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19화 (120/226)

§ 119화

초인시험은 합격이 확정된 시점에서 마수를 잡을 이유가 없다.

그때부터는 마수웨이브가 끝날 때까지의 생존이 목표가 된다.

다만 가상마수라도 사냥을 하면 경험치가 쌓이는 나는 입장이 달랐다.

그래서 3개의 시작점에서 나오는 웨이브를 독식, 레이드 보스는 꼬박꼬박 막타를 챙겨주었다.

이미 공략법을 알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실현시켜 줄 세 사람, 아멜리아, 은가예, 한세연의 도움을 받으니 점수를 올리는 건 손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최종 점수가······

‘1278점.’

무려 다른 이들의 네 배에 달하는 점수. 발표가 되었다간 초인시험 자체가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시험의 문제나 공략법이 미리 유출되었다거나, 점수를 조작했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 말이다.

물론, 그런 것 일절 없이 오로지 나 혼자 이룬 순수한 점수다.

그래서 최종발표에서 협회가 고심하면서 내놓은 점수라는 게 ‘만점’.

대충 점수를 정상적으로 속일 수도 있지 않냐 싶어 그레이스에게 물었지만······

‘공식적인 점수를 속이는 건 협회의 원칙에 어긋난답니다.’

라는 원론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여태까지 그 원칙을 밥 먹듯이 어기고, 시험의 룰까지 바꾸던 사람이 내놓을 만한 대답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심은 따로 있었다.

‘점수가 공개되었을 때 주변 반응은 재미있었지만요.’

나직이 웃는 게 결국 만점이라 발표하는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는 거다.

본인의 재미를 위해 공식적인 발표를 이용하는 것에 혀가 내둘러지긴 했지만, 긴급워프진까지 편의를 위해 이용하던 그레이스의 성격을 생각하자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문제만 되지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없다는 주의가 바로 그레이스였으니까.

저 ‘뭘 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 덕에 아멜리아에게 맨날 꾸지람을 듣는 모양이었지만.

아무튼, 만점이라는 이해 못 할 점수가 공개되자, 일부에서 반발이 있었으나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초인시험의 결과가 모두에게 공표되어야 할 의무는 없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형식을 위해 한자리에 모아놓고 점수를 발표할 뿐, 개인에게만 제대로 전달되면 문제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점수가 발표되고 나자 가장 신이 난 인간은 뜬금없게도 김주혁이었다.

“한세연 생도! 인터뷰 괜찮으십니까!”

“대한민국 KBC에서 나왔습니다!”

우수한 성적의 합격자들에게 몰려드는 각 길드의 스카우터, 취재진들.

“생도들의 이야기는 모두 저를 통해서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김주혁이 그런 이들을 막아서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모두 순위권을 차지했다는 것을 무기 삼아, 자신과 제자들의 친분(?)을 과시했다.

“김주혁 교수님! 잠깐 이야기 좀···”

“우선 인터뷰부터···”

“크험, 차례대로 이야기해드리죠.”

마치 그룹사 사장님이라도 되는 양 온갖 거드름을 피우는 김주혁.

본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생도들을 이용하는 것이 너무 빤히 보였다.

“으, 왠지 재수 없네.”

“그래도 교수님은 좋은 분이야.”

은가예가 미간을 찌푸리며 기분 나쁘다는 반응을 보이자 일레인이 반론한다.

“···뭐?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끄덕끄덕.

“······.”

고개를 끄덕이는 일레인. 은가예가 작게 입을 벌렸다.

어떻게 저런 인간을 좋게 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반면 나는 일레인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퇴학당할 위기에 놓인 일레인을 구해준 게 바로 김주혁이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의외의 면모라도 보았는지 일레인은 김주혁을 좋게 보고 있었다.

실상 지금 김주혁이 취하는 태도도 틀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터니티 아카데미는 졸업 전까지 생도를 외부의 간섭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을 표방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 김주혁은 본인의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었다.

본심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생도들에게 가려는 취재진이며 스카우터를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김주혁이 중간창구 역할을 해주는 덕에 우리는 귀찮은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리라.

그건 그렇고······

‘내버려 둬도 괜찮을 것 같네.’

김주혁 교수는 재능이 떨어진 탓에 가문에서 버려진 소모품이다.

그 쌓여왔던 열등감이 천우진으로 인해 폭발해 마인으로 변모하는 캐릭터라는 설정.

그런데 지금의 김주혁은 그리 어두운 영혼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환경이 바뀐 영향인가? 저 교수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김주혁을 향한 일레인의 고평가에 뺨을 긁적이던 은가예가 어딘가를 보며 중얼거렸다.

“쟤는 아직도 저러고 있네.”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아멜리아가 그레이스를 상대로 한창 설교를 늘어놓고 있었다.

“알겠어요?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여기면 안 돼요.”

“문제만 생기지 않으면 되지 않겠니?”

“그게 안 된다고요. 특히나 언니는. 더더욱.”

“알겠어. 마음대로 하지 않을게.”

대답과 달리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한 그레이스의 모습에 한숨을 포옥 내쉬는 아멜리아.

주변에서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겉보기에 영락없이 덤벙대는 언니를 챙기는 막내 동생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레이스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를 안다면 전혀 다르게 보이겠지만.

아멜리아는 그런 그레이스의 냉혹한 일면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리 한창 설교를 늘어놓으며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레이스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아멜리아였으니까.

물론 그레이스는 아멜리아가 알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이었지만······

‘괜찮겠지.’

그레이스는 지켜본다고 했으니까.

아멜리아와 관련된 약속이라면 지키고 보는 그레이스였기에 그 말은 사실이리라.

김주혁, 그레이스, 아멜리아, 언데몬, 한세연······

1만 시간이 넘는 플레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로서는 마냥 신선하고 놀라웠다. 그게 이 이터니티라는 세계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리라.

‘위험한데.’

갈수록 이곳이 마음에 들려 하고 있었다.

***

초인시험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이틀 사이 마경에는 한 가지 변화가 생겨나 있었다.

“짜잔!”

“짜잔!”

뽐내듯 손을 치켜드는 리디아와 니엘.

“···오옷!”

나와 은가예, 아멜리아, 한세연. 모두가 동시에 놀랐다.

언데몬 마을의 중심에 거대한 저택 한 채가 완성되어 있었다.

얼마 전부터 공사를 들어갔던 건 알고 있었으나, 너무 멋들어지게 완성이 되어 있던 것이다.

어디 비버리힐리스에서 가져다 옮겨놓은 것 같은 3층의 고급 저택에 정원으로 펼쳐진 작은 연못.

“니엘이 지었어요!”

“리디아는 호수 만들었어요!”

칭찬을 바라듯 눈을 반짝이는 쌍둥이 자매.

“거짓말하지 마! 호수는 니엘이 만들었어!”

“언니는 땅만 팠잖아! 물은 리디아가 채워 넣었는 걸? 물이 없으면 호수라 할 수 없어.”

물이 먼저냐 땅이 먼저냐로 싸우기 시작하는 리디아와 니엘.

별안간 벌어진 촌극에 마중을 나왔던 이본느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저기서 조금만 더 내버려 뒀다간 손이 나갈 듯했다.

인내심의 화신 같은 이본느지만 두 아이를 상대할 때는 피곤해하는 게 여실히 보였으니까.

“둘 다 잘했어. 그러니 그만 싸워.”

“죄송해요. 리디아가 과장이 좀 심해요.”

“무슨 소리야! 언니는 놀기만 했잖아!”

서로를 까내리기 바쁜 우애 좋은 쌍둥이 자매.

물론 나는 두 아이가 저택을 지었다느니, 호수를 만들었다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곧이곧대로 믿어줄 정도로 순진하지 않다.

니엘이야 골렘을 움직일 줄 아니 벽돌 정도는 날랐겠지. 연못의 구멍도 재밌다며 팠을 거다.

리디아는 놀고 있다가 비워진 구멍에 물만 채워 넣고 생색을 내는 거였고.

나머지 어려운 작업은 전부 어른들이 했을 게 안 봐도 뻔했다.

두 소녀의 재능이 뛰어나다곤 해도 아직 어린아이들이었으니까.

돌 나르고, 물 부어 넣었다고 저택이니 호수를 만들었다기엔 대단한 무리가 따랐다.

“세연아, 애들 좀 봐줘.”

“히끅!”

“힉!”

언제 싸웠냐는 듯 안색이 파랗게 질리는 리디아와 니엘.

딸꾹질을 하며 금새 말싸움을 그치는 게 언제봐도 신기했다. 그렇게 무섭나?

나는 한세연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만 봐도······

***

“합격 축하드립니다, 세 분.”

이본느는 우리의 합격 소식을 마화를 통해 미리 들어 알고 있었기에, 작은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야외 테이블에 널린 불고기, 김치찌개, 동태전, 굴비 등, 수많은 음식.

이본느가 최근 한식에 꽂혀 있어서 그런지 테이블을 점령한 건 전부 한식이었다.

“많이 드십시오.”

갈비탕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미소 지어주는 백건우. 수저로 국물을 떠 마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짜지도 않고, 담백한 게 간이 기가 막히게 잘 잡혔다. 역시 이 사람은 못 하는 요리가 없다. 이러니 이본느가 음식에 꽂히지.

한편, 백건우의 옆에 쭈뼛거리며 서 있던 소피아가 옆구리가 다 터진 계란말이를 내려놓으며 기대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픽 웃은 내가 계란말이를 집었다.

계란말이야 터지건 말건 맛이 다 거기서 거기니까.

굉장한 착각이었다.

“·········.”

내 얼굴이 웃는 그대로 굳어졌다. 심하게 달아서 순간 혀가 마비되는 줄 알았다.

“소피아. 이거 설탕을 얼마나 집어넣었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적당히 집어넣은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다는 시점부터 대충 때려 박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음, 소피아는 음식을 처음부터 배우는 게 좋겠습니다.”

“······예.”

울상을 지으며 물러나는 소피아.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주기에 이건 너무 갔으니까.

소피아의 성격상 여기서 확실하게 말해놓지 않으면 또 설탕을 때려 박은 요리를 들고 나타날 게 분명했다.

내가 좋다고 하는 건 과하게 하려드는 소피아였으니까.

그렇게 잘 끊어냈다는 생각을 하며 갈비탕을 들려던 순간이었다.

딸그락.

“음?”

“왜 그래, 해솔아?”

내가 손에서 숟가락을 놓치자 한세연이 걱정을 하며 물어왔다.

“아무 것도 아니야.”

고개를 저으면서 나는 수저를 집었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순간이지만, 내 손이 빛으로 변했다가 돌아왔다.

***

······초인시험을 치르고 난 후로, 나는 한동안 마경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언데몬의 사람들과 연을 쌓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지내면서 나는 이들이 갑갑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바깥과의 교류를 하지 못하고 줄곧 마경 안에 갇혀 지내야 하니, 갑갑할 만도 했다.

이 상황을 해결하자면 그들과 오거스트와의 계약을 끊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지 않는 이상 이들은 평생 마경에 숨어살아야만 하는 처지였으니까.

‘슬슬 풀어줄까.’

그렇게 작은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나는 한 가지 커다란 변화를 느꼈다.

그건 바로 내 몸이 가면 갈수록 ‘정령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파랑이의 불길만이 아니라, 아나스타샤의 빛도 의식대로 쏘아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빛으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아무튼, 내가 인간도 정령도 아닌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굳이 따지자면······

‘하프라 불러야겠지.’

하프 정령, 혹은 하프 인간.

나는 내 이러한 상태를 통해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 넣으면 되겠습니까?”

“네, 마기를 넣어주세요.”

소피아가 의아해하며 자신의 마기를 움직인다. 그런 그녀의 발치에는 ‘계약진’이 그려져 있었다. 오직 이형의 존재에게만 반응하는 계약진. 그 안으로 마기가 스며든다.

그렇게 계약진이 검게 물들었을 때, 나는 그곳에 손을 얹고, 기력을 불어넣었다.

──바로 그 순간.

화아악!

순간, 계약진에서 잿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놀란 소피아의 눈이 나를 향한다.

‘역시······’

계약진을 바라보며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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