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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24화 (125/226)

§ 124화

후와아악─!

구름처럼 퍼지며 순식간에 밀려드는 어둠.

이해솔, 한세연, 은가예, 아멜리아, 리디아, 니엘, 이본느. 어둠은 그 모두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만 했다.

“흐랴아압!”

기합성을 지르며 달려나간 은가예가 대검을 휘둘렀다.

검로를 따라 생겨난 중력의 마력이 공간을 짓뭉개며 나아갔다.

마경에서의 성과를 보여주듯 날카롭게 벼리어진 그것은 그녀의 마음에 꼭 들었다.

이름하여 「중력의 칼날」.

그녀의 기프트가 탄생시킨 이적이었다.

이제 중력의 칼날이 저 어둠을 베고······

“어?”

은가예가 눈을 깜빡였다.

···해가 내리쬔다.

어둠이 걷혀 있었다.

표적을 잃은 중력의 칼날이 저 너머로 사라졌다.

“그것은 드라이어드의 힘인가?”

강시우의 눈은 은가예의 뒤를 향해 있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멋대로 생각해.”

대답을 한 건 이해솔이었다.

이해솔의 항마력이 어둠을 지운 것이다. 은가예는 볼을 긁적였다.

“···괜히 오바했네.”

“오바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무척이나 훌륭한 검이었습니다. 제 눈이 모처럼 호강하더군요.”

“그, 그런가요?”

“예, 무척 훌륭했습니다. 제가 장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아니요, 대단합니다.”

“아하하.”

뜻밖의 칭찬에 은가예가 멋쩍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누구시죠?”

웬 처음 보는 훈훈한 인상의 남자가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백야의 특임반에 몸을 담고 있는 이현이라 합니다.”

“아, 백야 특임반의 이현씨군요. 칭찬 감사드려요.”

“예.”

“백야?”

“예.”

“···특임반.”

“맞습니다.”

“······.”

싱긋 웃으며 긍정하는 이현. 은가예는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졌다. 뒤늦게 눈을 크게 뜬 그녀가 버럭 소리 질렀다.

“에에엑-!”

─뭐 하는 거예욧, 바보 은가예! 빨리 돌아와요!

뒤에서 들려오는 아멜리아의 고함. 어둠을 벤다고 앞서 달려나가 버린듯했다.

정신이 없던 데다, 어둠에 시야가 가려져 벌어진 참사였다.

“···저기, 이현씨?”

“예.”

“친구가 부르네요. 전 이만 가볼게요.”

인사를 마친 은가예가 자연스럽게 물러나려 했다.

후아악─!

예리한 검이 그녀의 앞에 내밀어졌다.

“역시 그냥은 안 보내주네.”

“당연한 말씀을.”

검을 들이민 이현이 싱긋 웃어 보인다.

은가예가 한숨을 포옥 내쉬며 자책어린 말을 중얼거렸다.

“아오. 이 바보.”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이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 뭐라고······”

“비키라고!”

후아앙!

은가예의 대검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

······어느새 달려 나간 은가예가 백야의 특임반을 사대로 검을 나누고 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

“리디아, 니엘. 상황 봐서 도와줘.”

“네, 맡겨두세요!”

“보고 있어요!”

두 아이가 나름 비장한 표정으로 은가예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에는 놀 생각으로만 가득한 두 아이지만, 막상 전장에 들어서자 그러한 분위기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게 어린아이답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한 모습이었다.

전쟁고아 출신에 마수와 부대끼며 평범하지 못한 일상을 보내온 두 아이에게 이러한 상황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그때 강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군, 네가 드라이어드의 계약자인가 보군.”

“계약이라, 비슷한 거긴 하지.”

융합을 계약이라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내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강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그에 답해주지 않으며 이본느를 돌아보았다.

“이본느님, 저놈은 내버려 두고 나머지를 맡아주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제없습니다. 방금 봤잖아요?”

이본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조금 전 들이닥쳤던 마검의 마기를 이해솔이 가볍게 없애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이본느는 이해솔의 뒤에 가만히 있는 한세연을 바라보았다.

“······.”

싸움이 벌어지고 마기가 들이닥치는 등 여러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한세연은 처음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홀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고 있기라도 한 듯한 이질적인 평온함.

예전에는 그저 작은 위화감에 불과했으나, 이해솔과 권속계약을 한 뒤로 이본느는 자신이 느끼는 이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확실히 알겠다.

저건 ‘위협’이라는 것을 일절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나 풍기는 분위기였다.

지금의 이본느, 그녀가 그러하듯이.

하지만 이본느는 왠지 그 이상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즉, 지금의 전장이 한세연에게는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았으나 이본느가 받은 인상은 그러했다.

그리고 이해솔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때, 한세연이 그녀를 돌아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이곳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는 듯한 웃음.

고개를 끄덕인 이본느가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 두 사람은 저와 함께 가실까요?”

“뭐?”

“···지금 내게 한 말인가?”

강시우의 뒤에서 흥미로운 눈으로 전장을 구경하던 두 남자, 특임반의 초인들이 설마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본느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예, 두 분.”

“크핫, 이거 완전 좁밥으로 보였나 보군.”

민머리의 거구, 상격초인 김수찬이 사나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동감이다.”

삐쩍 마른 음침한 인상의 독인(毒人), 박도경의 눈이 자주색으로 위험하게 빛났다.

“두 분이 강하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가시죠.”

“너 혼자 우리 둘을 상대하겠다고?”

피식 입매를 비튼 김수찬이 어깨를 꺾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귀찮은데 이곳에서 하지. 어차피 금방 끝날 거 같은데.”

“김수찬, 방해다.”

강시우가 눈매를 좁혔다. 그의 시선은 이해솔 한 사람에게 꽂혀 있었다.

“쯧. 알았다고.”

혀를 찬 김수찬이 이본느를 향해 턱을 까딱였다.

“어이, 옮겨.”

이본느가 응해줘서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보이곤 사뿐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 이본느의 뒤를 김수찬과 박도경이 따랐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본느를 따라 걷길 얼마나 지났을까.

“어이,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셈이냐.”

전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이본느가 움직이자, 김수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대로 우리를 떼어놓고 도망가려는 수작인가?”

박도경이 보랏빛 눈을 번뜩이며 독기를 흘렸다.

“설마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답니다.”

이본느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단지, 두 사람을 상대로 힘을 사용하면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 자신이 없달까요.”

“이제보니 제정신이 아닌 년이었네.”

“······동감이다.”

두 사람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이본느가 드디어 멈추어 섰다.

“음, 이쯤이면 되겠네요.”

풀포기가 적은 구릉이 펼쳐진 주변을 둘러본 이본느가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본느의 얼굴에는 좀 전의 이미지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나운 웃음이 맺혀 있었다. 그 변화에 두 사람이 흠칫거렸을 때였다.

─────────!

“!”

세상이 터져 나갔다. 하늘을 가리며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화르르르륵─!

뒤집힌 땅에서 터져 나온 시뻘건 화염이 흙먼지를 잡아먹으며 피어오른다.

“큭! 이게 무슨···!”

“······!”

천지사방에서 사나운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평온했던 구릉지대는 겁화에 잡아먹혀 사라지고, 불지옥이 도래했다.

그 모든 것이 화마에 잡아먹힌 불지옥의 한복판. 부채를 든 붉은 머리의 미녀가 젖은 혀로 요염하게 입술을 핥으며 이를 드러내 보였다.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

두 사람의 얼굴이 까맣게 죽었다.

***

“······시작했네.”

돌연 멀리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폭음에 내가 그쪽을 잠깐 돌아보았다.

지금의 폭음은 이본느가 만들어낸 것이 분명했다. 언뜻 붉은 빛이 비쳐 보였으니까.

그녀가 두 초인에게 당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 오거스트의 오른팔이라 불리던 마녀가 바로 이본느다.

권속계약의 전에도 이미 최상격의 반열에 들어서있던 그녀가 권속계약을 통해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솔직히 나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마수사냥을 곧잘 나가는 아렌이나 소피아와는 다르게 결계를 유지하며 줄곧 마을에만 머무는 이본느였기에, 그녀가 싸우는 모습을 볼 기회가 전혀 없던 것이다.

다만 지금의 폭음으로 보아 소피아 이상의 괴물이 탄생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녀와 계약을 맺기 위해 무려 반나절을 소모할 정도였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그만하지?”

나는 시선을 앞으로 돌려 강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마검의 마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내게 닿을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네 공포를 보아라.

“글쎄, 안 통한다니까.”

내가 혀를 차며 다가갔다.

강시우의 기프트, [추적하는 자]는 대상에게 강제적인 심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그의 마검이 지닌 능력은 대상이 지닌 심상의 공포를 현실화시킨다.

기프트로 공포의 심상을 심어주고, 마검을 이용해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것. 그게 강시우가 지닌 카드였다.

다만,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내게 공포의 현실화는 통하지 않는다.

“그쪽은 나하고 상성이 좋지 않다고.”

강시우의 기프트가 내게 강제적인 심상을 심어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후와아악─!

“음, 이건 좀 위험하나.”

밀어닥치는 마기를 항마력으로 지워낸다. 이카루스의 반지가 뜨겁게 달궈졌다. 앞으로 많아 봐야 2번이 한계.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기에, 강시우는 더 이상 마기에 의존하지 않았다.

“마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정말?”

“······.”

말없이 마주 다가오는 강시우.

화르르륵─

불사조의 푸른 화마에 휩싸인 9자루의 비도가 강시우를 노리고 날아갔다.

카가가강─!

순식간에 쳐내지는 비도들. 그런 강시우의 검에는 마기가 담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시우는 강했고, 비도는 그에게 범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강함이 문제였다. 스스로를 너무 맹신한 나머지 방심하고 있었으니까.

“잠깐, 쉬고 있어.”

“······!”

느닷없이 몸이 움직이지 않자, 강시우가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게 비도들은 강시우를 공격하기 위해 날아간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력들이 9자루의 비도에 연결되어 강시우가 모르는 사이에 그를 거미줄처럼 옭아맨 것이다.

만약 강시우가 검에 마기를 조금이라도 불어넣었다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기는 기력이 들러붙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아니, 정석적으로만 싸웠어도 이카루스의 반지가 모두 소모되고, 나도 전력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도발에 넘어간 강시우는 자신의 실력과 검의 강도만을 믿고 나왔다.

그 결과가 이 꼴이다.

전신에 기력이 거미줄처럼 들러붙어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

현재 내 기력에는 항마력이 듬뿍 담겨져 있었다.

그런 항마력의 거미줄에 묶여 외부로 기운을 발산하지 못하는 강시우로서 내 끈끈한 기력을 끊어내는 건 무리였다.

완력만으로 끊어낼 수 있을 만큼 내 기력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뭐, 항마력은 금새 사라지기에 다른 조치가 필요하겠지만.

휘리릭─

9자루의 비도가 강시우의 전신에 겨누어졌다.

“포획 완료.”

내가 씨익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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