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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06화 (107/226)

§ 106화

주연들의 레벨업은 이터니티 게임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진도는 뺄 대로 뺐는데, 주연들의 레벨이 따라오지를 못한다?

성장 가능성만 높은 패를 써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임으로 따지면 스테이지 10을 내 멋대로 개방했는데 아군진영이 따라주지를 않아서 박살 나버린다는 소리였다.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아간 진도만큼 아군진영도 성장할 필요성이 있었다.

물론 내가 보모도 아니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떠먹여 줄 생각은 없다.

애초에 하고 싶어도 내게 그런 능력은 없거니와 설령 있다 해도 귀찮아서 사양이었다.

그건 주연만이 아니라, 나를 제외한 만인에게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그러니까······

“사냥하고 와.”

“까악!”

머리 좀 컸다고 반항하는 파랑이.

대충 해석해보자면 ‘내 포만감 보면 모르겠냐, 사냥하고 왔다!’ 하는 울부짖음이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는 개, 새소리다.

“소피아가 나 몰래 간식 가져다주는 거 다 알고 있어.”

“······.”

당당하게 부리를 까닥이다 멈칫거리는 파랑이.

“죄, 죄송합니다.”

파랑이 옆에 벌을 서듯 함께 서 있던 소피아가 죄인마냥 고개를 푹 숙인 채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린다.

대검을 들고 마수를 짓뭉개고 다니는 여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처량한 모습이다.

물론 그런다고 있는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알았으면 더 이상 파랑이한테 간식 주지 마세요.”

“예, 다시는, 절대, 주지 않겠습니다.”

다짐하듯 말을 끊어가며 또박또박 말하는 소피아.

파랑이가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지었으나, 자업자득이었다.

요 며칠 사냥하라고 마경에 풀어놨더니 얘가 하라는 사냥은 안 하고 소피아가 가져다주는 간식만 야금야금 받아 처먹고 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곰을 야생에 적응하라고 풀어놨는데 등산객들이 귀엽다며 주는 간식에 심취해 길목을 점거하고 드러누운 격이었다.

보모를 방패 삼아 방구석 니트화가 진행 중인 파랑이.

지가 부리만 딱딱거리면 간식이 자동으로 나오는 줄 안다.

‘뭐, 솔직히 저래도 상관 없기는 한데···’

정령석만 잘 싸주면 나야 상관없었고, 파랑이는 사냥유무와 관계없이 포만감만 오르면 이를 경험치로 치환해서 알아서 레벨링을 해버리는 부조리한 존재였다.

그러니까 파랑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장 효율적으로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뿐이었다.

······생각하니까 빡치네.

누구는 뼈 빠지게 사냥해야 하는데, 누구는 드러누워서 간식이나 받아먹고 레벨링을 하고 있다니.

내 개인적인 악감정을 재쳐두고서라도 이는 소피아한테 엄청난 민폐였다.

정작 소피아는 민폐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아무튼.

하여간 소피아는 파랑이한테 너무 무르다.

게임에서는 그냥 정령 풀어놓으면 알아서 자동사냥 했는데······

이놈은 누구를 닮았는지 잔꾀만 기가 막히게 잘 부렸다.

“하루에 30마리.”

“?”

“적마석 없음.”

“?”

알아듣지 못하는 척 부리를 갸웃거리는 파랑이. 얘 지능이 몇인데 이걸 못 알아들을 리가.

내가 자신의 의사표현을 씹어버리자 파랑이가 도움을 바라는 눈초리로 소피아를 돌아본다.

소피아는 정말 도와주고 싶은지 입을 우물거렸으나 내게 다짐을 한 지 불과 20초도 지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몇 가지 규칙을 더 추가했다.

“지나가다 사람 보인다고 엉겨 붙지 말기. 사냥 끝날 때까지 마을에 들어오지 말기.”

“잘 다녀오십시오. 파랑님.”

“······.”

소피아의 마중이 확인 사살처럼 내리꽂히고, 파랑이는 마을에서 쫓겨났다.

아, 참고로 언데몬에서는 파랑이를 자연계 정령이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계 정령은 대부분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다.

그래서 소피아도 저렇게 파랑이에게 잘 다녀오라며 안부 인사까지 해주는 것이다.

물론 파랑이는 정령 중에서도 가장 상위의 존재라는 불사조였지만 이 사실까지 아는 이는 얼마 없었다.

불 계열의 정령은 넘쳐났고 그중에는 새의 형상을 취한 것도 꽤 있었으니까.

이본느나 아렌은 파랑이의 정체를 눈치챈 듯했지만, 크게 신경 쓸 것은 아니었다.

아카데미에서야 논란이 일까 봐 숨겨왔지만, 세상과 단절된 마경에서 알려진다 한들 문제 될 것은 없었으니까.

‘아나스타샤야 알아서 잘하니까 내버려 둬도 되고.’

파랑이와는 정반대로 꾀라곤 부릴 줄 모르는 아나스타샤는 혼자서도 곧잘 사냥을 해왔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정신이 공유되기에 그 부분도 문제는 아니었고. 그나저나.

나는 시선을 돌려 신기한 눈으로 마을을 둘러보기 바쁜 은가예를 바라보았다.

사실 내가 소피아를 부른 이유는 단순히 파랑이 때문만은 아니다.

은가예의 전용보구, [나겔링]은 마경의 깊숙한 곳, <서리거인>의 영역에 존재한다.

서리거인은 인간들에게 마수라 불리는 녀석들이지만, 실은 마수가 아닌 나겔링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가디언’들이다.

그리고 지금의 은가예가 서리거인의 영역에서 나겔링을 들고 나오기란 무리였다.

히든피스라고 해서 거져주는 건 아니라서 최소한의 실력제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나겔링같이 스스로 의지를 지닌 귀물은 아무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건 전용보구의 주인인 은가예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그람과 같은 반열인 [대보구]에 속하는 ‘검의 정령’이었으니까.

나같이 사기라도 치지 않는 이상 거져 얻는 건 불가능했다.

그랬기에 은가예의 일취월장을 기원하며 데려온 게 바로 ‘소피아’였다.

같은 대검계열을 다루는 소피아라면 은가예를 마경에서 안전하게 호위해줄 수 있을 뿐더러, 여러 도움도 줄 수 있을 테니까.

소피아 휘하의 데몬스폰들까지 붙여주면 은가예도 마음 놓고 마경에서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이유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예, 해솔님의 부탁이라면 기꺼이. 맡겨만 주십시오.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파랑이 문제만 아니라면 믿음직스러운 소피아가 의욕을 내보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멀뚱멀뚱 서 있던 은가예가 소피아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런 그녀의 눈은 소피아 못지않은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이해솔로부터 사전에 마경과 언데몬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게 되니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상할 정도로 의욕이 샘솟았다.

그녀는 어서 빨리 마경에 들어가 수련을 쌓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이 은가예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은가예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피아가 씨익 웃으며 신나게 외쳤다.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가볼까요?”

“예!”

“먼저 가고일 둥지부터 부수러 가죠!”

“예! ······예?”

소피아의 활력에 전염되어 무심코 외치던 은가예는 뒤늦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가고일이라고요? 그거 4성급 아니에요? 거기다 둥지라면······”

“모자라면 홉고블린, 그렘린, 오우거까지 근방에서 발견된 마수가 잔뜩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 어! 잠깐만요, 걱정이 아니라······ 잠깐만!”

이상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은가예가 당황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소피아는 그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의욕에 차 은가예의 팔을 붙들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완력이네.’

은가예가 기프트를 쓰진 않았다곤 하지만 완력으론 꽤 자신 있는 걸로 아는데 저렇게 일방적으로 끌려 나가다니··· 어떻게 된 팔이야, 저거?

***

은가예가 소피아를 비롯한 데몬스폰들과 출정을 나가는 한편, 나는 할 말이 있다는 이본느와 마주하고 앉았다.

“무슨 일이신데 그래요?”

“그게, 문제가 하나 생겼답니다.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불렀어요.”

이본느의 표정이 나름 심각해 보였기에 의아해 하자, 그녀가 지도 한 장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본 내가 말했다.

“마경의 지도네요.”

“예, 맞습니다.”

지도에는 우리가 있는 모르도의 구역이 파랑색 빗금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붉은색 ‘X’ 표시가 여러 군데에 걸쳐 표시되어 있었다.

“X표시는 5성급 이상의 마수입니다.”

“생각보다 많네요.”

“예, 어둑서니의 존재감이 사라져서 마수들의 세력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둑서니가 부재한 걸 알고선 마수들이 영역을 침범해온다는 말인가요?”

“예. 당장은 어찌 대응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마경에서의 생활은 오래 유지하는 게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이본느의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도 이래서였군.

기껏 마음 놓고 정착을 하려는데, 그 땅의 주인이 사라진 걸 눈치챈 마수들이 우후죽순으로 몰려든다면 언데몬으로서는 이를 오래 감당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래서 예전에 미리 파악해둔 거점들을 ······”

“이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되겠어요.”

이본느의 말을 끊으며 답한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들었지?”

“응.”

마침 사과를 깎은 그릇을 들고 들어오던 한세연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우리 둘의 대화에 의아해 하는 이본느를 보며 내가 테이블의 지도를 들어 보였다.

“이 지도, 빌려 가도 될까요?”

부재했던 모르도라면 지금 바로 옆에 있었다.

***

이본느의 걱정거리는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거였다.

마수를 잡는 게 아니라, 모르도가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기만 하면 그만인 간단한 작업이었으니까.

이본느에게 마경의 지도를 빌린 나는 한세연과 함께 마을을 나섰다.

“역시 큰 놈을 노리는 게 좋겠지? ······괜찮겠어?”

지도에 표시된 가장 큰 붉은 표시를 가리킨 내가 한세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응, 문제없을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한세연.

내가 가리킨 녀석은 위험도가 6성급을 넘어서는 고위 마수, <트윈헤드 오우거>였다.

모르도가 사라진 것을 직감한 녀석은 노골적으로 영역을 넓히려 하고 있었다.

놈의 터전은 모르도의 영역에서 얼마간 올라가면 나오는 협곡.

일명, <초록 거인의 협곡>이다.

‘초록’이라는 명칭은 녀석과 서리거인을 구분짓기 위함이었다.

그그그···!

우리가 모르도의 영역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돌연 숲이 어두워지더니, 나무들이 꿈틀거리며 지면을 뚫고 뿌리가 솟구쳤다.

나는 지도를 펼쳐보았다.

지도에 표시된 바로 이곳은 <다크 우드>의 영역이었다.

살아있는 생물체를 모조리 잡아먹는 식물형 마수. 어쩐지 아까부터 벌레 한 마리 안보이더라니, 이놈들이 죄다 먹어 치운 듯했다.

‘꽤 넓네.’

다크우드의 영역은 넓은 범위에 걸쳐 분포되어 있었다.

초록 거인의 협곡까지 대략 30분은 이놈들과 마주쳐야 할 듯싶었다.

휘이이익─!

그때, 간을 보듯 천천히 다가들던 뿌리의 무더기가 돌연 창처럼 찔러져 왔다.

나는 기력을 펼쳐 다가드는 뿌리들을 한 대 묶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내가 미처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뿌리들은 갑자기 우뚝 멈춰 서더니 스르륵 물러갔다.

“······.”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해진 숲. 나는 한세연을 돌아보았다.

“마기를 사용했어.”

한세연이 작게 미소 지으며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그녀의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마도구, <심연의 반지>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모르도의 기운을 개방한 것이다.

“조용히 갈 수 있겠네.”

“응, 덤벼들진 못할 거야.”

한세연의 말대로 다크우드들은 아예 숨조차 죽인 듯 얌전해져 있었다.

가뜩이나 기운에 민감한 마수들에게 모르도의 기운을 내보였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가자.”

그래도 혹시 모를 귀찮음을 방지하기 위해 한세연의 손을 잡은 나는 <기척 차단>을 펼쳤다.

***

“저긴가 보네.”

다크우드의 영역을 벗어나고 30분가량이 지났을 무렵, 험준한 협곡의 봉우리가 보여왔다.

지도와 GPS를 대조해본 결과, 저곳이 바로<초록 거인의 협곡>이었다.

나는 협곡이 보이자 멈춰 섰다.

굳이 내가 귀찮게 놈이 사는 곳까지 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놈보고 오라 하면 그만이었다.

“응.”

내가 쳐다보자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한세연.

이내, 심연의 반지를 물들였던 마기가 지워지더니, 그녀에게서 푸른 마력이 흘러나왔다.

싸아아아······

<마수지체>.

마수를 끌어들이는 독특한 향을 풍기는 푸른 마력이 숲을 밝히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반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크어어어어어!

초록 거인의 협곡.

거대한 짐승의 포효가 숲을 진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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