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95화 (96/226)

§ 95화

심연의 반지를 본 중격 마인, 김도현이 별걸 다 본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음?”

“왜 그래?”

“뭔가 어두워진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며 동료 마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원래 어두운데 무슨······”

인상을 찡그리며 주위를 확인하던 김도현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다. 동료의 말처럼 정말로 주변이 어두워진 것이다.

‘아니, 이건 어두워진 정도가 아니라······’

사방이 온통 ‘새까맸다’.

불길함에 휩싸인 김도현이 앞을 돌아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뭐······”

요사스러운 빛을 흩뿌리는 적마석. 그것에서 꾸물거리며 흘러나온 어둠이 공간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럼 이게 다······’

불현듯 깨달은 소름끼치는 진실에 김도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떨리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해 본 그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그가 밟고 선 바닥이며, 벽의 어둠을 자세히 관찰하니, ‘꿈틀’거리고 있던 것이다.

“···내 반지가 뭐라고?”

“씨, 씨발!”

전율스러운 공포에 말을 버벅거린 김도현이 발작적으로 뛰었다.

한세연의 반대 방향.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은 문이 또렷이 보여왔다.

화색이 돋은 얼굴로 문고리를 잡아가던 김도현이 돌연 버럭 소리쳤다.

“안 돼!”

문이 어둠에 스멀스멀 잡아먹히고 있었다. 김도현이 발작적으로 몸을 던지며 손끝을 뻗었다. 그리고, 문고리는 아슬아슬하게 어둠에 삼켜졌다.

“이, 이런!”

허망한 표정으로 사라진 문고리의 어둠을 바라보던 김도현의 귓가로 공포에 젖은 동료의 비명이 들렸다.

─끄으아악!

김도현은 차마 움직이지 않는 몸을 돌려 억지로 뒤를 바라보았다.

반지에서 꾸물거리며 흘러나온 어둠이 마인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가 잔뜩 굳은 눈으로 반지를 바라보았다.

‘저, 저게 대체 무슨 반지냐!’

반지의 적마석이 마인의 마기를 남김없이 흡수하며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싸구려 폐품에 불과한 적마석 따위가 공포스러운 위력을 내는 불가해한 현상에 김도현이 굳어져 있는 사이, 마인은 어둠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윽고 한세연의 눈이 그를 향했다.

“으으······”

서늘한 눈길을 마주한 김도현의 턱이 덜덜 떨리며 이가 따닥따닥 부딪혔다.

거미줄에 잡힌 먹잇감처럼,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내, 내가 말을 잘못했다. 조, 좋은 반지다! 좋은 반지!”

“역시 그렇죠?”

다급하게 반지를 칭찬하자, 반지를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뿌듯하게 웃어 보이는 한세연의 모습에 김도현이 부르르 떨었다.

‘미친년이다.’

이내 반지를 쓰다듬던 한세연이 고개를 들었다.

적마석에서 스멀거리며 어둠이 흘러나오자 김도현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반지가 좋다고 했는데 왜 그러는 거냐!”

한세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싸구려라며.”

적마석의 마기가 김도현을 아래서부터 천천히 집어삼켰다.

─내가 잘못 말했다! 잘못··· 크아아아악!

***

······격전이 벌어지기 30분 전, 대성당의 지하 3층.

“오오, 정말 사라졌습니다!”

언데몬의 마인, 백건우는 오거스트와의 연결이 사라진 느낌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8년 간이나 그를 옭아매고 있던 저주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시적인 현상이니 너무 좋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나절 뒤면 다시 오거스트의 지배가 이어질 겁니다.”

“아니요! 이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백건우가 나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단 백건우만이 아니었다.

언데몬의 모두가 마치 오거스트의 지배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마냥, 환희에 찬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맛보기로 살짝 계약의 끈을 느슨하게 해줬을 뿐인데, 예상보다 너무 극적인 반응에 내가 살짝 아이러니해 하고 있자니 이본느가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이해해주세요. 아예 벗어나지 못한다 체념했던 저주로부터 잠깐이나마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다들 고무하는 겁니다. 물론 저도 그렇답니다.”

이본느가 나직하지만 밝게 웃어 보였다.

‘마인도 사람이라는 건가?’

마인은 초인의 마력을 갈망한다.

그것은 주체할 수 없는 생존본능으로 마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게 바로 마인이었다.

마력을 얻지 못하면 마기에 이성이 찬찬히 잡아먹히다가 마수와 다를 바 없는 괴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마기의 영향을 받는 마인은 인간과는 다른 감정 상태와 의식을 지닌다.

하지만 언데몬을 보자니 조금 다를지언정 분명한 인간이었다.

나로서는 좋은 소식이었다. 그만큼 빚을 지워두기 쉽다는 이야기였으니.

“해솔님, 이거 드세요!”

“이거 먼저 드세요!”

“엉, 고맙다.”

푹신한 쇼파에 누워있자니, 각각 포도그릇과 사과그릇을 들고 도도도- 달려온 쌍둥이 여자아이들이 내게 자기 음식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가져왔어.”

“하지만 내가 먼저 말했는 걸?”

내가 포도를 먹자, 사과를 가져온 아이가 아앗! 비명을 지른다.

그러든 말든, 나는 포도를 먹고 느긋하게 사과를 씹어 먹었다.

“어때요?”

“어때요?”

내 반응을 기대하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아이들의 모습에 내가 픽 웃었다.

“맛있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에헤헤 웃으며 좋아하는 쌍둥이는 각각 ‘리디아’와 ‘니엘’.

당연히 둘 모두 마인이었다.

심지어 언데몬에서도 마기로만 따지자면 아렌이나 이본느 다음가는 아이들이었다.

가끔 마기에 적성을 타고나는 아이들이 있는데, 리디아와 니엘이 그랬다.

오거스트의 지부에 붙잡혀있던 걸 이본느가 구해왔다는데, 원작에서 얘내 둘의 이미지는 글쎄······

‘최악이지.’

성정이 사악한 데다, 칠악급의 재능마저 지녀서 구제할 길이 없는 네임드 마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바로 리디아와 니엘이었다.

지금의 모습에서는 전혀 그 둘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순수해 보였지만.

아무튼, 오거스트가 언데몬의 본거지를 노리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쌍둥이를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게임에서는 강제회수 이벤트라, 리디아와 니엘은 악인으로 성장하는 게 확정된 캐릭터들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게임이 아닌 이터니티.

한세연 때처럼 스토리의 변곡이 얼마든지 가능한 세계였다.

하물며 나는 마음만 먹으면 오거스트의 지배를 얼마든지 끊어버릴 수 있었다.

‘그럼 막아야지.’

내버려 두면 칠악이 하나 더 생기는 꼴인데 그걸 보고 있을 수야 없지.

일단 지배를 느슨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끌려가는 건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쌍둥이 자매가 ‘지배’에 의해 자신들의 발로 오거스트에게 가버리는 게 원작의 흐름이었으니까.

아까부터 내게 식고문(?)을 해대는 쌍둥이를 내보내는 이본느를 보며 내가 말했다.

“이본느님, 제 외견 좀 마법으로 바꿔주실 수 있습니까?”

이본느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외견을요?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기분 전환 좀 해보고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내 얼굴에 손을 이리저리 휘젓던 이본느가 이윽고 작게 미소 지었다.

“되었습니다.”

벽면의 거울을 보자 그곳에는 웬 처음 보는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어떤 외형을 원하시는지 말씀해주시지 않아, 제 취향대로 만져보았는데 괜찮으실까요?”

이게 이본느의 취향이구나.

애초에 물어보지도 않고, 외형을 만진 것을 보면 본인의 취향대로 인형놀이를 해보고 싶었나 보다.

“좋네요.”

괜찮기도 했지만, 솔직히 외양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거스트에게서 얼굴을 숨길 수 있느냐 뿐이었으니까.

내가 데몬스폰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오거스트가 알게 된다면 그것만큼 귀찮은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마인들에게 부여된 오거스트의 계약을 약화시켜 주고 있을 때였다.

위이이이잉─

불길한 사이렌 소리가 지하를 울렸다.

그러자 웃고 떠들며 휴식을 취하던 마인들 중 몇 명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왔네.’

쇼파에서 일어난 나는 검은 로브를 걸치는 이본느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죠?”

“누군가 외부에 쳐진 결계를 건드린 듯합니다. 드물지만 가끔 이런 일이 있습니다.”

이본느는 그리 큰 문제라 여기지 않고 있었으나, 지금 상황은 단순히 결계를 건드린 정도가 아니었다.

‘오거스트의 습격.’

언데몬의 내부에는 오거스트가 잠입시킨 첩자들이 존재했고, 그로 인해 거점이 발각되는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황을 알리러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마인들.

“같이 가죠.”

나는 이본느와 함께 지하를 올라갔다.

***

불시에 이루어진 오거스트의 습격은 파격적이었다.

지하를 올라왔을 때는 이미 녀석들이 대성당의 입구까지 몰려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툼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듯 이지를 상실한 인형처럼 수십의 마인들이 성당의 길목에 도열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외부 경계를 나섰던 언데몬의 요원들도 포함되어있었다.

“이건······”

이본느가 눈을 치떴을 때다.

도열해 있던 수십의 마인들이 일제히 기계처럼 끼릭-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이본느.”

“오랜만이야. 이본느!”

“오랜만구나. 이본느.”

“이야, 오랜만에 보네. 이본느.”

수십 명의 입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제각각의 목소리와 말투, 동작은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함이 일 정도로 기괴했다.

“···파우트입니다.”

이본느가 잔뜩 굳어진 안색으로 말했다.

오거스트의 데몬스폰 중에는 네 명의 간부가 존재한다.

놈들은 오거스트의 지배를 나눠 받아 데몬스폰을 부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은 오거스트의 마인 중 한 명 ‘파우트’였다.

《어라?》

대충, 의아한 표현을 나타낸 파우트가 놀랍다는 눈으로 이본느와, 그 뒤에 도열한 언데몬의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왜 멀쩡하지?》

현재, 파우트는 ‘지배’를 발동하고 있었다.

내 눈에 비친 마인들의 ‘계약의 끈’은 시꺼멓게 물들어 있었다.

파우트가 마인들에게 어떠한 사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념은 마인들에게 닿지 못하고 도중에 끊어졌다. 내가 끈의 중간에 묻혀놓은 ‘기력’에 의해서.

《흐음, 이거 진짜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머리를 긁적이는 놈들을 나는 유심히 관찰했다.

계약의 끈이 이어진 데몬스폰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끈의 강도가 약한 것과, 강하게 맺어져 있는 것들.

전자는 강제에 의한 것이고, 후자는 강제로 맺어진 이후이건, 전이건 오거스트와 완전한 계약을 나눴다는 증거였다.

“쩝, 쉽게가는 건 글렀네.”

그나마 다행인 건 오거스트의 행차는 아직이라는 것이다.

“이본느님, 좀 도와주실래요?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떻게 말인가요?”

“제가 말할 때 저를 잡고 원하는 위치로 공간이동을 해주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나는 우리들의 대화를 재밌다는 듯이 듣고 있는 녀석들을 향해 기력을 길게 뻗어 휘둘렀다.

스악─

무언가, 뚜두둑.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도열해 있던 마인들 중, 앞 열이 우수수 쓰러져 내렸다.

계약이 끊기는 충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은 것이다.

“좌측으로 이동해주세요.”

“알았습니다.”

당황하던 이본느가 내 대답에 손을 잡고, 공간을 도약했다.

나는 녀석들의 좌측에 나타나기 무섭게 다시금 기력을 휘둘렀다.

또다시 뚜둑. 끊겨 나가는 계약의 끈들.

마인들이 우수수 쓰러져 내렸다.

《이것들이!》

파우트의 권속들이 뒤늦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소한 체형의 마른 남자가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오거스트의 간부, 파우트였다.

하지만 녀석은 끝까지 달려들지 못하고 도중에 막혀버렸다.

콰아앙─!

아렌의 도마뱀 꼬리에 후려 맞은 녀석이 뒤로 날아가 노면을 뒹굴었다.

이어서 기절한 마인들이 깨어나고, 언데몬의 마인들이 가세하면서 순식간에 사방에서 전개되기 시작하는 싸움.

아렌에게 파우트를 맡긴 나는 싸움이 벌어지는 너머를 바라보았다. 대성당의 길목을 따라, '네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노신사, 드레스차림의 여인, 거대한 덩치의 남성. 그들은 중앙의 청년을 호위하듯 위치하고 있었다.

여인이 받쳐 든 양산 아래에서 산책이라도 나온 듯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창백한 안색의 청년.

눈 앞에서는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건만, 청년이 있는 공간 만은 마치 가위로 뚝 오려내기라도 한 듯 이질적인 평온함이 머물렀다.

─재미난 걸 쓰는구나.

머릿속으로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 내 권속이 되지 않을래?

청년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

그 안에 담긴 것은 광기에 가까운 '수집욕'이었다.

오마(五魔). 데빌메이커, 오거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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