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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31화 (132/226)

§ 131화

소피아와 함께 마을로 들어설 때에는 어느덧 날이 저물어 있었다.

찌익─ 찍─

벌레 우는 소리.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여름비. 노면에 깔린 물안개. 서늘한 밤바람이 살갗을 스친다.

“해솔님. 저는 괜찮으니, 겉옷을 걸치시는 편이······”

내 몸이 젖어가는 걸 본 소피아가 본인이 걸친 자켓을 만지작거린다.

“잠깐 젖는 건데요 뭐. 그리고 소피아,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잖아요.”

“······.”

우물거리다 입을 다물어버리는 소피아. 피식 웃은 내가 기력을 전개했다.

“됐죠?”

소피아와 나를 감싸고 펼쳐진 기력의 장막.

투두둑···

반구형으로 전개된 기력의 표면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린다.

내 기력은 장기간 운용이 어렵기에, 이토록 크게 두르면 금방 동이 나버리지만, 마을에 들어서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해솔님의 능력은 언제봐도 놀랍습니다. 정말 희미하게 느껴지는군요.”

반구형의 기력을 매만지며 신기하다는 눈을 반짝여 보이는 소피아.

아카데미에서 무마력이니 뭐니 별의별 이야기가 많지만 나와 계약을 나눈 데몬들은 이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언데몬이 사용하는 ‘혼마기’의 근원이 되는 기운이 내 기력이었으니······.

마력도 마기도 아닌, 제 3의 기운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느껴진다고요?”

“예, 희미하지만 느껴집니다.”

내 놀란 듯한 반응에 눈을 깜빡이며 의아해하는 소피아.

“익숙해지면 더 잘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으음, 그렇군요.”

과연, 혼마기 또한 기력의 일부라서 그런가?

그것을 사용하는 소피아는 내 기력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데몬들이 다 소피아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일전에 확인해본 바로 다들 아예 느끼지조차 못하고 있었으니··· 이본느는 어딘가 묘한 표정이었고.

혼마기에 익숙해진다거나 아니면 경지가 높아지면 기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인가?

“고생하셨습니다. 소피아님, 해솔님.”

마을에 다가서자, 경계를 서고 있던 이들의 조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예, 유릭도 고생 많으시네요.”

“하하, 지금까지 자다가 이제 막 근무에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예, 허가증은 받기로 했습니다.”

“그거 잘 되었군요. 다시 한번 해솔님께 감사드립니다.”

경계를 서던 인원 모두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가슴에 손을 얹는다.

마경의 바깥을 오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데몬들에게 희소식이었다.

원치 않게 데몬스폰이 되면서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연락도 없이 헤어져야 했던 이들도 이곳에는 있었으니까.

그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희망이었다.

그밖에 마경의 생활에 갑갑함을 느끼던 이들에게도 바깥과의 교류는 활력소가 되어줄 것이었다.

그때, 유릭이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해솔님, 죄송하지만, 이곳은 위험하니 뒷문을 이용해 들어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훈련을······”

볼을 긁적이며 뒤를 돌아보는 유릭. 나는 그를 따라, 마을을 바라보았다.

마을의 불빛에 반짝이는 호수, 하얗게 일어난 물안개. 그리고 번개와 불의 향연······?

이내 상황을 파악한 내가 혀를 찼다.

“···요란하게도 하네요.”

“아직 잘 시간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이슬비가 내리는 호수의 공터.

이본느와 아멜리아, 은가예까지 참여한 대련이 벌어지고 있었다.

2대 1의 대련이었으나, 당하는 것은 두 사람인 아멜리아와 은가예였다.

이본느는 제 자리에 부채를 든 채 여유로이 서 있었고, 그와 대치하는 아멜리아와 은가예는 불길에 그을린 채 무기를 지팡이 삼아 가쁜 숨을 몰아쉬기 바쁘다.

그것은 유린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일방적인 대련이었다.

여유로이 부채를 휘두르는 이본느.

그에 따라 피어난 화염의 칼날이 두 사람을 몰아쳐 간다.

“으랴아압─!”

기합성을 지르며 달려 나간 은가예가 대검을 휘둘렀다. 중력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솟구치며 공간이 일렁인다.

그 일렁이는 공간을 지나며 화염의 칼날이 쇄도하고, 대검이 화염의 칼날을 내리친다.

쿠아앙─!

대검과 화염의 칼날의 밀고 밀리는 대치가 이어진다. 이윽고 베여 나가는 화염의 칼날.

“드디어! 드디어 베었···으아악!”

환호성을 터트리던 은가예가 연이어 날아든 화염의 칼날에 맞고 날아간다.

“후후, 베었다고 방심하면 안 되지요.”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린 이본느가 웃어 보였다.

“뭐, 뭐야! 베기만 하면 된다며요!”

“어머, 제가 하나라고 했던가요?”

능청스레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본느. 은가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아니. 그보다 방금 그거 대검으로 안 막았으면 주, 죽을 뻔한 거 아닌가요?”

“막았으니 다행이네요.”

“에···?”

“걱정 마세요. 해솔님의 단약을 먹으면 적어도 죽지는 않을 거랍니다.”

“야이, 마녀··· 으악!”

“말할 시간이 있으면 몸을 움직이세요.”

부채를 사정없이 휘두르는 이본느.

“우, 우아악─!”

빗발치는 칼날을 피해 은가예가 미친 듯이 바닥을 굴러다닌다.

아멜리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처참했다.

은가예야 몸이라도 날렵해서 피할 수라도 있지, 마법사인 아멜리아는 그조차도 불가능했으니까.

“실드! 실드! 실드!”

평소의 화려한 작명센스는 어디 갔는지, 짤막한 명사만 마구 질러대는 아멜리아.

3개의 실드를 시간 차 없이 동시에 전개하는 ‘3중 영창’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분명 마경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멜리아가 동시 전개할 수 있는 마법의 개수는 2개가 한계였으니까.

그것도 2서클 이하의 하위마법에서나 가능했지, 저처럼 3서클 방어마법, 「별무리의 장막」을 동시 구사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뭐, 위기 상황에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 채 발현한 결과물인 듯 보였지만······

하지만 그조차도 화염의 칼날 3방에 와장창 부숴져내렸다.

“시, 실ㄷ··· 꺄아아악─!”

지팡이를 내밀다 뒤로 날아가 버리는 아멜리아.

“으음.”

대련을 바라보다 침음하는 소피아.

역시, 소피아조차 이건 너무 심하다고 느껴지나 보다.

“놀랍군요.”

“네, 너무 심한······예?”

“두 분의 실력이 많이 는 것 같습니다.”

“···지적할 부분이 거긴가요?”

“그럼 달리 더 있습니까?”

“······.”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소피아.

잊고 있었지만, 소피아의 이러한 정도란 걸 모르는 성향은 전부 이본느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이본느로부터 죽음에 가까운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아왔기에 그게 일반적이고, 당연한 건 줄 아는 것이다.

즉, 소피아의 오리지널이 바로 이본느였다.

이본느는 차분한 사람이지만, 한 번 대련에 들어가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서우리만치 사람이 바뀌어 버리니까.

“아으으···”

잠깐 한눈을 판 사이 폭탄 머리가 된 은가예와 아멜리아가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이본느.

그러다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더니, 순진하게 눈을 깜빡인다.

“어머, 오셨네요. 해솔님.”

“아, 예.”

언제 싸늘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이본느가 차분하게 웃어 보인다. 그 분위기 변환이 무서울 정도였다.

“아이참! 이본느님! 또 이렇게 무리하게 훈련을 하면 어떻게 해요!”

그때, 뒤늦게 달려온 자색 머리 여성이 은가예와 아멜리아를 보곤 기겁하더니 이본느를 나무랐다.

“아, 해솔님. 오셨네요.”

“나오미님이 고생이 많네요.”

자색 머리 여성은 나오미. 치유마법을 주력으로 하는데 마경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다치는 사람이 오죽 많아야지···.

그나저나.

“나름 발전했네.”

바닥에 쓰러진 은가예와 아멜리아를 보며 내가 중얼거렸다.

원래 이 시간대에 두 사람은 대련을 끝낸 채 얌전히 휴식을 취하고 있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버티는 시간이 늘어나더니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이본느의 교육은 혹독했지만, 그만큼 결과는 확실했으니까.

‘조만간 서리의 영역에 가도 되겠는데.’

지금의 은가예라면, 대보구, 나겔링이 잠들어 있는 서리의 영역에 도전하기에 충분해보였다. 그때 이본느가 나를 보며 물었다.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보다 나오미님.”

“예?”

은가예와 아멜리아에게 치료마법을 걸고 일어나던 나오미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것 좀 소피아씨한테 발라줄 수 있을까요?”

“다치셨나요?”

멀쩡히 서 있는 소피아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나오미. 소피아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예, 등이 조금 다쳤습니다.”

“그래도 어디 봐바요.”

소피아의 뒤로 돌아간 나오미가 자켓을 들추었다. 그러곤.

“꺄악! 조금이 아니잖아요!”

X자로 그어진 상처를 보았는지 나오미가 기겁을 했다.

“이런 걸 달고 왜 가만히 있어요? 빨리 가요, 얼른! 내버려 두면 흉 진다고요!”

내가 준 단약을 든 나오미가 소피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확실히 소피아의 무감함은 대단했으나, 괜찮을 거다. 피륙만이 베인 상처였으니. 신체 회복 단약이라면, 흉 하나 없이 나으리라.

이윽고 아멜리아와 은가예마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옮겨지는 걸 지켜보던 나는 무언가 허전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중요한 퍼즐이 빠진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빠질 리 없는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다.

사방을 둘러보던 내가 이본느를 돌아보며 물었다.

“세연이는요?”

“글쎄요, 아까부터 보이지 않네요.”

아멜리아와 은가예, 두 사람의 훈련을 돕느라 어디 갔는지를 보지 못했다는 이본느.

“잠깐 찾아보고 올게요.”

그렇게 저택으로 향했으나, 한세연은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저택을 나왔던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걸음을 멈추었다.

마을의 뒷길, 밖으로 이어지는 소로를 통해 한세연이 걸어오고 있었다.

“해솔아, 왔어?”

“방금 전에. 그런데 어디 갔다 와?”

“잠깐 산책 좀 갔다 왔어.”

“이 시간에?”

깜깜해진 주변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내 표정이 짐짓 굳어졌다.

“밤에는 돌아다니지 마.”

마경의 마수들은 대개가 야행성이다.

그건 고위마수일수록 특히 그랬기에 밤에 마경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 행위라 불릴 정도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트윈헤드 오우거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6성 마수는 정말 위험한 존재다. 이런 한밤중에는 녀석의 잔악성이 더욱 심해지기에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될 놈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 충고를 듣기는 하는 건지 한세연이 픽 웃어 보인다. 내가 가볍게 눈살을 찡그렸다.

“왜 웃어?”

“미안.”

“아무튼 위험하니까 밤에는 돌아다니지 마라.”

“응. 알았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세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던 나는 뒤늦게 한세연의 안색을 확인했다.

얼굴이 다소 창백한 게,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안 잤어?”

“응, 조금.”

혀를 찬 나는 한세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화르륵─

불사조의 푸른 불길이 일어나며 그녀의 안색에 생기가 돌아왔다.

“빨리 자. 또 어디 나가지 말고.”

“알았어.”

확답을 받은 나는 등을 돌려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런 내 옆을 한세연이 따라 걸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허전한 기분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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