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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16화 (117/226)

§ 116화

······고블린 챔피언이 쓰러지기 얼마 전, 마수웨이브가 한창인 시험장.

스아악! 스악!

유려한 검로를 따라 푸른 검기가 끊임없이 허공을 가른다.

그럴 때마다 숲길을 지나던 오크들이 여지없이 갈라지고, 사라진다.

“우진아, 교대!”

천우진이 뒤로 물러나자, 2반의 생도, 전해성과 제룬이 그 자리를 메우며 오크를 맞이한다.

“수고했어. 잠깐 쉬어.”

김하윤이 천우진을 향해 양손을 들어 올린다.

그녀의 손이 은은한 푸른 빛으로 빛나자, 천우진의 고갈되었던 체력과 마력이 차츰 회복되어갔다.

“그나저나 우진이는 정말 대단하네. 저 둘은 벌써 지쳐 보이는데 혼자서 웨이브를 감당하다니.”

김하윤의 칭찬에 천우진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세 사람이 도와준 덕분이지. 대단할 건 못돼.”

마수웨이브는 일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잡을 수 있는 데까지만 잡고 물러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수는 응시생이 밀집된 곳부터 노리게 되어 있는지, 일정 시간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물러나 있으면 어그로가 풀렸으니 말이다.

실제로 천우진 일행이 흘린 웨이브만 해도 반절이 넘어갔다.

물론 시작점 하나에서 나오는 마수웨이브를 고작 넷이서 이만큼이나 커버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퍼억! 퍼어억!

문득 들려오는 파열음에 천우진이 시선을 돌렸다.

우측에 난 또 다른 숲길.

거대한 곰 인형이 앞발을 휘두르며 밀려오는 마수들을 후려치고 있었다.

천우진을 따라 시선을 돌린 김하윤이 혀를 내둘렀다.

“마냥 몸이 약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저런 무서운 능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역시 디아즈가라는 거네.”

곰 인형의 뒤에는 은발의 소녀가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소녀는 바로 저주술사, 일레인 디아즈였다.

일레인은 본인의 약점인 유약한 몸을 식신인 곰 인형을 이용해 해결하고 있었다.

일레인의 마력이 한껏 집중된 곰 인형은 굉장한 파괴력으로 마수들을 몰아붙였다.

그런 곰 인형을 보조하듯 사이사이에서 날아드는 버디슈에 흘러넘치는 마수들이 처리된다.

니콜라이 오볼렌이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합을 맞추어 왔는지 완벽한 연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 둘뿐 아니라, 시험장의 곳곳에서는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회복은 되었지만 근육은 아니야. 벌써 20분이나 쉬지 않고 싸웠으니 조금 쉬었다 가.”

“고맙지만 끝나고 쉴게.”

치유술을 마친 김하윤의 배려를 천우진이 사양했다.

김하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작은 한숨을 내쉬는 걸 뒤로 하고 천우진이 앞으로 나섰다.

“뭣? 벌써?”

“야, 안 쉬어도 괜찮냐?”

“회복됐으니 괜찮아.”

검을 휘두르자 푸른 검기가 뒤따른다. 마수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전해성과 제룬은 천우진의 괴물 같은 회복력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중심 자리를 내어주었다.

천우진은 연이어 검을 휘두르며 마수를 베어넘겼다.

“취이이···!”

계속되는 검격에 비명을 지르며 사라져가는 마수들.

하지만, 물 흐르듯 이어지던 천우진의 검은 도중에 멈춰 섰다. 마수의 행렬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뭐지?”

“마수가 안 오는데?”

의아함을 표하는 동기생들. 천우진은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일레인과 니콜라이가 있는 쪽에서도 웨이브가 멈춰 있었다.

‘휴식인가?’

그렇게 천우진이 내심 생각했을 때였다.

〔웨이브의 진척율이 10%에 달했습니다. 마수 웨이브가 잠정 중단됩니다.〕

〔필드의 어딘가에 레이드 보스 【고블린 챔피언】이 소환되었습니다. 응시생 여러분은 힘을 합쳐 레이드 보스를 무찌르세요!〕

허공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레이드 보스전인가.”

“이야, 재밌겠네.”

동기생들이 말을 나누는 사이, 천우진은 홀로그램의 지도를 켰다.

지도의 한 부근에 고블린 챔피언의 위치가 나와 있었다.

“해솔이 덕에 바로 갈 수 있겠네.”

어느새 다가온 김하윤의 말에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솔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지도를 완성하는 일은 없었을 거고, 그랬다면 이처럼 유리한 지형에서 마수를 사냥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챔피언의 위치까지 바로 알 수 있다니, 굉장한 이점이었다.

무엇보다 고마운 점은 전날 이해솔이 누구보다 가장 많은 지형을 밝혔다는 것이다.

천우진 그도 열심히 지도를 밝혔다고 생각했는데, 이해솔은 무려 그 세 배에 해당하는 지역을 밝혔으니까.

거기에는 걸어서 움직이기 어려운 산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지도를 밝히기 위해 쉬지 않고 분지를 돌아다녔을 이해솔을 떠올린 천우진이 미소지었다.

앞을 돌아보니, 일레인과 니콜라이가 어느새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린 천우진이 외쳤다.

“우리도 빨리 가자.”

“그래, 이러다 늦겠어.”

그렇게 천우진 일행을 비롯, 분지에 퍼져있던 이터니티 생도들이 레이드 보스를 사냥하기 위해 움직였다.

서로 잡겠다며 경쟁하듯 달려온 그들은 보스존이 보일 때쯤에 이르러 속도를 늦추더니, 이내 완전히 멈춰 섰다.

16명의 생도들은 움직일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서서 눈을 깜빡였다.

“···무, 뭐 하는 거야, 저거?”

“사냥······하고 있는 건가?”

“저게?”

그들이 바라보는 보스존.

─끼에에에에!

피투성이가 된 고블린 챔피언이 몽둥이를 부웅, 부웅 휘두르며 저 혼자 좌우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쿠웅─!

〔레이드 보스, 고블린 챔피언이 쓰러졌습니다! 토벌에 참여하신 모든 응시생 여러분께 기여도에 따라 포인트가 차등 지급됩니다.〕

“············.”

***

“으, 으음···”

“지금, 잡···힌 건가?”

“그, 그런 거 같은데?”

얼이 나가 있던 생도들이 떠듬떠듬 중얼거렸다.

죽어라 뛰어왔는데 잡으려던 고블린 챔피언이 쓰러지는 장면만 직관해버린 것이다.

누가 잡았는지는 궁금할 필요도 없었다.

언덕 위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은가예. 그 옆으로 이해솔, 한세연, 아멜리아가 보였다.

생도들은 허탈해하면서도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안내방송은 방금 나왔는데 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지도에 고블린 챔피언이 뜬 지는 꽤 됐다. 안내방송은 나중에 나온 거지.”

답을 한 것은 니콜라이였다.

“나는 움직이고 싶어도 거리가 멀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니콜라이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천우진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마수를 잡으면서 지도를 수시로 확인했다는 거구나.”

“맵 리딩이 중요하다는 건가······”

“괜히 수석이 아니란 거군.”

천우진이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언덕 위를 올려다보았다.

생도들은 단순히 맵 리딩의 중요성만을 깨우쳤을 뿐이지만, 고블린 챔피언을 잡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하물며 천우진이 본 고블린 챔피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쓰러졌다.

그로서는 대체 어떻게 하면 레이드 보스가 저리 무력하게 쓰러질 수 있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분명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 굉장한 기술을 쓴 것이리라.

그리고 그 기술을 터득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날 홀로 지도를 밝혔던 것처럼······

“대단하군.”

“뭐가 말이냐?”

천우진의 중얼거림에 니콜라이가 의아해할 때다.

〔곧 마수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응시생 여러분은 마수 웨이브에 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울려 퍼지는 안내방송에 생도들은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

[고블린 챔피언을 쓰러트렸습니다!]

[보상으로 3000SP가 지급됩니다.]

이어서 뜨는 수많은 경험치 문구들.

[빛의 정령 아나스타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불사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어느 필멸자의 고민】

▶융합 신수

+ 불사조 Lv.6

+ 아나스타샤 Lv.5

===

“음.”

이거 맞아?

경험치 분배로 인해 파랑이는 사냥도 안 했는데 레벨이 상승했다.

잠만 자도 레벨업이라니···

그렇다고 공개시험에서 불사조 있다고 선전할 수도 없고.

조만간 대책을 강구해 봐야겠네.

“수고했어.”

건너편 언덕에서 넘어온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니 은가예가 투덜거린다.

“30포인트밖에 못 벌었네.”

나는 내 포인트를 확인했다.

【178】

100포인트가 들어와 있었다.

고블린 챔피언의 마지막을 내 비도가 장식했기 때문인 듯했다.

은가예야 마력을 날리기는 했으나 기여도가 높지 않아서 받은 포인트가 낮은 거였고.

애초에 원거리 특기가 아니었으니까.

“너넨 몇 포인트 벌었어?”

“50포인트 들어왔어.”

“저도 50포인트 획득했네요.”

각각 한세연과 아멜리아의 대답이었다.

“뭐야, 내가 제일 적네.”

은가예가 그리 중얼거릴 때였다.

“해솔아, 왔어.”

한세연이 전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쿠구구구구궁─!

키아─! 키아─!

아우우우우─

북을 두드리듯한 발소리. 기괴한 외침. 짐승의 울음이 들려왔다.

마수 웨이브의 제2파. 산미치광이 호저와 히드라, 다이어 울프였다.

현실에서는 영역이 겹칠 일이 없는 녀석들이 한 무리가 되어 몰아쳐 왔다.

후앙, 후앙, 후앙.

아나스타샤가 눈을 뭉치듯 양손을 열심히 움직이며 협로의 허공에 빛의 구를 무수히 생성했다.

한세연의 베레타에 마력이 맺히고, 내 뒤로 비도 아홉 자루가 날아올랐다.

이윽고, 마수웨이브가 언덕의 아래에 다다랐을 때.

콰과과과과광──!

빛의 세례, 마력탄이 녀석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호저의 가시가 부서지고, 히드라의 머리가 꿰뚫린다. 다이어 울프의 등허리가 박살 났다.

휘이이이익!

아홉 자루 비도가 혼란에 빠진 녀석들의 사이를 누빈다.

검령의 의지가 깃든 그람의 비도는 하나하나가 노련한 기사처럼 마수의 몸통이며, 머리를 갈랐다.

“키아아아!”

방향을 튼 마수 떼가 언덕을 내달렸으나 암벽에 막혀버린다.

“어딜!”

은가예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검을 휘둘렀다. 중력의 마력이 암벽에 머리를 박아대는 호저 떼를 짓눌렀다.

콰아아앙!

그 위로 떨어져 내리는 아멜리아의 낙뢰. 벼락에 맞은 마수들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숫자에 관계 없는 일방적인 사냥. 내 키카드에 붉은 불이 점등한다.

삐익─

【300】

300포인트. 시험 통과에 필요한 포인트를 전부 모은 것이었다.

일행에게서 신호가 없는 것을 보면 나 혼자 사냥을 끝낸 듯했다.

사실 내가 가장 먼저 시험을 마친 것에는 일행의 배려가 가장 컸다.

고블린 챔피언을 잡는 과정에서 마지막 일격을 나에게 양보해주었으니까.

“마저 사냥하고 있어.”

“응.”

한세연의 어깨를 짚으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가게요?”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아멜리아의 질문에 답한 나는 두 사람에게도 사냥을 하고 있으라 말한 뒤, 키카드를 벗어 언덕을 내려갔다.

***

······한편, 시험장의 상황통제실.

“다들 적응하고 있군.”

“휴식까지 취했는데, 당연히 적응해야지요.”

스크린을 보며 보안을 담당한 기성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헉헉, 통제관님, 큰일! 큰일입니다! 당장 와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상황실의 문이 열리며 관리자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뭔데 그러시나요, 차분하게 말해보세요.”

“마, 마력제어실에서 마력폭주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순간, 평온하던 그레이스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마력 제어실이요?”

“예, 제어실의 마력이 폭주를 해서 두 개 층에 퍼져버렸습니다!”

“대체 어떻게 관리하길래 그렇게 되는 겁니까!”

통제실 마법사의 질책에 관리자가 당황했다.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마력석이 갑자기 멋대로 폭주를······”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마법사가 버럭 소리쳤다. 나머지 기성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마력제어실은 시험장의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할 수 있도록 마력을 불어넣는 ‘동력원’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당연히 그곳에는 상급에 해당하는 마력석이 다수 동력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마력석 중 하나라도 폭주반응을 일으킨다면, 나머지 마력석들도 연쇄적인 폭주를 일으켜 폭발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폭발이야 어찌 막을 수도 있다. 제어실에는 유사시를 대비한 방어 결계가 상시 가동중이었으니까. 문제는 폭주한 마력이 새어나가 두 개의 층을 잠식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곳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남아있었다.

“가보죠.”

그레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비롯한 몇몇 초인들이 마력제어실로 달려갔다.

***

마력제어실이 존재하는 10층으로 향하는 비상 계단의 입구.

“···으음, 이럴 수가.”

“이건 못 들어가요.”

그레이스, 서하린, 이네시아, 김도준 외 몇몇 관리자들.

그들이 갔을 때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폭주한 마력이 3개의 층을 잠식시켜 버린 것은 물론 마력의 뒤틀림도 심해진 것이다.

“일단 숙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시켰습니다. 하지만 8층과 9층은······”

관리담당자가 말끝을 흘리자 그레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위기대응반은요?”

“······안정화 마도구를 가지러 갔습니다.”

“그전까지는 들어갈 수 없겠네요.”

이 정도로 뒤틀린 마력은 마기보다도 위험하다.

닿는 순간, 초인의 마력마저 동조해 폭주해버리는 것이다.

마력을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마도구를 가져와야지만 안으로 들어설 수가 있었다.

그때 한쪽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지금 뭐 하자는 것입니까?! 위에 우리 길드원이 있단 말입니다!”

“곧 위기대응반이 도착하니, 그때까지-”

“그니까 그 대응반을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그동안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잘못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건가?!”

숙소에 머물던 인물들이 소란을 피우자 누군가 혀를 찼다.

“들어갈 생각도 없는 주제에 무슨······”

당장에라도 그들을 밀치고 들어갈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입’만 그랬다.

폭주한 마력에 잠식된 곳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두려움에 차 있었으니까.

결국 윽박을 지르며 다그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욕할 수도 없는 것이 누구 하나 비상계단의 입구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서하린 팀장님. 당신의 마력이라면 폭주마력을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레이스의 요청에도 서하린이 난색을 표했다.

“잠시 걷어낼 수는 있어도 금방 들어찰 겁니다.”

호텔을 잠식한 마력은 그만큼 뒤틀려 있었다. 섣불리 들어섰다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서하린도 들어가고 싶으나, 이건 위험이나 무모한 수준을 넘어섰던 것이다.

‘그래도 잠깐 들어갔다 오는 것 정도라면······’

서하린이 뒤틀린 마력이 잠식한 곳을 바라보며 가늠을 해보고 있을 때였다.

돌연 폭주한 마력이 요동쳤다. 놀란 사람들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들이 주변에서 한눈을 판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건 찰나에 찰나를 쪼갠 작은 빈틈에 불과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모두의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졌다.

저벅저벅─

노면을 울리는 걸음 소리. 조금 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던 기척이 바로 옆을 지나친다. 전율이, 경악이 모두를 훑었다.

“······.”

‘기척’이 지나갈 때까지 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거리를 빼앗겼다!

만약, 저 기척이 지나치는 게 아니라 살의를 지닌 공격이었다면······

“이 뭔······”

김주혁이 기가 차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대체 누가 있어 그들 모두의 거리를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기척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서하린의 눈이 흔들렸다.

“···해솔생도?”

이해솔. 그가 마력에 잠식된 비상계단의 입구를 향해 성큼 나아가고 있었다.

주변의 심각함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마치 산책이라도 가듯이.

이를 멍하니 지켜보던 서하린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해솔 생도! 거긴 위험······!”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폭주한 마력이 이해솔의 걸음을 따라 밀려나고 있었다.

마치 마력 스스로가 길을 내어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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