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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01화 (102/226)

§ 101화

오거스트에 의해 탄생하는 마인, ‘데몬스폰’은 이 세계에 있어서 복잡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다.

마족과 계약을 나눈 것도 아니며, 자신의 의지로 마인이 된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다양했다.

오거스트라는 걸어 다니는 재해(災害)로 인해 생겨난 ‘피해자’라 여기는 쪽과 마인인 이상 배제해야 할 대상이라 여기는 쪽. 혹은 중립.

마인진영에서조차 데몬스폰은 단순히 오거스트가 부리는 ‘인형’으로 ‘반쪽짜리’의 되다만 존재라 인식되며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물며, 오거스트의 산하에서 벗어난 ‘부랑자의 무리’인 언데몬의 처우가 어떨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마인진영과 초인진영.

어느 쪽에서건 그들을 이용해 먹거나, 배척하려고만 할 뿐, 제대로 된 대우를 바라기는 무리였던 것이다.

오거스트와의 계약의 끈이 이어져 있는 이상 언제 적으로 돌아서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들이 바로 언데몬이었으니까.

고르고프 역시 오거스트가 자신의 인형을 회수하기 위해 다시 나타나리라는 예상 하에 언데몬을 산하에 끌어들이려는 것 뿐이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누구도 손에 넣지 못한 단체가 바로 언데몬인 셈이었다.

‘그런데······’

나는 마주하고 앉은 이본느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와 함께하고 싶다고요?”

“예, 이미 남은 이들 모두와 의견을 나눴답니다.”

“이유가 뭐죠?”

굳이 고르고프의 제안까지 거절하면서 나하고 손을 잡고 싶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본느가 말했다.

“저희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이 세상에 자리를 만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건 나도 아는 바였다.

이본느가 언데몬이란 조직을 세운 이유는 세상에 데몬스폰이란 존재를 인정받게 하기 위해서였으니까.

고르고프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터였다.

자신들의 자리는 자신들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거겠지.

그래봤자 오거스트의 ‘지배’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상 한계가 명확했기에 필요할 때마다 여기저기 고용되어 쓰이고 버려지는 ‘용병’ 취급이 고작이었지만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짚이는 게 있었다.

“제가 오거스트의 지배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군요.”

“예, 허락만 해주시면 저희도 그에 따라 얼마든지 해솔님의 도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언데몬은 제법 쓸만하답니다.”

쓸만한 정도가 아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오거스트가 직접 데몬스폰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언데몬의 구성원들은 하나하나가 수재였다.

그중에서도 수뇌부의 몇 몇은 최상격, 혹은 상격 초인에 필적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자유’.

오거스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언데몬은 지금 내게서 그 길을 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완전히 내 아래로 들어왔다고 여기는 건 너무도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즉.

“거래를 하자는 거군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이본느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지배를 없애주신다면 좋겠지만 그건 해솔님도 생명력을 써야 하시니 부담이 크고 저를 신용할 수도 없으시겠죠. 그러니 여기서는 지배의 한시적인 해제를 대가로 저희는 해솔님이 원하는 도움을 준다.라는 조건이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사실 나는 얼마든지 언데몬에게서 오거스트가 이어 놓은 끈을 끊어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한시적인 해제를 조건으로 하면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내가 일일이 손을 봐줘야 한다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번거롭다고 해서 계약의 끈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도 없었다.

그건 내가 언데몬에게서 쥐고 있는 칼자루를 스스로 버려버리는 짓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뭐, 이본느야 내가 칼자루를 버리더라도 여전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겠지만······

‘그것 가지고는 모자라지.’

나보다 유능한 인재들이 알아서 굴러 들어오는데, 그걸 걷어찰 만큼 나는 형편이 좋지 못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오거스트가 나 잡겠다고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만한 투자를 했는데 고작 우호관계로 끝낸다? 그건 그냥 자원봉사다.

물론, 언데몬을 얻자면 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먼저 증명해야겠지만······

‘쉬운 일이지.’

내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언데몬을 부리면야 할 수 있는 일은 차고 넘쳤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내가 입을 열었다.

“이본느님, 옮기실 거점은 정하셨습니까?”

“몇 군데 생각해둔 곳은 있지만, 아직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거 말인데, 필드로 옮겨보는 건 어떨까요.”

이터니티에는 마수가 넘쳐 나는 장소를 일컬어 ‘필드’라 부른다.

당연히 그 안에는 길드들의 ‘개척지’ 또한 다수 존재한다.

그 개척지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자금력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초인과 달리 마기를 다루는 마인은 마수를 사역할 수 있기에 개척지의 유지비용이 대폭 감소 된다. 이는 반쪽짜리 마인인 언데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본느 또한 이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필드는 모두 다른 길드들이 자리해서 어렵습니다.”

이터니티에 존재하는 필드란 필드는 이미 죄다 거대 길드들이 점령한 지 오래였다.

한국 같이 좁은 땅덩어리의 경우는 필드라기보다는 아예 ‘마수 양식장’이라 부르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말한 필드란 그런 시시껄렁한 곳들이 아니었다.

“있잖아요, 마경.”

“···‘마경’을 말인가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되묻는 이본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마경이요.”

고위급 마수가 출몰하거나, 규모가 나라급으로 거대한 필드를 일컬어 마경(魔境)이라 부른다.

한반도의 경우는 북한이 위치했던 곳에 마경이 자리해 있었다.

이터니티의 세계관에서 북한은 마수의 준동에 멸망한 지 오래인 국가였으니까.

지금은 온갖 마수들이 들끓는 곳으로 거대 길드가 아니고서는 손조차 데기 어려운 곳이 바로 마경이었다.

마경을 손대느니 차라리 지하던전을 파고드는 편이 훨씬 수지가 맞았으니 말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초인의 관점에서의 이야기다.

‘파랑이가 좋아 죽겠지.’

마수라면 환장하는 파랑이한테 마경은 별천지였다.

거기다 풀어놓으면 그 식충이 때문에 깨져 나가는 내 통장에도 여유란 게 생기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 이본느를 보며 내가 씨익 웃어 보였다.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까 보고 결정하시죠.”

“?”

내가 시선을 돌리자 의아한 표정으로 그곳을 쳐다보는 이본느.

“흐끅!”

“힉!”

그곳에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색이 된 쌍둥이 자매와 놀아 주고 있는 한세연이 있었다.

***

······고르고프는 언데몬 중에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이가 아무도 없자 미련 없이 대성당을 떠났다.

한편, 천우진을 비롯한 일행은 대성당의 외부에서 멍하니 휴식을 취했다.

그들에게 오늘의 사건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거미줄을 뽑는 여자 단 한 명에게 그들 전원이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런 마인을 찰나에 죽여버리던 부회장.

거기에 마지막에 공간을 열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괴물’.

“······그건 대체 뭐였지?”

은가예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괴물은 분노한 듯 사방으로 마기를 줄기줄기 발산하고 있었다.

그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마기에, 은가예는 녀석이 목이 붙은 여자 마인을 데리고 사라질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 맞다. 이해솔!”

뒤늦게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린 은가예가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그녀가 대성당의 입구를 바라보았을 때다.

“어?”

한세연이 웬 처음 보는 낯선 남자의 팔을 붙잡은 채 대성당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적갈색 머리, 물빛 머리를 한 똑 닮은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뭐야, 너희들도 왔었냐.”

아는 체를 해온 건 처음 보는 인상의 남자였다.

“······누구세요?”

은가예가 눈을 깜빡였다.

“아.”

나는 의아해 하는 은가예를 보곤 뒤늦게 이본느가 걸어준 마법으로 외견을 바꿨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거스트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야 내가 외견을 바꿨다는 걸 봐서 안다 치고······’

얘는 어떻게 안 거지?

나는 아까부터 내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한세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알아봤기에 내가 외견을 바꿨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날 알아본 거야?”

“해솔이니까.”

“······.”

···이건 무슨 추상적인 대답이지.

이내 한세연이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 의아해 하는데 한세연이 입을 열었다.

“얼굴 바꿨었네?”

“······.”

내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

······오거스트와의 사건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오후 4시.

나는 이본느와 언데몬의 마인들, 그리고 한세연과 함께 강원도 철원의 너머, ‘마경’에 들어와 있었다.

“이본느님의 공간마법은 정말 대단하네요.”

“장기랍니다.”

내 놀랍다는 말에 이본느가 나직이 웃어보였다.

마경의 일대는 협회의 엄중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우리는 이본느의 공간도약을 통해 이를 가볍게 지나친 것이다.

물론, 모두가 이동하기 위해서 이본느가 고생을 좀 해야 했지만.

그때, 아렌이 회의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이런 곳에 우리가 살 곳을 만들 수 있다고?”

“믿으라니까. 파라다이스야.”

“···파라다이스는 무슨.”

아렌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경의 마수를 사냥할 수 있다면 그 부산물을 통해 떼돈을 벌어 들일 수 있다.

하지만 고위급 마수가 즐비한 마경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경 처음 와봐요오!”

“니엘도요!”

리디아와 니엘은 소풍을 온 아이들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마경은 수풀과 돌, 해를 가리며 무성하게 자라난 울창한 나무만이 즐비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수가 안 보이는 건 좀 이상한데.”

마수 천국이라는 마경에 들어왔음에도 그 흔한 마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것에 아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가 아까부터 줄곧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

“네가 앞장서는 거 아니었냐?”

“나보다 쟤가 더 잘 알거든.”

내가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는 한세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입으로는 한세연이 더 잘 안다고 말했으나, 나는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었다.

위치조차 분간이 안 가는 숲 속에서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으니까.

다만, 한세연은 마치 처음부터 많이 와본 사람처럼 거침없이 길을 나아갔다.

그때, GPS로 위치를 파악하던 마인, 백건우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해, 해솔님.”

“예?”

“이 길, 정말 맞는 겁니까?”

“예, 맞는데 왜요?”

“하지만 이 길로 가면······”

말끝을 흐리며 표정이 굳는 백건우. 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 길로 가면 뭐가 있습니까?”

“······어둑시니의 영역이 나옵니다.”

어둑시니.

그 이름이 나온 순간, 모두의 걸음이 뚝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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