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35화 (136/226)

§ 135화

화국.

그 단어가 나온 순간, 최아린의 표정이 대번 찌푸려졌다.

얽히고 싶지 않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도 떠올리듯이.

“‘죽어있는 자들의 섬’을 말하는 게 맞아?”

“그래.”

죽어있는 자들의 섬?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나는 최아린의 의미심장한 말을 이해했다.

섬의 환경과 대조해보자면 최아린의 말은 틀린 바가 아니었으니.

표정이 구겨져 있던 최아린은, 이내 흥미롭다는 얼굴이 되어 물어왔다.

“내가 그 기분 나쁜 섬에 가는 방법을 왜 알고 있다 생각하지?”

화국(華國)은 바람에 밀려 정처 없이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섬’이다.

그곳의 위치를 특정 지을 방법은 없으며, 그렇기에 현재 화국이 어느 국가의 영공을 떠다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모래사장에서 모래와 같이 위장한 바늘을 찾는 격이었기에.

협회에서조차 손을 쓸 수 없고, 그렇기에 오거스트의 안락한 ‘요람’이 되어주는 장소. 그곳이 바로 화국이었다. 하지만 나는 최아린이 그 화국으로 향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확신했다.

“탐식의 마족과 계약을 한 자는 무한한 공복에 시달린다.”

뜬금없이 시작되는 탐식에 대한 이야기에 모두가 갸웃거린다. 그러나, 최아린만은 표정이 설핏 굳어졌다.

“하지만, 계약자는 그 공복을 채울 수 없지.”

“······.”

“네가 먹은 것은 그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지니까.”

탐식의 악마가 먹어 치운 것은 그게 무엇이 되었건 이 세상에서 기록이 지워져 버린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며, 어느 곳에도 그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야말로 존재의 말살.

그렇기에, 탐식의 계약자인 최아린은 먹어도 먹어도 공복을 채울 수가 없다.

본인이 먹은 것은,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워져 버리기에.

먹은 게 먹은 게 아니게 되어버리기에, 무한한 공복에 시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먹지 않아도 죽지는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의 ‘저주’.

그렇기에 탐식의 계약자는 어느 시대건, 악행의 유무와 관계없이 말살의 대상이 된다. 그 존재 자체가 해악이었기에. 물론 지금의 최아린은 조금 다른 신세였지만······ 아무튼.

“화국도 마찬가지지.”

이제는 완전히 굳어져 버린 최아린을 바라보며 내가 말했다.

“섬에 먹힌 인간의 존재는 세상에서 지워진다. 그렇기에 화국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둘 지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넌 그걸 어떻게 알았지?”

“숫자다.”

“!”

“탐식이 먹어 치운 것은 그 존재가 지워지지만, 사람의 머릿속에 남겨진 숫자조차 지우지는 못해.”

100명의 사람 중 누구 한 명을 탐식이 먹어치우면 그 존재는 지워진다. 하지만 그곳에 100명이 있었다는 사실마저 지워지지는 않는다.

세상이 탐식의 존재를 추적하는 방법도 이러한 숫자에 기반했다.

“섬에서의 인구는 가끔 비지만, 그게 왜 비는지 알지 못했답니다. 그걸 당신하고 연관 지으니 알겠더군요.”

이본느가 섬의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것도 이 숫자를 통해서였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수가 비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오거스트에게 알렸다. 그리고 알게 된 진실은 끔찍했다.

“섬이 사람을 먹고 있던 거예요.”

“······.”

“섬을 만든 건 당신이겠죠, 최아린.”

“섬을 만든 건 오거스트야.”

최아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공복을 덜어주겠다는 녀석의 말에 속았을 뿐이지.”

갓 계약을 해 아무것도 모르고 공복에 시달리던 최아린에게 찾아온 오거스트는 말했다.

─그 공복을 덜어주마.

희망처럼 보이던 그 거짓에 속아 탐식의 능력 일부를 섬에 이식했다.

그렇게 하면 이 채워지지 않는 공복이 조금쯤은 줄어드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공복은 여전했고, 그녀는 보금자리를 만들고 스스로를 가두었다.

이 ‘저택’ 안에서라면 그녀의 공복은 해소되기에.

하지만 이 저택을 나가게 되면 그녀는 다시 끝 모를 공복에 시달리게 된다. 빠져나갈 수 없는 새장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끝 모를 갈증에 시달리는 섬의 존재를. 그것이 어디를 떠다니고 있는지를.

“그래서, 섬의 위치를 알아서 어쩌려는 거지?”

“부술 거다.”

“······뭐?”

최아린이 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

배를 부여잡고 웃던 그녀가 이내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재미있는 게 아니라, 그냥 미친 거였네.”

“글쎄, 미쳤는지 아닌지는 보면 알겠지.”

“흐음.”

나를 흥미롭다는 듯 응시하던 최아린이 작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알려줄게. 섬은 지금······”

***

······커튼 너머 창밖. 우중충한 먹구름이 드리운 세상. 정원을 빠져나가는 마경의 주민들을 보며 최아린은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괜찮으신 겁니까?”

“뭐가?”

이든의 말에 최아린이 반문한다.

“섬의 위치를 말해줘도 되는 것이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하지만 그러면 오거스트가······”

“말하지 않으면 죽었어, 이든.”

자신이 섬의 위치를 알려주었다는 걸 오거스트가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가만히 있을 리는 없겠지만 당장 죽는 것보다야 나았다.

“오거스트고 뭐고,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거야.”

그녀는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비록 새장 속에 갇힌 삶일지라도 좋았다. 그녀에겐 이 저택만이 세상의 전부였으니.

그리고······

“궁금하지 않아? 진짜 섬을 부술지.”

“가능할 거라 보십니까?”

“글쎄···.”

최아린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머리로는 ‘불가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비틀림이 생기기를, 멈추어버린 섬이 가라앉기를.

“차라도 마시겠습니까?”

“방금 마셨어.”

최아린이 픽 웃으며 비워진 찻잔을 내밀었다.

***

······한편, 눈발이 휘몰아치는 황야의 안개. 서리의 영역.

카앙─!

휘둘린 대검에 리빙 아머의 창이 튕겨 나간다. 그러나, 휘릭. 뱀처럼 몸을 튼 창은 대검을 타고 은가예의 몸을 파고든다.

그렇게, 창날이 은가예의 가슴에 닿으려던 순간, 우뚝 멈추어선다.

어느새 리빙 아머의 갑옷 이음매 사이에는 대검이 박혀 있었다.

“그거 몇 번이나 봤다고. 이제 안 통해.”

은가예가 짐짓 쾌활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안개가 되어 흩어져버리는 리빙아머.

철컥─ 철컥─

뒤이어 안개를 타고 13기의 리빙아머가 나타난다.

“하아, 질리지도 않게 오네.”

대검을 휘감을 듯 날아드는 채찍. 은가예가 손목을 강하게 틀며, 손잡이를 놓았다.

휘리릭─

대검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강력한 마력이 발생된다. 달라붙던 채찍이 튕겨 나간다.

그렇게 시작되는 교전. 은가예는 달려드는 리빙아머들을 차례차례 격파해나갔다.

그런 그녀의 검술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마구잡이로 휘둘리는 검을 마력으로 보완하던 이전과 달리, 능란한 검술을 마력이 보조한다.

이러한 검술을 얻기까지 이곳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 은가예는 알지 못했다.

바깥 세상은 정확히 ‘일주일’이 흘렀으나, 사념의 세상인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 달랐으니.

“으갸악─!”

딴 생각을 하다 둔기에 머리를 얻어맞은 은가예가 비명을 질렀다.

“···아우, 또 튕겨 나갔네.”

그녀가 안개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의식의 죽음에 영역의 바깥으로 튕겨 나간 것이다.

“흐아함- 오늘은 좀 진전이 있었나요···?”

“넵! 좀만 더하면 될 것 같아요.”

“하음, 그거, 희소식이네요···”

잠옷 차림의 여성, 라우라가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끄덕인다.

은가예는 그런 그녀의 뒤를 바라보며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라우라의 뒤에선 코에 뿔을 매단 거대한 마수가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5성 마수 ‘무소’다.

뭐든 뿔로 박고 보는,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한 녀석이 라우라의 앞에서는 초식동물처럼 얌전하기만 했다.

지금은 은가예가 마을과 서리의 영역을 안전하게 오갈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셔틀버스’다.

매일 잠에 빠져 사는 라우라를 움직이게 하려는 이본느의 지시였다.

그리고 라우라가 왔다는 건 하루 일과의 끝을 의미했다.

“흐암, 그럼 돌아가죠······”

“네엡.”

두 사람이 무소의 등에 올랐다.

***

“이본느님.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설마 제 마법을 의심하는 건가요, 소피아?”

“아,아닙니다.”

방긋 웃으며 묻는 이본느. 소피아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얼굴만은 하얀 게 그다지 신뢰하는 얼굴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우리는 현재 최아린에게서 받은 좌표를 이용해 이본느가 작성한 워프진 앞에 서 있었다.

문제는 이 좌표가 맞다고 하더라도 섬의 어디로 떨어질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

재수 없으면, 섬 바깥의 공중으로 떨어져 그대로 낙하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마법 공포증’이 있는 소피아로서는 그다지 달가워할 상황이 아니었다.

소피아는 자신이 조종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마법으로 공중에 뜨거나 이동하는, 남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을 신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운전대를 잡으면 어떤 일이 발생해도 두렵지 않지만, 남에게 운전대를 맡기면 불안해하는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마법이라면 특히나 그랬다.

마치 뜨거운 욕조물에 발을 담굴 듯 말 듯, 워프진과 밀당을 하고 있으니······

“이본느님이 알아서 해주겠죠.”

나는 워프진에 훌쩍 올라섰다. 그 옆으로 한세연이 자리하고, 아멜리아와 은가예도 들어온다.

오늘은 단순한 사전조사차원에서 화국에 들리는 것이었다.

“소피아, 걱정 말고 들어와요.”

“예, 해솔님. 잠시만···흐앙!”

여전히 워프진에 올라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소피아의 손을 내가 홱 잡아끌었다.

요상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듯 내게 딸려오는 소피아. 이본느에게 눈짓을 주자, 그녀가 마법을 발동했다.

푸른 빛이 워프진을 휘감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파라라락!

펄럭이는 옷가지. 휘몰아치는 바람. 하얀 안개. 우리는 구름 위 상공에 떠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그람의 단검들을 바닥 아래 넓게 펼치고, 그 위에 기력을 천처럼 덧대 올라섰다.

이처럼 이기어검이란 스킬을 지닌 내게 공중에 뜨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타악.

그런 내 옆으로 누군가 홀연히 올라선다. 한세연이었다. 나는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꼭 붙잡아주었다.

느닷없는 공중낙하에 팔을 허우적거리던 소피아는 본인이 제일 불신하던 이본느에게 구조되었다.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은가예의 비명.

“으아아악─!”

“악! 이것 좀 놔요!”

아멜리아가 제 몸에 달라붙은 은가예를 떨궈 내려했으나, 은가예는 그럴수록 더욱 달라붙었다.

은가예라는 짐을 앉은 채 어렵사리 지팡이를 휘두르는 아멜리아. 마법이 완성되며, 두 사람의 낙하가 멈춘다.

“최아린,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 걸까요?”

발디딜 곳 없는 공중에 아멜리아가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아래를 가리켰다.

“아니, 저기 봐.”

“···와.”

뒤늦게 아래를 내려다본 모두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것은 ‘대지’였다. 거대한 섬이 구름 위를 가로지르며 유영을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마력장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아야 하나, 그 안으로 들어왔기에 보여오는 것이다.

이윽고, 우리는 하늘을 날아, 섬의 외곽에 무사히 내려섰다.

땅을 디디자 소피아가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네요.”

“예.”

이본느의 말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야 처음 오지만 두 사람은 이곳에서 생활을 했었으니 감회가 남다를 터였다. 하지만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이상하네요. 놀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아멜리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좁힌다.

섬의 외곽이라곤 하나, 그들이 내려선 곳은 광장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분수대가 있고, 건물이 있었으며, 버젓이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없었다.

그 이상한 분위기에 은가예와 아멜리아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무감인(無感人)들입니다.”

“무감인이요?”

“예.”

이본느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섬은 사람의 감정을 먹습니다.”

감정을 거세해 분쟁이 없는 사회를 이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거스트가 지향하는 ‘이상’이었다.

그리고, 화국이란 그 감정이 거세된 이들이 살아가는 ‘죽어있는 자들의 섬’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