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00화 (101/226)

§ 100화

······대성당의 지하.

나는 오거스트를 향해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붓는 한세연을 보며 그녀에게 이런 면모가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이거, 화내고 있는 건가?’

마냥 웃을 줄밖에 모르는 앤 줄 알았는데 화도 낼 줄 안다는 건 의외였다.

그리고 그 화를 내는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납치를 당했기 때문인 듯했다.

고맙기도 하고 묘하게 뿌듯해서 나쁜 기분은 커녕 오히려 좋기까지 했으나, 솔직히 식겁할 뻔했다.

설마 오거스트를 다짜고짜 날려버릴 줄은 상상조차 못했으니까.

뭐, 상대가 누군지 몰라서 한 것일 테고, 왠지는 모르지만 잘 풀려나가는 듯해서 다행이긴 했지만······

‘얘는 화내면 안 되겠네.’

한세연의 영혼은 모르도로 인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다행히 폭주까지 간 상황은 아니었지만, 모르도의 힘이 7할 이상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 내가 곁에 없었다면 폭주로 치달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나 하나 때문에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나서 이렇게 됐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니, 이는 어느 정도 화가 나면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조금 화가 난 정도로 지금의 상태가 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더욱 심각한 문제였고.

‘전제조건이 낮지 않기를 바래야겠네.’

화가 날 때마다 이렇게 폭주 직전까지 가버리면 곤란했으니까.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폭주 직전의 힘에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아무리 공격 의향이 없는 오거스트라고는 하나, 오마인 그조차도 피하는데 신경을 기울여야 할 만큼, 모르도의 힘은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심연의 반지가 성능이 저렇게 좋았던가?’

한세연은 심연의 반지를 통해 모르도의 힘을 구사하고 있었다.

고작 하급 마도구를 가지고 상당량의 마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에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점점 더 올라가네.’

공격이 통하지 않자 모르도의 힘이 가속을 밟듯 올라가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나는 한세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쯤 해둬.”

항마력을 일으키자 영혼을 물들였던 모르도가 빠져나가며 한세연이 진정했다.

이성이 있어서 그런지 약간의 항마력만으로도 한세연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이제 끝났어.”

팔찌에 어린 푸른 빛이 점차 밝아지는 것을 보며 내가 말했다.

“흐하하! 정말 대단한 힘이야! 과연 내가 원하던 이상의 형태다!”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한세연을 바라보는 오거스트.

녀석의 시선이 내게 돌아갔다.

“거기다 저 힘을 억누를 수 있다니, 보면 볼수록 놀라운 아이구나. 역시 마음에 들어.”

뱀처럼 혀로 입술을 핥으며 탐욕을 드러내는 오거스트.

콰아앙─!

한세연의 어둠이 오거스트를 채찍처럼 내리쳤다.

“한세연! 진정. 릴렉스.”

“···응.”

다시 영혼이 검게 물들려는 한세연을 가까스로 진정 시킨 나는 내심 혀를 찼다.

‘이거 약간만 화가 나도 폭주화가 되는 거 같은데.’

아니길 바랬던 최악의 가정이 사실로 드러남에 내가 곤란을 느낄 때다.

“마릴이 당했군.”

오거스트가 위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드레스차림의 여자가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원흉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앙─!

오거스트가 있던 공간이 송두리째 터져 나갔다.

오거스트는 어느새 뒤로 훌쩍 물러나 있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벼락처럼 떨어진 한 남자가 버디슈를 든 채 서 있었다.

공격을 피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는 사나운 인상의 남자.

“부회장니임!”

뒤이어 제복 차림의 여자가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그렇게 갑자기 뛰어내리시면······!”

말을 이으려던 여자는 오거스트를 보곤 흠칫 놀라 입을 다물었다.

“물러나 있어라, 소율.”

“예!”

부하를 뒤로 물린 남자가 전방을 칼날 같은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오거스트.”

“멋대로 난입하다니, 여전히 제멋대로구나. 고르고프.”

오거스트의 말에 남자, 고르고프는 가볍게 버디슈를 그었다.

쿠아아앙!

순간, 내리그어지는 버디슈를 향해 마기를 두른 주먹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버디슈의 날과 주먹이 충돌한다.

키이이이이잉─!

마력과 마기가 힘겨루기를 하며 날카로운 이명이 공간을 울렸다.

“도련님이 이야기 중이시네. 방해는 말아주겠나?”

대치의 너머, 고르고프와 눈을 마주한 세오릭이 말했다.

이를 무감한 눈으로 쳐다본 고르고프가 중얼거렸다.

“많이 떨어졌군, 세오릭.”

“!”

순간, 세오릭의 눈이 커졌다. 그의 주먹이 갈리며 피가 튀었다.

주먹을 가른 날은 뱀처럼 머리를 틀어 세오릭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고르고프는 버디슈의 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검붉은 망령의 군세가 그를 덮쳐들고 있었다.

콰과과과광!

버디슈가 덮쳐드는 망령의 군세를 광속으로 분쇄했다.

그 틈을 타 세오릭이 뒤로 물러났다. 이를 본 고르고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 권속을 멋대로 손대려는 건 못 봐주겠는걸.”

오거스트가 나직이 말했다.

그의 등 뒤에는 망령의 형상을 한 수십(數十)의 마기가 일어나 있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안 거지?”

오거스트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쓸어보았다.

“진명의 결계라. 난 여기 온다고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을 텐데?”

진명의 결계.

그것은, 단 한 명을 대상으로 가동하는 속박의 결계였다.

결계에 이름이 새겨진 자는 결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힘 또한 속박당한다.

어지간한 네임드급 마인조차 범인으로 전락시키는 최악의 결계.

그 결계가 지금 막 대성당을 중심으로 가동된 것이다.

대상은 오거스트 레펜바하.

바로 그였다.

“술식의 구축에만 세 시간 이상이 걸리는 결계를 먼저 펼쳤다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오거스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몸이 구속당하지도, 마기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저, 힘의 저감만이 나타났을 뿐이었다.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오거스트.

고르고프는 말없이 버디슈를 들어 올렸다. 미증유의 마력이 집적되며 공간이 울었다.

스악. 버디슈가 내리그어졌다.

다음 순간, 오거스트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쿠궁.

갈라진 오거스트의 몸이 허물어졌다.

─이.

─런.

좌우로 갈린 몸에서 제각기의 음성이 울렸다. 고르고프가 마무리를 짓기 위해 재차 버디슈를 그었다.

공간을 가르는 참격.

하지만 그 참격은 반투명한 검은 결계에 막혀버렸다.

“!”

고르고프가 인상을 굳히는 순간이었다.

키이이이이잉─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며 결계 안의 풍경이 갈라진다.

갈라진 풍경의 안에서 검은 공간이 나타났을 때, 세오릭은 어느새 오거스트의 곁에 소환되어 있었다.

반으로 갈린 오거스트의 두 눈동자가 뒤룩뒤룩 굴러가며 나와 한세연, 그리고 리디아와 니엘을 응시했다.

─나중.

─에.

─다시.

─보지.

그 탐욕에 가득한 눈을 본 내가 인상을 구겼을 때다.

파아아앙─!

공기가 찢겨 나갔다. 고르고프는 공간을 격하듯 결계의 앞에 나타나 버디슈를 내리그었다.

거미줄처럼 금이 가며 깨져 나가는 결계. 초승달의 날이 오거스트를 노렸다.

하지만 날이 닿기 전에 오거스트는 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쿠우우웅─.

애꿎은 지하의 벽만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렸다.

“쯧, 놓쳤군.”

신경질적으로 혀를 찬 고르고프가 주위를 쓸어보았다.

세오릭, 리디아, 니엘, 언데몬의 마인······

시선을 받은 마인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이내 차례차례 쓸어보던 고르고프의 눈이 내게서 멈췄다.

정확하게는 내가 찬 팔찌가 푸르게 빛나는 것을 보고서다.

“······.”

고르고프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내심 놀라고 있었다.

사실 고르고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주하고 있는 이해솔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하로부터 정보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고르고프는 이해솔의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

자신들조차 잡지 못하는 오거스트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력을 일개 아카데미 생도가 지니고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고르고프가 이해솔의 말에 움직인 것은, 오거스트를 잡기 위함이 아니었다.

언데몬과의 접촉을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고르고프는 이해솔이 언데몬의 거점을 알려주겠다는 말조차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솔이 언데몬의 간부와 접촉하고, 초인협회에서 제공한 ‘위치추적’이 가능한 팔찌를 차고 이곳, 언데몬의 거점까지 들어왔음에야 믿지 않을 수가 없어졌다.

그렇다면 오거스트가 언데몬의 거점을 습격하리란 정보도 사실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랬기에 사전에 대성당을 중심으로 진명의 결계를 펼치고 부회장인 그가 직접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리고 고르고프가 마주한 것은 놀랍게도 오거스트와 그의 수족들이었다.

이해솔이 제공한 모든 정보가 전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진명의 결계를 펼치고 대성당에 들어가기까지의 시간.

오거스트가 일을 끝마치고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아둔 것 또한 이해솔이었다.

만약 이해솔이 없었다면 진명의 결계를 펼치기도 전에 오거스트는 언데몬의 정신을 순식간에 장악해 볼 일을 보고 떠났을 게 분명할 터였다.

그러니까 고르고프가 오거스트를 사냥할 수 있는 이 무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것은 순전히 이해솔 본인의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녀석이다.’

정보력부터 능력. 모든 것이 고르고프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였다.

그러고보면, 바깥에 그의 아들인 니콜라이와 그의 동기생들이 와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이해솔과 친분을 맺었다는 것에 고르고프는 매우 흡족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러한 무대가 마련되었음에도 오거스트를 놓친 것은 순전히 고르고프, 그의 책임이었다.

‘한심하군.’

인상을 구긴 고르고프가 버디슈를 내던졌다.

***

한편, 지하를 빠져나온 오거스트가 향한 곳은, 대성당의 정원이었다.

공간이 열리며 나타난 오거스트의 반으로 갈린 몸이 꾸물거리며 합쳐졌다.

“오거스트!”

느닷없는 오거스트의 등장에 놀란 주변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났으나 오거스트는 그 시선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의 결계에 간섭할 수 있는 이들은 마당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오거스트의 시선이 몸과 머리가 분리된 마릴에게로 향했다.

─일어나라.

“······.”

─언제까지 누워 있을 셈이냐.

스으으윽─

순간, 마릴의 목에서 검은 거미줄 다발이 나오더니 분리된 머리와 합쳐졌다.

“저건 못쓰겠군.”

땅에 널브러진 파우트를 흘낏 본 오거스트가 바닥에 멍하니 누워있는 마릴을 회수해 사라졌다.

***

지하에서의 일이 끝나자 나는 고르고프를 따라 예배당으로 올라왔다.

한세연은 내가 납치를 당했었다 여긴 탓인지, 내 팔을 꼬옥 붙잡고 좀처럼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때, 리디아와 니엘이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갔다.

“이본느!”

“무서웠어요!”

예배당의 의자. 부상을 입은 이본느가 앉아있었다.

안겨드는 리디아와 니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본느가 나를 바라보았다.

“무사하셨군요.”

“예, 운 좋게도요.”

정말 운이 좋았다.

한세연이 오거스트를 날려버렸을 때는 그냥 죽는 날인 줄 알았으니까.

그놈이 미친놈이라서 다행이지.

그때, 내 옆으로 고르고프가 다가왔다.

“네가 이본느인가.”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싶군.”

“해솔님, 아이들을 데리고 계셔주시겠습니까?”

“예, 그러죠.”

나는 리디아와 니엘, 한세연과 함께 두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았다.

“뭐해요오?”

“왜 가만히 계세요?”

“세연아, 얘네 좀 놀아줘.”

“응.”

떠들어대는 쌍둥이의 입을 막은 나는 한세연에게 두 아이를 맡겼다.

“흐끅!”

“힉!”

한세연이 머리를 쓰다듬자, 갑자기 사색이 되서 입을 꾹 다무는 두 아이.

‘모르도를 봐서 그런가.’

하긴, 첫 이미지가 그랬으니, 무서워할 만도 한가.

대수롭지 않게 넘긴 나는 편하게 귀에 기력을 집중했다.

고르고프가 이본느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으니까.

마력으로 도청하면 모를까, 기력으로 도청하는 건 걸릴 염려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고르고프와 이본느의 대화.

‘오, 잘 들리네.’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은 고르고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바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말씀하세요.

─내 아래로 들어와라.

이본느의 표정이 굳어졌다.

─···협회가 언데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하는 말씀입니까?

언데몬은 오거스트에 의해 강제적으로 마인이 된 이들이다.

초인협회는 그들을 인간으로 되돌려준다는 명목으로 데려와 감시하며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 연구는 그들이 말하던 인간으로 되돌려준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유를 빼앗고 해부와 치료를 반복했으며, ‘병기’로 이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그랬기에 언데몬이 오거스트와 더불어 가장 불신하는 곳이 바로 초인협회였다.

그들에게 데몬스폰의 인권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목숨만 보장해줄 뿐, 연구재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르고프의 말은 그런 곳에 제 발로 들어가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협회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 아래로 들어오라 했지.

“······.”

─데몬스폰의 연구를 한 것은 원로원이지. 그 놈들과 나는 관련이 없다.

고르고프가 입을 다문 이본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전을 보장하지. 지금까지의 활동도 원하던 대로 해도 좋다. 물론, 거절해도 내버려 두고 가겠다.

─제안을 하는 이유는 역시 저희가 병기로 쓸만하기 때문인가요?

─맞다.

고르고프는 거짓말 따위는 할 줄 모르는 솔직담백한 인간이었다.

─이건 제게 물을 게 아니라, 각자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군요.

─당신은 어떻지?

─거절하겠습니다.

이본느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숨는 건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오거스트의 계약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놈은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거다.

─감당해야겠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믿고 이본느는 고르고프의 제안을 거절하는 걸까.

초인협회라는 세계규모 단체의 부회장. 그것도 ‘오볼렌’가라는 거대한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 바로 고르고프였다.

그런 고르고프가 안전을 보장해주는 데다 활동까지 묵인해주겠다는 것은 이본느로서도 귀가 솔깃할 만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아쉽군.

고르고프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순간 이본느의 눈은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바로 나에게.

‘···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