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18화 (119/226)

§ 118화

“눈에 띄면 아멜리아가 이용당할까 봐. 그래서 아멜리아를 방해하는 거 아닙니까?”

그레이스는 상냥한 여자다. 하지만 그 상냥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상 누구보다 냉혹해질 수 있는 인물이 그레이스였다.

그리고 그런 그레이스의 상냥함을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아멜리아다.

이 사람은 아멜리아 외의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를 위한 충분한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오마조차 두려워하는 살상계 최고레벨의 결계술, <아이언 메이든>을 구사하는 위험인물이 바로 그레이스였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네요.”

그레이스가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 눈만큼은 웃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그걸 아셨을까요.”

그레이스의 영혼이 검게 물들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 당신을 죽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답니다. 그 아이가 슬퍼할 테니까요. 그러니······”

숨이 막힐 정도로 차가운 살기가 집무실을 가득 메웠다.

“부디 잘 생각해서 대답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

그레이스는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로마노가에서 보낸 첩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

그게 아니라면은 그레이스가 아멜리아에게 품은 감정을 알고 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게임에서 얻은 ‘지식’이었다. 그레이스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게임 외의 것을 말해야 한다. 플레이어 이해솔이 아닌 인간 이해솔이 알고 있는 것을. 내게는 그것이 있었다.

“아멜리아에게 들었습니다.”

“···예?”

순간, 집무실을 메웠던 살기가 씻은 듯 날아갔다. 차가웠던 그레이스의 눈에 감정이 깃들었다.

“···그 아이가 저에 대해 말했다고요?”

“예, 가족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그레이스님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무, 무슨 이야기죠?”

그레이스가 테이블에 몸을 기울인 채 기대 어린 표정을 내비쳤다.

“적당히 걸러서 이야기해드릴까요, 아니면 전부 이야기해드릴까요. 다만 전부 들으면 상처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전부 빠짐없이 말해주세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었지만, 그레이스 본인이 고른 선택이었기에 아멜리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말했다.

“귀찮은 언니가 있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인 줄 아는 성가신 언니가요. 그래서 아카데미로 도망쳤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런 말을······”

그레이스는 충격을 받았는지 표정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언니라고도 말했습니다. 가문을 떠나서도 생각이 난다고요. 최근에는 협회에서 잘할지 걱정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가끔 바보 같아서 걱정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생략했다.

“···가장 좋아하는 언니.”

그레이스는 내 말을 음미하듯, 한동안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말했다.

“그래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아멜리아를 좀 믿어달라 하고 싶어서요.”

그레이스는 내버려 두면 아멜리아를 사사건건 방해하게 되는 캐릭터다.

로마노가라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제 가족조차 도구로 이용하고 버리는 괴물 같은 가문에서 아멜리아를 멀리하기 위해서.

실제로 아멜리아가 자신의 기프트를 감추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도, 사교육을 받기로 유명한 로마노가의 직계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전부 그레이스가 관여되어 있었다.

“그 아이는 정말 좋은 친구를 사귀었네요.”

그레이스가 싱긋 웃었다.

“하지만 제가 믿어줄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아멜리아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

“그래도 당신의 말도 일리는 있네요. 그 아이의 생각도 알게 되었으니, 여기서는 지켜보는 것이 좋겠어요. 적어도 일 년 정도는.”

[<시나리오 퀘스트 : 협회>의 시크릿 루트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5000SP가 수여됩니다.]

······역시 이것 때문이었구나. 협회퀘스트에 시나리오라는 문구가 뜬 이유는.

내가 아멜리아의 본심을 말해줌으로써 그레이스의 생각이 바뀌었다.

방해하는 것에서 지켜보는 쪽으로.

비록 그것은 언제 변할지 모르는 작은 변덕이었고, 유예기간도 짧았으나 충분했다.

아멜리아라면 분명 잘 해낼 테니까.

그녀는 변했고, 지금도 변하려고 하고 있었다.

***

마력석 폭주로 잠시 중단되었던 협회의 시험은 다음 날 계속되었다.

다행히 시험데이터가 날아가지 않은 덕분에 나는 그대로 300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세연, 아멜리아, 은가예 등. 나 이외에도 300점을 넘어선 이들이 등장했다.

그러자 300점을 넘어선 이들에 한해 키카드로 ‘숨겨진 합격 조항’이 전달되었다.

[웨이브가 끝날 때까지 생존할 것.]

[생존하지 못하고 죽을 시 포인트는 ‘0’점으로 처리된다.]

처음에는 알려주지 않은 조항이지만, 반발할 수는 없었다.

협회의 원칙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해내는 것’이었으니까.

애초에 첫날 지도에 관해서도 입을 다물었던 협회였으니, 이 정도 변수쯤은 감안해야 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건 게임의 내용에선 없던 조항이라는 점이다.

‘지켜보기만 한다더니.’

누가 봐도 그레이스가 ‘추가’한 조항인 게 빤히 보였다.

내심 혀가 차졌지만, 그만큼 아멜리아를 믿어보고 싶어졌다는 것이리라.

거기에 휘말린 응시생들은 무슨 죄인가 싶긴 했지만······

‘이 정도도 살아남지 못하면 중급초인은 꿈도 꾸지 말라는 거겠지.’

아무튼, 나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사냥을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경험치 이벤트네.”

<레이드 보스 오크 워리어>

“취이익!”

절벽 아래 소환된 초록색 마수를 보는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이틀간 이어진 초인시험은 무사히 끝을 맺었다.

500명의 응시자 중 100명을 제외한 인원이 전부 중도 탈락해버리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듣기로 중급시험에서 최종 생존자가 100명 이하였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마지막 날 오전. 시험의 폐회식이 열리는 광장은 한 가지 주제로 시끌벅적했다.

“에휴, 오크 잡다가 진빠져서 포기했어요. 그쪽은요?”

“158점이요. 저도 이 이상은 힘들어서 못 잡겠더라고요.”

바로, ‘마수웨이브의 성적.’

폐회식에서 그 최종성적이 공개되기에 다들 서로의 점수를 미리 묻고 다니기 바빴다.

“하, 난 가고일 잡았는데 왜 너보다 점수가 낮은 건데?”

“네가 몇 마리 못 잡았나 보지.”

“음, 확실히 몇 마리 못 잡기는 했지.”

중급시험은 마수의 종류, 레이드 기여도, 타격치 등, 여러 가지 변수를 따져 ‘추가점수’가 부여된다.

그렇게 키카드의 포인트와 추가점수가 합산되어 최종점수가 매겨지기에 응시생들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난 259점이다. 너는?”

“212점. 고블린주술사 잡다가 재수 없게 그리핀 떠서 죽어버렸어.”

그리고, 이는 응시생들간에 필연적인 경쟁심리를 불러일으켰다.

“크큭, 212점이라고? 농담이지? 농담이라고 해줘라, 제발.”

“야! 우린 3명이서 웨이브 막았어. 애초에 너 259점 그거 맞긴 한 거냐?”

획득점수. 이른바 ‘파워 스코어’는 초인의 실력을 증명하는 척도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한편, 공개에 앞서 최종점수를 확인하는 관리자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점수 통계를 내리는 연산 마도구가 최종값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최종점수가 거의 다 나오기는 했다.

다만, ‘한 사람’의 점수가 아직도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던 것이다!

입력값이 잘못된 건 아닌지 확인하고, 마도구도 꼼꼼히 점검을 해보았지만, 모두 정상이었다.

그렇다고 응시생들이 키카드에 장난질을 쳐놨을 리도 없었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협회의 연산시스템은 키카드와 별도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으니까.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다 짚어보았음에도 오류는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래프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저 점수가 진짜라는 소리인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아무리 잡은 마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점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지금 점수는 그 한계를 넘는 것도 모자라 그래프 천장을 뚫어버려서 몇 점인지조차 파악이 되질 않았다.

레이드전의 기여도가 말도 못하게 높거나, 웨이브 여러 개를 혼자서 싹쓸이 했다거나 하는 상식 밖의 행동을 벌이는 게 아니고서야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점수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위이이이잉─

이내 연산이 끝났다는 붉은 점등과 함께 마도장치가 부르르 진동했다.

관리자는 입력값을 조절해 그래프의 천장을 최대치로 높였다.

그러자, ‘한 사람’, 이해솔의 점수가 마법사의 눈에 나타났다.

***

“점수공개는 언제 하는 거야?”

“9시에 한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9시 30분이야.”

공개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나오지 않는 점수에 응시생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황스럽기는 관리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점수를 그대로 공개해도 될지 판단이 서질 않았으니까.

그때, 그레이스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점수 공개 시간이 지났어요. 무슨 문제라도 발생했나요?”

“그게······ 이걸 공개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예? 점수가 나왔으면 공개를 해야죠, 왜 고민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산 마도구로 시선을 돌렸던 그레이스의 눈이 커졌다. 이윽고 표정을 수습한 그레이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예?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그레이스가 다시 중얼거렸다. 관리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레이스님. 그런 점수는 없습니다만······”

“아니면 이거 그대로 내보내실 건가요?”

“······.”

단상 뒤에서의 짤막한 대화가 오간 후, 드디어 시험의 점수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어?”

“이거 잘못 나온 거 아니야?”

“미친, 639점이라고?”

“627점은 뭔데? 저게 말이 돼?”

“매수라니. 협회도 이제 끝났군.”

공개된 점수에 응시생들은 어이없어하거나 분통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게, 단상에 떠오른 점수란 게······

[한세연 639점]

[아멜리아 로마노 627점]

[은가예 603점]

[천우진 485점]

[니콜라이 오볼렌 468점]

[이엘린 디아즈 456점]

[하벨 워커 322점]

.

.

.

.

격차가 말도 못 하게 차이가 난 것이다.

세상에, 600점대라니?

혼자 웨이브 하나를 독식해도 될까 말까 한 점수다.

레이드 보스전 내내 계속해서 최고 기여도를 올린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 버그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때, 무심코 위를 올려다보았던 한 응시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위에 뭔가 하나 더 있는데?”

“어? 그러네. 그런데 저건 몇 점이란 소리야?”

“그,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점수표를 타고 올라간 제일 꼭대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해솔 만점]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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