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은 없지만 아카데미에서 꿀빱니다-137화 (138/226)

§ 137화

······마을로 돌아온 다음 날 오전.

아멜리아는 회의장 테이블 위에 펼쳐진 거대한 지도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예요?”

“화국의 지도.”

전날, 화국에 들렀을 당시 사온 지도였다.

“지도를 가지고 뭘 하려고요?”

“마법진을 그릴 거다.”

내 대답에 아멜리아를 비롯해, 회의장에 모인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도 그럴 게 나는 그들에게 섬을 붕괴시킨다고만 했지,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한 적이 없었다.

나도 사전조사를 마치기 전까지는 그저 막연한 계획에 불과했었으니.

그러나, 하나둘 파츠가 갖춰지며 그 계획이 실체를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 파츠중 하나가 이리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왔네.”

끼이익─

회의장의 문이 활짝 열린다.

그 너머에서 한세연이 누군가의 손을 잡고 들어온다.

커다란 곰 인형을 끌어안은 작은 체구의 여자 아이.

“···일레인?”

그녀의 정체를 확인한 아멜리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

······일레인 디아즈는 저주마법의 대가다.

저주마법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디아즈가가 보유한 38개의 저주 술식, 그 전부를 터득한 천재.

하지만 선천적으로 병약한 몸 탓에 그녀는 사계절 내내 잔병을 달고 산다.

성장마저 멈추어버린 절망적인 몸은 어떠한 포션을 마셔도 효과를 볼 수 없었다.

물론, 생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컨디션이나, 커리어적인 면에서는 치명적이었다.

아카데미의 체력부문에서는 언제나 전교 밑바닥을 깔아주었으며, 1년 365일, 나른함에 시달리는 수준이었으니······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희망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신체회복 단약.

그리고, 그 희망은 지금 바로 내 손에 쥐여져 있었다.

문득, 일레인이 나를, 아니. 내 손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좁혀진 동공이 반짝이는 게 간식을 발견한 새끼고양이 같다.

손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니, 일레인의 고개가 따라 움직인다. 왼쪽으로 가니, 왼쪽으로. 위아래, 다시 왼쪽······

“···그만해.”

“어.”

어느새 데퉁스러운 표정이 된 일레인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손.”

샤샥-

내 명령에 작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일레인. 손 위에 단약을 올려주자, 밝아진 표정이 된 일레인이 바로 입을 벌린다.

오물─ 오물─

병아리가 모이를 쪼아먹듯 고사리만한 손에 하얀 단약을 호빵처럼 쥔 일레인은 단약을 깨작깨작 씹어먹었다. 나른하던 표정에 생기가 돈다.

단약을 반쯤 쪼아먹던 일레인이 나를 올려다보며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말 잘 들으면 앞으로도 계속 줄게.”

“정말이야?”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아니.”

대답이 조금 느린 것 같기도 했지만 기분 탓일 거다.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돼?”

“저거.”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를 가리켰다.

“저 지도 위에 ‘반전마법’을 그려줘.”

내가 일레인을 데려온 이유.

그건 바로 디아즈가의 저주마법이 오거스트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중요한 파츠였기 때문이다.

모든 마법적 현상을 역전시키는 ‘반전마법’은 오로지 일레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저주마법이었으니.

이내, 신발을 벗고 테이블 위로 올라가 작은 몸으로 열심히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하는 일레인.

평소에는 걷는 것을 제외한 활동 전반을 인형에게 모두 떠넘겨버리는 일레인이 몸소 움직일 정도라면, 확실히 단약의 효과가 대단하긴 한가 보다.

“생명체도 아니고, 섬에 반전마법이라니, 무슨 생각이시죠?”

아멜리아가 지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멜리아, 이 섬은 살아있다.”

“그게······”

반문을 하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멜리아. 역시 얘가 머리 하나는 좋다.

“무슨 말인데 그래?”

“······화국의 섬에는 탐식의 권능이 일부 부여되어 있죠.”

“그렇지.”

“그런 섬이 살아있다는 것은, 섬이 최아린과 같이 무한한 공복감을 느끼고 있다는 거예요.”

반전마법은 그 섬에 부여된 ‘공복감’을 일시적으로 ‘반전’시킨다.

“공복의 반대는 포만이지만, 녀석이 느끼는 건 그 이상이겠죠.”

“······토해버린다는 이야기군.”

“예, 사람들에게서 가져간 감정을 토해낼 거예요.”

화국의 섬이 부유할 수 있는 동력원은 ‘사람’이다.

사람을 살게 하되, 그 사람을 연료로 이용해 부유하는 괴물.

그런 녀석이 무언가를 토한다고 한다면, 그건 감정이 되리라.

“하지만 녀석에게 잡아먹힌 것은 사라진다고 하지 않았어? 사라져버린 감정을 어떻게 되돌리겠다는 거야?”

“예, 맞아요. 사라져버린 것은 되돌릴 수 없죠.”

아렌의 의문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탐식의 권능에 잡아먹히면 그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사람이 사라져도 그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희는 감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요.”

감정이 지워져 간다는 사실에 위험을 느낀 우리는 전날 섬을 빠져나왔었다. 더 이상 섬에 있으면 무감인이 되어버리기에.

하지만 정말 섬이 감정을 잡아먹고 있다면, 그 감정을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어버린다.

그 사실을 깨달은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말은······”

“예, 맞아요. 감정은 빼앗기되, 먹히고 있지는 않았던 거예요.”

짝짝짝. 아멜리아의 말에 내가 작게 박수를 쳐 주었다.

“아멜리아의 말대로야. 녀석은 감정을 먹고 있지 않아.”

정확하게는 ‘소화’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때, 이본느가 나를 보며 물어왔다.

“감정을 반전시키는 것과 오거스트를 잡는 것에 무슨 연관이 있나요?”

“섬에 빼앗긴 감정은 오거스트의 힘이 됩니다.”

“!”

“녀석은 섬이 모아놓은 감정을 제 힘으로 부리고 있어요.”

오거스트의 목소리와 눈빛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그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은 바로 섬이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감정’이었다.

상대에게 감정을 덧씌워 매료를 시켜버리는 것이다.

말이 매료지, 오거스트는 이를 이용해 상대를 절망에 빠트릴 수도, 웃음 짓게 할 수도 있었다.

사람의 감정을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무서운 능력인 것이다.

하지만, 섬이 빼앗은 감정을 반전마법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되돌려준다면, 오거스트는 더 이상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섬에 반전마법진을 그리자는 거군요.”

“예.”

놀란 이본느에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섬 전체에 마법을 그리려면 대공사가 되겠네요.”

“그거라면 일레인이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맡겨둬.”

문제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일레인. 평소 같지 않은 활기에 피식 웃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믿는다.”

일레인이 작정하고 인형을 부리면, 족히 수십 개의 인형을 부릴 수 있다.

아카데미 축제에서는 혼자 인형극을 벌일 정도였으니.

섬 전체에 마법진을 그리는 일도 인형들을 이용한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였다.

물론 화국에서 마법진을 가동하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하긴 햇지만······ 이를 위한 파츠는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계획을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들. 나는 그중에서 소피아를 보곤 피식 웃었다.

사람들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 함께 크게 따라 뜨고,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면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을 지킨다.

정말 알아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모르면서 남들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마법 울렁증이 있는 소피아가 이 어려운 이야기를 이해했을 리 없었으니까.

아마 회의가 끝나고 나서 나에게 조용히 모르는 것을 물어보리라.

‘알아들은 척 묻어가기.’ 그게 소피아의 회의패턴이었다.

“소피아씨는 그냥 저를 따라다니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피아. 작게 웃은 내가 라우라를 돌아보았다.

“라우라.”

“네···. 마스터···.”

언제나처럼 졸린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에게 나는 한 가지 임무를 주었다.

“오거스트의 크루트는 당신이 맡아주세요.”

오거스트의 크루트들은 주인의 뜻에 따라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거스트의 명령 한 마디에 돌변해버리는 놈들이기에,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나와의 계약으로 마수를 다루는 능력이 일취월장한 라우라라면, 오거스트에게서 녀석들의 통제권을 빼앗아 오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오거스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런데, 이런 내 말에 라우라는 난색을 표했다.

“어려워요?”

“어렵다기보단, 끌어모으는 게 문제에요···.”

라우라가 마수를 부리는 능력을 지녔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수를 직접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녀의 능력은 마수를 직접 마주해야지만 발동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화국의 지도에 표시된 크루트들은 죄다 섬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있었다.

그것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라우라의 능력 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이런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끌어모으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예······?”

“세연이가 알아서 해줄 겁니다.”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라우라에게, 나는 그저 웃어 보였다.

그렇게 회의가 진행되며 섬의 붕괴 계획이 수립되고, 각자에게 역할이 주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남았다.

“마릴은 누가 상대하죠?”

오거스트의 측근, 마릴.

거미줄을 뿜어 다수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자. 그녀를 상대할 사람이 비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게는 사전에 준비해놓은 패가 있었다.

“그건 저한테 맡겨두세요, 생각해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전에 테스트 먼저 해봐야겠지만.

***

“오랜만이다, 해솔아.”

내가 생각해둔 사람이란 바로 천우진이었다.

“어, 반갑네. 잘 지냈냐.”

“나야, 맨날 똑같지.”

천우진은 방학기간 동안 본가로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 남았다.

원래도 성실한 녀석이기는 했으나, 천우진은 방학까지 반납해가며 자진해서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마릴을 상대로 경험한 뼈아픈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마경에 데려와 수련을 시킬까도 고민해보았었는데 그만두었다.

천우진한테는 노아라는 훌륭한 스승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마경보다 그쪽이 더 혹독하게 가르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오늘은 그 성과가 내 기대에 미칠까를 시험해보기 위해 부른 자리였다.

“해솔아, 이분은······”

내 옆에 선 소피아를 보며 눈을 살짝 크게 뜨는 천우진.

바깥나들이라 머리를 검게 물들인 소피아를 알아보았을 리는 없고······

‘왜 이래?’

나와 소피아를 번갈아 보며 천우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분을 소개시켜 주려 불렀구나.”

“···어, 그건 맞는데.”

뭐지, 이 핀트가 어긋난 듯한 느낌은.

내가 갸웃거리는데, 천우진이 소피아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해솔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상한 첫인사에 고개를 내저은 내가 대련장을 가리켰다.

“됐고, 대련을 해보자고 불렀어.”

우리가 있는 곳은 현재 이터니티의 마력훈련장이었다.

방학기간에는 외부에도 개방이 되기에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대련? 해솔이 너랑?”

“아니.”

고개를 저은 내가 소피아를 가리켰다.

“소피아씨랑.”

이 악물고 하는 게 좋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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