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22화 (123/226)

§ 122화

백야는 미지를 파헤치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친 모험가들의 집단이다.

하지만 그들이 꼭 좋은 의미에서 미지를 파헤치는 것은 아니었다.

미지를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모든 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탐구욕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런 끝 모를 탐구욕을 지닌 백야에서 드라이어드라는 미지의 존재를 가만히 내버려 둘리 만무했다.

그들은 드라이어드의 존재를 파악했을 때부터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지난 12차례에 걸친 마수 거래 역시 드라이어드의 능력이나 습성을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에 지나지 않았다.

지부장 양휘철은 거래만 한 것이 아니라, 아나스타샤를 은밀히 미행하며 그녀가 어떠한 습성을 지녔는지 모두 파악한 것이다.

“그러니까, 개미집에 나뭇잎을 씌워주고, 나무에 물을 주고······, 해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는 빛을 쬐어주어 광합성을 시킨다고?”

“예, 그렇습니다. 죽어가는 식물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마력을 불어넣습니다.”

양휘철은 자신이 파악한 바를 상부에서 나온 백야의 특임반에 모두 고해바쳤다.

“인간의 외형에 식물을 가꾸는 정령이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이 없어.”

붉은 눈을 지닌 상격 초인, 적안의 모리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돌연 양휘철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너.”

“예, 예! 말씀하십시오.”

“지금 한 말 진짜겠지? 만약 거짓이라면 ······”

퍼엉─!

모리츠의 시선이 닿은 곳의 바위가 터져 나갔다.

“여기까지 나를 데려온 수고비를 줘야될 거다.”

“흐, 흐억!”

가루가 된 바위를 확인한 양휘철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입니다! 정말입니다! 드라이어드의 존재는 여기 있는 모두가 보았습니다!”

모리츠의 시선이 양휘철의 뒤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개척지부의 모험가들이 있었다.

“······양지부장님의 말은 사실입니다.”

“예, 저희들도 똑똑히 보았습니다. 분명 인간의 외형을 가진 정령이었습니다.”

“흐음.”

모험가들의 증언에도 모리츠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턱을 쓸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게 아니라면 절대 믿지 못하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모험가 길드 백야에 들어오게 된 계기도 서적이나 인터넷을 통해 확인된 것들이 사실인지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쯤 해둬. 모리츠. 그렇지 않아도 직접 확인해 보려고 나선 길이잖아?”

“그렇군.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면 되는 일이군.”

일본계 상격초인, 미오의 말에 모리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휘철의 멱살을 놓았다.

죽다 살아난 양휘철이 뒷걸음질치며 미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사실이 아니면 지부장님이 대가를 치르면 되잖아요?”

미오가 활짝 웃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촛농처럼 흘러내렸다.

“흐, 흐어.”

놀란 양휘철이 말조차 내뱉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때다.

“미오, 장난은 그만치고 와라. 할 이야기가 있다.”

“네, 반장님!”

양휘철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인 미오가 앞으로 걸어갔다.

힘이 풀린 양휘철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공터에 모여 상의를 하고 있었다.

특임반.

‘청소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그들은 백야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 뒤처리를 위해 파견되는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상격초인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특임반이 모두 파견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많아 봐야 둘에서 셋 정도만이 파견된다.

그런데 그 특임반이 지금 무려 8명이나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심지어 ‘반장’이라니.

“저 사람이······”

양휘철이 놀란 눈으로 공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남성을 바라보았다.

***

초인협회에서는 능력에 따라 등급을 매김으로써 초인의 실력을 구분 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협회에서 매기는 등급만이 꼭 정답인 것만은 아니었다.

초인 중에는 협회의 시험을 치르지 않는 이들도 부지기수였으며, 그 능력이 명확히 공개되지 않은 이들 또한 존재했으니까.

백야의 특임반장, 강시우가 바로 이러한 경우의 대표격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협회의 공식리스트에는 올라와 있지 않으나, 백야 내부에서는 그가 최상격에 달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퍼져있었다.

그도 그럴 게 상격초인으로 구성된 특임반에서 그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그만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강시우는 한 가지 특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내 능력으로 파악한 결과, 드라이어드가 현재 있는 위치는 이곳이다.”

통나무 밑동에 지도를 펼쳐놓은 강시우가 마경의 어딘가를 손으로 짚었다.

“···거기, 거기 있을 리 없잖아요, 반장. 농담이시죠?”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초인, 리우트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흐음, 아무리 반장의 능력이라지만 믿지 못하겠군.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겠어.”

적안의 모리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매를 좁힌다.

일본계 초인, 미오는 놀란 표정으로 지도와 강시우를 번갈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반장의 말이니 의심할 여지는 없겠지만 정말인가요?”

특임반, 7인의 눈이 모두 강시우를 향했다.

그도 그럴 게 강시우가 가리킨 곳은 이 마경에서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금역(禁域). 어둑서니의 영역이었다.

“······.”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강시우가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겁에 질린 표정의 남성이 서 있었다. 드라이어드와의 거래에 나선 전적이 있는 개척지부의 모험가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시우가 남성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네가 본 드라이어드의 모습을 떠올려라.”

“크으으.”

부르르 떨던 남성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진다. 강시우의 머릿속에 인형같이 생긴 금발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스스─

남성의 머리에 맞닿은 강시우의 손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지도에 스며들었다.

심상에 떠올린 존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강시우의 기프트, [추적하는 자]였다.

“진짜네요.”

지도를 보던 미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붉게 물든 기운은 지도의 한 부근, 어둑서니의 영역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런데 뭐 때문일까요. 정확한 위치가 표시되지 않네요?”

“결계, 혹은 드라이어드의 특수한 능력이겠지. 어느 쪽이든 어둑서니의 영역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강시우의 말에 모리츠가 턱을 쓸었다.

“흐음, 난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

“모리모리, 어차피 가서 확인할 거야.”

“모리모리라 하지 마라. 모리츠다.”

미오의 말에 인상을 쓴 모리츠가 지도를 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내 눈으로 확인하겠어. 진짜 드라이어드가 있는지 없는지.”

“하, 하지만 어둑서니의 영역이라고요? 저 가기 싫어요. 무서워요.”

어린 아이, 리우트가 울상을 짓자 거구의 남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래서 애새끼랑 오기가 싫은 건데.”

“수찬씨, 말이 너무 심해요.”

남성을 힐난한 미오가 리우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리우트, 걱정마. 리우트도 충분히 무서워.”

“그게 달래는 거냐.”

수찬이라 불린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미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래졌는데요?”

“······.”

미오의 말대로 리우트는 눈물을 뚝 그친 상태였다.

“잡담은 그만해라. 움직인다.”

특임반장, 강시우가 어둑서니의 영역으로 향하자 특임반이 뒤따랐다.

그때, 앞장서던 강시우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모리츠가 강시우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숲만이 펼쳐져 있었다.

“왜 그러지, 반장?”

“···아무것도 아니다.”

고개를 저은 강시우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특임반과 백야의 모험가들이 어둑서니의 영역으로 향했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져 조용해진 공터.

“찍찍.”

강시우가 바라보았던 숲속에서 검은 토끼가 총총 뛰어나왔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어둑서니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백야의 무리를 조용히 비추었다.

***

“흐아암- 들어섰어요···”

언데몬 마을의 저택 회의실.

잠옷에 슬리퍼 차림의 여성이 졸린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이름은 라우라.

이본느의 제자로 특정 마수나 환수를 조련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항상 피곤해하는 게 특징이며 여간해서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일주일 전 나와 계약할 때 이후로 밖에 나오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가 졸려 하는 이유는 자신이 조련한 마수들의 일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여러 마수의 생활을 경험하느라 정작 본인의 일상 밸런스가 깨져버린 케이스로, 오거스트를 피해 숨어다니다 보니 기프트가 저런 식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어디로 움직이고 있어요?”

“하암,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자가, 있는 것 같아요···”

“백야의 특임반이야.”

대답을 한 건 아렌이었다.

“놈들 중에 성가신 추적술을 가진 녀석이 있거든. 예전에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어. 괴물같은 놈이니 방심하지 않는 게 좋아.”

아렌이 경고를 주었지만, 소피아는 오히려 좋다는 듯 싱긋 웃었다.

“찾아갈 필요성을 덜었네요.”

그녀는 자신의 새로 얻은 힘을 초인을 상대로 시험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건 소피아만이 아닌 언데몬, 전원이 마찬가지였다.

당장 차분한 이본느마저도 얼굴에 작은 호승심이 떠올라 있었으니까.

“마을까지 들일 수는 없으니 마중을 나가주어야겠군요.”

이본느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마을의 광장에는 언데몬의 전투인원들이 모여있었다.

그때 나를 향해 은가예와 아멜리아가 다가왔다.

“백야가 온다며? 나도 도울게.”

“그래요, 스승님이 나가시는데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아멜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님?”

“이본느님 말하는 거예요.”

“언제는 마녀라며.”

“그, 그땐 그때고요. 아무튼 도울게요.”

은가예와 아멜리아는 싸우겠다는 의지를 여실히 내비쳤다.

확실히 저 둘이 도와준다면 백야를 상대하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그동안 마경에서의 경험을 통해 두 사람은 강해져 있었으니까.

특히 아멜리아의 다음 수를 읽는 기프트는 싸움에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줄 터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

“이건 저 사람들의 몫이니까.”

이번 백야와의 싸움은 오로지 언데몬이 싸워서 승리를 얻어야 했다.

그래야지만 ‘마경의 주민’이 사회에 설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너희가 도와주면 의미가 없어.”

은가예와 아멜리아는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더 이상 싸우겠다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데몬들의 앞에 나서 무언가를 말하는 이본느.

모두가 움직인 것은 그녀의 말이 끝나고 나서였다.

라우라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앞장섰다.

그렇게 마을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크우드 숲을 넘어선 백야와 조우했다.

“드라이어드는 어디에 있지?”

백야를 이끄는 사내, 특임반장 강시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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