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초인 자격시험에 나오는 마수들은 ‘가상’이며 가짜다.
당연히 잡아봤자 부산물이 나오지 않으며, 아무런 득도 없다.
굳이 500SP나 소모해가며 이상의 투영자를 강화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것도 게임에 나오는 하나의 스테이지이기에, 죽인 가상의 마수가 경험치로 환산이 되는 것이다.
[빛의 정령, 아나스타샤가 경험치를 3을 획득했습니다.]
[빛의 정령, 아나스타샤가 경험치를 3을 획득했습니다.]
[빛의 정령, 아나스타샤가 경험치를 3을 획득했습니다.]
[빛의 정령, 아나스타샤가 경험치를 3을 획득했습니다.]
[빛의 정령, 아나스타샤가 경험치를 3을 획득했습니다.]
[이기어검의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이기어검의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이기어검의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띠링!
[마수 사냥의 효율이 극에 달했습니다. 놀라운 업적에 3000SP가 지급됩니다.]
[칭호, ‘무자비한 사냥꾼’이 생성됩니다.]
칭호 : 【무자비한 사냥꾼】
─당신은 단시간에 누구보다 많은 마수의 목숨을 취했습니다. 무자비한 사냥꾼인 당신은 마수에게 본능적인 공포를 선사합니다.
[마수에게 3%의 추가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됩니다.]
“좋군.”
떨어져 내리는 빛의 포화, 비도의 비. 마력탄의 세례.
─그어어······
─끼에······
가상의 마수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오는 족족 먼지로 사라져갔다.
입구를 막은 암벽 위에서는 은가예가 올라가 중력의 마력이 씌인 대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상대를 압살해버리는 일방적인 원거리 공격에, 암벽 위로 올라서지 못하는 불쌍한 오크들은 아무것도 못해보고 그대로 대검의 희생량이 되어버렸다.
숨을 고르던 아멜리아도 낙뢰마법으로 언덕 아래를 정리해간다.
【28】
【39】
【53】
【78】
순조롭게 쭉쭉 올라가는 포인트 점수.
“좋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초인시험은 알아서 합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가상의 마수는 일반 마수에 비해 주어지는 경험치가 고작 10%에 불과하다.
오크 10마리를 잡아야 실제 오크 1마리를 잡은 경험치를 주는 불합리한 구조.
내가 현재 잡은 78마리를 현실과 비교하면 고작 하급 마수 7.8마리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끔찍하게 비효율적인 사냥이었다.
사냥을 시작한 지 1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효율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슬슬 레이드몹이 뜰 때네.”
키카드의 홀로그램 우측 상단에 표기된 마수사냥의 전체 진척율은 7%. 저 수치가 8%가 되면 레이드 존이 열린다.
뜨는 마수는 <고블린 챔피언─오크 워리어─ 아이언 가고일> 순서.
이놈들은 지금 잡는 몹보다 경험치를 훨씬 짭짤하게 준다.
물론 레이드몹이 등장하는 것은 진척율 8%때부터라지만 사냥의 시간은 진척율 10%가 찼을 때다.
그때가 되면 서로 힘을 합쳐 레이드 보스를 사냥하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마수웨이브가 잠시 멈추니까.
응시생들은 백지 지도를 들고선 레이드몹이 어디 떴는지 찾아 헤매겠지.
천우진을 비롯한 생도들도 그때서야 우르르 몰려들 거다.
잡으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물론, 이토록 격한 마수웨이브에 어그로가 끌린 채로 레이드 몹이 뜬 곳까지 움직이는 건 무리다.
그러니까 다들 진척율 10% 때 마수웨이브가 멈추면 이동하는 거였고.
하지만, 우리는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스아아아아!
“···어? 저게 뭐야?”
“뭐, 뭐죠?”
은가예와 아멜리아가 당황한다.
한세연과 아나스타샤도 두 사람을 따라 옆을 돌아보았다.
언덕의 측면 아래.
푸른 빛이 번쩍하더니 느닷없이 거대한 나무방망이를 든 대형 고블린이 나타났다.
저 방망이로 한 대 맞았다간 초인이고 뭐고 훅 가게 생겼다. 실제로도 훅 간다.
게임에서 저 무식하게 큰 방망이 한 대에 응시생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가니까.
“···레이드 보스?”
녀석의 머리 위에 떠오른 문구를 은가예가 중얼거렸다.
<레이드 보스 : 고블린 챔피언>
“키이이···!”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
그건 바로 레이드 보스가 ‘포인트 1등’의 주변에 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포인트 1등은.
이해솔 : 【89】
바로 나였다.
***
고블린 챔피언.
녀석은 무지막지한 힘을 자랑한다.
방망이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최소 응시생 1명을 골로 보내버린다.
또 능력 또한 징글맞아서,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체력을 복구시켜버린다.
괜히 레이드 보스라 이름 붙여진 게 아닌 것이다.
다만, 이 녀석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머리가 지독하게’ 나빴다.
그냥 돌대가리다.
“음, 정말 그게 통할까요? 아무리 멍청해도······”
“방금 고블린한테 실험해서 먹혔잖아. 저놈은 더 멍청하니까 통하겠지.”
“그렇겠네요.”
내 합리적인 논리에 반신반의하던 아멜리아가 납득 한다.
“준비해. 아나스타샤가 먼저 하면 우리가 그 다음이야.”
“알겠어요.”
“응.”
아멜리아와 한세연의 대답했을 때, 우리와 마주보는 언덕에서 하얀빛이 번쩍이더니, 고블린 챔피언의 머리를 가격했다.
아나스타샤의 일격이었다.
“키이!”
괴성을 지른 고블린 챔피언이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육중한 다리를 옮긴다.
녀석이 우리에게서 등을 보였을 때, 한세연과 아멜리아의 공격이 날아갔다.
마력탄과 낙뢰가 고블린 챔피언의 뒤통수에 작열했다.
“키이이이이이!”
뒤통수를 감싸쥔 녀석이 우리 쪽으로 몸을 홱 튼다.
그리고.
퍼엉!
아나스타샤의 공격이 놈의 등짝을 때렸다.
“키이!”
다시금 몸을 돌리는 녀석.
“······이게 정말 먹히네.”
지켜보던 은가예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고블린 챔피언은 우리가 번갈아 공격하는 것에 맞추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춤을 추고 있었다.
왜, 그 있지 않은가.
힘에 몰빵해 버려서 지력이 바닥을 찍는 캐릭터. 고블린 챔피언이 딱 그 짝이었다.
참고로 게임 스토리대로라면 이 녀석 하나를 잡는 데만 응시생 50명이 탈락한다. 진짜다. 꼭 생각 없이 돌격부터 하고 보는 놈들이 있다니까.
반면 내가 하는 것은 일명 ‘수건 돌리기’라 불리는 고급기술이다.
이거, 아무나 아는 거 아니거든.
“정말 놀라워요. 당신은 천재인가요?”
눈을 홉뜨는 아멜리아.
내가 픽 웃었다.
“천재긴. 그냥 열심히 찾아봤을 뿐이야.”
이 게임에다 1만시간 넘게 박았는데, 이것도 모르면 접어야지.
***
한편, 응시생들이 몰린 광장에서는 때 아닌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뭐지? 왜 마수가 안 오는 거야?”
“이쪽도 안 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10시부터 1시 방향까지 자리를 잡았던 응시생들이 술렁였다.
잘 몰려오던 마수의 대열이 갑자기 뚝 끊겨버린 것이다.
“정비시간 아니야? 왜, 제 2파가 오기 전에 대비하라고······”
“다른 쪽은 다 오고 있잖아.”
“그, 그러네?”
그들의 방향을 제외한 방향에서는 마수들이 잘만 몰려오고 있었다.
“누가 시작점의 마력석을 부쉈나?”
“아직 시험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됐어.”
“음.”
빈손이 된 응시생들은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했다. 그리고 당황한 그들이 할 일이란 정해져 있었다.
“어엇! 뭐, 뭐야!”
“이 새끼들이!”
“막아!”
멀쩡히 사냥 중인 다른 방향으로 이 당혹감을 분출하는 것. 우르르 마수를 향해 몰려가는 응시생들.
광장은 순식간에 자리를 지키려는 이와 빼앗으려는 이들이 뒤섞여 난장판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
······호텔 상층부에 위치한 상황통제실.
“개판이 따로 없네요.”
“예. 저래서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겠어요.”
“몰려오는 마수는 점점 강해지는데, 협력은 안 하고 자리싸움을 하고 있으니······”
시험의 진행요원들이 혹평을 쏟아냈다.
그들이 바라보는 대형 스크린에는 응시생들이 우왕좌왕하는 광장이 비치고 있었다.
“서 팀장님은 과연 인내력이 대단하시군요.”
“···예?”
김주혁의 뜬금없는 치켜세움에 묵묵히 스크린을 지켜보던 서하린이 당황한 소리를 내었다.
“제 인내력은 그리 대단할 게······”
“후후, 저런 오합지졸들을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신인 때는 저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녀도 저들과 같은 과정을 거쳐왔기에 딱히 인내를 발휘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과연, 서팀장님은 마음씨가 넓으시군요.”
“······.”
자신의 말을 듣기는 하는 건지, 고장난 레코더처럼 일방적인 칭찬만 늘어놓는 김주혁.
의도가 빤히 보였지만 서하린의 입장에선 그저 고역일 따름이었다.
거기다 김주혁의 말 중에는 마냥 흘려들을 수 없는 것 또한 있었다.
“오합지졸이 아닙니다.”
“예?”
“훌륭히 잘 해내고 있는 응시생도 있을 겁니다.”
“염두에 두는 응시생이라도 있나 봅니다?”
“곧 눈에 띌 겁니다.”
“허, 그렇습니까?”
“예, 아주 눈에 번쩍 띌 거예요.”
“···음, 그거 기대되는군요.”
서하린의 확신어린 말에 김주혁이 왠지 모를 언짢음을 느낄 때였다.
“음?”
스크린을 구경하던 협회의 관리마법사는 느닷없는 경보음에 눈을 크게 떴다.
“고블린 챔피언이 왜···?”
통제판의 <고블린 챔피언>라 표기된 곳에 들어와 있던 붉은 점등이 깜빡이고 있던 것이다.
그건 고블린 챔피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현재 마수웨이브는 고작 진행률이 9%밖에 되지 않은 상황.
이 시간대에 고블린 챔피언이 토벌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현재 응시생들 수준으로는 못해도 30명 이상이 모여야지만 토벌이 가능한 것이 바로 고블린 챔피언이었으니까.
그리고 현재 30명 이상의 응시생이 모인 구간은 광장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류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제판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마법사는 이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왜 이러지?”
그 당황어린 목소리에 서하린이 마법사가 보는 통제판을 흘낏 바라보았다.
【68】
【70】
【72】
【78】
.
.
.
몇몇의 카운트가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시험이 시작 된 지 고작 20분이 지난 상황에 78포인트나 모은다는 건 오류가 아니고서는 성명할 수 없는 수치였다.
“으음, 통제판에 이상은 없는데······ 아무래도 응시생들의 키카드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허둥지둥 통제판을 점검하던 관리마법사의 말에 서하린이 고개를 저었다.
“고장난 게 아닐 거예요.”
“예?”
피식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 서하린.
“역시 빠르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위그드라실의 김도준.
이외에도 김주혁이 침음을 흘리고, 그레이스가 헤에, 입을 벌리는 등, 상황실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하하, 키카드 문제일 겁니다. 저렇게 쉽게 사냥할 수 있게끔 이번 마수웨이브는 허술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레이드보스가 벌써 쓰러지다니요.”
피식 웃으며 부정의 말을 쏟아낸 관리마법사가 스크린을 조작했다.
이윽고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나타나는 광경.
“끼에에에에!”
쿠웅!
비도에 전신이 꿰뚫린 고블린 챔피언이 쓰러지고 있었다.
이윽고 먼지로 화해 사라지는 고블린 챔피언.
“············.”
관리마법사는 조용히 화면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