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99화 (100/226)

§ 99화

나의 계획은 아주 간단했었다.

광적인 수집욕을 가진 오거스트라면 분명 나를 원할 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강압적인 수단을 취할 것이었다.

그게 바로, ‘강제계약’. 하지만, 이는 내게 간단히 깨져버렸고, 오거스트는 나와 강제계약을 맺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녀석이 나를 ‘설득’하려 들것은 뻔한 일이었다.

품위를 중시하는 오거스트는 폭력보단 대화를 중시하는 이였으니까.

그리고 이 대화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녀석이 택한 방식은 세오릭을 이용한 인형극이었다.

세오릭을 ‘악역’으로 내세워 나를 몰아붙이고, 위험에 빠진 내 앞에 짜잔 등장해서 세오릭으로부터 나를 구해줌으로써 자신이 나쁜 존재가 아니라 인식시키는 것.

그로 인해 나를 설득해서 휘하로 들이는 게 오거스트가 그린 큰 그림이었다.

녀석이 마음에 든 인재를 진심으로 포섭하고자 할 때 주로 취하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로 세오릭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기에 대기하던 오거스트가 어쩔 수 없이 나서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내 계획대로였다.

세오릭을 몰아붙였다는 것부터가 내 ‘몸값’이 올라갔다는 것이고, 오거스트는 더욱 나를 설득시키려 들 테니까.

대화의 ‘칼자루’를 내가 쥐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거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시간을 벌고, 그 틈에 내가 안배해 놓은 것이 작용해 오거스트를 격퇴시킨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세워놓은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오거스트가 지하의 격벽을 6개나 뚫고 사라지기 전까지는.

“오거스트니임!”

입이 쩍 벌어진 세오릭이 오거스트가 사라진 곳을 향해 뛰어간다.

“와아, 강한 언니다!”

“강해!”

리디아와 니엘은 태평하게 놀라면서 박수나 치고 있었다.

한세연은 자신이 누구를 날려 버린 건지 사태파악이 안 된 듯, 마냥 나를 만난 것에 기뻐하고 있었고.

이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튀자.”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려 지하를 뛰어 올라갔다.

오거스트가 품위를 중시하는 놈이라곤 해도 그 근본은 어디까지나 ‘마인’이었으니까.

다짜고짜 저런 공격을 받으면 초인이라도 웃으면서 대화를 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마인이라면 말 다 했다.

돌연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내 뒤를 언데몬의 마인과 리디아와 니엘이 따라붙었다.

쌍둥이가 어린아이들이라 뒤처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는 내 기우였다.

가벼운 몸에 마기가 넘쳐나서 그런지 두 아이는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왜 뛰는 거야, 해솔아?”

이유도 모른 채 나와 걸음을 맞춰가면서 한세연이 의아한 듯 물어왔다.

본인이 일으킨 참사가 원인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일단 뛰어.”

‘너 때문이야’라고 외쳐주고 싶었으나 도망이 우선이었기에 나는 다리부터 놀렸다.

후아악!

그때, 돌연 뒤에서 날아온 마기 덩어리가 내 앞에 떨어졌다. 거대하게 일어난 마기는 이내 진로를 가로막아버렸다.

“이야기 중에 그렇게 가버리면 내가 섭하지 않은가.”

내 인상이 굳어졌다. 어느새 왔는지 오거스트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거스트가 나타난 순간, 웃고만 있던 한세연의 얼굴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이 사라졌다.

한세연이 마냥 바보처럼 착하다고만 여기던 나로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서늘한 표정이었다.

“납치범.”

···납치요? 한세연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내가 당황했을 때였다. 오거스트를 향해 어둠이 덮쳐들었다.

콰아앙!

오거스트는 영문도 모른 채 공격을 막았다. 그런 녀석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응? 환희? 얘는 왜 또······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은 내가 어리둥절해할 때였다.

“완벽하구나!”

“?”

“마기와 인간이 공존하다니,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형태다.”

“······.”

오거스트의 말에 내 표정이 해괴해졌다.

녀석의 황홀하다는 시선이 한세연을 향해 있었다.

격벽 뚫고 나갈 때 머리라도 다쳤나?

물론 이런 내 어처구니 없다는 시선과 무관하게 녀석의 말에는 ‘힘’이 담겨있었다.

목소리는 감미롭게 정신을 울렸으며, 눈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매료의 마안’이었다.

다만, 모르도의 계약자인 한세연에게는 매료의 마안이 일절 통용되지 않았다.

모르도의 ‘격’은 매료로 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와 계약을······”

콰아앙!

“잠깐 대화···”

콰앙!

오거스트는 연신 매료의 마안을 사용하며 대화를 시도했으나, 한세연은 납치범(?)이 입을 열거나 말거나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대화를 시도해보려는 오거스트의 집념은 정말이지 대단해 보였다.

“음.”

나는 일방적인 공격이 퍼부어지는 광경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당황스럽긴 했으나 어쨌든, 일이 풀린 듯했다.

‘다 왔네.’

팔목에 찬 팔찌가 푸르게 점등하는 것을 보며 내가 미소지었다.

***

······지하에서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상에서는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렌! 비겁하게 올라가 있지 말고, 내려와라!”

“꼬우면 너도 올라와라.”

만티코어의 날개를 펄럭이며 팔짱을 낀 아렌이 지상에서 이를 가는 파우트를 비웃었다.

하지만, 실상 아렌도 파우트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공간을 타고 이동하는 특성을 지닌 파우트는 아렌이 공격하는 족족 아공간으로 달아나기 일쑤였으니까.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나.’

파우트는 일정 범위에 자신의 아공간을 만든다.

아공간에 들어간 파우트를 잡기 위해선 아렌 또한 녀석의 아공간으로 들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렌은 파우트의 아공간이 대충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파악한 뒤였다.

‘물이다.’

파우트는 ‘물’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우트가 물을 끌어 올릴 때는 반드시 아공간이 열린다.

문제는 녀석의 아공간에 들어가는 건 도박이라는 것인데······

‘단순히 물뿐이라면 겁낼 필요는 없지.’

파스슥.

그의 오른손에 뇌전이 튀긴다. 강원도 필드를 주름잡으며 중견길드 서너 개를 박살 낸 6성급 마수, 사이클롭스의 팔이었다.

휘이이익!

만티코어의 날개가 접히며 아렌이 벼락처럼 하강을 시작했다.

“그딴 건 몇 번 해도 소용없다고······!”

아공간을 열며 사라지는 파우트.

아렌은 지상으로 박힐 듯이 날아들며, 사라져가는 아공간을 향해 돌진했다.

공간을 타 넘는 느낌과 함께 아렌의 몸이 차가운 물에 잠겼다.

【크하하! 미친놈!】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물속. 파우트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파아앙!

순간, 아렌의 어깨가 물의 마기에 휩쓸려 터져 나갔다.

【이곳에선 내 기척을 읽을 수 없다. 시야조차 없어. 너는 끝이다.】

파우트의 호언장담대로였다.

아렌은 파우트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으며 시야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아렌의 입가에 맺힌 건 웃음이었다.

‘안 보이면 공간 자체를 날려버리면 그만이지.’

파스슥!

사이클롭스의 손아귀가 푸르게 명멸한다.

아공간에 들어서기 전부터 모아왔던 뇌전이, 물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크아아아악!】

파우트의 비명이 찢어져라 울리더니, 아공간이 깨져 나갔다.

물이 사라지며 찬 공기가 몸을 엄습했다.

“푸하! 죽는 줄 알았네.”

아공간을 빠져나온 아렌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가쁘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옆에서 뇌전에 바짝 구워진 파우트가 생선처럼 몸을 파들파들 떨어댔다.

“어디서 쥐꼬리만한 아공간 하나 믿고 나대고 있어.”

“크악!”

파우트의 복부를 발로 찍어누르며 아렌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

마릴이 이터니티의 생도들을 상대로 피 튀기는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

“흥! 그딴 것들로 내 지주사를 끊을 수 있을 것 같아?!”

카앙!

천우진의 검이 마릴의 거미줄, 지주사에 막히며 금속성을 울린다.

카가가강!

버디슈를 연달아 내질러 거미줄을 쳐내며 니콜라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릴의 거미줄은 쳐내는 게 고작일 정도로 그 강도가 대단했다.

쿠구궁!

거미줄이 날아들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잘려 나간다.

까딱 잘못했다간 사지가 절단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예리함이었다. 하지만, 그 취약점 또한 분명했다.

“폭렬!”

퍼버벙!

아멜리아의 손을 타고, 수십, 수백의 화염이 작은 불똥처럼 퍼진다.

불똥에 튀긴 거미줄은 눈에 띄게 흐느적거렸다.

마력의 양이 어마어마한 아멜리아가 불똥을 사방에 튀겨대니 거미줄은 남아나는 게 없을 정도였다.

“꺄악! 이 년이 감히!”

드레스며, 머리에 불똥이 튀긴 마릴이 비명을 지른다.

그렇지 않아도 일레인의 저주마법에 움직임이 둔해진 마릴이다보니 불똥을 모두 피해내기란 어려웠던 것이다. 머릿결이 그을린 마릴의 눈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감히 내 머리를! 죽어버려!”

───────!

피처럼 붉게 물든 수십가닥의 혈주사가 사방에서 아멜리아 하나를 노리고 좁혀들었다.

깜짝 놀란 아멜리아가 화염마법을 연거푸 날렸으나, 혈주사는 화염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아멜리아, 앞쪽 것만!”

“알았어요!”

은가예의 외침에, 아멜리아가 사방으로 퍼트리던 화염을 전면의 혈주사를 향해 집중했다.

하지만, 마릴이 작정하고 날린 혈주사는 아주 미약한 변화를 보일 뿐, 속도의 저하 없이 아멜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은가예는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좁혀드는 붉은 거미줄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모든 소음과 배경이 사라지고, 그녀의 세상에는 오직 붉은 거미줄만이 남았다.

검에 어떠한 마력조차 담지 않은 채, 은가예는 다가드는 거미줄만을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거미줄을 자를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실패하면 그녀와 아멜리아 둘 다 죽는다.

휘이익!

귓가로 풍경을 가르는 거미줄의 예리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은가예의 검이 내리그어졌다.

그녀의 검에 마력이 담긴 것은 거미줄과 맞닿는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폭검.

폭발적으로 분출된 마력이 붉은 거미줄을 투둑. 끊어냈다.

퍼어어어어엉!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혈주사를 잘라낸 중력의 마력이 마릴을 노리고 노면을 짓뭉개며 질주한다.

“감히!”

분노한 마릴의 앞으로 지주사 수백가닥이 뭉치며 벽을 만들었다.

퍼어어엉!

중력의 마력과 부딪힌 지주의 벽은 반절 이상이 터져나갔다.

“우엑!”

지주사를 타고 전해진 충격에 마릴의 입가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마릴이 은가예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천우진이 달려든 것이다.

“내가 소용없다고 몇 번을······!”

튕겨 나가고 엎어지면서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천우진이 거슬렸는지 우악스럽게 인상을 구긴 마릴이 드레스자락을 거칠게 찢었다.

“죽어!”

찢겨진 드레스가 올올히 풀어지며, 붉은 거미줄 다발이 천우진을 노리고 벼락처럼 쇄도했다.

일반적인 지주사조차 베지 못했던 천우진이다. 강화된 거미줄, 혈주사를 베지 못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스아악─

“···뭣?!”

혈주사를 베며 다가드는 초승달 같은 푸른 검기에 마릴의 눈이 찢어져라 부릅떠졌다.

서걱─.

마릴의 오른팔이 잘려나가며 노면에 툭 떨어져내렸다.

“꺄아아아악!”

퍼어억!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드레스자락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천우진을 강타했다.

“쿨럭!”

복부를 얻어맞은 천우진이 피를 엿가락처럼 쏟아내며 허공을 훨훨 날아간다.

“죽여버리겠어어-어─어!”

분노한 마릴은 천우진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거미줄로 옭아매려 했다.

“어딜!”

카가가가강!

니콜라이가 달려들어 거미줄을 쳐냈다. 하지만, 채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버디슈가 거미줄에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비켜!”

니콜라이의 등을 잡아 집어던진 은가예가 검을 휘둘렀다.

휘이익!

중력의 검이 거미줄을 내리누르며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검은 거미줄을 베지 못했고, 은가예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퍼어엉!

아멜리아의 화염마법, 일레인의 디버프조차 거미줄에는 조금의 흔적도 주지 못했다.

새까맣게 물든 거미줄. 그것은 마릴의 최후의 지주사. ‘검은 죽음’이라 불리는 거미줄, ‘흑사(黑死)’였다.

주춤거리며 일어나는 천우진을 지옥 끝까지 쫓아갈 듯 뻗어지는 흑사.

다가드는 흑사를 보며 표정을 굳힌 천우진이 검을 움켜쥐었다. 그의 검에, 혈주사를 베었던 푸른 검기가 맺힌다. 그렇게, 천우진이 다가드는 흑사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할 때였다.

문득, 주변의 공기가 요동쳤다.

다음순간 천우진의 눈이 부릅떠졌다.

“!”

그에게 달려들던 죽음의 선들이 일제히 잘려 나간 것이다.

“······방해다, 꺼져라.”

귀찮은 듯,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 짙은 시가 향이 코를 찔러왔다.

어느새, 천우진의 옆에는 금발을 거칠게 기른 사나운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시선조차 주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며 천우진은 그가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무척이나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니콜라이.’

하지만 남자에게선 니콜라이와 같은 단정함을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내, 내, 내 흑사가····”

실성한 듯 중얼거리는 마릴을 쓰레기보듯 흘겨본 남자가 버디슈를 대충 그었다.

하지만, 그 대충 그어진 버디슈가 만들어낸 결과는 절대 대충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공간을 가르는 일선에.

툭.

마릴의 목이 땅에 굴러 떨어졌다.

“···뭐야.”

거짓말같은 광경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뒤늦게 달려온 제복차림의 여성이 남자에게 허리를 숙였다.

“부회장, 늦어서 죄송합니다.”

“···부회장?”

은가예가 눈을 크게 떴다.

“들어가지.”

주변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대성당의 입구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남자는 초인협회의 부회장, 고르고프 오볼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