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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07화 (108/226)

§ 107화

마경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혼돈 그 자체이지만 마수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규율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영역’이란 게 바로 그 규율이다.

저마다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마수들이 마경에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한세연의 마력은 그 조용하던 마경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켰다.

마력의 향기에 취한 온갖 마수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외 뒤엉키며 치열한 혈투가 벌어진 것이다.

시야에 비치는 평원의 모든 곳에 마수가 뒤엉켜 있었다.

그 규모가 수천이었다.

“······음.”

예상치 못한 파급력에 나는 조용히 침묵했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PC방 차단기 스위치를 내려버렸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다.

생태계 하나가 갈아엎어졌다는 소리다.

암만 마수지체가 마수를 자극하는 특성을 지녔다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다.

‘이곳이 마경이라서인가.’

마경에 서식하는 마수들은 주변의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물며 마경은 마수가 발에 채일 정도로 넘쳐났다.

그런 곳에서 마수지체의 마력을 퍼트린다는 것은, 연못에 조약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나 마찬가지 행위라는 소리였다.

마경에 한정해서 그 능력이 몇 배로 뻥튀기가 되는 것이다.

마수지체의 능력은 가급적 봉인해두는 게 맞을 듯싶었다.

······뭐,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한세연이 앞으로 마력을 퍼트릴 일은 없을 테지만.

두 눈을 감은 채 ‘무리하게’ 마력을 퍼트리고 있는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사실 한세연이 내 의중을 읽어 마력을 퍼트리고 있다지만, 내가 아니었다면 절대 마력을 퍼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마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지닌 한세연은 마력을 퍼트리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마 이만큼이나 마력을 넓게 퍼트려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일 테지.

그럼에도 하는 것은 모르도의 재림을 마수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이편이 가장 확실했기 때문이다.

머리가 나쁜 마수놈들은 불러 모아놓고 눈앞에서 모르도를 직접 보여줘야지 다시는 영역침범 같은 짓거리를 하지 않을 테니까.

다만 마력을 퍼트리는 것은 한세연에게 못 할 짓이었기에 본인의 의사에 맡기려 했는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움직여주었다.

─크어어어어어!

거대한 짐승의 포효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초록거인의 협곡으로부터 시작된 포효가 마경을 진동시켰다.

그리고 얼마 뒤, 초록의 거인이 협곡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퍼억─!

영역을 다투던 거대 곰과 오우거의 머리통이 동시에 터져 나갔다.

이를 행한 녀석은 마경의 수림보다도 거대한 신장과,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트윈헤드 오우거>.

6성급을 넘어선다는 고위 마수의 등장이었다.

거대 곰과 오우거의 파편을 두 개의 머리로 으적으적 나눠 먹는 괴물.

“크어어엉!”

녀석은 본인의 등장을 선포하듯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했다.

겁에 질린 마수들이 거리를 벌린다.

지금껏 마경에서 만났던 그 어떤 마수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위압감.

긴장한 나는 언제라도 도망갈 수 있게끔 ‘마화’를 손에 쥐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저거 눈 돌아갔네.’

샛노란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두터운 손은 도망가는 마수들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이성이 날아간 짐승이었다.

스스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도망치는 마수들을 밀치며 다가오는 트윈헤드 오우거.

쿵, 쿵!

녀석의 등장에 감겨있던 한세연의 눈이 떠졌다.

마력의 발산이 잦아들고, 발치에서 어둠이 스멀거리며 일어난다.

“크르르르.”

트윈헤드 오우거는 그에 개의치 않고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변화는 어둠이 녀석의 발치에 닿았을 때 나타났다.

쿵············.

들어 올렸던 트윈헤드 오우거의 발이 돌연 허공에서 멈추었다.

“크어···.”

포효를 뚝 그친 녀석은 벌렸던 입을 슬며시 다물더니, 등을 돌렸다.

쿵, 쿵.

“?”

그대로 걸어가는 트윈헤드 오우거.

마치 처음부터 그럴 예정이었다는 듯 대단히 자연스러운 턴이고, 동작이었다.

뭔가 싶어 의아해하던 나는 녀석이 멀어지고서야 뒤늦게 입을 벌렸다.

저거 설마.

“···튀는 건가.”

진짜?

이성 날아간 거 아니었어?

“음.”

대단히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 근방의 마수들은 전부 모르도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트윈헤드 오우거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녀석이 등을 돌리기 전 보였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알았다.

그것은 뿌리 깊은 공포였다.

놈은 잊지 않았다.

마경의 어둠을.

“······.”

주위를 까맣게 물들였던 마수들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거짓말 같이 혼란이 사라졌다.

서로 몸을 맞댄 채 자취를 감추는 마수들.

나는 한세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일어나던 어둠이 멈추더니 스르륵 그림자로 들어가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원에는 허무하리만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식이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모르도의 영역이 왜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는지를.

마수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순식간에 다른 마수가 꿰찬다.

하지만 모르도의 영역은 모르도가 사라진 지 반년이 지났음에도 그대로였다.

지금에서야 슬그머니 발을 걸쳐보려는 놈들이 나타났을 뿐이다.

그 이유를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듯 피부로 느껴보니 더욱 확실히 와닿았다.

왜 초인협회에서 군주급 마수를 ‘재앙’으로 분류하는지도.

이 근방에서 모르도는 단순한 마수가 아닌, ‘자연적인 규칙’.

재앙(災殃)이었다.

***

트윈헤드 오우거가 물러가니, 주변이 싹 깔끔해졌다.

위험 종자로 분류된 마수들은 모두 제 영역으로 돌아갔으며, 마경은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물론 이참에 아예 싹 다 제거해서 모두 내 ‘경험치’로 삼아버리는 것이 최고겠지만 그건 무리였다.

놈들이 공포에 잠긴 주체는 한세연이 아닌 모르도였으니까.

한세연은 모르도의 기운을 다루는 ‘사람’일 뿐, 모르도 본인은 아니기에, 그 본연의 힘을 끌어내지는 못한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오거스트 때처럼 한세연의 분노를 자극한다면 다르겠지만, 자극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그 뒤는 폭주였으니 생각할 가치조차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영역을 확고히 잡아 놓는 선에서 마무리 지은 것이다.

물론, 트윈헤드 오우거가 있는 지역 외에도 두 방면을 더 정리해야 했지만 이는 천천히 하기로 했다.

단숨에 해결하자면 한세연에게 마력을 발산하게 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대충 큼직한 녀석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언데몬에서 알아서 하겠지.

당장 급한 불인 트윈헤드 오우거도 협곡 너머로 도망가버렸고······

그나저나.

“미안하다, 무리한 거 시켜서.”

한세연이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다.

“으응, 해솔이 도움이 되니 기쁜걸?”

“싫으면 싫다고 말해. 억지로 하지 말고.”

“알았어. 싫으면 말할게.”

작게 웃는 한세연을 보자니 왠지 지켜질지 의심이 들었지만 그건 나중 일이다. 고개를 내저은 나는 지도를 펼쳐보았다.

마침 이곳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가고일의 둥지가 있었다.

은가예가 열심히 구르고 있는.

‘ㅿ’표시가 쳐진 걸 보면 난이도가 범상치 않아보였다.

참고로 은가예가 아닌 소피아가 골랐다.

“구경이나 가볼까.”

나는 픽 웃었다.

이건 못 참지.

***

“엇, ···우앗!”

은가예는 바닥을 구르고 또 굴렀다.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가고일의 공격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그것도 한두 마리여야지, 여러 마리가 동시에 덤벼드니 어쩔 수가 없었다.

“가예님, 힘내십시오! 앞으로 3마리 남았습니다!”

소피아의 격려 아닌 격려를 받으며 은가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윽.”

순간, 구르다 접질린 발목이 시큰거렸지만, 이를 악물며 날아오르려는 가고일의 날개를 베어냈다.

“끼아악···”

날개가 잘려 나간 가고일이 한쪽 날개를 파닥거리며 발버둥친다.

녀석의 벌어진 아가리에 사정없이 대검을 박아넣었다.

주변을 보니 내려섰던 가고일들이 날아오르려 날개를 퍼득거리고 있었다.

“어딜.”

은가예는 바로 중력의 기프트를 일으켰다.

“끼에엑!”

땅에 처박히는 가고일 두 마리.

녀석들의 날개, 다리에 대검이 휘둘러지며 사지가 잘려나간다.

은가예는 이런 식으로 땅으로 내려선 가고일들을 기프트로 찍어 누르며 차례차례 정리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바닥을 구르다 못해 아예 청소를 하고 다녔지만 은가예로선 이것밖에는 가고일을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총이나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은가예가 날아다니는 가고일들을 하늘에서 잡을 방도는 없었으니까.

퍼억!

남은 1마리의 머리에 대검을 박은 은가예가 무릎을 꿇었다.

“가고일 10마리, 훌륭히 사냥하셨습니다.”

소피아가 웃으며 다가와 포션을 넘겨주었다. 포션을 받아 마신 은가예는 빈 병을 집어던지며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푸하! 하아, 하아, 하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4성급 마수 10마리를 혼자서 사냥하다니.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실전을 지향하는 이터니티 아카데미에서도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으니까.

소피아가 처음에 가고일 10마리부터 잡자고 했을 때는 그녀가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였다.

위험하면 도와주겠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듯 보였지만······

‘그래도 어떻게 잡긴 했네.’

입가에 후련한 미소가 맺혔다.

무언가 진짜 수련 같았고, 가슴이 차오르는 기분이다.

마력훈련장에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진이 빠져 쓰러질 때는 얻지 못한 충족감이었다.

그녀를 채찍질하던 조급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의 답답함이 시원하게 뻥 뚫리자 은가예가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강해져야지.”

“응응, 나도 있는 힘껏 도와줄게.”

순간 불쑥 내밀어지는 낯익은 얼굴.

은가예가 당황으로 볼을 씰룩였다.

“아···니, 괜찮아. 안 도와줘도.”

“아니야, 가예가 모처럼 결심했는데 나도 응원해야지.”

묘한 열의에 차서 말하는 사람은 바로 한세연이었다. 그녀는 좀 전부터 은가예의 사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저도 있는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

말 한 번 잘못했다 벌집을 건드려버린 은가예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왠지 앞으로 나날이 끔찍해 지리란 지독한 확신과 함께.

***

······한편, 마경의 외곽, 거대길드 ‘백야’의 개척지.

둥근 테이블을 두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트윈헤드 오우거가 다크우드의 영역으로 움직였습니다.”

“예? 그럴 리가요. 그쪽은 어둑서니의 영역이 아닙니까?”

마수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은 마법사, 헤이글의 말에 마경의 지부장, 양휘철이 의아해 물었다.

“예, 어둑서니의 영역이죠.”

고개를 끄덕인 헤이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또 그놈이 물러갔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애초에 트윈헤드 오우거가 어둑서니의 영역에 들어가서 알아서 죽어준다면 그들로서는 오히려 달가워해야 할 일이었다.

마경을 개척하려는 백야로서는 고위마수가 하나라도 더 사라져주는 게 이득이었으니까.

하지만 헤이글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놈이 스스로 물러간 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설마······”

“예, 확실하진 않지만 어둑서니의 기운이 포착되었습니다.”

“으음, 큰일이군요.”

양휘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둑서니는 마경에 자리 잡은 이래로 자신의 영역 밖으로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마수였다. 그런 군주급의 마수가 마경을 돌아다닌다면 그건 걸어 다니는 ‘재앙’이었다.

“어둑서니의 기운이 포착된 후로 마수들의 영역도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습니다.”

초록거인, 트윈헤드오우거는 어둑서니에게서 멀리 떨어지려는 지 협곡 바깥으로 영역을 옮겨버렸고, 그 외에 백야에서 파악한 고위마수들도 영역이 조금씩 바뀌어 버렸다.

“···조사단을 파견해야겠군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조사단을 파견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틀 후. 백야의 개척지에서 정령사와 마법사가 포함된 전문 조사단이 모르도의 영역 부근으로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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