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25화 (126/226)

§ 125화

위이이이잉─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마에 바람 구멍이 나기 싫으면.”

“······.”

이해솔의 검지에 어린 하얀 섬광이 강시우의 이마를 겨냥한다.

“······너는, 대체 뭐지?”

강시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이해솔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드라이어드와의 계약을 통해 힘을 얻은 운 좋은 애송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오히려 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드라이어드의 힘을 빌렸다 하기에 이해솔은 너무나 많은 능력을 구사하고 있었으니까.

자신을 속박한 이 정체불명의 기운. 마검의 마기조차 지워버리는 항마력. 푸른 불길. 지금 이마를 겨냥한 섬광까지······

“인간이 맞긴 한 건가?”

한 사람이 이토록 많은 능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강시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본 것 외에도 더 많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인간이란 그릇으로 이토록 다양한 기운을 지닌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타인의 마력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반발하는 게 인간이란 존재였으니까.

많아 봐야 2개에서 3개의 기운을 다루는 게 한계인 것이다.

그건 초인의 몸으로 마기를 다루는 강시우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강시우는 이해솔을 도무지 인간이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식 저하’ 마법이 걸려 알아볼 수 없는 이해솔의 얼굴을 강시우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내렸다.

“······그렇군.”

“?”

“네가 드라이어드였나.”

“·········.”

***

“네가 드라이어드였나.”

“·········.”

멀쩡한 사람을 가지고 인간이 맞냐며 느닷없이 외계인 취급하더니, 이제는 드라이어드로 만들어버리는 강시우.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가면 저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심히 의문이었으나, 강시우는 그제야 납득한 듯 개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곤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아나스타샤를 돌아본다.

“저 소녀가 계약자였군. 깜빡 속아버렸어.”

“······.”

그 무시무시한 결론에 나와 아멜리아는 물론, 한세연까지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어째 너랑 닮은 것 같다.”

“응, 비슷할 지도.”

“저 정도는 아니거든요!?”

나와 한세연의 시선을 받은 아멜리아가 발끈하며 대답한다.

그래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본인도 착각이 심하다는 걸 인지하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아멜리아의 경우는 착각보다는 망상이 좀 과대한 케이스였지만.

인간으로 변한 아나스타샤를 처음 보았을 때의 아멜리아의 감상은 강시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니까.

날 보며 경악한 듯 입을 쩍 벌리며 뒷걸음치던 아멜리아.

─다, 당신, 딸이 있었어요?!’

미디어 중독인 그녀는 아나스타샤를 내 숨겨진 딸로 오인했다.

누가 봐도 서양인 외모의 아이가 나와 어디가 닮았다고 딸로 착각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였지만······

“풍기는 기운이 완전히 똑같잖아요. 당연히 착각하죠!”

내 눈빛의 의미를 깨닫곤 바로 반박하는 아멜리아. 이제는 생각조차 마음대로 못하겠네.

혀를 찬 나는 아직 한창 치열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코너로 몰리고 있는 은가예.

구경하러 왔다가 얼떨결에 전장에 참여하게 된 그녀는 상대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연신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지만, 신기하게도 은가예는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대가 놀아 주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끈질기군요!”

“진짜 끈질긴 게 누군데!”

카앙!

“그냥,”

카앙!

“지나간다니까?!”

검을 나누면서도 말 한마디를 안 지는 은가예.

“건방진!”

푸른 마력의 일격이 은가예를 향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쩌어어엉─!

요란한 소성이 울려 퍼지며 은가예가 밭두렁같은 족적을 남기며 주욱- 밀려난다.

“하악, 하아.”

대검을 방패처럼 눕혀 간신히 공격을 막아낸 은가예가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그걸 받아낸다고?”

“퉷! 이까짓 게 뭐 대단한 거라고···”

침을 뱉은 은가예가 대검을 지팡이 삼아 휘청이며 일어난다.

“······.”

전력을 다했음에도 은가예를 제압하지 못한 남자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멍해져 있다, 당황하다, 급기야 굴욕으로 일그러진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작게 미소지었다.

“···역시 데려오길 잘했네.”

은가예는 이제 갓 중격에 오른 초인이다. 본래라면 그런 은가예가 상격초인을 상대로 저렇게 선전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은가예는 상격초인이 분명한 남자를 상대로 찰거머리처럼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녀는 남자보다 더한 상대를 맞아 지금껏 지옥의 수련을 받아왔으니까.

바로 소피아 포코르니에게.

대련이라 해서 봐주는 법을 모르는 소피아는 언제나 진심이었고, 전력을 다했다.

그런 소피아의 괴력이 담긴 대검에 매일 같이 시달린 은가예에게 남자의 검은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니 쓰러지지 않을 수밖에.

“이기기는 무리겠지만.”

은가예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원석이었다.

서리의 영역에서 전용보구인 [나겔링]을 얻어야지만 진정으로 완성에 가까워졌다 할 수 있으리라.

아무튼, 리디아와 니엘이 주시하고 있는 이상 위험해질 일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은가예가 고전을 하고 있는 한편, 적진의 중심에서는 소피아가 상격 초인 셋을 상대로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아니, 소피아가 끝내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끝낼 수 있는 싸움이었다.

소피아의 기프트─ [분쇄자]는 그녀의 막무가내를 막무가내가 아니게끔 만드는 부조리한 능력이었으니까.

뭐든지 힘으로 부술 수 있다는 것만큼 알기 쉽고 형편 좋은 기프트가 또 어디 있을까. 그야말로 소피아 전용의 기프트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가능하면 죽이지 말아달라는 내 부탁 때문이었다.

특임반은 살려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테니 사전에 살려 놓기로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물론, ‘정 어렵다면 알아서 해도 좋아.’라고 말해 놓았다.

특임반이 인질로서의 가치가 있다곤 하나, 소피아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에 대한 소피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려울 리가요!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소피아는 현재 상대를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잠시, 시선을 돌린 내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웬 어린아이를 겁박하며 몰아세우는 아렌이 눈에 들어온다.

─그, 그만해주세요. 싸우기 싫어요!

─시치미 떼지 마라, 괴물.

“······.”

저 새끼가 사람인가 싶다.

***

아렌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노인, 여자, 어린아이 등의 모습을 취해 상대를 방심시키는 질이 나쁜 악인들이 더러 있었으니까.

그가 지금 마주한 리우트라는 녀석이 바로 그러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속일 수 없어.”

아렌의 눈이 서늘한 잿빛으로 빛난다.

그 잿빛의 눈은 리우트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 그만하라니까요? 자꾸 이, 이러면··· 으으···”

울상을 지으며 물러나는 리우트. 무언가를 참는지, 부들부들 떨며 거친 신음을 흘린다. 그런 녀석의 몸속에서 포악한 마력이 들끓었다.

“···저, 저는 잘못, 잘못 돼도 몰라요!?”

“알았으니 그만 참고, 변해라.”

“으으······”

결국 리우트의 전신에서 푸른 핏줄이 징그럽게 돋아나더니, 마력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산림을 부수며 솟구쳐 오르는 마력의 덩어리.

자신이 상상하는 ‘최약’과 ‘최악’을 오가는 것이야 말로 리우트의 기프트, [작은 거인]이었다.

원래라면 깨우지 않는 편이 좋으나······

만약을 위한 확인 절차란 거다.

쿠오오······

서술하기 어려운 마력의 덩어리.

이를 올려다보는 아렌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

미오의 기프트는 [슬라임]이다. 그녀의 몸은 베이지 않으며, 베이더라도 다시 붙는다. 물리적인 타격 또한 간단히 흡수해버린다. 그렇기에 검사나 격투가에게 있어서 미오는 스스로가 천적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부해왔다. 지금까지는.

퍼억─!

복부를 깊숙이 파고드는 주먹.

“끄억?!”

어마어마한 고통에 배를 움켜쥔 미오가 입을 벌리며 뒤로 날아간다.

우지끈─!

나무 하나를 부수며 쓰러진 미오는 입가로 연신 피를 게워냈다. 그 모습을 보며 모리츠와 유진성은 할 말을 잃었다.

물리면역이라는 기프트를 지닌 미오가 주먹을 얻어맞고 피를 게워낸다니?

심지어 액체 상태로 날아간 미오에게 부딪힌 나무가 무너져 내렸다.

대체 얼마나 강한 공격을 하면 저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두 사람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음, 조금 지나쳤네. 죽으면 안 되는데.”

걱정하듯 중얼거리는 소피아.

“···조금?”

유진성이 멍청하니 되뇌었다. 저걸 조금이라 표현한다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어디서 개수작을!”

모리츠가 부정하듯 버럭 소리치자, 유진성은 정신을 차렸다. 저런 공격이 고작 ‘조금’일 리가 없었으니까.

“정말로 난 지금 힘 조절을 하고 있다. 가능하면 너희를 죽이지 말라고 마스터에게 명령 받았단 말이다. 그러니 항복해라.”

곤란하다는 듯 소피아가 해명했지만 유진성은 그 모습에서 오히려 확신했다.

저건 전력을 다해놓고, 자신들의 기를 죽이기 위한 허풍이라는 것을.

그러지 않고서야 목숨을 건 사투에서 저렇게 투항을 계속 권고하는 건 이상했으니까. 분명 지쳤기에 저러는 것이리라.

“모리츠! 기프트를 다 써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알고 있다.”

미오가 쓰러진 이상 그 둘이 이기기 위해서는 승부를 걸어야 했다.

위이이잉─

모리츠의 눈이 도깨비의 그것처럼, 붉게 타오른다.

유진성의 검에도 그에 못지 않은 푸른 마력이 맺히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요동쳤다. 두 사람의 마력에 공간이 어그러졌다.

피빗─!

떨어져 내리던 나뭇잎이 마력에 부딪혀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 굉장한 마력의 집중. 하지만 이를 보는 소피아의 얼굴에는 보기에도 시원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승부를 걸려고? 좋아, 그 편이 나도 항복을 받아내기 쉽겠어.”

“닥치고 죽어라!”

모리츠의 눈이 소피아를 향한다. 핏빛의 마력이 번개처럼 내달린다. 그에 맞추어 유진성도 검을 내리그었다. 초승달의 검기가 소피아를 반토막 낼 듯 공간을 격한다.

붉고 푸른 마력이 시야를 물들이며 위협적으로 날아듦에도 소피아는 피하지 않았다.

들어 올린 대검이 잿빛의 마력에 휩싸인다. 그녀는 다가오는 두 기운을 향해 대검을 있는 힘껏 내리그었다.

파아아아앙─!

붉고 푸른 마력이 깨져 나간다. 파편이 유리처럼 흩날렸다.

형상을 물리적으로 파괴해버리는 소피아의 기프트, [분쇄자]였다.

“······.”

“······.”

예상치 못한 경악할 결과에 모리츠와 유진성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그런 둘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 소피아가 씨익 웃었다.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것이 마스터의 뜻이다.”

소피아가 말하는 ‘마스터’란 이해솔이었다. 그리고 이해솔은 소피아에게 자신을 ‘마스터’라 부르라 한 적이 추호도 없었다.

단지 아카데미의 생도인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곤란했기에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달라 부탁했을 뿐.

지금의 ‘마스터’란 명칭은 순전히 소피아가 멋대로 붙인 것이었다. 물론 이해솔은 이 사실을 일절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명칭은 두 사람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괴물 같은 여자가 마스터라 부르며 따를 정도의 인물이라면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유진성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 마스터라는 자의 강함이 상상이 가지를 않았다.

더욱 최악인 것은, 설령 자신들이 지금 이 여자를 쓰러트릴 수 있다 하더라도, 뒤의 그 ‘마스터’라는 인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무지 가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에 유진성은 결국 고개를 떨궜다.

“항복······하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