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김진혁이······ 날아갔어?”
클리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마경의 주인이 호위로 데려온 여성의 공격 한 번에 김진혁이 회의장 반대편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장내의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
‘소피아 포코르니!’
그녀는 최근 마경의 주인과 더불어 가장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진혁은 단순히 기습을 가한다고 당해줄 만큼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실적이 부족해서 그렇지, 머지않아 최상격에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인물이 바로 김진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김진혁을 아무렇지 않게 날려버린 소피아는 물론이거니와, 마경의 주인마저 김진혁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스터, 날려버려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해.”
두 사람의 대화를 클리튼이 멍하니 듣고 있을 때였다.
“크, 이런 건방진 년이!”
회의장의 벽에 부딪혀 쓰러졌던 김진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화를 듣기라도 했는지, 그의 얼굴은 치욕으로 물들어 있었다.
“호위 따위가 그딴 말을······!”
후아아─!
김진혁의 검에 마력이 타오르고, 불똥이 튄다. 불똥은 뇌전으로 화했다.
“마검사인가요? 조금은 재미있겠군요.”
“닥쳐라!”
소피아의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에 분노한 김진혁이 달려들었다.
파스슥─!
뇌전을 튀기는 검이 소피아를 태워버릴 듯 내리쳐진다.
소피아는 대검으로 이를 가볍게 막아냈다. 막힐 것을 예상했다는 듯 연이어 몰아치는 김진혁.
소성과 불똥이 튀며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방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는 김진혁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하지만 클리튼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도 통하지 않고 있다.’
김진혁의 파도와 같은 공세는 소피아에게 모조리 차단되고 있었다.
검은 가로막혔으며, 공간을 파고드는 뇌전은 잿빛의 마력에 소멸했다.
그걸 증명하듯, 김진혁의 얼굴에는 갈수록 초조와 불안이 번지고 있었다.
‘클로에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었구나.’
마경의 주민들, 그 수뇌부는 모두가 최상격 초인에 버금가는 존재라던 클로에의 말.
믿기지 않던 그 말이 지금,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었다.
파도와 같던 공세가 끝나고, 김진혁이 뒤로 물러나자 소피아가 묻는다.
“고작 이 정도로 마스터를 공격하려 한 겁니까?”
“시끄럽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치욕으로 일그러진 김진혁이 버럭 소리친다.
검을 벗어난 뇌전이 공중에 연이어 뭉쳐 든다.
파지직···! 파직···!
사방에 피어나는 뇌전의 꽃.
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소피아가 시시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끝인가요?”
“큭······!”
“조금은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만 낭비했네요.”
“닥쳐라!”
파스스슥──!
밀려드는 뇌전의 해일. 소피아가 마주 달려 나가며 대검을 들어 올린다.
우웅···
잿빛의 마력이 대검을 감싸며, 거대하게 부푼다. 그리고 휘둘린다.
──────!
깨져나가는 뇌전의 해일. 흩날리는 조각들. 달려드는 소피아.
김진혁의 눈이 불신으로 흔들린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커억!”
소피아의 주먹이 김진혁의 복부에 꽂힌다.
휘둘린 무릎이 막아선 팔과 함께 옆구리를 분쇄했다.
우드드득─
갈빗대와 팔이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김진혁이 회의장의 벽에 부닥친다.
팔꿈치 아래에서 덜렁이는 왼팔. 옆구리를 부여잡은 김진혁은 고통에 찬 신음만 흘릴 뿐,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뚜벅뚜벅─
“갈비뼈가 부러진 정도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건가요?”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소피아. 김진혁의 앞으로 걸어간 그녀가 대검을 들어 올렸다.
***
처음부터 끝까지 처참히 맞기만 하다가 무너져내리는 김진혁. 그 일방적인 싸움에 장내에 침묵이 깔렸다.
“······.”
다들 소피아가 설마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얼굴들이다.
나야 충분히 예상한 결과였기에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김진혁이 강하다 한들 그 수준은 강시우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정도다.
상격 초인 셋을 두들겨 패고 다니는 소피아와 비교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던 것이다.
저것도 나름 잘 싸운 거라 할 수 있었다.
뚜벅뚜벅─
무너진 김진혁의 앞으로 걸어가는 소피아.
“갈비뼈가 부러진 정도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건가요?”
“······.”
갈비뼈가 부러지면 보통 움직이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그렇고, 소피아의 발언에는 가끔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다.
─고작 이 정도로 마스터를 공격하려 한 겁니까?
이 말이 나왔을 때는 회의장의 모두가 나를 돌아보았으니까.
소피아 딴에는 호위인 자신을 꺾지 못하면 내 손끝 하나 건들이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한 말 같은데, 다들 내가 소피아보다 강하다는 뜻으로 오해해버린 듯했다.
어째 최근에 하는 것도 없이 평가만 가파르게 수직상승 중인 나였다.
“마스터, 어떻게 할까요?”
말만 하면 바로 죽이겠다는 듯, 김진혁에게 대검을 겨냥한 채 고개만 돌려 내게 묻는 소피아.
“마경의 주인님, 죄송하지만, 선처를 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이는 클리튼이었다.
“협상에서 먼저 공격을 한 김진혁 팀장이 죽어 마땅한 일을 저질렀다는 건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김진혁팀장이 죽게 된다면 마경은 백야와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이미 우리가 좋은 관계는 아닐 텐데요.”
“도와만 주신다면 이 빚은 제가 어떻게 해서든 갚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클리튼.
거기에는 자신이 모두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엿보였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는 그와 나 둘만이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다른 거대길드들과 협회의 중재관이 모두 보고 있는 자리에서 한 발언인 것이다.
영혼을 보아도 클리튼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용서하는 건 안 됩니다.”
내 말에 클리튼과 김진혁이 흠칫 굳었을 때다.
“소피아, 놈의 단전을 부숴.”
“예.”
“뭣?!”
표정이 사색이 된 김진혁이 손으로 바닥을 밀며 물러나려 했다. 그리고.
퍼억─!
“끄억!”
잿빛의 마력이 담긴 소피아의 발이 물러나는 김진혁의 하복부를 걷어찼다.
콰직! 무언가 부서져 나가는 충격에 김진혁은 그대로 쓰러져 혼절해버렸다.
단전이란 마력을 움직이는 중추기관으로 한 번 부서지면 좀처럼 회복이 어렵다.
소피아가 작정을 하고 걷어찼으니, 김진혁은 앞으로 마력을 제대로 다루기 어려워지리라.
초인으로서는 아예 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백야를 대표해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는 클리튼.
애초에 김진혁을 죽여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이쯤에서 마무리 지었다.
이것 말고도, 내게는 협회에서 할 일이 있었으니까.
“그럼 다 끝난 건가?”
“예, 양측이 동의했으니 친목회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친목회라, 이름 한 번 안 어울리네. 픽 웃자니, 박수가 쏟아졌다.
짝짝짝짝─!
지켜보던 거대길드의 간부들이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언제 한 번 검을 나눠보고 싶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소피아를 보며 눈을 빛내는 서하린.
“그걸 보고 용케도 검을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이네시아가 혼절한 김진혁을 보며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피아의 무릎 차기 한 방에 팔꿈치가 박살나고, 갈빗대가 나가는 김진혁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김진혁이 마검사여서 저 정도로 그친 것이지, 마법사인 이네시아가 그 공격을 맞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어질 만큼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그보다 사용하시던 그 잿빛 기운은 대체 뭐였죠? 분명히 마력도, 마기도 아니었어요.”
이네시아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소피아에게 묻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그녀가 사용하던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한 상태였던 것이다.
“혼마력입니다.”
“···혼마력이요?”
“예, 마스터에게 부여받은 기운입니다.”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소피아.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혼마력이다.”
“······.”
내 짤막한 대답에 다들 멍하니 입을 벌린다.
“그 이상 묻지 마라.”
솔직히 이건 나도 설명할 방법이 없고, 알려주기도 싫었기에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이런 내 경고가 먹혔는지 다들 궁금해하면서도 더 이상 혼마력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 심기를 건드려서 앞선 김진혁과 같은 꼴을 당하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직접 알아내고 싶어도 기력의 존재를 모르는 이상 이들이 혼마력에 대해 알게 될 날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
그렇게 혼마력을 배제한 채, 마경에 대해 물어오는 길드들.
마경은 돈이 되기에 그들은 우리와 교류를 트고자 하는 목적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드라이어드의 거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우리 존재를 밝힌 이상 아나스타샤를 내세울 필요는 사라졌으나, 굳이 방식을 바꿀 필요도 없었으니.
그동안 우리와의 거래를 독점하려 돈을 쏟아부었던 이네시아의 입술은 댓발 튀어나왔지만······ 뭐, 그거야 그쪽 사정이다.
아무튼.
“그래서, 협회장은 언제 오는 거지?”
“지금 막, 오셨,습니다.”
중재자, 소진이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고개를 숙이고 이를 빠득- 간다.
“···에? 협회장님이 오셨다고요? 어디?”
놀란 이네시아가 갸웃거리며 사방을 휘- 둘러본다.
서하린, 김도진, 클리튼 또한 주위를 샅샅이 찾아본다. 하지만 그런다고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회의장에는 처음 들어온 이들 외에 추가된 인원이 없었으니까.
이윽고, 모두의 고개가 내 시선을 따라 돌아간다.
“제가 아닙니다.”
소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표정하기만 했던 지적인 얼굴에 처음으로 짜증이란 감정이 어려있었다.
─그렇게 인상 쓰지 말라니까? 모처럼 예쁘게 태어난 얼굴에 주름이 잡혀버린다고.
“제 얼굴에 주름이 잡히면 다 당신 책임입니다.”
─그 다혈질적인 성격 못 고치면 시집 못 간다?
“신경 꺼 주시죠.”
“어디서 나온 목소리야?”
이네시아가 사방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다.
─여기네, 여기.
“어, 어?”
순간 소진을 바라보던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흐에엑!”
뒤늦게 쳐다본 이네시아가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도 그럴게.
스르륵─
소진의 그림자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올라오던 검은 그림자는 이내 수염을 기른 중후한 인상의 남성으로 바뀌더니, 느닷없이 기우뚱거리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다.
“네 마음이 활화산처럼 부글부글 끓어 오르니, 나까지 균형을 못 잡겠구나.”
“남의 그림자를 멋대로 게이트로 사용하면서 불평하지 말아 주십시오, 협회장님.”
소진의 힐난에 투덜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여 보이는 잘생긴 중년의 남성.
장내를 스윽 쓸어보던 남자의 시선이 내게서 멈춘다.
“그쪽이 마경의 주인인가 보군.”
남자가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
“처음 뵙겠네. 부족하나마 초인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있는 차시우라는 사람일세.”
이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남자야말로 전 세계 초인들의 정점에 선 협회장이자, 고르고프가 유일하게 호적수라 인정한 남자.
신검(神劍)차시우였다.
“반갑습니다.”
“하하, 반갑네.”
내밀어진 손을 붙잡자 차시우가 힘차게 흔들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 마경의 주인께서는 인간이 아니시군?”
둥글게 휘어진 검은 동공이, 나를 꿰뚫듯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