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96화 (97/226)

§ 96화

여인이 받쳐 든 양산 아래에서 산책이라도 나온 듯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창백한 안색의 청년.

─재미난 걸 쓰는구나.

머릿속으로 감미로운 미성이 파고든다.

─너, 내 권속이 되지 않을래?

청년의 검은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

그 안에 담긴 것은 광기에 가까운 '수집욕'이었다······.

오마, 데빌메이커 오거스트.

─나와 함께 하자꾸나.

감미로운 미성이 머리를 뒤흔든다. 마주한 눈은 이성을 잠식해 온다.

“매료의 마안입니다. 그와 눈을 마주하지 마세요.”

이본느가 경고하며 손을 들어 내 눈을 가리어주었다.

하지만 이본느 본인 또한 머릿속에 음성이 울리는지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자신도 힘겨운데, 외부인인 나까지 챙겨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이본느는 무척이나 사려가 깊은 인물이었다.

다만, 고마우나 쓸데없는 배려였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내 눈을 가리운 이본느의 손을 내렸다.

“아무렇지 않거든요.”

나는 오거스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 부동의 각인은 고작 매료의 마안 따위로 흔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놀랐는지, 오거스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호오, 매료가 통하지 않다니, 너 정말 흥미롭구나.

녀석의 눈에 맺힌 수집욕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다음 순간, 녀석에게서 나를 향해 무언가가 뻗어져 나왔다.

내 영혼의 눈에만 보이는, 타인과의 계약을 강제하는 ‘검은 실’이었다.

초인사회에 오거스트의 공포를 각인시킨 녀석의 가장 큰 무기.

다만, 내게는 그저 계약의 끈을 모방한 조잡한 실로밖에 안 보였다.

계약의 끈이란 이딴 것보다 몇십 배는 단단하고, 몇백 배 더 끈끈하다.

서로의 교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정신의 공유가 이따위 조잡한 실과 같을 리가 없는 것이다.

“치워.”

내 이마로 날아드는 검은 실을 본 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화르륵─

푸른 불길이 일어나 실을 태우며 도화선처럼 오거스트에게 치닫는다.

오거스트가 손을 저어 다가드는 불길을 걷어내려는 순간.

화아악!

산불처럼 일어난 푸른 화마가 녀석을 집어삼켰다.

“꺄아아아아악! 도련니이임!”

드레스차림의 여성이 받치고 있던 양산을 내던지며 비명을 질렀다.

“다, 당장 불을 끄세요, 우로보!”

여자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발만 동동 굴리며 어쩔 줄을 몰라할 때였다.

“호들갑 떨지 마라, 마릴.”

오거스트의 목소리가 울리더니, 푸른 화마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내 불길이 걷히고 나타난 오거스트의 모습에 내가 혀를 찼다.

‘괴물이냐.’

마치 화마에 휩싸인 적은 없다는 듯이 멀쩡하기만 한 모습. 예상은 했지만 옷자락 하나 그을린 흔적이 없었다.

파랑이의 불길로는 오거스트가 두른 마기조차 뚫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다만, 다른 의미에서 녀석을 자극해버린 듯했다.

─···너, 내 계약의 선이 보이나 보구나.

나를 바라보는 오거스트의 눈에 경악이 어린다.

─거기다 이 불길······

경악은, 이내 끝 모를 탐욕으로 뒤바뀌었다.

─역시, 넌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어.

오거스트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저것을 내게 가져와라.”

“분부대로.”

“알겠사와요.”

노집사와 드레스차림의 여자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다음 순간.

파앙─!

드레스차림의 여자, 마릴이 지면을 부수며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내 머리 위 상공에 도달한 마릴이 손을 휘두른다.

수십 가닥의 거미줄이 그물을 만들며 나를 옭아맬 듯이 떨어져 내렸다.

순간, 내 옆이 뜨거워지더니 붉은 화마가 허공에 방사되었다.

화아아악!

“꺄아아악!”

거미줄이 순식간에 녹아들고, 격추된 참새처럼 추락하는 마릴.

내려선 마릴의 드레스는 불에 타고 살갗이 까맣게 그을렸다.

“이본느으으으─!”

얼굴에 푸른 핏줄 수십 가닥이 징그럽게 돋아나고, 흰자위가 검게 물든 소름 끼치는 모습의 마릴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녀를 격추시킨 장본인은 바로 이본느였다.

‘화염의 마녀’라는 이명을 지녔던 오거스트의 이전 간부.

“죽여버리겠어!”

마릴의 드레스에서 수십, 수백 가닥의 거미줄이 쏟아져 나와 이본느를 향해 폭사 되었다.

거미줄에 스친 성당의 석조물, 가로등이 예리하게 갈라진다.

콰과광─!

풍경을 가르는 그 강도는 강철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이본느의 얼굴에선 아무런 감흥도 엿보이지 않았다.

휘아악, 휘악.

그녀가 손에 든 부채를 휘두를 때마다, 화염의 칼날이 일어나 거미줄을 조각조각 분쇄한다.

“꺄아악!”

화염의 칼날에 몸이 베이고 불타며 마릴이 비명을 지른다.

“그만! 그마-아-안!”

이본느는 계속해서 부채를 휘둘렀다.

평소의 차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상대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무자비하게 부채를 휘두르는 모습은 그녀가 왜 ‘마녀’라 불렸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타오르는 불덩이가 되어 도망치는 마릴. 이본느는 그 뒤를 추격하지 않았다.

성당의 계단에는 어느새 정장의 노신사가 자리해 있었다.

“여전히 가차 없으시군요. 이본느님.”

“세오릭이란 자입니다. 격투가로 최상격 초인에 근접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본느가 차분하게 노신사의 이력을 알려주었다.

“최상격에 근접하다니, 그건 들어 넘기기 어렵군요.”

계단에 있던 노신사, 세오릭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콰앙! 콰앙!

이본느가 부채를 휘두르고, 화염의 칼날 두어 개가 계단에 작열한다.

후웅!

칼날을 피해 뛰어든 세오릭의 주먹이 이본느를 강타한다.

부채를 들어 주먹을 막은 이본느가 뒤로 주욱- 밀려났다.

“제 실력은 이미 최상격에 들어서 있습니다.”

묘한 집착을 보이듯 말을 하는 세오릭.

나 또한 그의 이력을 알고 있었다.

‘상격 초인’으로 재능의 한계에 절망하고 오거스트에게 회유된 인물.

강력한 육체를 대가로 오거스트와 거래를 한 자였다.

콰앙!

날아든 화염의 칼날을 팔을 들어 막은 세오릭이 주춤거린다.

이본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속해서 부채를 휘둘렀다.

그러던 그때, 이본느를 향해 수십 가닥의 거미줄이 쇄도했다.

휘이이익!

미간을 슬쩍 좁힌 이본느가 휘두르던 부채의 방향을 틀었다.

화염의 칼날이 쇄도하던 거미줄을 순식간에 녹여낸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세오릭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자유로워진 세오릭이 노린 것은 이본느가 아닌 바로 나였다.

나이가 무색하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세오릭.

혀를 찬 나는 신체가속을 키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앙!

세오릭의 주먹이 작렬한 성당의 외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맞았다간 골로 가겠네.’

저 주먹을 맞는다는 생각을 하니, 피부에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그걸 피하다니, 과연 오거님이 눈여겨볼 만한 인재군요.”

세오릭이 나를 돌아보며 납득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피하지 못했으면 죽었을걸? 오거스트가 나 데려오라 한 거 아니었어?”

“고작 이 정도에 죽을 정도면 데려갈 가치가 없다는 거겠죠.”

멋대로 판단하고 있네 이놈.

이본느 쪽을 흘낏 바라보니, 그녀는 마릴에게 발이 묶여있었다.

화염의 칼날에 족족 잘려 나가면서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게, 질기기로는 찰거머리보다 질겨 보였다.

거기다 하필이면 유일한 도주처인 대성당의 입구까지 세오릭이 막아서고 있었다.

“후우.”

한숨을 포옥 내쉰 나는 품에서 꺼낸 붉은 단약을 삼켰다.

[붉은 단약(열화)를 복용했습니다.]

몸에 활력이 몰아치며 상태창이 갱신된다.

[체력 : 5 → 9]

[지속 시간 : 09:59]

나는 무릎을 굽히며 돌진의 자세를 잡았다.

“정면승부인가요. 좋습니다.”

마음에 든다는 듯 웃어 보인 세오릭이 오라는 듯 자세를 잡는다.

다음 순간, 내가 세오릭에게 돌진했다.

파앗!

기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몸이 순식간에 전면으로 치닫는다.

우웅!

이어서 그람의 마력이 체내에 한 줌도 남김 없이 전부 흡수되었다.

세포가 올올이 깨어나고, 전신에 힘이 들어찼다.

그 와중에도 세오릭은 여전히 주먹을 내지를 자세를 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세오릭을 향해 부딪힐 듯 달려들었다.

<신체 가속>.

순간, 세상이 물에 잠긴 듯 느려지며 세오릭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보여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세오릭의 주먹이 장전을 하듯 천천히 뒤로 당겨진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앗!

나는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몸을 직각으로 꺾어 대성당의 입구로 쏙 들어갔다.

“!”

맞받아 칠 자세를 취하고 있던 세오릭은 순식간에 닭 쫓던 개가 되어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허허.”

뒤늦게 상황을 자각한 세오릭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도망친 건가.”

내가 사라진 대성당의 입구를 바라보며 세오릭이 중얼거렸다.

***

‘후우.’

대성당의 지하통로로 내려가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세오릭이 쫓아온다면 아나스타샤를 이용해 눈을 한 번 봉사로 만들어 줄 작정이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지하로 들어서는 통로는 마법으로 감추어져 있기에 찾으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안심하기는 아직 일렀기에 나는 재빨리 다음 작전을 준비했다.

언데몬의 지하는 공사를 하다 버려진 곳을 거점으로 삼았는지 곳곳에 시멘트 포대가 널려있었다.

‘시멘트.’

떠올릴 수 있는 건 너무나도 단순명료했다. 하지만 내 상상을 실현시키려면 그만한 일손이 필요했다.

“다들 나와주세요.”

지하 2층으로 내려와 소리치자 ‘비전투 인원’으로 분류되어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 숫자는 고작 4명. 하지만 이들 만으로 충분했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인가요?”

쌍둥이 자매 리디아와 니엘이 있었으니까.

‘리디아가 물이고, 니엘이 흙이었지?’

두 자매는 마기를 이용해 각기 ‘물’과 ‘흙’을 다룬다. 거기에 시멘트가 만나면?

“니엘, 오빠랑 같이 땅 좀 파자.”

“네에!”

“리디아는요? 리디아는 뭐해요!?”

“리디아는 저기, 마인오빠랑 같이 봉지에 든 가루 좀 물에 풀어줄래?”

“네에!”

나는 인천 출신이라던 마인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

“공구리 아시죠?”

“···고, 공구리 말입니까?”

“애들 들리니까 조용히.”

“···아, 예. 압니다.”

리디아와 니엘은 각별히 취급해야 하는 애들이다. 단어 하나라도 잘못 가르쳤다간 그걸 고스란히 습득해서 ‘악인’으로 변모하는 수가 있었다. 애들은 순수해서 물드는 것도 빠르니까.

“···그런데 그게 통하겠습니까?”

“통하게 해야죠.”

“?”

의아해 하는 마인을 내버려두고, 나는 니엘을 시켜 계단 한 가운데 구멍을 뚫었다.

“니엘, 여기. 있는 힘껏 파봐.”

“네에!”

쿠구구궁!

“······.”

지면이 내려앉으며 사람 네 다섯 명 정도는 가볍게 묻어버릴 수 있는 구멍이 순식간에 완성되는 광경을 보며 나는 잠시 침묵했다.

···이거 맞나?

“저기요, 얘네 누가 비전투인원으로 분류했죠?”

“이본느님이 어린아이는 안 된다고······”

나는 리디아가 깊은 구멍에 대량의 물을 생성해내고 시멘트를 골고루 풀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제법 걸릴 줄 알았는데, 이건 무슨 말 만하면 뚝딱이다.

이제 파랑이로 건조시키기만 하면 끝.

그래서 여기에 그 괴물 같은 노인이 빠질 것 같냐고?

‘빠지게 만들어야지.’

기력은 그러라고 있는 거다.

***

“여기군.”

파악!

거대한 예배당을 둘러보던 세오릭이 어느 한 지면을 발로 내리찍었다.

그러자, 대리석 바닥이 스르르 사라지고 나타나는 철문.

끼이이-

잠기지 않은 철문을 연 세오릭이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갔다.

하지만 그는 얼마 내려가지 않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숨어있을 줄 알았는데, 체념한 겁니까?”

“어차피 시간 끌기밖에 안될 것 같아서.”

지하 2층에 서 있던 내가 세오릭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제안 하나만 하려고.”

“오거스트님의 권속이 되는 것 외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하 2층으로 내려온 세오릭이 나와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어, 그거 말인데 받아들이려고.”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른 채 대충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며 바닥을 흘낏 바라보았다.

지금 세오릭이 서 있는 자리는 니엘이 뚫어 놓은 구멍 위였다.

니엘이 ‘윗면만’ 뚜껑처럼 아주 잘 복원시켜 놓았기에 밟아도 전혀 지장이 없어 보인다.

다만, 니엘이 뚜껑을 치워버리는 순간, 바로 구멍에 떨어지는 구조였다.

물론 세오릭이란 노인은 고작 그 정도에 빠질 만큼 어설픈 마인이 아니었다.

바닥에 조금이라도 진동이 오는 순간, 바로 뛰어오르겠지.

거기서 필요한 게 내 기력이었다.

‘눈치 못 챘네.’

나는 기력을 스르륵 이동시켜 세오릭의 바로 머리 위에 함정을 치기 시작했다.

뛰어오르면, 뛰어오른 힘만큼 기력의 탄성으로 인해 추진력을 얻어 아래로 낙하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함정을.

다행히 세오릭은 내 기력의 존재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갑자기 반색한 표정을 짓는다. 왜지?

“오, 받아들이겠다는 겁니까?”

아, 내가 받아들인다 했나 보네.

“음,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어.”

“예? 무슨······”

얼이 나간 표정을 짓는 세오릭을 내버려두고 내가 소리쳤다.

“니엘-!”

─네에!

다음 순간, 세오릭이 선 지면이 무너져 내렸다.

“허, 이런 잔수작을.”

피식 웃은 세오릭은 지면이 흔들리기도 전에 뛰어오르고 있었다.

“시멘트인가요? 고작 이런······!”

뛰어오르며 아래 뚫린 구멍을 내려다보던 세오릭이 돌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뭣!”

갑자기 머리와 목 부근에 무언가 저항이 느껴지더니, 뛰어오르던 속도 그대로 추진력을 얻어 낙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세오릭은 그와중에도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공중에서 몸을 뒤틀며 벽면을 차려 했다. 물론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내가 아니다.

“안 되지.”

그람의 비도들이 벽면을 차려는 세오릭의 전신을 사정없이 찔러 들었다.

“큭!”

비도를 쳐내며 회색의 늪에 그대로 침수해 들어가는 세오릭.

“파랑아.”

“까악!”

어느새 내 어깨를 짚고 선 파랑이가 부리를 벌렸다.

순간, 건조기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함정의 공기가 건조되며 시멘트가 단단하게 굳기 시작했다.

결국 세오릭은 머리와 팔 한 짝만 남긴 채 굳어버렸다.

물론 세오릭을 이렇게 묶어 놓을 수 있는 시간은 수분 남짓도 되지 않을 터였다.

벌써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시멘트.

“너무 빨라, 조금만 기다려.”

나는 이카루스의 반지의 항마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녀석을 향해 쏘아 보냈다.

“!”

시멘트를 부수려던 세오릭은 마기가 날아가자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어디, 마기가 없는 몸으로 내 공격을 버틸 수 있나 한번 보자고.”

씨익 웃은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람의 비도. 아나스타샤의 빛 포화. 파랑이의 불길.

기력과 마력, 빛과 불길이 한데 뭉친 근본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세오릭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

***

한편 그 시각, 대성당의 뒤편.

두 명의 마인을 처리한 한세연의 주변은 모든게 흔적도 없이 말소되어있었다.

느낌상 이 너머로 3개의 방이 존재했던 것 같은데, 격벽이나 물건이 모두 사라져 하나의 거대한 방이 완성되어 있던 것이다.

“조금 과했나?”

‘살짝’ 열이 올라 힘을 조금 과하게 쓴 듯한 한세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유를 떠올리자니 오히려 너무 약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해솔이가 준 가장 소중한 물건을 폄하당한 이상 무슨 짓을 해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애정어린 손길로 심연의 반지를 쓰다듬은 한세연은 그대로 폐허가 된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몇 걸음 걷지 않아 자리에 멈춰 섰다.

“그어어어···”

지면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뒤를 돌아보니 산발한 머리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괴인이 서 있었다.

“마인······ 인가?”

고개를 갸웃거린 한세연은 앞뒤 볼 것 없이 바로 마기를 휘둘렀다.

꾸물거리며 흘러나온 어둠이 괴인을 순식간에 덮쳤다.

그리고.

“응?”

괴인이 하는 짓을 본 한세연의 눈이 동그레졌다.

“마기를 먹어?”

입을 쩌억 벌린 괴인이 마기를 잡곤 꾸역꾸역 남김없이 씹어 삼키고 있었다.

“헤에, 재미있네.”

한세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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