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우리는 이본느의 안내를 받으며 화국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마을, 가게, 공원, 빵집, 시장······
무감인들의 도시에는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으, 소름 끼치네.”
“유령도시를 걷는 기분이에요.”
은가예가 부르르 떨며 제 팔뚝을 매만지고, 아멜리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미간을 구부린다.
그도 그럴 게 도시의 시설을 이용하는 이들에게서는 감정의 편린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사회가 이루어졌는지가 신기할 정도로 모두가 무표정했고, 필요에 의해서만 행동했다.
“기호가 나누어져 있는 것은 몸에 베인 습관과 의식에 의한 행동일까요?”
아멜리아는 지극히 마법사적인 관점에서 화국을 분석하고 있었다.
입에 크림빵만 안 물고 있다면 똑똑해 보일 텐데.
나름 심각하다가도 당분만 주입되면 얼굴이 행복하게 풀려버린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입술에 크림 묻히고 있는 거 은근히 신경 쓰이네.
아멜리아, 은가예, 소피아, 이본느. 네 사람은 처음으로 들린 화국의 빵가게에서 산 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이본느가 추천한 가게인데 제법 맛있다나. 나는 땡기지를 않아 거부했다.
안 그래도 예정에도 없던 고공낙하까지 했는데, 아침부터 저런 거 먹으면 속이 느글거렸으니.
그때, 내 입 앞으로 닭꼬치를 든 고운 손이 내밀어진다.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 그것을 한 입 베어 문 내가 고개를 돌리니 한세연이 싱긋 웃어 보인다.
“혼자 아침 걸렀잖아. 그래서 사 왔어.”
그녀의 손에는 내 닭꼬치와 자신의 것이 들려져 있었다.
나 혼자 다른 것을 먹으면 어색할까 봐 본인도 같은 것을 사 온 건가.
역시 나 챙겨주는 건 얘밖에 없네.
“잘 먹을게.”
피식 웃은 내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화국의 시장을 거닐었다.
참고로 화국에서 통용되는 돈은 ‘루블’이라는 단위로 비둘기가 그려진 독자적인 지폐였는데, 이본느가 지니고 있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저 탑은 뭔가요?”
은가예가 섬의 중앙에 솟은 높다란 탑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관조자의 탑’입니다.”
“관조자의 탑이요?”
“예, 오거스트는 저곳에서 섬을 내려다본답니다. 어쩌면 지금 올라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엑? 그, 그럼 우리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당황한 표정을 짓는 은가예. 그런 은가예가 귀엽다는 듯 웃어 보인 이본느가 달래듯이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오거스트는 화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신경을 쓰지 않거든요.”
“···침입자가 있어도요?”
“섬에 들어왔다면 그게 누가 되었건 화국의 ‘국민’이라는 게 오거스트의 방침이랍니다.”
우연치 않게 섬을 방문하거나, 침입자가 발생하더라도, 그들 또한 넓은 ‘포용력’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로 오거스트였다.
“이 세상의 모두를 화국의 국민이라 본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네요.”
“······그게 뭐에요?”
“미친놈은 이해하는 게 아니야.”
해괴한 표정을 짓는 은가예에게,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정신이 나간 놈은 일반인의 잣대로 이해할 수 없는 법이었으니. 이해하려 한들, 머리만 아플 뿐이다.
내 이런 말에 이본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솔님의 말 대로에요, 오거스트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거든요. 그냥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할 거예요.”
“······.”
“그는 ‘다툼’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섬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거든요.”
“반대로 다툼을 일으키면 누구보다 잔인해지는 자입니다.”
이본느의 말을 소피아가 받았다.
“저희가 오거스트의 눈을 피해다녀야 했던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그렇군요.”
은가예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데몬의 본거지였던 ‘성당’에 쳐들어왔던 오거스트의 무리를 그녀도 보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괜찮은 건가요? 쫓기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섬에 들어왔다면 괜찮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말에 은가예와 아멜리아가 갸웃거린다.
섬 밖으로 달아나면 쫓더라도 섬에 머무르는 건 상관이 없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으니까.
이러니,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놈은 제가 신이라도 된 것마냥 구는 정신나간 놈이었으니.
“그런데 소피아씨는 아까부터 뭘 먹고 있는 거죠?”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면에 행복이 가득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오물거리는 게, 꼭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다.
“‘츄리’입니다.”
“츄리요?”
이본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피아가 귀신처럼 좋아하는 캔디인데, 한국에는 없어서 서운해하더군요.”
누가 훔쳐갈 새랴, 캔디통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있는 소피아를 보며 우리가 피식 웃었다.
하여간, 믿음직스럽다가도 가끔 애다운 면이 있다니까.
그때, 돌연 거대한 종소리가 울렸다.
대앵──!
파문처럼 섬 전체로 번져나가는 거대한 종소리.
대앵──!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돌아다니던 사람들의 걸음이 우뚝 멈춘다.
대앵──!
일제히 좀비처럼 어딘가를 향해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꺅, 악, 앙, 뭐, 뭐예요?”
사람들의 물결에 이리저리 치이던 아멜리아가 간신히 옆으로 물러나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세례에요.”
이본느가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세례요?”
“데몬스폰이 될 사람을 선별하는 의식이에요.”
“그 말은······”
“예. 오거스트에요.”
일행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
대앵──!
종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우리는 인파에 섞여 그들과 함께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섬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광장이었다.
족히 수천 명은 될법한 인파가 모여든 광장.
‘관조자의 탑’ 앞에는 붉은 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마법진 3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오오오──
“이 사람들 갑자기 상태가 이상해요.”
무슨 사이비 종교의 모임이라도 되듯 기이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며 아멜리아가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오오──
공허한 감정의 울림이 광장을 메아리친다.
대앵──!
“이 종소리가 원인인 거 같아요.”
관조자의 탑 꼭대기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기이한 마기가 담겨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쳐든 채, 종소리가 울리는 관조자의 탑 꼭대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관조자의 탑의 어두운 입구를 통해 눈에 익은 두 사람이 걸어 나온다.
오오오──
늙수그레한 노집사.
오거스트의 수족, 세오릭이었다.
“조용────!”
열기를 잠식시키는 우렁찬 목소리.
세오릭이 발을 구르자, 광장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윽고, 그 침묵을 뚫고 한 줄기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터벅터벅─.
관조자의 탑. 그늘진 입구를 통해 누군가가 걸어 나온다.
여인이 받쳐 든 양산 아래,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는 창백한 안색의 청년.
─다들 와주었구나.
머리를 뒤흔드는 감미로운 음성.
오오오오─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이 이성을 잠식한다.
─그럼, 세례를 시작하겠다.
기이한 열기 속에 ‘오거스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오거스트의 계약, ‘세례’는 기이한 형태로 진행이 되었다.
오오오오─
피로 이루어진 3개의 계약진 앞으로 선택을 받은 이들이 줄지어 걸어 들어간다.
“끄아아악─!”
계약진 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머리를 부여쥐며, 데몬스폰이 되어간다.
오오오오─
사람들은 그 광경을 공허한 울림을 토하며 지켜보았다.
데몬스폰이 만들어질 때마다, 계약진에는 이상하게도 핏물이 짙어졌다.
그렇게 1시간을 이어지던 의식은 그렇게 20명의 데몬스폰을 만들고 나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소름끼치는 괴리를 느껴야 했다.
“이본느, 방금 계약을 한 사람이 몇 명이었죠?”
“······30명이었습니다.”
나는 오거스트의 뒤에 나열한 이들의 숫자를 세었다.
“18명이네요.”
“······.”
12명이 비었다. 하지만, 그 12명에 대한 기억은, 마치 삭제가 된 듯 우리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섬에, 잡아먹힌 거야?”
떠듬거리며 흘러나오는 은가예의 목소리.
“그렇겠지.”
대애애앵───!
종이 울렸다. 모였을 때처럼, 좀비처럼 우르르 돌아가는 사람들.
“······.”
우리는 인파에 섞여 광장을 빠져나오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으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이본느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곧 돌아가야겠네요. 이 이상 머무는 건 위험하겠어요.”
“···예, 왠지 알 것 같아요.”
아멜리아가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감정이 조금씩 옅어지는 기분이에요.”
이 섬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감정을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장시간 머무르면 우리도 화국의 사람들과 같은 ‘무감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나나 한세연같은 존재일 것이다.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나야 말할 것도 없고, 한세연은 모르도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것 같으니······
그나저나.
‘마음의 심지가 전부 죽어있어.’
내 표정이 찌푸려졌다. 나는 섬을 도는 내내 화국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런데 모두의 영혼은 투명하기만 할 뿐, 티끌만큼이라도 감정의 색을 보유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감정이 없는 것과, 마음의 ‘심지’가 죽은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감정이야, 언제든 다시 생겨날 수 있지만 ‘심지’가 죽었다면, 그 감정이 다시 생겨나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는 섬을 부술 계획을 지니고 있는 내게는 엄청난 걸림돌로 다가왔다.
내 계획은 무감인들이 ‘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이었으니.
“무슨 일 있어?”
내 표정이 미미하게 찌푸려져 있자 한세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나는 숨길 것 없이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사람들한테 마음의 심지가 없어.”
“심지가?”
갸웃거리며 유심히 무감인들을 쳐다보는 한세연.
그녀가 돌연 소피아의 품에서 캔디를 꺼내 집더니, 시장을 지나가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캔디를 빼앗긴 소피아가 아앗! 비명을 지른다.
뭐 하려는 거지?
나는 의아해하며 한세연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지나가는 남자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캔디를 건네주는 한세연.
“······.”
캔디를 받은 아이가 말없이 그것을 입에 집어넣자 한세연이 빙긋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 순간, 내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런 거였나.”
투명했던 아이의 영혼에서 희미하지만, 감정의 색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섬에게 금방 흡수되었지만 분명 볼 수 있었다.
‘심지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거였구나.’
왜 몰랐을까.
나는 내 ‘눈’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신뢰하고 있었다.
내 눈에 안 보이는 것은 없는 것이라 단정짓고, 심지를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내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뿐이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님에도.
물론 그동안 이 눈으로 보이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그리 착각할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고맙다. 덕분에 보였어.”
내 감사에 한세연이 말없이 웃어 보였다. 마주 웃어 보인 내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돌아가죠.”
더 이상 머무를 이유는 없었다. 오늘 얻을 수확은 모두 얻었으니.
다음에 올 때는 사전 조사가 아닌, 섬의 붕괴를 위해서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미련 없이 화국을 떠나, 마을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