

곰인형을 내려놓은 일레인이 이해솔의 책상으로 다가가 그의 물품을 만지려 할 때였다.

“그럴 필요 없어.”

드르륵. 교실의 앞문이 열리더니 한세연이 들어섰다.

일레인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길에, 이해솔의 책상으로 뻗었던 손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러자, 한세연이 시선을 거뒀다.

“그럴 필요가 없다니?”

은가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해솔이가 어디 있는지는 내가 알아.”

“뭐? 그럼 당장······”

은가예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

그러곤, 몸을 돌려 복도에 난 창문의 난간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

뒷문을 통해 아카데미를 몰래 빠져나온 한세연은 천리안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렸다.

“헉, 헉, 조금만 천천히······”

뒤쳐진 일레인과 아멜리아는 결국 쫓아가는 걸 포기하고, gps를 켜서 차량을 통해 따라가기로 했고, 천우진, 은가예, 니콜라이만이 한세연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 언데몬의 거점은 아카데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존재했다.

30분가량을 쉬지 않고 줄곧 내달리던 한세연이 멈추어선 건 근교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어느 대성당의 길목 앞에서였다.

뒤이어 그녀의 뒤로 세단이 멈춰서고, 아멜리아와 일레인이 내렸다.

“여기인가요?”

“그런 것 같아.”

천우진의 말에 니콜라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표정을 굳혔다.

울타리가 쳐진 대성당의 길목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길목의 양옆을 기다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낮임에도 우중충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끼리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협회에 연락하지.”

“그러면 늦어. 마인의 거점을 소탕하려면 협회에서도 준비를 해야 할 테니까. 적어도 하루는 걸리겠지. 그때까지 해솔이가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다. 우리끼리 해야 해.”

고개를 저은 천우진이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이곳이 맞는 것 같아요. 기척을 차단하는 결계가 쳐져 있어요.”

“직접 들어가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네.”

“맞아요.”

아멜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지결계가 쳐져 있다면 몰래 들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정해졌네.”

천우진이 앞장서서 정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일행이 따랐다.

하지만 굳게 닫혀 있을 줄만 알았던 정문은 천우진이 밀자 끼이익, 열렸다.

“뭐야, 문도 안 잠궈 놨네.”

일행은 의아해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길목을 어느 정도 걸어들어갔을 때였다.

‘결계’를 넘는 듯한 감각과 함께, 공기가 바뀌었다.

그리고, 일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찔렀고, 길목마다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뭐냐, 너희는.”

막, 한 사람의 가슴에 손을 박아넣던 남성이 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남성의 눈이 흰자위까지 시뻘겋게 물들어있는 걸 확인한 일행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인이군.”

천우진이 침음을 흘리자, 마인이 큭큭 웃었다.

“뭐하는 애송이들인진 몰라도 잘못왔구나.”

“저놈들은 뭐냐 이오즐.”

“나도 모른다.”

마인의 뒤로 동료로 보이는 두 남녀가 다가왔다. 그들도 처음의 마인 같이 온몸이 피로 적셔져 있었다.

“흐음~ 맛있게 생긴 녀석들이네.”

마력의 냄새를 맡듯, 코를 킁킁거리던 여성 마인이 돌연 눈을 반짝였다.

“오, 뭐야! 순수마력까지 있잖아?”

시선이 마주친 아멜리아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고.

파밧!

천우진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스아아악─

푸른 검기가 공기를 가르며, 여성마인의 목이 순식간에 떨어졌다.

“······뭐?!”

동료가 한순간에 죽어나가는 광경에 경악한 남자가 내리쳐오는 검을 향해 마기를 두른 팔을 반사적으로 내밀었다.

스악─

마기째로 베여버리는 마인의 왼팔.

“크아아악!”

마인의 비명이 울리며, 대성당의 길목에 남아있던 마인들의 이목이 일행에게 집중되었다.

“도망치긴 글렀군.”

천우진의 돌발행동에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넘긴 니콜라이가 버디슈를 들어 올렸다.

슈슈슈슈슉─

천우진의 뒤를 노리던 마인이 폭풍 같은 버디슈의 쇄도에 마기를 두른 채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윽고, 검이 얽히고 뇌전이 내달리며 시작되는 길목의 교전.

“······.”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세연이 조용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길목의 옆, 어둠이 자리한 삼림을 거닐었다.

일보를 내디딜 때마다, 마치 땅거미가 늘어나듯 몸이 앞으로 쭉쭉 나아간다.

순식간에 삼림을 지나친 그녀가 대성당의 뒷문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그녀보다 앞서 들어선 불청객들이 존재했다.

어둠 속에서 마기를 풀풀 휘날리며 서 있는 두 명의 마인.

이미 한 차례 교전을 치렀는지, 피로 물든 놈들을 보던 한세연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심연의 반지가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을 흩뿌리자 마인 하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대소했다.

“푸핫! 뭐냐, 그 싸구려 반지는? 적마석?”

“······.”

한세연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어졌다.

순간, 어두웠던 공간이 한층 더 어두워진 기분이 들었다. 적마석에 불길한 어둠이 찰랑이며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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