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02화 (103/226)

§ 102화

마경의 어둠, 안식을 가져오는 그림자, 모든 것을 쓸어 담는 탐욕······

그것이 언제부터 마경에 자리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어느 날 불현듯이 나타나 불현듯이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을 뿐이다.

마경의 깊숙한 곳에는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장소가 존재한다고.

그 어떤 초인이나 마수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그림자’의 영역. 이곳을 일컬어 통칭 ‘어둑서니의 영역’이라 부른다.

초인협회에서는 토벌할 수 없는 재앙(災殃)을 뭉뚱그려 ‘군주급’이라 지칭하는데, 어둑서니가 바로 이 군주급에 속하는 마수였다.

그랬기에, 백건우의 입에서 ‘어둑서니’란 이름이 튀어나오자 마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졌다.

“어쩐지 마물 한 마리 보이지 않더니만······”

아렌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죠, 이 이상 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본느는 아렌의 말에 답하는 대신 차분한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해솔님, 이유가 있어서 저희들을 이곳에 데려오셨다고 생각됩니다. 설명해 주시겠어요?”

“예, 설명하죠.”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곳에는 더 이상 어둑서니가 없거든요.”

“어둑서니가 없다고요?”

“예, 없습니다.”

나는 단정 짓듯이 말했다.

“얼마 전에 달아나는 걸 제가 보았거든요.”

정확히는 누군가에게 깃든 거였지만.

나는 한세연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둑서니라는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재미있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당연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모르도가 지내던 장소였으니까.

한세연이 마치 여러 번 와본 장소처럼 마경을 산책하듯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한세연에게 깃든 어둠, 모르도가 바로 마경에 자리 잡은 재앙, ‘어둑서니’의 진정한 정체였으니 말이다.

상황이 이랬기에 내가 헛소리를 지어낼 때마다 주변은 진지하게 경청하거나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한세연은 입가를 가리곤 피식피식 웃으며 재미있어했다.

“역시 ‘그분’이 한 일이었군요.”

“예, 노아님이 한 일입니다.”

“하긴, 그분이라면 어둑서니가 도망칠 만도 ······”

나는 ‘노아’의 이름을 팔았다.

마치 치트키처럼 노아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수많은 위업을 세운 노아는 데몬스폰들조차 경배할 정도로 초인사회에서는 대단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였으니까.

“어둑서니가 달아났으면, 구각귀가 다시 나타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녀석도 처리했다고 들었습니다.”

“···대, 대단하군요.”

나는 말문이 막힐 때마다 노아로 때웠다.

문득 너무 팔아 재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잠깐 들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카데미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 노아가 이 소식을 들을 일은 절대 없을 테니.

“하지만 어둑서니가 다시 돌아왔을지도 모르니 확인은 해야겠습니다.”

내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이본느가 한 말이었다.

“그러시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본느가 마법진을 띄웠다. 그곳을 통해 불길을 두른 환수가 소환되었다.

─퀴이이!

거친 울음을 토하는 화염의 도마뱀. ‘샐러맨더’였다.

녀석은 이본느의 의지에 따라 어둑서니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샐러맨더가 정찰을 나간 사이, 마인들은 휴식을 준비했다.

결계가 쳐지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조리도구, 테이블, 의자 등, 각종 물건들이 쏟아져나온다.

테이블 세팅부터 조리까지 전문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오거스트가 데몬스폰을 만드는 최우선 기준은 ‘재능’이에요.”

팬에 스테이크를 올리고 화려한 불쇼를 선보이는 백건우를 보며 이본느가 말했다.

“조리, 축구, 노래, 체스 등 가리지 않죠.”

“음, 그러니까,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이들을 입맛대로 골라서 데몬스폰으로 만들었다는 건가요?”

이본느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 처지가 좋지 못한 사람을 데려가기도 하지만, 영상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권유하기도 한답니다.”

참고로 저는 외모였답니다? 농담조로 말하는 이본느를 보며 내가 혀를 내둘렀다.

‘미친놈인 줄은 알았는데, 이건 상상을 초월하네.’

나는 그저 재능이라길래 초인으로서의 재능인 줄 알았지···

이런 디테일까지는 게임에서도 나오지 않았기에 처음 알았다.

뭐, 오거스트의 기행 덕에 언데몬에도 상당수의 전문가가 포진한 건 좋았지만.

그렇게 순식간에 배식되는 스테이크, 새우구이, 연어, 샐러드······

···여기 야외 맞지?

예상 밖의 퀄리티에 얼이 나가기도 잠시. 내 옆에 그릇을 놓고 앉는 한세연을 돌아보았다.

나는 최근에 한세연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

과연 한세연이 어느 정도 화가 나야 마기의 폭주화가 일어나는지에 관해서였다.

일전에 오거스트를 상대로 모르도가 폭주 직전까지 갔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화를 내게 하려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공부 중인 책을 먼저 본다고 뺏기도 하고, 총기 손질을 방해하고, 혼자 앞장서라며 마경에 내버려 두기도 했는데······ 전부 실패했다.

사흘째인 오늘은 미친 척 세게 나가볼 생각이었다.

슥─

나는 한세연이 고기에 젓가락을 가져가기 무섭게 잽싸게 뺏어갔다.

“······.”

한세연의 젓가락이 멈춘다.

“너 빵 잘 못 먹지? 가져간다.”

나는 보란 듯이 그릇을 들어 메인디쉬라 할 수 있는 스테이크 반쪽과 빵을 내 그릇에 털어 넣었다.

“이거 맛있네.”

고기를 쩝쩝거리며 먹자 음식을 빼앗긴 한세연이 나를 보며 눈을 깜빡인다.

내가 봐도 쓰레기 같은 짓거리에 너무 과했나 싶어 살짝 후회가 들 때였다.

“여기 새우도 있어.”

“?”

눈을 깜빡이던 한세연이 돌연 말갛게 웃더니 제 그릇에 있는 새우를 내게 전부 덜어주었다.

“배고프지? 많이 먹어.”

“어, 어···”

어색하게 먹는 나를 턱을 괴고 작게 웃으며 구경하는 한세연.

······데미지가 전혀 박히지를 않는다.

“음.”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서 재잘거리며 식사 중인 리디아를 건드려봤다.

“아앗!”

새우를 빼앗기 무섭게 바로 입질이 왔다.

“내 새우!”

눈에 불을 켜고 새우를 되찾으려 드는 리디아.

다가드는 젓가락을 요리조리 피해 새우를 입에 넣자 리디아가 울상을 지었다.

‘이게 맞지.’

내가 정상임을 확인한 나는 만족스레 리디아의 그릇에 내 새우를 덜어주었다.

“니엘은요? 니엘도 주세요!”

니엘의 그릇에도 덜어줬다.

“고맙습니다아-!”

개인적으로 새우는 잘 못 먹는다.

***

샐러맨더가 돌아온 건 우리가 휴식을 취한 지 30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안전하다고 합니다.”

샐러맨더와 대화를 나누듯 고개를 끄덕이던 이본느가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마인들 사이에서 작은 환성이 터져나왔다. 어둑서니의 영역은 일종의 불가침지대였던 것이다.

그곳에 거점을 만든다면 오거스트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을뿐더러 마음 놓고 마수를 사냥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게 뒷정리가 끝나고 다시 이어진 행군.

마경 마경 노래를 불러대던 리디아와 니엘은 금새 풀이 죽었다.

보이는 거라곤, 숲, 숲, 숲.

모르도가 남긴 영향 탓에 우리는 그 와중에 단 한 마리의 마수조차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다.

마수를 사냥한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던 두 아이가 흥미를 잃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샐러맨더가 20분만에 오간 어둑서니의 거주구역은 1시간이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숲에 땜빵이라도 난 듯, 축구장 수십 개 너비로 펼쳐진 드넓은 공터.

“···으음,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이곳은 원래고블린 군락이 있던 곳입니다.”

백건우의 중얼거림에 내가 혀를 내둘렀다.

‘아주 거하게도 잡수셨네.’

이건 누가 봐도 모르도가 주변을 죄다 집어 삼켜버린 모습이었다.

뭐, 모르도가 주변을 싹 청소해 놓은 덕에 지낼 곳을 마련하긴 딱 좋아 보였지만.

그나저나.

“집은 어떻게 만드시려고요?”

“후후, 그건 어렵지 않답니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수상쩍게 웃어 보이는 이본느.

그때, 갑자기 땅이 울렸다.

쿵, 쿵, 쿵, 쿵.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골렘 두 기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골렘의 어깨에 올라탄 건······

“니엘이네.”

니엘과 리디아가 각 골렘의 어깨에 올라타 까르르 신나하고 있었다.

어쩐지 좋아라 숲속으로 뛰어가더니만.

저 골렘은 돌을 다루는 니엘의 능력이었다.

원작에서도 니엘의 무서움은 골렘의 군단을 만드는 능력에 있었으니까.

쿠구궁. 쿠궁.

누군가 건네준 설계도를 가지고 골렘을 이리저리 재조립하는 니엘. 차츰 저택의 모양이 갖춰진다.

“···음.”

나는 저 나이 때 레고 가지고 놀았는데, 니엘은 집을 짓고 놀고 있었다. 그 부조리의 결정체 보며 새삼 깨달았다.

가끔 현실 같아 잊곤 하지만, 여기가 판타지라는 걸.

***

······언데몬의 이주를 도운 다음 날, 수요일. 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오거스트의 언데몬 습격사건 때 납치를 당했기에 아카데미에서 정신수습을 위해 나흘간의 휴식을 주었던 것이다.

참고로 나를 납치한 주체는 언데몬이 아닌 오거스트로 세간에 공표되었다.

이번에 연관된 협회의 인물이 모두 부회장 고르고프의 인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데몬스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는 것은 고르고프도 그다지 원치 않는 듯했다.

당장 협회의 내부에서도 데몬스폰이 되는 경우가 아예 없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언데몬을 구제하기 무섭게 바로 벼락치기 공부부터 해야했다.

당장 내일이 바로 ‘필기시험’이었으니까.

필기시험이 하루 앞이라 그런지 오늘 하루는 수업이 없는 ‘야자시간’이었다.

그런데, 책상 위에 검을 올려놓고 명상을 하듯 하루종일 눈만 감고 있던 천우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금함을 못 이긴 나는 화장실을 가는 김에 함께 나가면서 물었다.

“어디 가냐?”

“검도장.”

“···내일 필기시험인데?”

“이번 실전을 통해 내 미숙함을 깨달았거든.”

“······.”

음, 얘는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천우진은 요 며칠 내내 명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내가 알 수밖에 없는 게 천우진이 명상을 하는 장소는 바로 내 방 창문에서 보이는 공터였다.

거기가 기숙사 근처에서 마력이 가장 짙게 모이는 장소라나 뭐라나······

그것도 심지어 이놈은 명상을 효율적으로 한다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서 정좌를 한다.

하필이면 재수 없게도 그 나뭇가지가 바로 내 방 창문 앞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게 하도 신기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건 무슨 바탕화면도 아니고······

이제 그만 내 창문에서 비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지하게 커튼 좀 하나 사야겠는데.’

아무튼, 명상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마릴과의 전투를 복귀하는 거라고 한다.

그 짓을 나흘 내내하고 있는데, 복귀를 몇 번 하는 건지 새삼 존경스러웠다.

세상에 강해지는 법이 어디 하나만 있겠냐만은 천우진과 같은 방식은 개인적으로 죽어도 사양이다.

방과 후에 그리 명상을 하면서 야자시간에 이 모양이면 필기 공부는 대체 언제 하는지도 미스테리였고.

이러고도 항상 필기점수가 순위권인 게 참 더러웠다.

천우진은 ‘순간기억력’이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나서 필기 정도는 스캔하는 정도로 건너뛴다는데, 어딜 봐도 주인공 보정이다. 누군 벼락치기 한다고 바쁜데.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땐 이길 거야.”

다짐을 하듯, 내게 말하는 천우진.

그러곤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오거스트의 결계를 나는 뚫지 못했다. 이해솔.”

“······.”

정원에 나타났다고 듣긴 했는데 그걸 그새 뚫으려고 시도했구나.

은가예는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그런 괴물을 내가 30분가량이나 붙잡아 놓았다는 걸―정확히는 한세연이 붙잡아둔 거였지만―고르고프를 통해 알게 된 뒤로 천우진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내게 다짐을 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인 듯했고······

‘하긴, 충격이 크긴 하겠지.’

천우진 뿐만이 아니었다.

은가예와 아멜리아도 필기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으니까.

‘확실히 전용보구를 구해주긴 해야겠어.’

노력은 분명 강해지기 위한 왕도였지만, 내가 생각하는 강해지기 위한 수단은 이런 무구를 통한 것이었다.

당장 떠오르는 보구의 위치도 마침 ‘마경’의 부근에 있었고.

나는 창을 통해 야자에 열중인 교실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머리를 감싸쥐며 한세연에게 필기고문을 당하고 있는 은가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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