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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32화 (133/226)

§ 132화

밤새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친 이른 아침.

졸음을 얼굴에 매단 아멜리아가 눈가를 비비며 저택의 식사장으로 들어선다.

“안 잤냐?”

“네에, 마법 연습 좀 하다가 늦게 자버렸어요.”

잠에 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빼 앉는 아멜리아. 그런 그녀의 앞으로 김이 이는 커피가 놓인다.

고개를 드니 한세연이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피곤하지? 마셔.”

“아, 고마워요.”

두 손으로 잔을 든 아멜리아가 눈을 감고 커피의 향을 맡았다.

“흐음- 좋네요.”

나는 맞은편에서 그런 아멜리아를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삼중영창 연습?”

“······!”

아멜리아가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이내 수상쩍다는 눈으로 나를 경계하듯 쳐다보는 아멜리아.

“안 훔쳐봤으니까 그렇게 안 쳐다봐도 돼.”

“아, 흐흠. 누가 훔쳐봤대요?”

정곡이었는지 아멜리아가 고개를 돌리며 시치미를 뗐다.

‘역시 뽀록이었나 보네.’

전날 이본느와의 대련 도중에 삼중영창을 사용했던 아멜리아다.

밤샘 연습으로 잠이 부족한 걸 보면, 그건 본인도 모르게 얼떨결에 사용한 거였나 보다.

“흐아함···엣!”

“아자앗─!”

하품을 하던 아멜리아가 요란스러운 외침에 깜짝 놀라 해괴한 소리를 낸다.

“해냈드아아─!”

환호성을 지르며 등장한 건 바로 은가예였다.

“가예는 오늘도 활기차네.”

토스트 그릇을 가져오던 한세연이 그런 은가예를 보곤 귀엽다는 듯 웃어 보였다.

팔을 번쩍 들며 만세삼창을 해 보이는 은가예를 보며 내가 물었다.

“뭘 해냈는데?”

“어제 봤지, 내가 이본느님 화염 베어버리던 신기술.”

“아, 그거.”

“응, 그거 완성했다고.”

달려 나가며 화염의 칼날을 베어버렸던 것을 말하나 보다. 그런데 신기술? 그냥 내려찍기 아니었나.

“그게 무슨 신기술이에요, 그냥 내려찍은 것뿐이잖아요.”

하품이 끊겨 잠이 달아난 아멜리아가 내 의문을 속 시원히 물어봐 주었다.

“훗, 얘가 뭘 모르네.”

“뭘 모른다는 거예요?”

자랑스레 턱을 치켜드는 은가예.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아멜리아가 고운 눈썹을 찡그렸다.

“이름하여, 시공간을 지배하는 검술이란 거야.”

“···어제 잠 안 주무셨어요?”

아멜리아의 표정이 괴상해진다.

그에 아랑곳 않고, 의자를 빼 앉은 은가예가 차분히 설명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와 아멜리아, 한세연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거 말 되네요.”

“그치?”

“예.”

은가예가 말하는 기술이란, 중력의 마력을 퍼트려, 다가오는 적의 속도와 위력을 늦추고, 거기에 본인의 대검을 때려 박는 것을 말했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오직 노리는 대상에게만 마력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축하한다.”

내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느껴졌는지, 은가예가 김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그것뿐?”

“아니, 진심으로.”

나는 진심으로 은가예의 성취가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그녀가 서리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었으니까.

진심 어린 축하는 은가예가 그곳에서 나겔링을 가져온 이후가 되겠지만.

그리고 그건 조금 많이 빡쎌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저 신기술을 터득할 때보다 몇 배는 더.

“···뭐야, 왜 그렇게 웃어?”

“아무것도.”

내 미소에서 뭔가 께름칙함을 느꼈는지 은가예가 미간을 좁혀 보였다.

***

······점심나절, 나는 은가예를 데리고 마을을 나왔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내 손을 잡고 이동하며 은가예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녀는 중력의 마력을 수련하기에 딱 좋은 장소가 있다는 내 말에 나를 따라 마을을 나온 차였다.

그런데 목적지는 알려주지 않고, 계속해서 마을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내 행보에 의문을 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어둑서니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였고, 초록 거인의 협곡마저 넘어왔던 것이다.

내 기척 차단의 영향으로 우리는 그 와중에 어떠한 마수의 위협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이윽고, 수림을 벗어나자 펼쳐지는 운무에 휩싸인 황야지대.

이 너머는 언데몬에서조차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정말 마력을 수련할 만한 장소가 있는 거 맞아?”

“어, 거의 다 왔어.”

“···음, 근데 어째 좀 추워진 것 같지 않아?”

은가예가 어깨를 쓸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부터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나아갈수록 점차 추위가 강해지고 있었다.

해가 쨍쨍한 여름에 이런 추위가 느껴진다는 것에 은가예가 의문을 품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어?”

은가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현듯 하늘에서 눈송이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제야 자리에 멈춰 선 내가 은가예를 돌아보며 물었다.

“요즘 마력 다루는 거 어때?”

“···조금 힘들긴 하지만, 적응되서 괜찮아.”

“쓸 때마다 집중하잖아.”

“그야 그렇지.”

은가예의 마력인 중력의 마력은 제멋대로 날뛰는 망아지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랬기에 마력을 단번에 뿜어내는 [폭검]이란 응용법으로 사용해야 했으며, 그조차도 고도의 집중을 요하기에 정신적인 피로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그녀가 개발한 기술인 외부로 방출한 마력을 한 대상에게 집중하는 것도 분명 정신력을 많이 잡아먹는 기술일 터였다.

은가예의 정신력이 보통을 넘어선 수준이기에 버티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단 한 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휘청이는 게 정상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마저도 중력의 마력을 완벽히 다루는 것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보구, [나겔링]을 얻게 된다면 은가예는 자신의 마력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된다. 괜히 전용보구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 수련하면 마력을 다루는데 도움이 될걸?”

“여기가 어딘데?”

“서리의 영역.”

“···뭐? 여기가?”

은가예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리의 영역이란 자연이 빚어낸 일종의 마력적인 ‘재해’였다.

영역의 안에 들어서면 아이스 트롤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마수가 출몰한다.

하지만 이들은 실제하는 마수가 아니다.

이유는 불명이나, 서리의 영역에는 이미 썩어 사체조차 남기지 못한 마수들의 ‘사념’이 사라지지 않고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들어선 생물은 사념에 빠져들고, 종국에는 그 자신도 사념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만약 사념에 빠져들지 않고 서리의 영역을 통과한다면 그만큼 실력이 향상되어 나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물론,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마수들의 사념이 사리지지 않고 모여있는 이유는 자연이 만들어낸 재해가 아닌, 대보구 ‘나겔링’이 일으킨 현상이었다.

그리고 나겔링에게 사로잡힌 사념은 마수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나겔링에게 죽은 생물 전체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은가예가 이 사념의 대지를 헤쳐나와 나겔링의 선택을 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운무를 통과하면 끝이야.”

“너 여기 와봤어?”

“어. 와봤으니까 데리고 오지.”

와보긴 했다.

게임에서.

우우우우─

그때, 눈발이 휘날리던 황야의 운무(雲霧) 너머에서 으스스한 귀곡성이 들려왔다.

“뭐야?”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불안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은가예. 그녀의 시야에 운무를 드리운 검은 그림자들이 보여왔다.

철컥─ 철컥─

이윽고 운무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그것들은 각양각색의 갑옷들이었다. 다만, 속이 텅텅 비어있었다.

“리빙아머라고?”

던전에서나 드물게 보이는 언데드계열 마수의 등장에 은가예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야, 이해솔. 너가······ 어?”

고개를 돌렸던 은가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다행히 성공이네.’

리빙아머가 나온 것을 본 나는 내심 안도했다.

제 주인을 스스로 고르는 대보구, 나겔링은 2가지 패턴을 지니고 있다.

운무에 들어선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리빙아머가 나타나고, 그렇지 않다면 마수떼가 출몰한다.

은가예는 자격을 갖추었기에 리빙아머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돕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 시련은 은가예 홀로 돌파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저들은 단순한 리빙아머 따위가 아니었다.

지닌 무기는 각기 다르며, 그 무기술의 깊이 또한 보통이 아닐 터였다.

그도 그럴 게 저들은 대보구 [나겔링]에 의해 죽은 자들의 ‘사념’이 깃든 리빙아머였으니···.

게임에서 가문의 검술을 벗어던진 은가예가 자신만의 검법을 완성하고, ‘무희’라 불리게 되는 것은 바로, 저 리빙아머들과의 대련에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서였다.

“저놈들을 모두 이기면 밖으로 나올 수 있겠지.”

그러면 은가예는 지금보다 몇 단계는 더 성장하리라.

적어도 무기술에 관해서는 은가예를 상회하는 사자(死者)들이었으니.

“실패하면 그대로 운무 밖으로 내쫓기겠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없다. 은가예의 정신력이 꺾이지 않는 한, 도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제공될 것이니까.

애초에 단 한 번의 시도만으로 저 많은 리빙아머들에게서 승리를 거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철컥─ 철컥─

그때, 불현 듯 운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윽고 내 사방을 둘러싸며 나타나는 리빙아머의 무리.

하지만 녀석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은가예를 대하는 것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지이잉─

피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살기. 사념의 운무가 진득하니 나를 휘어 감는다.

그것은 명백한 ‘적의’였다.

나겔링이 나를 은가예의 시련에 끼어든 불순물. 즉, 침입자로 간주한 것이다.

훼애액─!

메이스, 모닝스타, 검, 핼버드, 창, 검······

각종 무기가 내 몸을 난도질할듯 날아든다. 나는 가만히 서서 날아드는 무기의 향연을 지켜보았다.

푸우욱─!

내 몸을 파고드는 무기들.

나는 다리며, 가슴 할 것 없이 전신에 무기가 가시처럼 피어난 고슴도치가 되어버렸다.

우우우···.

귀곡성이 울린다. 짙어진 운무가 수렁처럼 나를 옭아맸다. 이윽고, 리빙아머들이 무기를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내게 꽂힌 무기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철그럭철그럭─

리빙아머의 무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를 응시한다. 무기들을 매단 내 입매가 비틀렸다. 바로 그 순간.

───────!

돌연, 무기들이 파편처럼 깨져나갔다. 나는 처음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운무가 요동쳤다. 내가 그 운무의 끝자락을 움켜쥐었다.

“아서.”

거짓말처럼 잡혀 드는 운무.

나는 공간을 향해 경고하듯 읊조렸다.

“덤비면 죽는다.”

스르르─ 물러가기 시작하는 운무. 덜그럭거리던 리빙아머들이 길을 튼다. 나는 그 열려진 길을 따라 걸어갔다.

휘이이···

휘몰아치는 혹한에 몸이 얼어붙고, 끈적한 운무가 발을 옭아맨다. 사멸한 기사, 이름 모를 거인이 나를 응시했으나······

뚜벅뚜벅─

그 무엇도 내 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겔링이 자아내는 사념따위, 정신력의 극한에 달한 내게는 허상에 불과했으니.

“······.”

어느덧 운무를 빠져나온 나는 안개 너머에서 홀로 대검을 휘두르는 은가예를 가만히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은가예를 내버려둔 채 서리의 영역을 벗어났다.

나겔링을 얻으면 어련히 알아서 돌아올 터였으니까. 나에게는 그동안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거스트.’

언데몬의 영상이 퍼진 이상 녀석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어쩌면 전날에 나를 습격한 마인들이 오거스트의 수족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녀석을 부수기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진행해나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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