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이해솔이 사냥을 나가 있는 한편 언데몬의 ‘임시주방’에서는 첫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하, 세연님은 요리가 능숙하시군요. 이렇게 정성스럽게 해주시면 해솔님도 기뻐하시겠습니다.”
“후후, 그럴까요?”
“그럼요, 당연합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정성스럽게 식사를 차려놓으면 해솔님이 아니라 누구라도 감동 받을 겁니다.”
하얀 앞치마를 메고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의 간을 보는 한세연에게 백건우가 장담하듯 힘주어 대답했다.
한세연은 이해솔이 사냥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사냥을 나간 이해솔이 돌아오는 것을 저녁을 차려놓고 마중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두 사람이 온 시각이 얼추 비슷했던 데다, 이해솔이 사냥을 나갔다는 사실마저 알고 있었기에 언데몬에서는 당연히 한세연이 이해솔의 연락을 받고 온 것이라 판단하곤 흔쾌히 주방을 내어주었다.
그런 한세연을 대하는 데몬스폰들의 태도는 경계를 하기는 커녕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게, 마경의 땅에서 모르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과, 이 장소를 언데몬의 거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 것이 한세연이라는 것을 이해솔로부터 전해 들었던 것이다.
이해솔로서는 모르도의 영역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세연이 필요했기에 그리 둘러댄 것이었으나, 그 덕분에 한세연은 언데몬으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었다.
거기에 청순한 외모에 성격까지 밝은 한세연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그녀는얼마 지나지 않아 데몬스폰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마을을 뛰놀던 리디아와 니엘이 한세연을 보더니 얼어붙어선 아예 근처에도 오지 않고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한세연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이해솔이 먹어 줄 생각에 즐겁게 요리를 했다.
그때, 임시주방의 문이 열리며 이본느가 들어왔다.
“좋은 냄새가 나서 들어와 봤어요. 식사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네요.”
“하하, 물론입니다. 세연님의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저는 손 놓고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스타셰프가 그런 엄살을 피우면 어떻게 하나요.”
이본느가 입을 가리며 웃어 보였다.
백건우는 데몬스폰이 되기 이전에는 예능에도 자주 출현하던 유명인으로 언데몬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가 담아놓은 동태전 한 점을 집어 먹은 이본느가 행복하단 미소를 지었다.
“음, 맛있네요.”
바삭하면서 부드럽게 혀에 착 감기는 게 일품이다. 그녀는 최근 ‘한식’에 꽂혀 있었다.
물론 이본느가 주방을 찾은 이유는 음식을 맛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녀는 즐겁게 요리를 하는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세연을 통해 이해솔이란 사람에 관해 좀 더 정확히 알아두고 싶었다.
요 며칠 이해솔과 사이가 가까워졌다곤 하나, 이본느는 이해솔에 관해 무엇 하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던 것이다.
그저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생도라는 것이 이본느가 이해솔에 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랬기에 한세연과 함께 요리를 하면서 친해지려는 것이었는데······
‘안되겠네’
이본느가 쓴웃음을 지었다.
즐겁게 요리를 하는 한세연에게서는 방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아우라가 물씬 풍겨왔다.
백건우도 이 때문에 한세연 쪽은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결국 이본느는 동태전만 집어먹다 주방에서 물러나야 했다.
***
식사 준비가 모두 끝난 뒤에야 이본느는 한세연을 불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한세연과 조금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이본느는 그녀에게서 이해솔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세연은 마음씨가 좋아 대화하기가 편한 상대였으나, 무언가 굉장한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부드럽게 웃고 있는데, 웃고 있는 것 같지가 않은 느낌이랄까.
이쪽과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할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기분을 받았다.
분명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어주고 공감도 잘해주고 있었기에 자신이 왜 이런 느낌을 받는지 알 수가 없어 이본느는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이해솔’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그때만큼은 한세연의 분위기가 급변한다는 사실이었다. 상냥한 말투에 단호함이 더해지는 것이다.
마치 관심사가 오로지 ‘이해솔’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오랜 도피생활로 감이 좋은 이본느는 말을 신중히 골라가며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부터 상대에 맞추어 대화를 하는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더더욱 ‘선’을 지켜가며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이해솔에 대한 정보는 제대로 된 것을 하나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세연은 어딘가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이야기 내내 입가가 올라가 있었는데, 그녀와의 대화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를 생각? 아니,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를 보고 있는 거지?’
그녀의 집에는 바닥에 깔린 양탄자와 미완성된 벽난로, 나무 테이블이 전부인데다, 그것들을 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이본느가 원인 모를 즐거움에 사로잡힌 한세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문득 한세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아해하던 이본느는 뒤늦게 한세연이 일어난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 왔군요.”
이해솔과 소피아 일행이 그녀가 쳐놓은 마을의 결계를 통과하는 것이 기감에 걸려든 것이다.
이본느는 놀랍다는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기도 전에······’
그녀보다도 먼저 이해솔의 도착 사실을 눈치챈 것에 이본느는 한세연이 단순히 일반적인 아카데미 생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해솔님.”
“소피아씨도 고생하셨습니다.”
“호위로써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여 보이는 소피아.
그녀는 대단히 의욕이 넘치는 여자였다.
그 의욕이 좀 과해서 앞서나가려는 태도 때문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몇 시간 함께 있어 보니 금방 적응해버렸다.
마수를 앞에 두고 이름만 부르면 눈을 반짝이며 ‘몰살시킬까요’라는 말부터 먼저 나오는데, 아무래도 입버릇인 모양이다.
그 외에는 호위를 완벽 그 이상으로 소화해주었기에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나는 그 흔한 위협 한 번 당하는 일 없이 주변의 마수들을 일소하고 마음 편히 경험치를 쓸어 담을 수 있던 것이다.
심지어 말도 무척 잘 들어줘서 죽이지 말고 부상만 입혀 달라는 내 무리한 요구에도 잠깐의 의문만 가졌을 뿐, 바로바로 들어주었다.
힘 조절을 제대로 못해서 실수로 죽이는 경우가 많아 내가 막타를 챙기기가 어렵긴 했지만······ 그만큼 많이 잡았으니 불만은 없었다.
우리는 무려 고블린군락을 시작으로 오크, 코볼트, 다이어울프까지 소탕해버린 것이다.
그저 강화된 이상의 투영자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이나 해볼 생각에 가벼운 기분으로 나선 것이었는데, 나조차도 미처 예상치 못한 전과를 올려버렸다.
‘이야, 경험치 싹 다 늘었네.’
고작 이 한 번의 출정으로 내가 얻은 것들은 많았다.
포인트는 2000SP나 얻었으며, 아나스타샤의 레벨은 4에 가까워졌고, 파랑이의 공복감도 채울 수 있었다.
스킬들의 레벨이 전반적으로 올라갔음은 물론이다.
나 혼자서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사냥은 파티가 진리였다.
“해솔님, 부산물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알아서 처리해주세요, 제 몫은 신경 쓰지 마시고요.”
솔직히 내 몫을 챙겨달라 하기도 민망한 게 파랑이가 먹어 치운 양이 어마어마해서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소피아는 오히려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희를 위해 챙겨주시겠다니···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소피아가 대검을 휘둘러 오크들을 토막 쳐놓으면 파랑이가 배식을 기다리던 아이처럼 달려가 사체에 얼굴을 파묻곤 쪼아먹었었다.
얘가 처음에는 본인이 혼자 사냥하더니, 그러지 않더라도 소피아가 알아서 식사를 마련해준다는 것을 깨닫고는 영리하게 사냥을 포기한 채 소피아를 졸라댔던 것이다.
그런데 소피아는 그것을 귀찮아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다.
─까악!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마련해드리겠습니다.’
퍼억! 퍼억!
마치 먹어주는 게 감사하다는 것마냥 파랑이에게 마수를 모이처럼 주는데. 꼭 애를 돌보는 보모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걸 또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먹으며 보채는 파랑이는 정말 못 봐줄 수준이었고.
보다 못한 내가 파랑이를 보내버리고, 소피아에게도 주의를 줘서 망정이지 내버려 뒀으면 파랑이는 사냥이 끝날 때까지 마수를 한 마리도 사냥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소피아의 태도는 고마웠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나로서도 부담스러웠기에 주의를 줄 필요가 있었다.
“사소한 일에는 일일이 고마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
어째 더 감동스러워하는 게 아무래도 역효과가 나버린 듯했지만.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마침 출출하던 차였는데 마을에서 김치찌개 냄새가 물씬 풍겨오자 나는 입맛을 다셨다.
그때, 그들에게 익숙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이본느와 한세연이었다.
“뭐야, 언제 왔어?”
나는 한세연을 보며 의아해했다.
분명 사냥 가기 전까지만 해도 없던 것 같은데.
“좀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후후, 세연씨가 해솔님을 드린다고 열심히 식사도 준비해 놓았답니다.”
이본느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세연을 돌아봤다.
“정말?”
“응. 곧 저녁이잖아.”
한세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설마 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내심 감동이었다.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한세연의 모습에 나는 픽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빨리 먹으러 가자.”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던 나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오늘 사냥하러 간다고 말했던가?
뭐, 와서 들었겠지.
─해솔니이임!
─기다렸어요오!
사소한 의문을 뒤로 한 나는 어느새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리디아와 니엘, 그리고 모여든 데몬스폰들에게로 걸어갔다.
***
한세연이 차려준 식사로 저녁을 마친 나는 이본느와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은가예를 ‘마경’에서 단련시킬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동안 나는 게임의 시나리오보다 훨씬 빠르게 진도를 빼왔다.
3학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잡을 수 있는 게오르그를 1학년 1학기에 잡아버린 것만으로도 모자라 오마의 일인인 오거스트에게도 눈도장이 찍혀버린 것이다.
기존의 시나리오보다 무려 3년이나 앞서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파워밸런스를 따라오지 못한 주연들이 뒤쳐지는 현상이 발생해버렸다.
제아무리 주연이라지만, 고작 1학년 생도인 주연들이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퀘스트 클리어 속도를 늦출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천우진이라면 노아가 있으니 어찌 될지 몰라도 은가예나 아멜리아는 아닌 것이다.
이대로 방치한 채 내버려 둔다면 두 사람은 그들에게 눈독을 들인 마인들에게 반드시 살해당하게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인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재능과 능력을 타고난 것이다.
당장 아멜리아만 해도 걸어 다니는 순수마력덩어리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혼자 내버려 둔다면 로마노가에 도사리는 ‘위협’으로부터 배제당할 게 뻔했다.
같은 반 생도로서 그건 마냥 보고 넘어가기 어려웠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두 사람을 방치해두는 것은 미친 짓이다.
조금만 도와주더라도 충분히 1인분 이상의 활약을 할 수 있는 주연들을 버려두는 건 내 스스로 자체 패널티를 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그 둘을 단련시키고 무장을 하기에 마경만큼 좋은 환경도 없었다.
그랬기에 이본느에게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마주하고 앉은 것이다.
언데몬의 거점은 누구에게도 들어나서는 안되기에 이본느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어렵사리 말을 꺼냈는데······
“해솔님이 원하면 저는 상관없습니다.”
“······.”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허락해버리는 이본느의 태도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괜찮은 겁니까?”
“물론 괜찮지 않습니다. 보안은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곳은 해솔님이 제공한 장소입니다. 비밀만 지켜진다면 해솔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저희는 상관없답니다.”
내가 침묵하자 이본느가 작게 웃어 보였다.
“그러니, 앞으로도 제게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음. 저렇게 말하니 왠지 미안해지네.
“고맙습니다.”
이본느와의 합의는 그렇게 내 예상과는 달리 대단히 싱겁게 끝이 났다.
***
기말고사가 끝난 이터니티 아카데미는 매일이 축제 분위기였다.
곧 있으면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1학기의 특기 수업도 모두 종료된 것이다.
그동안 학점으로 마음을 졸였던 생도들은 마음껏 늘어졌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방과 후 마력훈련장.
퍼벙─! 퍼버버벙─!
끊임없이 날아드는 마력구들을 검으로 쳐내는 생도가 있었다.
삐이이이─
[48점]
[하드모드를 계속하시겠습니까?]
“······계속.”
은가예의 가슴이 가파르게 오고내렸다.
그녀는 사우나에 들어온 사람처럼 전신이 땀에 축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하드모드, 속행합니다.]
3, 2, 1.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은가예는 애써 후들거리는 손으로 검을 힘주어 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날아드는 마력구들을 얼마 쳐내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 그녀는 바닥에 대자로 뻗어 숨을 골랐다.
“···하아, 하아.”
그런 은가예의 머릿속은 얼마 전 대성당에서 싸웠던 거미줄을 사용하던 마인과의 전투로 한가득이었다.
그녀가 파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바라보았다.
당시, 그녀는 전력으로 기프트를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드레스 옷을 입은 마인이 뿜어낸 검은 거미줄을 끊어내지 못했다.
만약 거기서 고르고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를 비롯한 모두는 분명 ‘죽었다.’
은가예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은 그날 거기서 죽은 것이라고.
그날 이후로 그녀는 이렇듯 방과 후가 되면 마력훈련장에 와서 진이 모두 빠질 때까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다 돌아갔다.
죽음에 대한 기억은 매서운 채찍이 되어 그녀를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후우.”
숨을 모두 고른 은가예가 일어나려 할 때였다.
“다 끝났냐.”
“······아직.”
말을 걸어온 생도는 이해솔이었다.
여전히 기척 하나 없이 나타나는 녀석이다.
“너 이거 말고 할 거 없지?”
“응, 딱히.”
“잘됐네.”
“······?”
은가예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해솔을 올려다볼 때였다.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경 한번 안 가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