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마경으로 돌아가는 길.
“아앗, 죄송합니다. 해솔님이 선물해주신 젓가락이······”
“괜찮아요. 젓가락이야 나중에 다시 사면 되죠, 뭐.”
“그래도···”
휘어져버린 쇠젓가락을 보며 소피아가 울상을 짓는다.
나무젓가락을 죄다 부러트리고 풀이 죽었기에, 기운 내라며 편의점에서 쇠젓가락을 선물해준 게 화근이었다.
몇 번 쥐지 않아 금방 휘어져 버렸으니······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소피아를 위로했다.
“젓가락이 불량이었던 것 같네요.”
“예?”
“이 브랜드가 원래 불량이 자주 나오거든요.”
내가 젓가락에 새겨진 로고를 가리켰다.
“역시 그런 거였군요!”
숙여져 있던 고개를 들며 안심하는 소피아. 역시란 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봐바요.”
나는 젓가락을 한 손에 쥐고 기력을 담아 있는 힘껏 휘어버렸다.
U자 형태로 완전히 휘어진 젓가락을 보며 소피아가 방긋 웃어 보인다.
“어쩐지 너무 쉽게 휘어지는 게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젓가락이 힘으로 휘지를 않아서 기력까지 동원해 구부린 거였으니까.
소피아처럼 약지부분만 들어간 형태는 누가 봐도 악력에 의한 것이었다.
이런 소피아한테 무신경하게 나무젓가락을 권했었으니······
손에다 샤프심을 쥐여주고 젓가락 연습을 시킨 격이었다.
“젓가락을 다시 사오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나중에 사드릴게요.”
“하지만 두 번 씩이나 받을 수는······”
“얼마나 한다고요. 괜찮아요.”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소피아를 내가 만류했다.
괜히 사게 내버려 뒀다간 지금 젓가락이 불량이 아니란 걸 알게 될 것이었으니.
나중에 한세울한테 단단한 젓가락이라도 하나 특수제작을 해달라 해야겠다.
“그래도 포크는 괜찮은 것 같은데, 젓가락만 휘는 건 이상하네요.”
“포크는 익숙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경의 검문소로 향했다.
마화를 이용해 마을로 단번에 날아가는 수단도 있었으나, 이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마력의 잔재를 통해 공간이동한 곳의 위치를 역추적하는 능력자들이 이터니티에는 제법 있었으니까.
외부와의 거래를 텄다지만, 아직 마을의 위치까지 밝힌 것은 아니었다.
“마경까지 쫓아오면 그때 잡죠.”
“예, 알겠습니다.”
협회를 나온 시점부터 우리에게는 줄곧 미행이 따라붙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수십 명이었다.
내가 협회에 들린 것을 아는 단체들이 모두 눈을 붙인 것이다.
마경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한강에서 저녁을 해결한 것도 그래서였다.
우리는 미행이 붙은 것을 모르는 척 마경의 검문소로 향했다.
검문은 협회의 초청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가볍게 통과했다.
이윽고 마경에 들어서자 따라붙던 눈들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던 놈들이 마경의 너머까지 쫓아왔다.
무엇보다도 내 감각을 가장 선연히 자극하는 녀석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녀석들은 나와 상반된 기운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소피아씨, 마인입니다.”
“처리할까요?”
“다 죽이지는 말아요. 배후를 알아봐야 되니까.”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소피아가 놈들이 숨어있는 수풀을 향해 달려들었다.
“헛!”
“···이런!”
설마 들킨 줄은 몰랐는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나는 마인들.
녀석들을 향해 소피아가 쥐고 있던 휘어진 젓가락 두 개에 혼마력을 담아 집어던졌다.
“!”
순식간에 날아드는 젓가락에 마인 한 명이 황급히 마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젓가락은 마기를 깨트리고 날아가 마인의 어깨를 부숴버렸다.
“크아악!”
어깨를 움켜쥔 마인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또 하나의 젓가락은 표적을 빗겨 그 뒤의 자작나무에 깊숙이 박혔다. 이윽고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져 내렸다.
쿠웅─!
“미친! 나무가···”
그 끔찍한 위력에 마인들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으, 어엇!”
그때 달려드는 소피아를 본 마인 한 명이 피할 엄두도 못 낸 채 둔기를 휘둘렀다.
소피아도 이에 맞서 있는 힘껏 대검을 휘둘렀다.
타아앙─!
요란하게 울리는 소성. 무시무시한 힘에 대검을 막은 마인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둔기가 날아가고, 연이어 올려 쳐지는 대검. 사색이 된 마인이 필사적으로 몸을 틀 때였다.
“죽어!”
소피아의 등 뒤를 노리고 도끼와 검이 휘둘려져 왔다.
스윽─.
하지만, 소피아가 앞으로 한 발자국 전진하자, 도끼와 검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허공을 갈랐다.
콰드득─!
이어지는 살과 뼈가 짓뭉개지는 소리.
밭두렁 같은 상처를 몸에 매단 마인이 죽어버렸다.
도끼와 검을 휘둘렀던 마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투욱.
소피아의 등을 감쌌던 옷자락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드러난 그녀의 매끈한 등에 희미한 두 줄기상처가 X자로 교차한 채 새겨져 붉은 피를 흘렸다. 그리고.
휘릭─!
몸을 팽이처럼 돌린 소피아가 그대로 도끼를 휘두른 마인의 옆구리에 무릎을 박아넣었다.
우드득─!
갈빗대가 박살나며 마인이 쓰러진다. 홀로 남은 마인이 뒷걸음질 쳤다.
“미친······!”
찢어진 옷이 흘러내리며 소피아의 탄력적인 몸이 드러난다.
170cm가 넘어가는 장신에 굴곡이 도드라진 몸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날렵했으며, 탄탄한 잔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싸늘히 식은 은안에 얼어붙었던 마인은 불현듯 뒤통수에 가해지는 통증에 눈을 까뒤집고 고꾸라져버렸다.
“어딜 쳐다보고 있어.”
마인의 뒤통수를 기력으로 후려친 내가 겉옷을 벗어 소피아에게 던져주었다.
“입어요.”
“아, 감사합니다.”
검은 자켓을 얼른 걸치는 소피아.
7월의 더위에 숲속인 마경은 푹푹 찌는 환경이기에 다들 옷차림이 가벼웠으나, 나는 언제나 겉옷을 입고 다녔다.
내 자켓은 마도구인 ‘의장’으로 사계절 내내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니까.
“보통 놈들이 아니네요.”
나는 쓰러진 네 명의 마인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백야의 특임반조차 압도했던 소피아의 몸에 상처를 입힐 정도의 마인들이라니.
“방심했습니다.”
“방심했더라도 보통이 아닌 건 마찬가지에요.”
나는 뒤통수를 맞고 기절한 녀석의 복부를 발을 들어 내리찍었다.
콰득─!
노린 것은 녀석의 영핵이었다. 그런데, 실력에 비해 영핵은 손쉽게 박살 나 버렸다.
“······.”
비명을 그친 녀석의 눈이 빛을 잃더니 흐리멍덩해진다.
“어디서 왔지?”
“나, 나는······”
“말해.”
부르르!
발작하듯 경련하던 녀석이 이내 축 늘어져 버린다.
“죽었습니다.”
녀석의 맥을 확인한 소피아가 대답했다.
“금제인가 보네요.”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심문한 녀석 외의 다른 세 마인 모두 죽어있었다.
찝찝했지만, 죽은 이상 뒤를 캘 수는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빠른데.’
내가 인터넷에 영상을 게재하고 협회를 찾은 이상 마인측에서 움직임을 보일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언데몬이라는 수족을 나에게 빼앗긴 오거스트는 물론이고, 여타 다른 마인들에게도 마경은 탐나는 먹이였으니.
그들이 ‘크루트’라는 마수를 생산하고 연구하는데 있어, 마경의 마수는 가장 좋은 소재였던 것이다.
나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외부에 마을의 위치까지 밝히지는 않았다.
협회소속의 길드들과 거래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정된 장소에서 아나스타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했다.
어둑서니의 영역은 금역으로 남아주는 것이 내게도 좋았으니까.
마인들도 설마 어둑서니의 영역에 언데몬의 마을이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재앙’이란 마인들에게도 피해가야 하는 존재였으니.
사실을 아는 이들이라곤 당시 입막음을 당한 백야의 모험가들 뿐인데, 그들은 죽어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할 거다.
영혼에 새겨진 금제는 누구도 풀 수 없는 것이었으니.
아나스타샤의 친구인 클로에도 위치에 대한 기억을 라우라가 뒤죽박죽으로 해 놓았으니 문제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마인들이 마경에 나타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너무 빨랐다.
이건 단순히 염탐이라 보기에는 너무 강한 전력이었으니.
‘게다가 일회용.’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이 쓰러진 마인들은 어딘가 이상했다.
강한 마기를 지닌 것치고 서투른 미행에 좋지 못한 실력. 거기다 죽자마자 삭아버린 몸.
이건 기운을 격발시켰을 때나 나타나는 증상이다.
폐인이 될 것을 각오하면 단숨에 강한 힘을 끌어낼 수 있는데, 이 자들이 지금 그러했으니까.
목적은 아마 나의 죽음, 혹은 실력 파악.
나에 대한 고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고작 이 정도 전력으로 나를 죽이려 했을 리는 없으니, 실력파악을 위해 보낸 것이라 보는 편이 맞으리라.
‘그렇다면 이 싸움을 누가 지켜보았다는 것인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그것 외에 달리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등은 괜찮아요?”
“피는 멎었습니다.”
“돌아가면 단약을 줄 테니, 발라달라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가죠.”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나는 소피아의 손을 잡고 기척 차단을 일으켰다.
***
······한편, 마경의 숲이 내려다보이는 녹색 거인의 협곡.
“이야! 엄청 강한데.”
주인이 사라진 협곡의 꼭대기에서 한 남성이 어딘가를 내다 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쓰러진 네 마인의 사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기를 폭발시킨 녀석 넷을 상처 하나 입고 죽인다라···.”
남자가 혀를 내둘렀다.
그가 보낸 마인들은 하나같이 중격 이상의 실력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거기다 마기를 폭발시키는 포션을 섭취했기에 그 힘만큼은 상격을 웃돌았다.
그런 네 녀석을 상대로 찰과상만을 입은 채 승리를 하다니.
“···십혈(十血)급인가? 오거스트님이 괜히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었군.”
마인협회에는 칠악 오마의 아래에 놓이는 10명의 마인이 존재한다.
남자가 파악하기로 소피아는 그 십혈에 버금가는 실력을 선보였다.
“나머지 한 놈은 모르겠고.”
그나저나 어디 간 거지?
오거스트의 수족인 남자, 윤서호가 눈을 찡그렸다.
마경의 주인이라는 놈이 소피아의 손을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서호는 두 사람의 종적을 놓쳐버렸다.
그건 마족과의 계약으로【악마의 눈】을 습득한 윤서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악마의 눈】을 가진 이는 반경 3km 이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시야에 담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종적을 놓쳐버리다니.
“무슨 능력이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윤서호의 몸이 일순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벅저벅─
그의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윤서호의 고개가 끼릭- 돌아갔다.
청초한 인상의 여자가 그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봐, 어디서 나온 거지?”
현재 이곳 초록거인의 협곡에는 그가 부리는 크루트 수십 마리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저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정상까지 올라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윤서호가 마기를 퍼트려 크루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주변은 잠잠하기만 할 뿐, 나타나는 크루트라곤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소식이 없는 크루트들에 윤서호가 의아해할 때였다.
“방해되는 건 다 정리해놨어.”
“!”
윤서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걸 다 죽였다고? 협곡에 깔린 놈들을 전부?”
당황해 중얼거리던 윤서호가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물었다.
“그렇군, 마경의 주인이란 놈과 한패인가?”
여자에게선 말이 없었으나 윤서호는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놈한테 붙지 말고 나한테 와라. 내가 더 잘해줄 수 있다.”
“······.”
“쯧, 아쉽군.”
여자에게서 말이 없자 혀를 찬 윤서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허공을 움켜쥠에 따라 마기가 뻗어나가 여자를 집어삼킨다.
고위마수조차 조종해버리는 윤서호의 기프트, 【복종】이었다.
복종에 당한 대상은 고유한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지만, 윤서호의 말에 따르게 된다.
그런데.
“···뭐?”
여전히 멀쩡히 걸어오는 여자를 본 윤서호의 눈이 커졌다.
그가 손을 마구 휘저었다.
휘아아악─
마기가 물결치며, 공간을 몇 번이고 집어삼킨다. 그러나, 여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가왔다.
“말도 안 돼! 이건 6성 마수도 견딜 수 없는 능력이란 말이다!”
자신의 기프트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 당황한 윤서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마기를 사방으로 발산했다.
크어어엉─!
마기에 호응하듯 협곡의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포효.
쿠웅─! 쿠웅─!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리며 이윽고 두 개의 머리가 달린 거대한 초록의 마수가 나타났다.
“크하하하! 봐라! 트윈헤드 오우거다! 이걸 보고도 지금······”
퍼억─!
광소를 터트리던 윤서호의 웃음이 뚝 그쳤다.
츄아아아아······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린 핏물이 윤서호의 몸을 적셨다.
쿠아아앙─!
땅을 울리며 쓰러져 내린 트윈헤드 오우거.
"···어, 어?"
윤서호가 멍청한 목소리를 냈다. 쓰러진 트윈헤드 오우거에게서는 머리가 사라져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멍하니 굳어져 있던 윤서호는 이윽고 귀신이라도 본 듯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여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을 본 직후였다.
“서, 설마······”
마경에서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대상은 손에 꼽는다.
거기다 트윈헤드 오우거의 머리를 단숨에 터트려버리는 이 능력······
“···어둑서니? 어둑서니가 숙주를 얻었다고?”
경악한 윤서호가 뒷걸음질 쳤다. 그가 뒷걸음질 친 만큼 여자가 다가왔다.
“···이, 이대로 있다간 넌 잡아 먹힐 거다. 나라면 그 능력을 완벽히 소화하게 해줄 수 있어. 뭣하면 지금 도와줄 수도 있다.”
여자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윤서호가 고개를 마구 휘저었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넌 죽는다. 아니, 곧 잡아먹힐 거다. 진즉에 먹혀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래, 진즉에 잡아먹혔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멀쩡하지?”
윤서호의 눈에 의문이 어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의문을 풀지 못하고 덮쳐 드는 어둠에 삼켜졌다.
이윽고 윤서호란 존재가 완전히 지워져 버린 초록 거인의 협곡.
“조금 피곤하네.”
거듭된 어둠의 사용에 한세연은 피로를 느꼈다. 하지만 괜찮았다.
저 멀리, 마을로 들어서는 이해솔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작게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