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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12화 (113/226)

§ 112화

호문(虎門)을 넘어서자 펼쳐진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력을 지녔기에 나는 이곳이 거대한 공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나스타샤.”

빼꼼.

내 가슴 속에서 작은 머리를 불쑥 내미는 아나스타샤.

‘모습 바꿔.’

끄덕끄덕.

내 의사를 읽은 아나스타샤가 인간의 외견에서 이전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아나스타샤가 완전히 정령(?)처럼 변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대한 공동에는 나를 제외한 수많은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전부 모르는 얼굴뿐이고, 함께 호문을 넘어섰던 생도의 모습은 몇몇 보이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이들이야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별달리 동요하지 않았다.

호문이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제각각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당장 협회에서 알린 시험일자 또한 내일이지만, 시험은 호문을 통과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시험장에 도달하는 것부터가 잔챙이를 걸러내기 위한 시험인 것이다.

‘정신 간섭 결계.’

나를 제외한 이들이 모두 기절해 있는 것은 이 공동에 펼쳐진 결계가 정신에 타격을 주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호문을 통과했을지도 모르는 마인을 걸러내기 위한 2차 결계로 호문을 통과해 방심한 마인에게 강력한 ‘항마력’을 투사한다.

그 과정에서 정신에 타격이 오게 되는데,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내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윽고 기절한 이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가예, 일레인.’

아멜리아가 없는 건 조금 아쉬웠지만, 혼자가기보단 이 둘과 함께하는 편이 시험장까지 가기는 훨씬 수월했다.

“운이 좋네.”

또각또각─

그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울리더니, 천장의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어라? 벌써 깨어나신 분이 계셨네요, 아니. 처음부터 기절하지 않으신 거군요.”

입구에서 조명 스위치를 킨 것은 어딘지 낯이 익어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멀쩡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곤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문을 넘어서자마자 바로 마력의 벽을 펼쳤나요? 아니, 그러면 늦는데··· 으음, 아! 처음부터 마력의 벽을 펼치고 온 거군요!”

여자는 고민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치며 환하게 웃었다.

‘아닌데······’

한 것도 없는데 시작부터 인정받고 가는 것 같은 기분.

알아서 납득해 주는 분위기가 묘하게 낯이 익었다.

“과연, 그 아이에게 듣던 대로네요.”

“저를 아십니까?”

“인사가 늦었네요. 그레이스 로마노예요. 아멜리아의 첫째 언니랍니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만, 아멜리아의 친언니였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내 인사에 작은 웃음으로 화답하는 그레이스.

자존심이 강한 아멜리아와 다르게 그레이스는 나긋나긋한 분위기의 미인이었다.

뒤늦게 떠오른 그레이스의 이력은 경험을 쌓기 위해 협회에서 일한다는 것과, 결계술에 조예가 깊다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저 알아서 납득해 주는 것은 가족력인 건가.

아멜리아도 그러더니 그레이스도 알아서 착각을 해줘서 내가 따로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 가문 사람들에겐 어렵게 변명거리를 생각해두는 게 손해라는 판단이 들었다.

“아우우- 머리야.”

그때,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은가예가 뒤늦게 일어났다.

“뭐야, 여긴 어디야?”

눈부신 빛에 적응이 안 되는지 은가예는 눈을 여미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미궁입니다.”

“미궁?”

“호문을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여러 지형중 하나입니다.”

대답을 한 것은 그레이스였다.

“던전이란 말인가요?”

“예. 협회에서 관리하는 인공던전입니다. 참고로 이곳에는 다양한 지형이 존재하지만 미궁이 그중에서도 가장 빠져나가기 어렵고 탈락자가 많이 발생하기로 유명하답니다.”

활짝 웃으며 ‘너 엿 됐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전해주시는 그레이스누님.

웃는 얼굴로 저런 독설을 날릴 수도 있구나.

나긋나긋하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이곳을 빠져나가 2시간 이내에 시험장에 도착하시면 숙소를 안내해드릴 겁니다.”

각종 트릭과 마수가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그레이스의 설명에 은가예가 벌떡 일어났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 시작이라는 거네.”

“잠깐만 기다려.”

“왜?”

움직이려는 은가예를 만류한 나는 기절한 일레인에게 기력을 불어넣었다.

몸을 뒤척이다 눈을 뜨는 일레인.

“곰 챙겨. 시험장 가자.”

“으응.”

아예 잠이 들어버렸었는지 눈을 비비며 곰인형을 주섬주섬 안아 드는 일레인. 어째서인지 헛기침을 하던 그레이스가 진정하곤 미궁에 대한 설명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날 즈음, 다른 참가자들도 하나둘 깨어나려는 조짐을 보였다.

“세 분 모두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빌게요.”

“예,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레이스에게 꾸벅 인사하곤 바로 공동을 빠져나왔다.

***

내가 일레인과 함께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미궁’이라는 것에 있었다.

아멜리아와 함께한다면 이곳이 미궁이건 미로이건 바로 광범위 탐색 한 번에 네비게이션처럼 빠져나왔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지금 우리 중에 가장 탐색에 능한 것이 바로 일레인이었던 것이다.

미궁이라는 명칭처럼, 공동을 빠져나오자 펼쳐지는 갈래길.

그레이스의 말대로라면 제대로 된 길을 통과하면 마력석이 박혀있다고 한다. 틀린 길이라면 적마석이 박혀있고.

일반적이라면 일일이 확인하는 수밖에는 답이 없다. 하지만 일레인과 함께라면 문제없었다. 얘도 길 찾기 하나는 기가 막혔으니까.

“네 갈래길이야.”

“응.”

지이익-

일레인이 가방의 지퍼를 내린다.

“애들아, 나와.”

열린 가방을 통해 아기공룡, 아기돼지, 사슴, 루돌프, 산타 등 솜인형들이 걸어 나온다.

일레인의 사역마법, <식신>이다.

이내 각자 다른 길을 통해 뽈짝뽈짝 뛰어 들어가는 귀여운 인형들.

“와- 귀엽다.”

은가예가 자신도 하나 가지고 싶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3분쯤 지나자 왼쪽 길로 들어섰던 아기돼지가 몸이 반쯤 불탄 처참한 모습으로 나타나 얼마 걷지 못하고 장렬히 쓰러졌다.

“······.”

함정 마법에 당한 모양이다.

불쌍한 것.

뒤이어 두 번째 길에서 아기공룡이 옆구리 솜이 튀어나온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기야, 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어 들어가는 일레인. 다른 인형들을 안 기다리는 모습이 의아했다.

“인형은 회수 안 해?”

“문방구에서 1000원이야. 내버려 두면 내장마력에 불타서 사라져.”

“······어.”

애착은 없는 거구나.

어쩐지 인형이 매번 바뀌더라.

곰 인형도···

***

시험장으로 가는 오솔길.

그곳을 지키고 선 협회의 마법사, 강유천의 얼굴은 밝았다.

호문(虎門)이 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2명씩이나 오솔길을 지나친 것이다.

두 번째 합격자야, 나이가 좀 있는 인물이니 그렇다 쳐도 첫 번째 합격자는 정말 인상이 깊었다.

첫 합격자가 나타난 것은 호문이 열리고 나서 정확히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너무 빠른 시간에 오죽했으면 강유천조차 자진 탈락자인 줄 알고 주변에 인솔자부터 먼저 찾았을 정도였다.

짐작이지만 탐지계열의 기프트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기프트를 각성한 것만 해도 놀라운데, 더욱 놀랍던 건 강유천이 시전할 마법들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하던 ‘선견’이었다.

마법사에게는 ‘수’를 읽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에 강유찬은 박수까지 쳐주었다.

‘발전에 대한 욕망이 대단한 아이였지.’

박수를 받고도 기뻐하기는커녕 창피해하며 이를 악물던 모습에 강유찬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쉬운 건 소속이 확실했기에 협회로 끌어들이기는 어려운 이라는 점이었다.

“올해는 인재가 많아.”

오솔길로 다가오는 또 한 명의 합격자를 본 강유천이 혀를 내둘렀다.

이번에도 처음과 같이 젊은 여자아이였다.

“시험장으로 향하려면 내 마법을 받아내야된다.”

“받아내기만 하면 될까요?”

그렇게 되묻는 여자는 바로 한세연이었다. 강유천이 픽 웃었다.

“가능하면 반격해도 상관없다. 할 수 있다면 말이다만.”

슥. 강유천의 스태프를 움직이자 거대한 술식이 나타나며 불길이 타올랐다.

그 불길이 수십 개로 나뉘어 한세연의 사방을 점거한다.

한세연은 가만히 서서 불길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무런 긴장도 느껴지지 않는 침착한 모습에 강유천이 내심 감탄하며 말했다.

“시작한다.”

휙.

그가 스태프를 휘두르자, 한세연을 둘러쌌던 불길들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일제히 날리는 것은 아니었다.

강유천이 위치시킨 불길들의 위치는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멀리 있고, 어떤 것은 가깝다.

순차적으로 없애나가면 말끔히 막아낼 수 있는 시간차공격이었다.

하지만 그 불길의 숫자가 50개나 되는 이상, 순차적으로 막아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한꺼번에 제거하거나 막아내는 편이 마력은 많이 소모할지언정 훨씬 쉬운 길이었다.

앞선 합격자들도 그러한 방식을 택했었다.

그런데.

“하.”

강유천은 저도 모르게 입을 멍하니 벌렸다.

양손에 두 자루 베레타를 나눠진 한세연은 제자리에서 불길들을 ‘순차적’으로 제거해나가고 있었다.

굉장한 동체시력이었다.

24개.

36개.

48개.

50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불길.

휑한 바람이 불었다.

“···하하핫.”

강유천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한세연이 물었다.

“지나가도 될까요?”

“암, 지나가도 된다. 물론. 그런데.”

길을 비켜선 강유천이 스마트폰을 들어 한세연의 정보를 확인했다.

“아직 연이 있는 길드는 없는 모양이구나.”

고개를 주억인 강유천이 말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협회로 오거라, ‘부단주’의 지위를 약속해주마.”

강유천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건 엄청난 폭탄발언이었다.

협회의 ‘부단주’란 무려 일개 중형길드의 길드장에 버금가는 지위였으니까.

아니, 협회의 위상을 생각하자면 중형 길드보다도 더 막강한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강유천이 이렇듯 길목에 있는 이유는 바로 ‘협회’에서 유망한 인재들을 스카웃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초인자격을 딴 인재들을 길드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협회에서 사전계약이란 우선권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부단주를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평단원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미래라면 이미 정해놓았어요.”

강유천의 말을 자르며, 한세연이 거절했다.

부단주의 지위가 이렇듯 단칼에 거절당할 줄 몰랐던 강유천이 놀라며 되물었다.

“대체 무슨 미래길래···”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한세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좋은 신부?”

“······.”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답변에 강유천이 멍하니 입을 벌렸을 때였다.

─한세연!

멀리서 들려온 소리에 강유천이 한세연의 뒤를 바라보았다.

오솔길을 통해 세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일레인과 은가예, 이해솔. 미궁을 빠져나온 삼인방이었다.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어느새 다가온 이해솔의 물음에 한세연이 방긋 웃었다.

“미래 이야기.”

“미래이야기?”

“응.”

알쏭달쏭해 하는 이해솔을 보며 한세연은 그저 말없이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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