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09화 (110/226)

§ 109화

“과, 관리자!”

정령사 클로에의 경악에 하태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관리자라니, 그게 뭐길래 그렇게 놀라는 거야?”

“관리자라면 숲의 정령을 말하는 거에요.”

“···드라이어드라는 말인가요? 맙소사.”

마법사 나탈리아가 경악하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라이어드?”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그러건 말건, 네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의견을 주고받기 바빴다.

“드라이어드는 그냥 지어낸 거 아니었어? 그런 게 실제로 있을 리가······”

“아니에요, 타카바시씨. 대중매체는 모두 실제를 바탕으로 한다고요.”

“하지만 드라이어드는 협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그야 협회는 실제로 본 게 아니라면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저희 백야가 탄생한 것도 협회의 그런 완고함에 반발해서였잖아요?”

“···그렇긴 한데.”

“정령의 계급도를 보면 드라이어드는 신수와 동급의 상위정령으로 나와 있어요.”

“나도 본 적이 있어.”

나탈리아가 동조하자 클로에가 여전히 못미더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하태준을 보며 물었다.

“태준씨는 10살도 안 된 아이가 마경을 돌아다니는 게 말이 된다고 보이세요?”

“음, 그건······”

하태준이 아나스타샤를 힐끗 바라보곤 말했다.

“확실히 이상하지.”

그들을 구해준 것도 도저히 어린아이의 힘이라곤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전설의 정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거기다 보세요. 이 나무들, 드라이어드님이 나타난 뒤로 조용해졌어요.”

“···뿌리가 터져서 그런 거 아니었어?”

타카바시의 의견에 클로에가 고개를 저으며 아나스타샤를 가리켰다.

“보세요. 분명 정령이에요. 그것도 무척이나 순수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어요.”

클로에의 손에 들린 정령석이 아나스타샤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령임에도 인간의 면모를 갖추고 있죠. 저런 정령을 본 적이 있나요?”

“······없군.”

하태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백야의 모험가인 만큼, 미지에 대한 순수한 갈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령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만큼은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하태준도 인간의 외양을 갖춘 정령을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가 아는 정령이란 계급에 따라 다를 뿐, 판에 박힌 듯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고유한 외양이란 오직 ‘신수’거나 그와 동등한 반열의 정령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것이 클로에의 의견에 하태준이 흔들리는 이유였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정령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다.

정령 본인이 스스로를 관리자라 칭했다면 그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하도 믿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의견을 주고받은 것일 뿐이다.

‘정말 드라이어드란 말인가.’

하태준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미지의 정령을 마주했다는 감격에 표정이 상기되었다.

“이 마경은 저 드라이어드가 관리하는 숲이라는 거겠죠?”

“그렇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어쩌면 이곳에 나타난 것도 저희와 같은 이유에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어둑서니 때문이라는 거군.”

“예, 어둑서니로 인해 혼란이 온 숲을 바로잡기 위해 나타난 거겠죠.”

사람이 방을 청소하듯 정령은 자신의 영역을 관리한다.

드라이어드가 나타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라고 보면 납득 할 수 있었다.

네 사람이 이야기를 마치고 정령사인 클로에가 대표로 나섰다.

“아나스타샤님이라고 하셨나요?”

끄덕끄덕.

“먼저 저희를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

“그것도 관리자의 역할인가 보군요.”

알아듣지 못하는 말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멜리아도 그렇고 이 여자도 그렇고 인간은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아나스타샤는 그저 이해솔의 ‘행동지침’에 따랐을 뿐이다.

곤경에 처했으면 일단 구하고 보라는 이야기를 말이다.

침묵을 긍정이라 받아들였는지, 싱긋 웃은 클로에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마수, 사냥 중.”

“역시 관리를 하고 계셨군요.”

“·········관리?”

“아나스타샤님이 하시는 일을 저희는 숲을 관리한다고 한답니다.”

상기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클로에.

아나스타샤는 멀뚱히 서서 듣기만 했다.

“아나스타샤님, 이곳에서 굉장히 강력한 마수를 보지 못하셨나요?”

“············보지 못했음.”

문득 모르도가 떠올랐으나 그건 비밀이었기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던 클로에가 물었다.

“그럼 저희를 다크우드 숲 바깥까지 안내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능.”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건 이해솔의 행동지침이기도 했으니까.

“·········나를 따라와.”

앞장서서 숲의 바깥으로 걷기 시작하는 아나스타샤.

네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아나스타샤를 뒤따랐다.

“역시 지도하곤 전혀 다른 방향이야.”

“마경의 영역구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이네.”

“맞아. 이곳도 원래는 자이언트 베어의 서식지야.”

네 사람은 뒤바뀐 영역을 표시하며 아나스타샤를 뒤따랐다.

그리고 그렇게 다크우드 숲을 벗어나며 그들은 무척이나 놀라야만 했다.

“아까부터 다크우드가 공격해오지 않아.”

“···그렇네.”

그들끼리 움직일 때는 집요하게 공격해오던 다크우드가 아나스타샤를 따르기 시작한 뒤로 잠잠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는 다크우드를 모르도의 영역으로 ‘옮겨 심는’ 과정에서 이해솔에게 호되게 데인 다크우드들이 아나스타샤를 ‘위험 개체’라 인식해서 나타난 현상이었지만, 이를 모르는 네 사람으로서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드라이어드였다니.”

앞서가는 아나스타샤의 뒷모습을 보며 하태준이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봐요, 제가 뭐랬어요. 드라이어드라고 했죠?”

클로에가 자랑스럽게 엣헴 거린다.

그들은 이제 아나스타샤가 드라이어드라는 사실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다크우드가 마수라곤 하나, 그 근본은 숲을 이루는 ‘나무’다.

나무가 숲의 정령인 드라이어드에게 적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부장이 믿어줄 지가 문제군.”

“믿어주지 않으면 어쩔 거예요, 사실인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은 어느새 다크우드 숲을 빠져나왔다.

“고맙습니다. 드라이어드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하는 조사단.

가만히 서서 듣고만 있던 아나스타샤가 손을 슥 내밀었다.

“?”

의아해하는 네 사람을 향해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공짜, 없음. ·········사례.”

이해솔은 말했다.

곤경에 처했으면 일단 구해주라고.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뭐라도 좋으니 사례를 받으라고.

정령이 사례를 요구하는 생소한 상황에 네 사람은 잠시 얼이 나갔다.

이내 정신을 차린 클로에가 웃으며 나섰다.

“약소하나마 제가 가진 정령석입니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정령석을 건네자, 아나스타샤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돌아다니다가 이것과 비슷한 돌이 떨어져 있으면 주워 와.’

클로에가 내민 것이 이해솔이 보여준 정령석과 비슷한 것임을 알아차린 아나스타샤가 정령석을 받아들었다.

“·········감사.”

아나스타샤의 입가에 미미하지만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다음에 오면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아마. ·········사냥할 때라면.”

“잘됐네요! 그럼 저희는 협곡을 조사해야 되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표정이 환해진 클로에가 고개를 꾸벅 숙이곤 일행에게 돌아갔다.

─어쩌면 어둑서니는 드라이어드님의······

─어이, 그건 너무 비약적인······

멀어져가는 네 사람을 바라보던 아나스타샤는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이해솔에게 정령석을 가져다주고, 지금 있었던 상황을 전하기 위해서.

***

······내 계획은 간단했다.

데몬스폰들에게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신뢰’를 얻는다.

파랑이와 아나스타샤는 각자 사냥을 보내서 알아서 레벨링을 시킨다.

내가 놀아도 주위가 자동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내 목표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세연을 데리고 마수를 몰아내고 돌아오니 데몬스폰들은 다크우드를 옮겨 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아니, 이건 작업이라기 보다는······

쿵, 쿵. 촤아아아!

─끼햐햐.

“···애들 놀이터 같네.”

신장 3m 골렘의 좌우에 올라 탄 리디아와 니엘이 신나한다.

그 아래에선 골렘의 구보에 겁을 집어먹은 다크우드들이 난민처럼 뿌리로 기며 도망치고 있다.

리디아는 도망치는 다크우드들을 부추기듯이 물을 살포한다. 어째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평범한 물은 절대 아니었다.

그 옮겨심기인지 토끼몰이인지를 잠시 지켜보다 마을로 들어가니 이본느가 우리를 맞이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멜리아는 좀 어떤가요.”

“후후, 나쁘지 않답니다.”

음, 손맛이 나쁘지 않다는 건지, 아멜리아가 나쁘지 않다는 건지 감이 오질 않는군.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웃어 보이는 이본느. 요 며칠 살 것 같다는 표정이다.

최근 아멜리아의 일과는 단순했다.

방과 후가 되면 이본느에게 줘패지게 맞는다. 줘패지게 맞는다. 또 줘패지게 맞는다.

그게 싫으면 기프트를 써야지, 어째.

물론 기프트를 쓴다고 이본느를 이길 수 있다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때 한세연이 내게 물어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어제 해준 불고기 맛있더라.”

“맛있었다니 성공이네.”

기쁘게 웃은 한세연이 다녀온다며 주방으로 향한다.

그녀는 최근에 데몬스폰들에게 간식을 만들어주고, 요리를 하는 등 가사일을 돕고 있었다.

그렇게 한세연이 저녁을 준비하러 간 뒤, 이본느의 거처에 들어서니 아멜리아가 테이블에 힘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히끅··· 왔어요오?”

바닥에는 빈 포션병이 굴러다닌다.

아멜리아는 이본느와의 수업 외에 단약의 포션화 작업도 하고 있었다.

이게 단약에서 포션으로 다운그레이드 하는 과정에 생기는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 직접 마셔가며 감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 이상이 걸린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쓰다듬어줘요.”

늘어져서 뭐라뭐라 중얼거리다 한다는 소리에 아멜리아의 머리를 헤집어 주었다.

항마력이 머리를 통해 스며들며 상태 이상이 풀린다.

“으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기분 좋은지 에헤헤 웃고 있던 아멜리아는 손길이 사라지자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 돌연 벌떡 일어난다.

“억! ···와, 왔어요?”

“어, 은가예는?”

“아직 안 들어왔어요.”

“그래?”

이제 곧 저녁인데 아직도 밖에서 구르고 있나 보네.

당황한 아멜리아가 포션병을 허둥지둥 치우는 것을 뒤로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담아 끓였다.

찬장에서 꺼낸 찻잔 두 개에 끓여진 물을 붓고 녹차티를 타서 기력을 담아 완성.

아멜리아에게 건넸다.

“마셔.”

“네, 고마워요.”

뜨거운 건 잘 못 마시는지, 호호 불어가며 녹차티를 홀짝이는 아멜리아. 그러며 내 눈치를 본다.

“바, 방금 그건 상태이상에 걸려서 그런 거예요.”

“알아.”

안다고 해줬건만 뭐가 불만인지 작게 볼을 부풀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픽 웃자니, 아멜리아가 눈썹을 구부린다.

“왜 웃어요?”

“그냥.”

그렇게 말하며 차를 드는데, 돌연 밖에서 쿵 소리가 났다. 사냥한 마수의 사체를 내려놓는 소리다.

뒤이어 누가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들어와.”

끼이익.

문을 열며 들어온 것은 금발의 인형같이 무표정한 소녀. 아나스타샤였다.

들어올 때는 문을 두들기라 했더니, 착실히 지키고 있다.

“·········마수 15마리 잡았어.”

“그래. 잘했다.”

“·········이거.”

할 말이 남았는지 손을 내미는 아나스타샤.

그 손에 쥐어진 물건을 본 나와 아멜리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 정령석이잖아요. 이거.”

“···그러네. 이거 어디서 났어?”

“·········사람 구하고 대가로 받았어.”

그때, 아멜리아가 제 무릎을 두드리며 눈을 별처럼 반짝였다.

그것을 흘낏 본 아나스타샤가 의자를 빼 앉았다.

히잉. 시무룩해 하는 아멜리아를 뒤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나스타샤.

이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내 표정이 해괴해졌다.

“······드라이어드?”

끄덕끄덕.

“·········나, 드라이어드?”

아니, 그럴 리가.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찔끔한 표정으로 딴청을 부리는 게 누가 봐도 얘가 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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