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백야는 이번 ‘드라이어드 생포’에 커다란 전력을 투입했다.
특임반 8명. 본단의 중격 모험가 30명, 개척지부의 20명.
총 58인으로 이루어진 드라이어드 생포팀은 다크우드 숲을 지나, 어둑서니의 영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당황했다.
“······사람?”
“여긴 어둑서니의 영역이 아니었나?”
드라이어드를 쫓아왔건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뭔가 커다란 미지의 냄새가 풍기네요.”
“전부 확인하겠다.”
미오와 모리츠가 열띤 목소리를 낸다.
그때, 길을 가로막은 이들을 쓸어보던 강시우가 누군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드라이어드는 어디에 있지?”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시치미를 떼도 소용없다. 네게서는 드라이어드의 기운이 풍긴다.”
“느닷없이 나타나서 그렇게 말하면 알고 있어도 알려주기 싫어지는데.”
“그러면 네 머릿속에 묻도록 하지.”
강시우가 그렇게 말을 끝냈을 때다. 그의 옆에 있던 모리츠의 눈이 붉게 번뜩였다.
시선이 향한 곳은 강시우와 대화를 나눈 남자. 시계가 뒤틀린다. 이제 기프트가 발동하며 녀석의 하반신이 짓뭉개질······
파아앙─!
“······뭐?”
모리츠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앞으로 나선 은발의 여자가 그를 바라보며 분개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마스터를 공격하다니, 죽고 싶다는 건가요?”
“······.”
모리츠의 기프트는 여자가 휘두른 대검에 깨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리츠의 기프트는 [현실 부정].
스스로가 본 것을 현실이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건 부숴버리는 파멸의 마력이었다.
그리고 이는 지목당한 대상 외의 간섭을 배제하는 ‘확정 공격’이다.
도중에 타인이 막거나 깨트릴 수 없는 공격이란 말이다.
아니, 애초에 물질도 아닌 마력이 물리적으로 깨진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깨질 수 없는 마력이 지금 깨져나갔다.
그것도 너무나 간단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모리츠가 눈을 꿈틀거리는데, 쿠웅, 땅이 울렸다.
“이곳은 마경의 땅. 살고 싶다면 무릎을 꿇고 엎드려 투항해라!”
대검을 바닥에 내리찍은 여자가 당당히 선언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피아 포코르니의 검에 몰살을 당하는 선택지도 있다!”
그건 백야, 모두를 향한 발언이었다.
***
······남자의 눈이 한밤중의 도깨비처럼 붉게 빛난다. 동시에 나를 향해 짓쳐 드는 파멸의 마력.
다만, 그 께름칙한 마력은 내게 닿지 못했다.
─────!
대검이 휘둘리며, 깨질 리 없는 마력이 산산조각 부서져 나간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어떠한 속성이건 관계없이 물리적으로 부숴버리는 기프트, [분쇄자].
“마스터를 공격하다니, 죽고 싶다는 건가요?”
어느새 내 앞에는 은발의 여자가 당당히 자리해 있었다.
소피아 포코르니.
마력을 부순 분쇄자의 주인은 바로 그녀였다. 과연, 힘을 중시하는 소피아다운 기프트였다.
쿠웅──!
이어서 박력 넘치게 대검을 땅에 내리찍은 소피아가······
“이곳은 마경의 땅. 살고 싶다면 무릎을 꿇고 엎드려 투항해라!”
당당히 선언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소피아 포코르니의 검에 몰살을 당하는 선택지도 있다!”
도발을 넘어 광오하기까지 한 발언이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오연히 받으며 씨익 웃는 소피아.
물론 그녀가 아무 생각이 없어서 저렇게 나선 것은 아니었다.
사전에 백야를 도발하기로 미리 입을 맞추어 두었기에 그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길래 맡긴 것이기도 했다.
설마 저렇게 대담하면서 화려한 도발을 하리라곤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크, 잘한다.”
이건 첫 등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연출로서는 최고였다.
백야조차 소피아의 기세에 일순 압도당해 할 말을 잃었으니까.
“잘 찍고 있죠?”
─흐아암, 예, 찍히고 있어요,
이어폰을 통해 라우라의 졸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익 웃은 내가 말했다.
“아나스타샤.”
스르륵.
내게서 멀리 떨어진 우측에 모습을 드러내는 아나스타샤.
빛의 정령답게 시야를 착란시켜 모습을 감추고 있던 것이다.
“드라이어드다! 잡아 와라!”
아나스타샤가 나타나기 무섭게 강시우가 소리쳤다. 백야의 모험가들이 아나스타샤를 향해 달려들었다.
“드라이어드님을 지키세요!”
그에 맞서 소리치는 이본느. 우리 쪽 사람들이 움직이며, 아나스타샤를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
백야와 언데몬이 뒤엉키며 시작된 전투는 얼핏 치열해 보였으나,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우리 쪽으로 승기가 기울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상대가 백야의 본단에서 나온 정예 모험가들이라면 언데몬은 오거스트의 사병이었던 이들이다. 하물며 마경이란 가혹한 환경에서 마수와 사투까지 벌여왔다.
그냥 붙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승부이건만, 언데몬은 내 권속이 되면서 이전과는 몰라보리만치 성장한 상태였던 것이다.
“크하하! 덤벼라, 덤벼!”
방패를 찍고 직도를 휘두르며 광소를 터트리는 백건우.
“······백 아저씨가 원래 저런 사람이었던가요?”
“전투에 들어가면 조금 혈기가 치솟는 분이랍니다.”
아니, 저건 혈기 수준이 아니라, 그냥 광인인데요?
이본느의 대답에 나는 볼을 긁적였다.
누가 봐도 백건우는 싸움을 즐기고 있었으니까. 인자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마인은 마인이라는 건가.
“혼마력이 좋다는 건 알았는데, 이건 생각 이상이네요.”
“그러게, 상대하기 까다롭겠어.”
그렇게 말한 것은 아멜리아와 은가예였다.
그녀들은 언데몬의 이들이 사용하는 잿빛 기운, 일명 ‘혼마력’에 놀란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안정성이나 파괴력 양측 면에서 혼마력은 마력을 압도하고 있었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백야의 베테랑 모험가들조차도 기운의 질적 차이에서 조금씩 밀리고 있던 것이다.
물론 은가예의 폭마력이나 아멜리아의 순수마력은 별개로 쳐야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마인 특유의 빠른 회복력 탓에 싸움이 길어질수록 유리해지는 건 이쪽이었다.
설령 체력이 떨어지더라도 우리 측에는 한세울의 연금상에서 가져온 포션들이 잔뜩 구비되어 있기까지 했고 말이다.
백야측에서도 장기화가 되면 불리해지는 건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필사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네.”
한편 소피아는 움직이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 듯했다.
그래도 내 호위를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것을 억누르고 있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소피아씨, 전 됐으니까 도와주고 오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해솔님의 호위가······”
“누가 저를 건들 수 있다고요?”
내가 픽 웃었다.
나는 최근 정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파랑이와 아나스타샤의 힘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백야에서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드물다 할 수 있는데, 심지어 지금은 나 혼자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세연, 아멜리아, 은가예, 니엘, 리디아. 거기다 이본느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소피아는 나를 주시하는 강시우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지만······
“괜찮아요.”
“예, 그럼 빨리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소피아가 방긋 웃더니,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
유진성은 근접과 원거리, 양쪽에 모두 특화된 상격초인이다.
계열은 검사이지만 그의 공격은 공간을 격하고 상대에게 닿는다.
그 마법과도 같은 기프트를 인정받아 백야의 특임반에 들 수 있었다.
그는 순수 무력으로는 자신이 특임반에서 강시우 다음가는 강자라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뭐지?”
처음 보는 잿빛 기운을 쏟아내는 적들을 보며 유진성은 당황했다.
마력도 아니고, 마기도 아닌 그 기운은 백야의 탐험가로 온갖 미지를 접한 유진성조차 처음 보는 기운이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에 백야의 정예들이 밀리고 있었다.
물론 유진성에게 있어 이는 조금 까다로울지언정 충분히 전황을 뒤바꿀 수 있는 수준이었다. 상격초인이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존재는 차원이 달랐다.
콰아아아앙──!
백야의 진영 한 가운데로 무언가가 떨어지며,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뒤흔들렸다.
땅거죽이 뒤집히며,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었다.
이윽고 흙먼지가 걷힌 곳에는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거대한 구멍이 움푹 파여 있었다.
그 구멍의 중심에는 지면에 대검을 박아넣은 육감적인 여성이 홀로 오연하게 서 있었다.
자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투항할 것을 요구한 소피아 포코르니라는 광오한 여성이었다.
“······.”
고작 떨어져내리며 대검 하나를 박아넣는 단순한 동작 하나로 만들어냈다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광경.
침을 꿀꺽 삼킨 유진성은 굳은 표정으로 소피아를 주시했다.
‘상격? 아니다. 저건 최상격에 다다른 괴물이다.’
자신감이 넘치던 유진성이었으나, 소피아를 가까이서 본 순간, 위험하다는 경종이 미친 듯이 울려왔다.
혼자서는 무조건 죽는다. 그 혼자만이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지 주변에는 특임반 둘이 나타나 있었다.
모리츠와 미오.
유진성 자신을 포함해 셋에 달하는 상격초인. 하지만 두 사람을 보고도 유진성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보통이 아니었다. 도저히 이기리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만큼.
“······괴물이군.”
저만한 괴물이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중요한 건 소피아가 그들과 적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리츠와 미오만 남고 전부 물러나라!”
유진성이 주변의 모험가들을 물렸다.
“요란 떨지 마라, 유진성.”
모리츠가 기분이 팍 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도 모험가들을 물리는데 반대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은 있어봤자 발목만 잡을 뿐이었으니까.
이윽고, 모리츠와 미오, 유진성이 소피아를 삼방향으로 둘러쌌다.
우웅─.
긴장한 유진성의 검에 푸른 마력이 최고조로 맺힌다.
“감히 제 발로 들어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군.”
모리츠가 붉은빛이 요사하게 맺힌, 살기 넘치는 눈으로 소피아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스르르.
미오의 피부는 액체 괴물처럼 녹아 흘러내렸다.
그렇게 세 사람이 모험가들을 물리고, 전투준비를 모두 갖출 때까지 소피아는 가만히 서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준비는 다 끝났나? 지금이라도 투항하면 받아줄 수도 있다.”
“건방지게 여유를!”
눈을 꿈틀거린 모리츠에게서 파멸의 마력이 공간을 우그러트리며 쏘아졌다.
파아앙─!
“큭! 또···”
소피아가 휘두른 대검에, 모리츠의 마력이 깨져나갔다.
“지금 공격은 항복하지 않는다는 거지?”
시원하게 웃어 보이는 소피아. 모리츠의 이성이 날아갔다.
“닥쳐라!”
그의 눈이 더욱 붉게 빛나며, 파멸의 마력이 소피아의 사방을 감옥처럼 애워쌌다.
“모리모리, 그대로 유지해!”
흐물흐물 녹아내리던 미오가 소피아를 덮쳐들 듯 날아들었다.
그녀의 기프트는 액체화. 검으로는 벨 수 없는, 검사와 상극에 놓이는 존재였다.
츄아악─!
채찍처럼 휘둘러진 미오의 팔이 소피아를 노렸다. 그리고.
파아앙!
미오의 팔이 부서져 나갔다.
“······!”
***
소피아가 전투를 치르는 한편, 나 또한 여유리고 있을 부릴 수는 없었다.
어느새, 강시우가 나를 향해 다가왔으니까.
녀석은 내가 아나스타샤와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듯했다.
터벅터벅.
말없이 다가오는 강시우.
스릉─.
녀석의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며 어둠이 자욱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틀림없는 ‘마기’였다. 하지만 강시우는 마인이 아니다. 초인이었다. 그런 강시우가 마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 그건···
“마검(魔劍)이네.”
강시우, 그가 이터니티에서도 몇 없는 마검사용자이기 때문이었다.
후아아악─
어둠이 시야를 검게 물들이며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