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시간을 거슬러 내가 협회의 초청을 받기 이틀 전.
해가 쨍쨍한 마경의 어느 오후, 리디아가 만들었다 우기는 호숫가.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운 내 옆에는 한세연이 앉아 구경 중이며, 소피아는 내게 낚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낚시는 느긋하게 즐기는 스포츠에요.”
“스포츠입니까?”
소피아가 갸우뚱거리며 눈을 깜빡인다.
그녀의 머릿속에 럭비, 미식축구, 하키 등, 서로의 몸을 격렬하게 부딪히는 경쟁이 떠오른다.
“예, 찌를 바라보다 물고기가 걸릴 때 손맛을 즐기는 거죠.”
“손맛이군요!”
소피아가 이해했다는 듯 방긋 웃어 보인다.
나는 드디어 내 설명이 통했나 싶어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손맛-”
“저도 마수를 벨 때의 손맛을 좋아합니다.”
“·········.”
소피아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한세연.
두 사람 다 내 호수 낚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애초에 한세연은 낚시든 뭐든 그저 내가 하는 걸 구경하는 것 자체를 즐겼고, 소피아는 수동적인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아 보였다.
그보다 둘이 공유하는 손맛이 어째 미묘하게 다른 것 같기도······
그그극─
때마침 낚싯대가 휘었다. 입질이 왔다. 잽싸게 낚싯대를 감으며 들어 올렸다.
촤아아악!
물살을 가르며 솟구치는 얼룩얼룩한 물고기. 가물치였다.
“여기 있었네요.”
가물치를 바구니에 담고 있자니 아멜리아가 태블릿을 들고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라뇨, 당신이 저한테 영상 올리라 했잖아요.”
“아, 그거.”
백야와의 싸움이 끝났을 당시. 나는 특임반을 비롯한 백야의 모두에게 금제를 가하고 돌려보냈다.
단 한 명, 아나스타샤의 첫 친구. ‘클로에’만은 예외로 하고.
그 뒤, 라우라를 시켜 찍은 영상에서 싸움의 장면을 자른, ‘시작’과 ‘끝’만을 편집해 인터넷에 흘려보냈다.
싸움의 장면까지 넣어버리면 애써 내가 숨기고자 했던 바가 모두 드러나 버리고 마니까.
하지만, 편집본만으로 충분했다.
싸움의 포문을 열던 소피아의 당찬 선언.
그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눈길을 폭발적으로 잡아끌었으며, 내 의도가 완벽히 이행되었고, ‘마경의 주민’이 이 세계에서 설 자리를 얻었다.
참고로, 영상의 말미에 나온 차가운 인상의 미남은 내 모습이 아닌, 이본느가 마법으로 본인의 취향을 형상화 시킨 것이다.
그렇기에 영상을 올린들, 내가 마경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들킬 염려는 없었다.
“지금 반응이 난리도 아니에요. 특히 소피아님 인기가 엄청나요.”
“그런가요?”
“네, 지인~짜 많아요. 팬클럽도 13개나 생겨났어요.”
“훗, 그렇군요.”
“훗이 아니라, 이거 정말 대단한 거라니까요?”
작게 입꼬리만 올리고 마는 소피아의 담백한 반응이 답답하다는 듯, 아멜리아가 가슴을 친다.
그녀는 입이 마르도록,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떠들어댔다.
“쉽게 말해 배우보다 인기가 많은 거예요.”
“그렇게나요?”
아멜리아의 간단한 비유에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소피아.
자신의 인기에 놀라긴 했으나, 딱히 실감한 모습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소피아는 기계와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스마트폰을 쓰느니 그 시간에 몸을 한 번 더 움직이는 사람이 소피아였으니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들,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아멜리아의 반응을 보자니 영상의 반응이 연일 뜨거워지는 모양이었다.
‘마경’이라는 키워드가 그만큼 사람들에게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리라.
“아, 그보다 협회에서 초청장이 왔어요.”
아멜리아가 내게 태블릿을 넘겼다. 액정 너머로 보이는 문구.
[초인협회 초청장]
[처음뵙겠습니다. 마경의 주인님. 귀하를 본 협회에 초청하고 싶습니다. 백야와의 우애를 다지기 위한······]
번드레한 미사여구가 동원된 편지였으나, 결국 내용은 백야가 뿔이 났으니, 달래주면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던 전개였다.
체면을 구긴 백야에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영상을 올릴 때만 해도 은가예가 ‘와~ 빠꾸없네.’ 하면서 감탄을 했을 정도다.
그러니 초인협회가 나서 우리와 백야 사이를 중재하려는 것이다.
‘초인 경찰’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협회에서는 길드와 길드, 초인과 초인간의 다툼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까.
물론 협회에서 자중하란다고 해서 자중할 생각은 없었다.
백야 측에서 먼저 걸어온 싸움에 내가 먼저 타협해줄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으니.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행동할 예정이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가긴 가야겠지.”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협회에는 언젠가 한 번 들려야 했다.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하니까.”
마경의 바깥과 교류를 하려면 협회의 도움은 필수였다.
필드나 마경, 던전은 모두 협회의 허가증이 있어야 편하게 오갈 수 있으니.
“대동인원은 2명으로 제한되어 있어요. 백야측과의 충돌을 우려한 것 같아요.”
“그렇겠지.”
여럿이서 우르르 몰려가봤자 싸움밖에 나지 않을 테니, 협회로서는 당연한 처사였다.
나는 한세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 남아있어.”
그녀는 모르도의 계약자다.
협회의 시험장에서야 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본부는 그보다 마기에 대한 검열이 훨씬 엄중할 게 분명하다.
한세연이 모르도의 계약자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말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한세연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기다릴게.”
그녀가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소피아가 주먹을 쥐어 보인다.
“해솔님에게 털끝 하나라도 대는 놈이 있다면 전부 날려버리겠습니다.”
“······.”
말도 안 꺼냈는데 왜 벌써 정해진 분위기지. 아니, 그보다 데려가도 괜찮나?
날려버리는 건 좀···
어째 소피아를 데려가자니 살짝 불안해졌다.
눈을 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차라리 아렌이나 이본느를 데려가는 편이 나아 보였지만······
‘안 되겠지.’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두 사람이 협회를 꺼려한다는 사실이다.
하기사, 협회는 안전을 미끼 삼아 데몬스폰들을 실험용 쥐처럼 대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그건 소피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소피아씨, 협회에 가도 괜찮겠어요?”
“협회는 물론 싫지만, 해솔님을 위해서라면 괜찮습니다.”
소피아가 문제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거짓이 깃들지 않은 진심이었다.
소피아의 영혼은 어두운 조각 한 점 없이 맑아 보였으니까.
‘하긴, 협회에 나 혼자 갈 수도 없으니······’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마경의 주민을 데리고 가는 게 맞았다.
그렇다고 두 명까지는 필요 없고, 소피아 한 명이면 충분하리라.
나는 혹시나 싶어 당부해두었다.
“소피아씨, 협회에서는 저한테서 떨어지지 마세요.”
“그야 물론입니다.”
뭐, 괜찮겠지.
***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협회의 회의장.
“내가 마경의 주인이다.”
입매를 비틀며 웃어 보인 나는 소피아가 빼주는 의자에 앉았다.
“흠. 왔군.”
설마 뒷담화를 할 때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백야의 수뇌로 보이는 중년남성이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나는 그에게 대답하는 대신, 회의장을 둘러보았다. 아는 얼굴들이 제법 보였다.
화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이는 별의 성좌의 이네시아. 고개를 숙이는 서하린, 어째서인지 눈을 크게 뜨는 위그드라실의 김도진 등.
반응은 제각각이었으나, 그들의 시선은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분들은 참관을 위해 모여주셨습니다.”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회의장의 입구에서 푸른 제복을 입은 여성이 들어왔다.
“중재를 맞은 소진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경의 주인님.”
시선이 마주친 소진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럼 백야와 마경의 친목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앵──!
창밖에서 12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
“백야의 2팀장, 김진혁이네.”
“3팀장, 클리튼입니다.”
앉은 채로 말하는 중년인, 김진혁. 일어나서 정중히 인사하는 클리튼.
“마경의 주인이다.”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김진혁의 눈이 꿈틀거렸지만, 뒷담화까지 한 상대에게 예의를 차려줄 필요는 없었다.
김진혁에게서 시선을 돌려, 클리튼을 바라보았다.
“그쪽이 클로에의 오빠인가 보군요.”
“예, 맞습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그 아이가 워낙 수다가 많아 폐를 끼치지 않았을까 염려되는군요.”
“그런 건 없었습니다.”
“다행이군요.”
클로에는 백야의 습격을 먼저 알려준 정령사이자, 아나스타샤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다.
그렇기에 백야가 돌아간 뒤 마을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클리튼에 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생각이 많은 게 흠이지만, 그만큼 신중한 사람이라고······
과연, 나를 탐색하는 눈이 적개심부터 표출하는 김진혁보다는 나아 보였다.
한편, 나와 클리튼이 대화를 나누자, 이야기에서 소외된 김진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대하는 온도차이가 확연한 게 빤히 보였던 것이다.
탁─!
김진혁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나는 그제야 김진혁을 돌아보았다.
“잡담은 밖에서 하게.”
“그러지. 그래서 나를 왜 부른 거지?"
“몰라서 묻나? 당연히 사과를 받기 위해 불렀네.”
“사과?”
“그렇네.”
나는 중재자로 나선 소진을 돌아보았다.
“사과를 받기 위해 나를 불렀나?”
“협회에서는 두 길드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모셨습니다.”
“아니라는군.”
“당연히 협회에서는 원론적인 말을······”
나는 김진혁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클리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2팀장과는 의견이 다릅니다.”
“클리튼, 그게 무슨 소리냐.”
김진혁이 클리튼을 노려보았으나, 클리튼은 이에 아랑곳없이 대답했다.
“영상을 게재해 백야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은 저도 좋게 보지 않습니다. 그건 백야의 위신에 관계된 일이지요.”
“······.”
“하지만 그전에 먼저 공격을 가한 책임은 저희 백야에 있습니다. 그러니, 원만한 해결을 보아야 한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사실 클리튼과 김진혁의 의견이 갈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 실책을 저지른 것은 순전히 김진혁의 책임이었고, 클리튼과는 무관했으니까.
그러니 김진혁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내게서 사과를 받아내려는 것이다.
한편, 클리튼은 백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김진혁을 길드장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여기서 내가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하는지는 빤했다.
앞으로도 백야와 적대관계를 가질 게 아니라면 당연히 클리튼의 손을 들어주는 게 옳다.
애초에 김진혁은 나와 사이좋게 지낼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으니.
그때 김진혁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누가 먼저 공격을 가했는지는 나중에 확실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을 것이네. 마경측에서 제시한 영상은 너무 단편적이니. 그러나.”
김진혁이 손을 들어올린다.
“투항을 했다면, 투항한 상대를 건드리지 않는 게 길드 간의 조약이네.”
김진혁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나왔다.
“아, 으,으······”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겁에 질린 듯 발작을 일으키는 어린아이.
본 적이 있는 아이였다.
“본 백야의 모험가인 리우트이네.”
특임대의 초인, 리우트.
“리우트에게 마경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걸어두었더군. 항복을 한 상대에게 손을 대는 것은 조약에 위배 되는 짓이네.”
“그래서.”
김진혁이 눈살 찌푸렸다.
“그래서라니? 조약을 어기겠다는 건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뭐를 착각하고 있다는 거냐.”
“우리는 길드가 아니야. 조약 따위 알 바 없지. 위협이 되면 그걸 막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리우트를 이렇게 만든 게 당연하다는 건가?”
“그렇지.”
“지금 그 말을 무를 생각은 없는 건가?”
“물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혁이 걸려들었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그러면 길드가 아니니 나도 조약을 지킬 필요가 없겠군. 맞나?”
“원칙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중재자인 소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김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우리 길드원을 건드린 상대를 제재해야 할 의무가 있네.”
“2팀장! 그게 무슨······!”
타앙─!
당황한 클리튼의 말을 테이블을 쳐 제지한 김진혁이 마력을 발산하며 내게 다가선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다가오는 김진혁을 바라보기만 했다.
김진혁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앉아서 당하실 생각인가보군.”
“일어날 필요가 없으니까.”
“무슨······!”
의문을 표하려던 김진혁이 황급히 검을 들어올렸다.
타아아앙─!
“크헉!”
공격을 막은 김진혁의 몸이 회의장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마스터, 날려버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를 돌아보는 이는 소피아였다.
“좋을 대로 해.”
······근데 벌써 날아가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