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04화 (105/226)

§ 104화.

소피아는 이해솔에게 갚지 못할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마인이 되어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오거스트의 지배 아래 생활해 왔던 그녀다.

그 지배가 풀릴 때의 해방감은 소피아에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감격스럽거늘, 이해솔은, 오거스트를 피해 숨어지내던 그들에게, ‘마경’이라는 새로운 보금자리까지 선물해주었다.

이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해솔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거래’라고만 여기고 있지만, 언데몬에게 있어서 이해솔은 오거스트란 감옥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 준 은인이자, 구세주인 것이다.

하지만 소피아는 이와는 별개로 이해솔이 강하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가 칠악의 게오르그를 처단했다고는 하나 그건 아렌의 도움이 있던 데다, 계략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여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대부분의 마인, 아니. 데몬스폰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언데몬에서는 이해솔이 사냥을 나가겠다는 이야기에, 전날부터 누가 이해솔을 보필하느냐를 두고 토너먼트까지 벌어졌다.

니엘과 리디아는 함께 가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배제되었다.

니엘은 집짓기 바빠서, 리디아는 식수 배급이라는 현실적인 이유탓이었다.

아렌은 귀찮다고 참여를 안 했고.

아무튼, 그 토너먼트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고 이해솔의 보필 역이라는 영광을 차지한 건 바로 소피아였다.

‘내가 제대로 지켜드려야 한다.’

소피아는 고블린 군락에서 자신이 이해솔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키이이익!”

이해솔이 당당히 군락의 정문으로 걸어가고, 고블린들이 나타났을 때는 더더욱 긴장했다.

‘고블린 전투병!’

대롱, 이가 나간 검, 방패 등을 지니고 나타난 놈들은 고블린 중에서도 전투에 특화되었다는 고블린 전투병이었다.

놈들은 마경의 마기에 영향을 받아 오크처럼 보일 정도로 덩치마저 비대했다.

물론 그래봤자 별것 아닌 마수인 건 마찬가지였으나, 녀석들이 대롱에서 쏘아내는 독침에 무슨 독이 발라져 있을지는 미지수였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홀로 앞서나가는 이해솔에게 주의를 주려 입을 열려던 소피아다.

그런데.

“이게 무슨······!”

눈앞에 벌어지는 참상에 소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해솔에게서 떠오른 아홉 자루의 비도.

그 아홉 자루의 비도에 실린 마력이 느닷없이 증폭하더니, 고블린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퍼억! 퍽!

떨어져 내린 비도에 맞은 고블린들이 픽픽 쓰러져나간다.

검으로 치면 검이 부러지고, 방패로 막으면 방패째로 뚫려버린다.

그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죽음의 비’였다.

“끼에에엑──!”

고블린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처참한 죽음뿐이었다.

비도는 자유의사라도 지닌 듯, 방향을 틀어 달아나는 놈들을 한 놈도 놓치지 않고 사냥했다.

결과, 30마리에 달하던 고블린들은 저항 한 번 못해본 채 순식간에 궤멸당했다.

휘리리릭.

죽음의 비가, 참상의 한 가운데 선 이해솔에게로 회수된다.

“······.”

소피아와 마인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이내 군락의 입구로 들어서던 이해솔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해요? 가죠.”

“예, 예!”

퍼뜩 정신을 차린 소피아가 얼른 이해솔에게 따라붙었다.

***

‘오, 이게 이렇게 되네.’

나는 그람의 마력이 증폭하며 나타난 현상에 내심 놀랐다.

SP를 소모해 내 자신을 강화하면, 내가 지닌 모든 능력들이 강화된다.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던 바다. 하지만 그람의 경우는 좀 더 특별했다.

그동안은 내가 능력이 안 되었기에 그람의 힘을 일부밖에 사용할 수 없었는데, SP를 이용한 강화를 하니, 그람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더해 잠들어 있던 그람의 능력마저 일부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강화된 그람은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과 속도를 자랑했다.

[보유 포인트 : 500SP]

‘포인트 벌이가 관건이라는 건가?’

쥐꼬리밖에 남지 않은 포인트를 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나는 당당히 고블린 군락으로 들어섰다.

[반복 퀘스트 : 고블린 군락을 토벌하세요! 28/150]

[고블린 로드 0/1]

[보상 : 500SP]

짜디 짠 보상이었지만, 이처럼 이터니티에는 메인 퀘스트 외에도 마수나, 악인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충당 가능한 포인트 앵벌이 기능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노력 대비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적은데다, 마경의 ‘고블린 군락’이라면 예전의 내가 시도하기엔 위험했기에 외면하고 있던 것뿐이다.

하지만 불사조의 ‘초재생’과 내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원군인 소피아와 데몬스폰들이 있는 지금이라면 나도 마음 놓고 사냥에 나설 수 있었다.

참고로, 포인트 소모를 통한 강화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유지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1회 전투에 소모되는 포인트 500SP. 고블린 군락 토벌로 벌어들이는 포인트가 500SP니, 시험으로 인한 손해는 상쇄 가능한 셈이지만······

“소피아님, 이 근처에 고블린 군락 말고 다른 마수도 있습니까?”

“···예? 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크 무리가 있긴 합니다만.”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해주는 소피아.

500SP나 썼는데 뽕빨은 뽑아줘야지.

“키이이이!”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고블린들이 움막에서 우르르 튀어나온다.

‘비도는 시험했으니 이번엔······’

내 전신에서 스멀거리며 기력이 일어난다.

피비비빅──!

순간, 사방에서 날아드는 독침다발.

소피아와 휘하 데몬스폰들이 뒤에서 날아들던 독침들을 모조리 튕겨냈다.

그러고도 나를 노리는 독침의 수는 제법 많았다.

“위험······!”

피하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본 소피아가 경고를 하려다 눈을 크게 뜬다.

날아들던 독침들이 내게 도달하지 못하고, 허공에 멈추어버린 것이다.

기력에 막힌 것이었으나 이를 느끼지 못하는 모두에게는 그저 알 수 없는 신비로만 비쳐질 뿐이었다.

그리고.

피비비빗──!

기력의 탄성에 튕긴 독침들이 이를 날린 고블린들에게로 되돌아갔다.

“키에에에!”

독침을 맞고 비명을 지르는 고블린들.

내가 걸어감에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굳어져 있는 것이 몸이 마비되는 독이 발라져 있던 듯하다.

나는 기력을 채찍처럼 사용해 굳어져 있는 고블린들을 정리했다.

퍼억! 퍽!

알 수 없는 힘에 가격당한 동족들이 쓰러지자 고블린들의 눈에 공포가 차오른다.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력의 위력도 확실히 포인트를 소모하기 이전보다 훨씬 강화되어 있었다.

“키에에에!”

마비되지 않은 고블린들이 검이나 몽둥이 등을 꼬나쥐고 달려들자, 내 가슴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던 아나스타샤가 날아올랐다.

피잉─ 피이잉─

수십(數十)의 빛의 선들이 사방으로 쏘아지며 고블린들이 털썩, 털썩 쓰러진다.

“알아서 해봐.”

끄덕끄덕.

내 말에 귀엽게 고개를 끄덕인 아나스타샤가 상공으로 날아올라 움막이 자리한 북쪽으로 천천히 비행한다.

그런 녀석의 전신에서 죽음의 빛이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까악! 까악!”

그러자 문양에 잠들어 있던 파랑이도 튀어나와 아나스타샤가 가지 않은 좌측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푸른 화광이 움막을 살라 먹으며 파랗게 타올랐다.

[고블린 32/150]

[고블린 43/150]

[고블린 52/150]

[고블린 60/150]

[고블린 74/150]

.

.

.

두 정령이 날뛰자 상태창이 무서운 속도로 갱신되어간다.

음, 이건 뭐랄까···

양민 학살?

아예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달려드는 고블린들은 모두 내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도중에 쓰러져나가고 있었다.

이를 행하는 것은 바로 소피아였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계속 쳐다보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달려드는 고블린을 머리부터 사지까지 절단내 버리는 소피아.

퍼억! 퍽!

거대한 대도로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아예 짓뭉개버리는데, 인상이 굉장히 강렬했다.

이지적인 모습이어서, 섬세한 검술을 구사할 줄 알았는데, 저런 무식한 공격을 퍼부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외견하고 전혀 매치가 되지를 않았다.

‘소피아 포코르니.’

내 기억에 없는 이름인 것을 보면 그녀는 오거스트의 언데몬 습격 때 죽었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역시 간부인 건가. 확실히 대단한 실력자였다.

“취이이이!”

포효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내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2m가 넘어가는 거대한 동체를 가진 거구의 고블린이, 대검을 들고 나타나 있었다.

목에는 사냥한 것으로 보이는 인간과 마수의 해골을 목걸이처럼 주렁주렁 매달았는데, 고블린이 아니라 흡사 오우거를 보는 듯한 위압감이었다.

“고블린 로드입니다. 마경의 영향을 받아 강화된 개체인 것 같습니다. 통상의 위험도는 4성급이지만 저건··· 5성급에 준하는 것 같군요.”

달려드는 고블린을 토막내던 소피아가 설명해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군락이라면 있을 거라곤 생각했습니다.”

나는 상태창을 통해 고블린 로드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150마리에 달하는 고블린무리를 통솔할 정도면 고블린 로드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도 했고.

“맡겨주시면 처리하겠습니다.”

대도를 지면에 쾅. 찍으며 말하는 소피아. 역시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제가 하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힘은 전반적으로 마수에게 상극이 되는 힘이었다.

신수 불사조의 불길, 빛의 정령 아나스타샤의 빛, 생명력으로 대변되는 기력.

마기를 지닌 존재에게는 치명적인 독과 같은 존재가 바로 나였다.

일전 오거스트의 수하, 세오릭같은 경우는 마기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기로 신체를 강화할 뿐, 공격에 있어서는 마기에 의존하지 않는 순수한 무투가였으니까.

반면, 내 앞에 나타난 이 고블린 로드는 마기에 휘둘리는 녀석이었다.

‘5성급.’

천우진이나 은가예, 아멜리아와 함께 사냥할 때도 힘겹게 사냥했던 것이 바로 5성급 마수였다.

하지만 지금 고블린로드를 보자니 그다지 대단치 않아보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나도 많이 성장했다는 걸까.

‘영핵은 안 노려도 되겠네.’

굳이 영핵을 노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해보였다.

“위험하면 개입하겠습니다.”

“그래주세요.”

언제라도 개입할 자세를 취하는 소피아. 고개를 끄덕인 내가 고블린 로드를 향해 나아갔다.

내 뒤로 아홉자루의 비도가 떠오른다.

기척을 느꼈는지 고블린 로드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갔다.

“···키이?”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그마한 인간 하나가 자신을 향해 혼자 걸어오는 이 상황이 녀석의 멍청한 머리로는 이해를 할 수 없나 보다.

슥.

내가 손을 들어 올렸다.

내 뒤에 떠올라 있던 비도 한 자루가 녀석을 향해 빛살처럼 쇄도했다.

퍼억!

방심하던 고블린 로드의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비도.

“키에에에에에엑!”

고블린로드가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어린 괴성을 토한다.

녀석이 비도를 빼고자 했으나, 한 번 파고든 비도는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블린로드의 눈이 붉게 충혈된다.

분노에 취해 시꺼먼 마기를 풀풀 휘날리며 나를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 로드.

우웅···

여덟 자루의 비도가 항마력을 담고 하얗게 빛난다.

그것들이 땅을 울리며 달려드는 고블린 로드를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카앙, 카앙!

대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비도를 쳐내며 고블린 로드가 전진한다.

하지만 비도는 떨어지지 않고 여지없이 녀석의 전신에 박혀 들었다.

“키이이이이!”

아홉 자루의 비도를 온몸에 꽂은 녀석은 전신에 퍼지는 항마력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눈에 담긴 것은, 오로지 나를 찢어 죽일 일념만으로 타오르는 거대한 살의였다.

쿵, 쿵!

무거운 걸음을 내딛은 고블린 로드가 내 앞까지 도달한다. 녀석의 두 눈 가득 내 모습이 담겨 들었다.

“키이이이!”

다가든 이상 이긴 거라 생각하는지, 승리의 포효를 터트리는 고블린 로드.

그 덜떨어진 지능에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뒤 좀 봐라.”

화르르륵─ 위이이이잉─

고블린 로드가 등진 상공.

두 정령이 밝게 타오고 있었다.

파랑이의 푸른 불길이.

아나스타샤의 광포화가.

“취이?”

한층 밝아진 세상에 녀석이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그런 녀석의 두 눈에 아릿하게 박혀 드는 두 개의 거대한 기운.

─키에에에에에!

빛과 불길이 엄습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고블린로드는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터엉!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적마석덩어리.

“까악!”

누가 집어 갈 새랴 파랑이가 적마석을 낙아 채 콕콕 쪼아 먹는다.

[반복 퀘스트 고블린 군락 토벌을 끝마쳤습니다. 보상으로 500SP가 수여됩니다.]

[보유 포인트 : 1000SP]

나는 상태창을 대충 훑곤,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소피아가 잽싸게 달려온다.

“훌륭한 전투셨습니다!”

그녀의 두 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살짝 흠칫했지만, 물어볼 게 있었기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소피아씨.”

“예!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고블린을 전부 몰살시킬까요? 아, 다 죽었네요. 그럼 다른 군락의 고블린을 찾아서 몰살을······”

대검을 쿵 찍으며 서슬퍼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소피아.

내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건 됐고요, 이 근방에 오크 군락이 있다고 하셨죠?”

“예, 조사한 바로는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

“가죠.”

“예?”

“안내해주세요.”

500포인트나 썼는데, 뽕빨은 뽑아야지.

나는 어느새 더욱 부담스러워진 눈으로 앞장서는 소피아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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